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단들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이단들, 그리고 그들의 교묘하고도 맹렬한 활동으로 말미암아 어느 때보다도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들 중에는 이단의 그럴듯한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방황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내다보셨다. 그래서 자신과 사도들의 말씀을 통해 말세에 미혹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심으로서(마 24:4-14, 벧후 3:3), 처음부터 이단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경고하셨다.
 
이제 이단의 개념과 분별 기준, 그리고 이단 대하여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이단의 개념

이단이란 본래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선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선택 행위로 말미암은 결과물인 철학적, 정치적 원칙 또는 그런 원칙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서 이단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단이라는 말은 본래 좋은 경우나 나쁜 경우를 막론하고 학파나 분파나 당파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이 되었다. 그래서 행 24:5에서는, 기독교의 순전한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을 가리켜서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도 바울께서는 고전 11:19에서 이단이라는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갈 5:20에서는 하나의 단순한 분파가 아닌, 조화와 화목을 깨뜨리고 교리와 조직에 분열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즉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과 같이 교회 안에 있어서는 안 될 악한 것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했다. 사도 베드로께서도 벧후 2:1에서, 이단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했다. 그래서 교회는 교리에서나 조직에서 통일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초대교회 때 이후부터는, 이단이라는 말을 부정적 의미로만 사용했다. 그러므로 이단이란, “기독교의 근본적인 신앙에서 어긋나는 악마적인 자기주장”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전통에 따라서, 이단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이단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 의미는 사이비 종교라는 말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는 “종교로서의 기본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겉으로는 종교단체를 위장하고 안으로는 비종교적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 즉 거짓이나 가짜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이단과 사이비 종교는 구별이 될 필요가 있다. 기독교 대사전은 사이비 종교가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1) 이중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다. 즉 겉으로는 그럴듯한 교리를 내세우지만, 안으로는 다른 교리를 가지고 있다. 2) 교주를 신격화한다. 3) 시한부 종말을 주장한다. 4)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이다. 5) 기성종교에 대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 6) 여러 교리들을 무분별하게 혼합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 7) 숙명론에 빠지거나, 요행수를 기대하도록 조장한다.
 
2. 이단의 분별 기준
 
이단을 손쉽고 정확하게 분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음 기준들을 적용해보면, 이단들은 비교적 손쉽게 분별해 볼 수 있다.
 
1) 성경에다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는 일이 있다.

모든 교리나 신앙의 기준들은 오직 성경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의 생각이나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좋은 전통이라도 성경을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말을 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대로 침묵을 해야 한다. 성경이 가는 곳까지 함께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함께 멈추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외경>, <유다복음>, <내가 본 천국> 등에 참고해 볼만한 내용이 있다고 하여, 그런 책들을 성경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다 무엇을 더하는 사람들이다. 이해하기 힘들고 틀린 것같이 생각된다고 해서, 신약이나 복음서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의 일부를 빼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성경에 기록된 재앙을 받을 사람들이요, 거룩한 성에 참여하지 못할 사람들이다(계 22:18,19). 그러므로 만일 성경에다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단이라고 분별해야 한다.
 
2) 성경의 모든 부분을 균형에 맞도록 강조하지 않는다.

성경에는 책망과 경고의 말씀이 있는가 하면, 위로와 격려의 말씀도 있다. 율법을 기록한 책이 있는가 하면, 역사를 기록한 책도 있다. 예언의 책도 있고, 문학적인 책도 있다. 예수님의 행적에 관한 책이 있고, 사도들의 편지들도 있다. 이해가 잘 되는 책이 있고,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책도 있다. 성경은 이처럼 모든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기에, 어떤 경우의 사람들에게나 유익을 주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 거기에만 전적으로 매달리고, 다른 부분은 거의 무시하거나 침묵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신구약의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딤후 3:16). 따라서 모든 성경은 다 우리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또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함에 유익한 책이다(딤후 3:16,17).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균형에 맞도록 고루 강조되어야 한다. 만일 어느 한두 부분에만 매달리며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단이라고 분별해야 한다.
 
3) 사도신경의 내용을 가감하거나, 왜곡하여 믿는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여러 권의 책으로 펴내야할 만큼 많은 내용의 교리들을 믿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 많은 내용들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사도신경에서 고백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은 공 예배에서의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순서를 넣는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 내용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그대로 믿고 있다.
 
사도신경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 중에서, 성부·성자·성령, 즉 삼위 하나님에 관한 고백, 천지의 창조에 관한 고백,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승천·재림 심판에 관한 고백, 사람의 부활과 영생에 관한 고백 등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들만을 언급하고 있다. 성도들은 이 내용들을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 왔다. 이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부정하거나 왜곡하면, 기독교 신앙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별로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내용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내용에 가감을 하거나,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왜곡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단이라고 분별해야 한다.
 
4) 사람을 성경만큼 높이는 일이 있다.

사람은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는 일은, 우상을 숭배하는 죄처럼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초래하게 만든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던 헤롯왕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로 말미암아 충이 먹어 죽고 말았다(행 12:23).
 
이단은 흔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교주 또는 지도자를 지나치게 높이고 따른다.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받아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또 성경을 아무리 심오하게 풀어 가르치는 사람이라도, 성경만큼 높임을 받을 만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여전히 허물과 오류가 있는 사람이요, 따라서 그도 역시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해야 할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특정한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고, 그 사람의 옷깃이라도 만지려 하고, 손 씻은 물이라도 마시려 해서는 안 된다. 특정한 사람이 있을 때는 교회에 출석하고, 그 사람이 없으면 허전함을 느낀 나머지 교회 갈 마음도 없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일 사람을 성경이나 하나님처럼 높이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단이라고 분별해야 한다.
 
3. 이단을 대하는 태도
 
1)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진리가 있는 곳에는 늘 비진리도 있게 마련이다. 이것은 마치 빛이 있는 곳에 항상 그림자도 따라다니는 것과 같다. 추수 때, 즉 세상 끝 날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는 원수가 뿌려 놓은 가라지가 알곡 밭에서 늘 함께 자랄 것이다(마 13:39). 사도들께서는 말세에 악한 영이 활동할 것이므로 주의할 것을 경고하셨다(딤후 3:13, 벧후 2:1). 하나님께서 최후심판 때까지 이단의 활동을 허용하시는 것은, 양 우리에다 염소를 넣어 양들을 유익하게 하는 목자처럼, 참 성도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이단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하는 것이 옳다.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찾으려 하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 이단에 빠져드는 일이 되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2) 회개를 유도한다.

이단을 분별했을 때에는 먼저 무엇이 잘못인지를 지적하여, 이단이 그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때 우리는 적대적인 감정보다,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기면서 마음속에서부터 나오는 권면과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단적 사상이나 행동에 대해서만 문제를 삼고, 그 사람의 인격을 비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단을 막아내려다가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을 받았던 에베소 교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계 2:4). 우리는 자기 자신도 늘 이단에 빠질 위험에 놓여 있음을 기억하고 이단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져야 한다.
 
3) 이방인처럼 여긴다.

끝까지 돌이키기를 거절하는 이단은 나그네와 이방인처럼 여겨서, 교회 밖으로 몰아내고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전 5:13). 이는 이단을 정죄하려는 목적보다, 자신과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오는 최후의 필수적인 조치이다. 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고(마 13:33), 쓴 뿌리 하나가 많은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히 12:15). 그러므로 우리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단호하게 멀리 해야 한다(살전 5:22).
 
우리는 늘 이단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한번 이단의 미혹에 빠져든 사람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거기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단을 잘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경적 교훈 위에 바로서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짐으로서, 원수가 가라지를 뿌릴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만일 이단을 발견했을 경우에는 진심에서 나오는 충고와 권면으로 회개를 유도할 것이지만, 끝까지 회개를 거절하는 이단은 자신과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방인처럼 여기고 교회 밖으로 몰아내야 한다. 그래서 교회로 하여금 진리와 비 진리가 섞이는 일이 없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도록 해야 한다.
 
교회와신앙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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