샬 롬 !   마태복음 10장 12〜13절

히브리어 샬롬(평안)만큼 많이 사용되는 낱말도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237회 나오는 말입니다. “샬롬”은 유대인들에게 친절과 사랑과 용기 신념 그리고 공동체의식을 심어준 말입니다.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만났던 여학생 야엘은 샬롬을 ''''Good morning!''''  ''''Peace!''''  ''''Good bye!''''라는 인사라고 해석해주었습니다.

오늘의 뉴스를 먼저 들은 사람에게 샬롬? 하면 그 뜻은 오늘은 전쟁소식 없느냐는 뜻이었습니다. 샬롬-  그 대답은 오늘 전쟁소식 없다는 것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헤어집니다. 샬롬은 이스라엘사람들에게 그렇게 절실한 인사라는 것을 저는 배웠습니다.

하비 콕스는 <신의 혁명과 인간의 책임>에서 샬롬을  화해(天地人간의 和解), 자유(죄로부터의 자유,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자유), 희망으로 요약하였습니다. 오늘 저는 성경에 나타난 샬롬을 말하고자 합니다.

샬롬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샬롬이 명사로 쓰이면, 완전, 온전, 건강, 건전, 온당, 번영, 행복, 평화, 평온, 평안, 태평, 성공, 행운, 이러한 뜻이 있습니다.

1. 샬롬은 몸 전체에 오는 건강이며 행복입니다. 그리고 평강입니다. 도덕적으로 건전한 삶을 의미합니다.

애굽의 총리 요셉이 그의 형들을 보고 북받히는 감격을 억누르고 안부를 물을 때,
“전에 그대들이 나에게 말한 그 연세 많으신 아버지도 안녕하시오(샬롬)? 그
분이 아직도 살아 계시오?”(표준새번역 창 43:27). 맨 먼저 아버지의 샬롬을 물었습니다.
창세기 44장 17절에서는 “… 나머지는 평안히(샬롬) 너희 아버지께로 돌아가거라.”(표준새번역).

두려움에 긴장된 형들에게 안심시키기 위하여 샬롬을 말하였습니다.

2. 샬롬은 가정에 머물러야 합니다.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을 찾아가서, 나의 이름으로 안부를 전하여라.  너희는 그에게 이렇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만수무강을 빕니다. 어른도 평안하시고(샬롬), 집안이 모두 평안(샬롬)하시기를 빕니다. 어른의 모든 소유도 번창하기를 빕니다.”(표준새번역 삼상 25:5-6).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이리저리 거처를 옮기는 때 갈멜의 부자 나발에게 식량을 구하러 보내면서 전한 문안 인사입니다. 최고의 예의로 나발에게 샬롬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발은 어리석어서 다윗의 샬롬을 거절한 후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렇게 가정의 샬롬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너는, 집안이 두루 평안한(샬롬) 것을 볼 것이며, 가축 우리를 두루 살필 때마다 잃은 것이 없는 것을 볼 것이다.”(표준새번역 욥 5:24).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 함께 사는 가정의 평안, 샬롬입니다. 이 샬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정에는 아무런 재난도 없고, 늘 평화가(샬롬) 깃들며, 하나님마저도 채찍으로 치시지 않는다.”(표준새번역 욥 21:9)

가정에는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평화를 만들어내는 가정엔 두려움이 없습니다. 평안은 안전입니다. 평온입니다. 염려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에, 죄에 기인합니다.
샬롬을 만들어내는 가정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평안한(샬롬) 마음으로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대가 간구한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오.”(표준새번역 삼상 1:17)

입속으로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술 취한 줄 알고 제사장 엘리가 한나를 나무라다가 “아이를 갖기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을 듣고 축복한 말입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 그 가정에는 기쁨과 평화가 없었습니다. 엘리의 말대로 한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아 사무엘을 낳고 그 집에 평안(샬롬)이 찾아왔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샬롬을 얻었습니다.

3. 샬롬은 의인의 삶을 말합니다.

“그는 평화로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바른길을 걷는 사람은 자기 침상 위에 편히 누울 것이다.”(표준새번역 사 57:2)
소유가 많아서 샬롬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의로움 속에 샬롬이 있습니다. 정당한 길로 걸어가는 사람만이 샬롬을 맛볼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사는 사람만이 샬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욥은 “또 네가 정말 깨끗하고 정직하기만 하면, 주께서는 너를 살리시려고 떨치고 일어나셔서, 네 경건한 가정을 회복시켜(샬롬) 주실 것이다.(표준새번역 욥 8:6)” 회복한다, 형통케 한다는 말은 샬롬입니다. 안전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들은 늘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완전한 평화(샬롬)를 주시기 바랍니다.”(표준새번역 사 26:3).

주님을 향하여 흔들리지 않는 자,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샬롬으로 강복(降福)하실 것입니다. 경건한 자의 삶과 의지가 굳은  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샬롬으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가장 귀중한 축복은 샬롬입니다.

4. 자녀가 받는 샬롬의 축복

“주께서 너의 모든 아이를 제자로 삼아 가르치실 것이고, 너의 아이들은 큰 평강을 누릴 것이다.”(표준새번역 사 54:13). 자녀들이 받는 샬롬의 축복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바르게 교훈하며 바르게 가르치면 큰 평강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자녀를 통해서 부모가 받는 샬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샬롬 다음으로 큰 기쁨이 됩니다. 부모된 사람들이 자녀들을 통해서 샬롬을 받고 싶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려서부터 교훈해야 합니다.

“그들의 피는 영원히 요압과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왕실과 그의 왕좌에는, 주께서 주시는 평화가(샬롬) 영원토록 있을 것이다.”(표준새번역 왕상 2:33).
요압대장은 이스라엘의 군사령관 아브넬과 유다의 군사령관 아마샤를 암살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명령으로 죽게 됩니다.

까닭 없이 흘린 피의 대가로 요압은 샬롬이 없이 죽어야 하나, 다윗은 그의 신앙, 그의 선한 성품 때문에 하나님의 샬롬인 구원과 평안이 그의 자손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5.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샬롬

“비록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은총이 너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평화의 언약(베리트 샬롬)을 파기하지 않겠다.”(표준새번역 사 54:10).
회개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샬롬은 평화의 계약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기드온은 거기에서 주께 제단을 쌓아 바치고는, 그 제단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다.”(표준새번역 삿 6:24).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여호와 샬롬!

기드온은 비록 험악한 인간이었으나 여호와께서 주신 샬롬을 얻은 후 대담하고 훌륭한 용사가 되어 300명밖에 안 되는 정예병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샬롬은 이렇게 번영, 융성, 성공, 행운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6. 죄 있는 곳에 샬롬은 없습니다.

죄가 인간을 지배하면 살아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뼈속 깊은 곳까지 샬롬이 없습니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개역개정판 시 38:3).

뼈속 깊은 곳까지 평안이 없다고 합니다. 인간의 내면세계의 절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샬롬이 없는 인간은 생기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번영이 없습니다. 융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버린 곳에는 샬롬이 없습니다. “그들은 평강(샬롬)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샬롬)을 알지 못하느니라”(개역개정판 사 59:8).

범죄한 백성에게 내리는 응징은 샬롬을 빼앗는 것입니다.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샬롬)을 빼앗으며 인자와 사랑을 제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개역개정판 렘 16:5).

이스라엘의 범죄행위를 규탄하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탄식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선민 이스라엘이 당장 회개하고 돌아와야 하나님의 샬롬을 받을 수 있습니다.

7. ‘샬롬’이 ‘셀렘’으로 변화하면 화목제사라는 뜻이 됩니다.

우정의 결연, 화목제물의 뜻이 됩니다. 화목제는 제물을 바친 다음에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그 제물을 나눠먹는 기쁨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과 평화로운 교통 가운데서 구원의 기쁨과 친교를 나누는 회식을 의미합니다.

8. 샬롬이 ‘실렘’으로 변화하면 ‘갚는다’, ‘대가를 지불하다’는 뜻이 됩니다.

“짐승을 죽인 사람은, 생명으로 생명을 갚아야 하므로, 살아 있는 것으로 물어주어야 한다.”(표준새번역 레 24:18). 구약의 율법은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만 용서를 받게 됩니다.

“갚지 않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용서받기 위해서 “대신 지불하는 것”, “대신 갚는 것” 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대신 지불하는 것이 ‘실렘’입니다. 그러므로 ‘실렘’ 없이 용서는 없습니다.

9.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실렘을 대신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신 분,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으로 단번에 우리를 속죄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용서받았고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샬롬 안에서 셀렘, 실렘을 발견하며 체험하게 된 것을 감사감격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 제자들을 파송하셔서 전파하신 복음, 그것은 샬롬, 셀렘, 실렘입니다.

우리들과 우리나라가 완전히 회복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도록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출처: USA 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김진영 목사님

'은혜의 단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단의 인기전략  (0) 2012.06.02
하나님은 약속을 기억하십니다  (0) 2012.06.01
어느 직장인의 기도  (0) 2012.05.25
44 송이의 장미꽅  (0) 2012.05.21
어린 소녀의 우유 한 병  (0) 2012.05.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