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담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참된 진리(드흐라프)

3) 아담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실을 고백한 후 그 즉시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언약을 다룰 필요가 있다. 창세기 2장과 3장에서는 문자적으로 언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곳에서 언약 체결을 본다. , 사람은 생명 나무를 통해 언약의 약속의 인침(sealing)을 받으며, 반면에 선과 악을 아는 나무를 취할 경우 언약을 깨뜨리게 되면서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된다. 창세기 1장에서 3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1장은 오직 하나님이 사용되지만 2장과 3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그 이름에 의해 언약이 체결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경이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 이름을 사용한 것은 그때에 언약이 체결되었음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호세아 6 7절의 증거가 따로 필요없게 된다. 또한 그 구절은 언약 체결의 근거로 사용하기에 의심적인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6:7)라는 내용이 일반 사람처럼 언약을 어기고라고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과 세운 언약을 믿음으로 알아 그 사실을 말할 필요가 있다. , 우리는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예비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가운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시작하셨다. 하나님이 그 언약을 체결할 어떤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독립적인 두 양측이 함께 언약을 세운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을 참여시키기 위해 언약을 야기하셨다.

 

그 언약은 하나님의 호의에서 나온 주권적인 언약이었다. 우리는 먼지와 재 밖에 되지 않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언약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에 또다시 깜짝 놀라게 된다. 한편, 하나님은 사람과 언약하기 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시고 반면에 그를 지극히 높임으로써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수 있는 상대로 삼아주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언약 안에서 사람을 친구로서 대해 주셨으며 그 둘은 서로 친밀한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지어진 목적이었다. 하나님은 단지 주권적인 권위로 다스릴 수 있는 피조물을 원하였던 것이 아니었다. , 로보트처럼 완벽하게 조정되는 피조물을 원하였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러한 피조물을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피조물과 이러한 관계를 가지시려면 반드시 언약이 있어야 한다. 언약을 체결함이 없이는 모든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게 되고 사람은 복종만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만 공의가 있을 것이고 사람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의존하는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약속을 주심으로써 인간에게 권리를 허락하셨다. 이에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는 즉시 그 약속으로 하나님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한편,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룰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후로 쌍방은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었다. 이에 언약의 율법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를 결정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아무렇게나 임의로 대하실 수 없었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직 이러한 상태에서 상호 사랑의 관계가 가능하였다. 이제 쌍방은 그들의 삶의 비밀스러운 일들마저 나눌 수 있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25:14).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가 언약의 율법 아래 있게 된 사실과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된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을 전혀 약화시키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은 주의 주권적인 결정에 의해 자신과 사람과의 관계를 율법에 묶으셨던 것이다. 하나님 자신은 율법을 초월하시지만, 주의 주권적인 경륜 가운데 사람과의 관계를 율법 안에 가두셨다. 더욱이 하나님이 주권적인 계획 안에서 우리와의 관계를 스스로 율법에 묶으신 후로는 그 관계만이 하나님께 합법적인 관계가 되었다. 우리는 이 관계를 믿음으로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을지라도 동시에 언약의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항상 갖게 된다. 이제 하나님은 사람에게 훨씬 더 가까이 내려오셔서 사람과의 관계를 율법에 묶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언약의 발단이 일방적인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 시작되었을지라도 언약은 사람이 하나님이 형상으로 지어진 것과 연결된다. 실제로 우리는 언약과 하나님의 형상을 따로 말해야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실은 언약의 체결과 관련되어 있었다. 물론 사람의 창조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언약 체결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것은 언약이 하나님의 마음 속에 이미 있었다는 뜻이다.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에 의해 지어졌기에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로 언약의 율법을 받은 후에 그 율법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아담과의 언약 체결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라도 그 언약 체결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행위였다. 그럼에도 언약을 통한 관계는 그 언약이 체결되는 순간부터 쌍방이 그 언약에 따라 각각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가 되었다. 더욱이 쌍방의 언약 관계는 언약의 율법에 의해 서로 묶이게 되었다.

생명수 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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