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중생의 필요성 참된 진리(드흐라프)

2012/01/19 09:29

 

 

12) 중생의 필요성

우리는 교리 문답을 통해 우리는 선을 전혀 행할 수 없고 모든 악을 향하는 성향을 지닐 정도로 부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중생하지 않는 한, 전부 부패하여 있다고 고백한다. 이때 여러 질문이 생겨난다. 중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전적 타락을 말할 수 있는가? 중생하지 못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를 수 있는가?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아직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가? 우리는 이곳에서 중생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지는 못하더라도 몇가지 중요한 질문을 답해 보려고 한다.

 

중생이란 마음의 변화이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이 마음의 변화는 변화된 삶으로 나타나면서 계속 변화를 받는 삶을 추구한다. 교리 문답은 우리가 성령으로 중생한다고 언급한다. 이 말은 다음 성경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전서 1:23, 25). 우리는 성령의 두 가지 활동을 구별한다. 직접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열게 하는 일과, 그 마음이 주를 믿고 의지하도록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는 일이다. 이에 성경은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6:14)고 말한다.

 

성령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역사에 대해 면밀하게 생각해 보자. 사탄은 하나님을 향하던 인간의 마음을 바꾸어낼 수 있었다. 어떻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듣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설 때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은 이제 그에게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성령이 직접 그의 마음을 변화시켜 열어놓으셔야 한다. 성령의 이러한 직접적인 역사에 의해 우리는 참으로 다시 하나님께 향하게 될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 가운데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께 의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거듭남의 사건, 즉 중생 안에 포함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령으로 사람 안에서 이와같이 역사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람을 보시고 다시 자기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생을 통해서 기본적으로는 죄악으로 인한 부패와 어쩔 수 없이 그릇된 길에서 옹고집을 부리는 타성인 본성적 부패가 제거된다. 따라서 중생을 통해 원칙적으로는 원죄와 그 결과가 무효가 된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의 근본 부분,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 , 거룩이 본질적으로 회복된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다시 하나님을 알게 되며 믿음을 통해 기본적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의를 능가하는 의를 다시 한번 얻게 된다. 이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5:20)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순전하게 반응하며 하나님의 성령은 다시 그의 소욕을 다스리는 책임을 갖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택함을 받은 자의 중생을 독립된 사건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그리스도와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중생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에게 연합하는 것이며, 이 연합은 중생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한 중생한 자를 계속 영적으로 성장시킨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이 없이는 그 어떤 사람도 회심이 불가능하다. 둘째 아담이며 은혜의 언약의 머리되시는 새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인류에게 새 원칙를 제공하셨다.

 

인류의 유익을 위한 모든 영향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그분에게서 새롭게 흘러나온다. 이 영향은 특히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해 의도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욱 특별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고 그들의 마음은 다시 하나님을 향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구속의 영향이 거듭나지 않은 불택자들에게 어느정도까지 역사하는지는 질문으로 남아있다. 그들이 이 세상에 사는한, 그들은 택자와 어느 정도 유기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즉 그들은 택자와 함께 하나의 인류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까지는 그들에게도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만큼 그만한 변화를 나타내는 영향은 아니다. 하지만 불택자들에게 끊임없이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모든 인류의 유대관계가 유지된다.

 

또한 그리스도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불택자들의 마음에도 어느 정도의 변동이 나타난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삼상 10:9)고 언급한다. 사울은 자기 중심적이었지만 새마음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주는 법을 배웠다. 이처럼 불택자들도 자신과 관계된 자들을 이해하며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는 불택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다소간 나타나 죄의 세력에 대항하거나 절제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이 불택자들도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며 철저한 교만 가운데 완전히 격리된 것은 아니다. 인간들끼리 철저하게 격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들 역시 아직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불택자들이 상호 서로 의존하는 것은 그들의 의지 및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어느 정도 하나님을 의존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않는 불택자들에게도 아직은 하나님을 아는 제한된 지식이 있으며 또한 하나님을 의존하는 의식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불택자들 중에는 나름대로 의를 시행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이 있다. , 하나님 뿐만 아니라 각 사람에게 해당하는 분깃을 돌려주려고 노력한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을 절제하며 어떤 거룩함을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몇몇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의 잔재를 구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불신자 중에도 하나님을 아는 어느 정도의 지식 및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이는 자들이 있다. 나아가 종교적인 확신을 갖고 사람들 앞에서 어떤 의로운 행위들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그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불택자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하나님을 계속 계시하기 때문에 만물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어떤 의식과 감각과 지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으로는 영생을 얻기에 불충분하다. 이는 성경에 따르면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17:3)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생의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아는 지식이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아는 것이다. 불택자들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배는 자기들의 깨달음과 기준을 수단으로 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망가뜨려 놓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신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보기에 합당한대로 인간들의 친교를 위해 헌신하지만 그 헌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조명을 받은 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의 능력에 의한 섬김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혜로 섬기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신을 주장하기 위함이며 자신을 완전하게 하기 위함일 뿐이다. 이와 같이 불택자들 사이에도 그리스도의 특별한 영향력이 있다. 그러나 불택자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영향을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영향을 인정하지만, 한편 우리는 본성적으로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참된 영적인 선을 행할 수 없다. 더욱이 비록 모든 형태의 악이 그리스도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실현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모든 악을 행하려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은 끝없이 악을 행하여도 결코 만족이 없다.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중생할 때에,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이에 우리의 마음은 성령에 사로잡혀 완전하게 변화되어 하나님을 바라본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적 속성이 우리 안에 회복되는 것이다.

 

그때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입양된다. 불택자들이나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의 잔재가 그들에게서 발견되더라도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직 하나님이 자기 자녀로 삼는 자들만이 중생이 허락되며, 중생된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 있다.

 

 

생명수 쉼터/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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