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옥의 개념
가톨릭교회에서는 연옥설을 주장한다. “연옥”이란 라틴어로 "Purgatorium"이며, “깨끗하게 하다”, “정화하다”는 뜻이다. 즉 연옥이란 “정화의 장소”를 말한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정화 받는 장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2. 초대교회 교부들이 진술한 비슷한 개념들
가톨릭교회가 공적으로 연옥을 교리로 확정하기 이전 초대교회 교부들의 진술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부들의 진술들은 연옥을 말하기보다는 죽음 후에 인간의 영혼이 정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마태복음 5: 26을 해석하면서 영혼이 부활하기 위하여 그의 죄에 대한 대가를 한 푼도 남김없이 치러야 할 교도소에 대하여 말한다. 키프리아누스(Cyprianus)에 의하면, 믿음 속에서 세상을 떠난 성도들, 특히 순교자들은 죽음 즉시 궁극적 구원을 얻지만, 박해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부인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기를 원하였던 사람들은 죽음 후에 정화를 받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에 의하면, 살아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었던 정화의 과정은, 죽음 후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오리게네스(Origenes)는 클레멘스의 뒤를 이어, 야웨신이 죄 된 인간을 위하여 설치한 "채무 구류소"(Schuldgefangnis)와 "지혜로운 불"에 대하여 말한다. 이 불을 통하여 죄로부터 깨끗해지는 정화의 과정이 일어난다. 이 과정은 인간의 죄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죄에서 인간을 깨끗이 씻고 부활의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야웨신의 자비로운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에 의하면, 인간 안에 있는 야웨신의 형상이 회복되기 위하여 정화의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그레고리는 정화하는 불로써 묘사한다. 이 정화의 과정이 죽음 이전까지 실현되지 않을 때, 그것은 부활 후에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이 끝난 후, 인간은 야웨신의 삶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3. 중세 가톨릭교회의 연옥의 교리화
중세기에 이르러 연옥설은 가톨릭교회 내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대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땅 위에서 지은 죄와 벌에서 정화의 불을 통하여 깨끗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Albert, Thomas v. Aquinas, Bonaventura, Skotus, Durandus) 본래 정화의 불이 물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것인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정화의 불을 물질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리하여 정화의 불은 하나의 장소로 생각되었다.
1274년 리용(Lyon) 공의회는 연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참으로 참회할 뜻이 있는 자들이 참회의 열매들을 통하여 그들의 행위와 게으름에 대한 보상을 하기 이전에.. 사망하였을 경우, 그들의 영혼은 죽음 후에 정화의 벌을 통하여 (poenis purgatoriis seucatharteriis) 깨끗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벌을 면케 하기 위하여, 살아 있는 신자들의 중재의 기도, 미사 성제(聖祭)와 기도와 헌금, 그리고 교회의 질서에 따라 신자들이 행하는 경건의 여러 사역들은, 그들의 벌을 면케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연옥설은 1336년 교황 베네딕트 12세(Venedikt XII)의 교서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공적 교리가 되었다. 이 교서에서 교황은 마지막 부활이 있을 때까지 죽은 자들이 잠자는 상태에 있다는 교회의 전통적 이론을 거부하고, 죽은 자들은 죽음과 동시에 야웨신의 심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각 사람은 죽음과 동시에 야웨신의 심판을 받는다. 이 상태에서 영원한 삶에서의 자신이 어떻게 되는 지에 대한 모든 것은 인간 영혼 자신의 결단으로는 되돌이킬 수는 없는 상태가 된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야웨 신을 거부하는 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반면, 믿음 가운데서 죽는 자는 죄의 용서를 받는다.
믿음 가진 신자는 그러나 야웨 신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죄로부터 완전히 깨끗할 수 없다. 그는 자기의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지 않았고, 자기의 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의 영혼은 그들의 죄를 완전히 벗기까지 연옥의 불 속에서 정화되어야 한다. 지옥은 모든 희망을 버릴 수밖에 없는 장소이지만 연옥은 죽음 후의 미래와 희망으로 가득한 장소이다.
이 세상에 사는 신자들의 삶이 끊임없는 참회와 정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처럼, 죽은 자들의 영혼도 연옥의 불 속에서 참회하며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정화되어야 한다. 정화의 불 곧 벌과 정화의 상태가 있다.
무거운 죄들과 시간적인 죄의 벌에 묶여 있는 영혼들은, 이 상태 속에서 정화된다.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규정한 법에 상응할 수 있는 데까지 인격이 완성되어진다. 연옥에서 인간의 영혼은 두 가지 벌을 받는다. 첫째는 저주의 벌이다. 하나님을 동경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보는 기간이 연기되어 고통을 받게 하는 벌이다. 둘째는 감각의 벌이다.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죄를 참회하고 고난을 받으면서 정화하는 벌이다.
살아 있는 신자들은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트렌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신자들의 중보의 기도를 통하여, 무엇보다 먼저 야웨신의 마음에 드는 제단의 제물을 통하여 도움을 받는다" 즉 신자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중재의 기도와 교회에 바치는 제물을 통하여 정화의 과정이 빨리 끝나도록 도와줄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살아 있는 신자들이 연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길을 ‘성도의 교통’이라는 개념에서 찾아낸다. 살아 있는 성도와 죽은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성도와 죽은 성도의 교통이 가능하며 성자의 중재가 가능하며 대신 보상을 제시 할 수 있다고 본다. 죽은 성도를 위하여 성만찬 즉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를 하거나 살아 있는 성도가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함으로 보상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연옥이 어디 있는지, 연옥의 고통과 정화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인지, 연옥의 장소와 시간적 길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신적 신비에 속한다.

4. 연옥설의 문제점
첫째는 성경에 명백한 증거가 없다.

그들이 제시하는 구절은 마태복음 12장 32절과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15절이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서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 하리라”는 말에서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하는 과정이 죽은 후에 분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용서 받지 못 하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본문으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중간 개념인 연옥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성령을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조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 15절에서는 한 개인의 특수한 심판에 대한 언급이라고 말한다. 한 개인의 선한 일과 악한 일에 대하여 심판이 있을 것에 대한 언급이라고 보는 데, 그러나 이 본문은 거짓된 이론을 불에 타버리지만 복음의 참된 이론은 영속성을 가진다는 것에 초점 맞추어져 있다.

둘째는 기존 교회에서 행하는 일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교리를 만들었다.

박해 시에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부인 한 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이들을 위한 설명을 시작했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죽은 자신의 친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 걱정들로 인하여 중재 기도와 헌금 등을 드리는 것을 합리화하고, 또한 그것으로 교회의 재정이 마련되어지는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이 교리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교회의 편리를 위하여 교리가 만들어져 합리화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셋째는 죽음 이후 신자에 대한 정화가 신자의 대리적 보상을 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이 죄의 사함을 받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인간이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자신을 정화시킬 수 없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서 용서되는 것이다.
넷째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다섯째는 인간의 죽음은 육체가 죽는 것이다. 육체의 죽음과 함께 의식이나 인지, 의지도 함께 죽는다. 따라서 육체가 결여되지만 의식과 의지와 인지를 가진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주장은 현실적인 죽음의 현상을 거부하는 것이다.

 

출처: 김종수 목사

http://www.shinchon.org/bbs/view.php?id=new_jesus2&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

 

* 보충 자료

지옥과 연옥에 관하여 : http://www.siloam-church.org/lecture/sesin/sesin%20243.htm

연옥에관하여 : http://cafe.daum.net/shinjesuslove/WmmZ/343?docid=1LWyh|WmmZ|343|20110301140609&q=%BF%AC%BF%C1%BF%A1%20%B0%FC%C7%CF%BF%A9

로마가톨릭주의의 정체 http://blog.daum.net/mulkogi153/13760267

쉽게 풀어쓴 카톨릭 비판 http://blog.naver.com/mokpojsk?Redirect=Log&logNo=130003852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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