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죄의 형벌 참된 진리(드흐라프)

4) 죄의 형벌

보편적으로 말하면 죄의 형벌은 죽음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빼앗기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만 살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존재와 삶을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원히 버림 받은 자들도 계속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성경적인 의미로 말하는 이 없다. 이 없을 때 그들의 존재는 내적으로 끝없는 모순을 겪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 때 그들의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버림 받은 자들은 그들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채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한 내적 갈등 속에 처하게 된다.

 

이와 같이 죄는 죽음을 가져왔다. 모든 죄는 본질상 지독한 죄악이다. 어떤 죄라도 그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 담겨 있다. 우리는 자신의 죄에 의해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의 공의에 의해 스스로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공의에 따르면 죄에 대한 처벌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 죄가 있는 곳에서는 자동적으로 보응이 발생한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면 우리는 스스로 삶을 버리는 것이 된다. 이에 우리는 하나님이 율법으로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에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따라온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형벌에는 인간의 죄로 인해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가해하는 면이 있고 또한 하나님 측에서 의도하신 요소, 즉 언약의 공의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의 행위가 있다. 따라서 형벌은 한편으로는 자연적인 보응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한 보응이다.

 

이 차이를 영원한 형벌과 연결하여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바깥 어두운 곳이란 하나님께 영원토록 버려진 상태이다. 그런데 죄인은 그 상태를 스스로 원한다. 그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한번도 원치 않았으며, 이에 자기 소원대로 영원히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자연적인 보응이다. 한편 성경은 영원한 불을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영원히 타오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의 공의가 훼방된 것에 대해 그분의 영원한 진노를 나타내신다. 지옥의 고통 역시 하나님의 거절된 사랑의 공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정당한 보응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죽음을 인간의 몸과 영혼에 발생하는 영원한 죽음으로 이해한다. 그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를 보여준다. 근본적으로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 및 그분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과의 교제를 잃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저주를 받게 되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대항하여 돌아선다. 따라서 우리는 고립되며 철저하게 외롭게 된다. 하나님은 시험적 명령을 주시던 때에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2:17)라고 저주 및 처벌을 선포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죄로 떨어지자 주께서는 당장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언약의 은혜를 통해 그에게 찾아가셨다. 따라서 그 이후로 즉시 추가적인 구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은 형벌을 보류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하나님은 네가 먹는 날에는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심으로써 언제 형벌이 집행될지 정확하게 언급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의 끈이 죄로 인하여 파괴되었다.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죽음의 형벌이 시행되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빈말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을 집행하는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이 세상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로 당장 언약의 회복을 주도하셨다. 이는 이미 작정되어 있는대로 그리스도가 죽음을 제거하고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교의 끈은 곧바로 다시 회복되었다.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된 언약 안에서 온 세상과 인류 전체가 구원을 받았다. 이 말은 모든 각 개인이 구속을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을 머리로 한 유기적 연합체인 이 세상이 하나님과 다시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열매없는 가지처럼 잘려나갈 것이다. 이에 성경은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104:35)라고 말한다.

 

이 사실이 불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은혜의 언약의 열매인 많은 축복들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더욱이 하나님과 회복된 교제의 결과들이 신자들에게 당장 최대한으로 다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 사실이 뜻하는 것은 인간의 타락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은 구별하는 특징을 가진다는 뜻이다. , 추가적인 구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세상과 인류 전체는 하나님과의 친교로 되돌아왔다. 따라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영생을 얻는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죽음이 제거되었다. 이 사실은 내가 너(, 사단)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3:15)는 말씀에서 표현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셔서 자기에게 영원토록 있게 하시려는 인류와 사탄의 관계를 끊어놓으셨다. 아담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이 더하여 말씀하신 모든 것들은 보응의 의미로서의 형벌이 아니라 은혜의 언약 내에서의 징계였다. 그 징계는 사람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3:19)는 주님의 말씀이었다. , 육체의 임시적인 죽음은 하나님의 징계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은 사람은 육체의 죽음이라는 격변을 통과하지 않고는 영원한 영적인 삶으로 변화할 수 없다. 이는 위협적인 자연적 죽음은 하나님의 보응하시는 심판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죽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사실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여인의 삶과 남자의 삶에 대해 각각 심판을 선포하실 때 나타난다. 그 심판 안에는 은혜가 있었다. 그 심판을 통해 사람은 더욱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을 염두하게 될 때 영원한 죽음과 일시적 죽음이 구별되어져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에 은혜가 임한 결과로 인하여 불택자들은 당장에 궁극적인 심판을 받지 않는다. 온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은혜는 오늘날도 존재하기 때문에 불택자들은 여전히 은혜의 날들 가운데 살고 있다. 하지만 불택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는 연결된 끈이 없다. 그러나 영원한 죽음의 결과들이 당장 그들 안에서 최대한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영원한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고 영적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 각 개인에게 심판을 선언하실 것이다. 우리는 아직 거듭나지 않는 택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아직 영적으로 죽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분명하게 하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하나님의 언약의 공의에 따른 영원한 죽음인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붙택자들의 영원한 죽음을 통해 그들에게 거절된 하나님의 사랑의 합당한 요구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와 은혜, 심판과 자비가 상호적으로 역사하고 있다. 따라서 같은 사건들의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영향을 나타낸다.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징계로, 불택자에게는 영원한 죽음을 알리는 일시적인 심판으로 나타난다.

 

이 사실은 또한 이 세상에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재난에 적용된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3:17)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안에도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심판의 완전하고 궁극적인 심판 또한 그 당시 당장 간섭하였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와 부딪히게 된다. 지금도 모든 피조물들은 성령을 통해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기를( 8:21) 부르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계속 나타나고 있다(, 1:18).

 

[출처] 4) 죄의 형벌|작성자 스데반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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