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행복한 목회자가 되어야 !

목사들은 대부분 목회에 성공해서 행복한 목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는 원초부터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목회는 목회자가 주님의 명령을 이루어야 할 지상(至上)의 목표이지 자신의 행복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내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이 지상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합니다.
목회자의 잘못은 목회를 수단으로 내 행복의 쟁취를 목표로 삼는 데 있습니다.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목회는 행복한 목회자가 해야 목회가 됩니다.
즉 행복하지 못한 자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 목회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지 못한 자는 목회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목회란 복음(행복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행복한 생활을 코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복음을 가르치고 지도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마치 축구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체육 교과서를 보고 축구 코치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목회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구원 받은 성도가 행복해지는 것은 참으로 간단합니다.

저는 서울 도봉동에 있는 도성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담임 목사님이 병원에 입원 중이실 때 도봉시장 상인 한분이 찾아와서 자기 남편이 귀신들려서 자기를 죽이려 하니 목사님께서 오셔서 남편에게 들어온 귀신을 내어 쫓아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강 장로님이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이 안 계시니 예 전도사님께서 심방을 가셔야 하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앞장서는 바람에 저는 강 장로님과 권사님 두 분을 모시고 난생 처음 귀신을 쫓아내는 심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 장로라는 분은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인데 목사의 평가를 귀신 쫓아내느냐, 못 내느냐로 진위를 가리는 분이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면 그는 가짜 목사라고 공언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여태껏 귀신을 쫓아보지 못하였고, 귀신 쫓아내는 것을 구경해 본적이 없었던 나로서 만약 이때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면 “내 목회 길은 끝장이겠구나!” 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 집에 도착했습니다.

강 장로님이 먼저 대문을 열고 호기 있게 앞서 들어갔습니다.
그 때 마루위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장정(귀신들린 남편)은 키가 육척이 넘어 보이고 기골이 장대하여 보기만 해도 조폭 두목 같은 무서운 인상을 풍겼습니다.
먼저 강 장로님께서 호통을 치셨습니다.
“허우대가 멀쩡한 사람이 연약한 아내를 때리고 학대를 하느냐?”
이 소리에 장대한 남편이 귀신들린 자의 특이한 눈빛으로 강 장로를 당장 요절이라도 낼 기세로 주먹을 휘두르며
“너는 또 웬 놈이냐? 어제는 경찰관 나부랭이가 와서 쫓아 버렸더니 오늘은 또 웬 놈이 와서 귀찮게 구느냐?”
라고 소리치면서 마루에서 내려서려는 순간 저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게 주의 종에게 무슨 망령된 소리냐? 거기 꿇어앉지 못해!”
라고 꾸짖었습니다.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꿇어앉으라면 꿇어앉으면 되지요.”
라며 사자 같은 기세로 덤비던 사람이 그만 순한 양같이 돌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운데 예배를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아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라고 일갈했더니 그 순간 귀신은 나가고 남편은 제 정신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 그때의 제 심정은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 순간 저는 목회자가 된 것이 한 없이 기뻤고, 이 세상 어떤 자 보다 더 행복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귀신을 쫓아내는 것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 것은 예수님의 피 공로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사실이라 했습니다.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 자는 이 세상 어떤 자보다 더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행복하지 못한 목회자가 있다면 이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 짝퉁 목사 입니다.
진정한 목회자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사실을 더 기뻐해야하며 , 이 세상 그 어떠한 환란과 고통이 닥쳐와도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빼앗길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의 기쁨은 충만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2:17-18)

그렇습니다. 만약 행복하지 못한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도 없고 행복하지도 못한 자는 참 목회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20)

원로 Essay중에서
성도교회 원로목사 예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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