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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론>1984년도 17주간에 걸쳐 김기동이 주일예배에 설교한 것을 책으로 엮어 놓았던 <성도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의도>라는 책과 별개의 내용이다. 김씨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는 그의 인간론과 구원론, 그리고 기독론 및 삼위일체론과 모두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핵심사상이다. <하나님의 의도론>1990년대부터 베뢰아에서 다루어진 소위 <후사론>이라고도 불리우며,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의도론>은 기독교 역사 2천년 동안 비밀리에 감추어졌다가 하나님께서 오직 자신에게만 계시한 참 진리이며, 자신이 최초로 공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진리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도라는 그림을 수 천 년 만에 처음 그려지는 그림입니다. 저는 다른 지식이나 다른 것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아는 데는 내가 나를 생각해도, 나같이 무식하고 무지하고 무력한 사람을 택해서 성경을 많이 알게 하시고, 정말 진리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이 하나님의 의도를 나에게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20009, 베뢰아 제23차 특별성회).

 

만일 김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아무도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김씨는 '하나님의 의도'라는 말을 자신이 최초로 만든 사람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하나님의 의도라는 말은 베델성서연구원에서 다루어졌던 용어이다

 

다음은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해서 최초로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김기동의 <하나님의 의도론>의 간추린 핵심 내용이다.

 

“<하나님의 의도(意圖)>이란 영원 전부터 홀로 자존하시는 하나님이 구상하시고 계획하신 후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들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뜻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론>는 크게 아들의 보좌 상속’, ‘마귀진멸’, ‘인간구원이라는 3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각각 <1의 의도>, <2의 의도>, <3의 의도>라 칭한다. <1의 의도>는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 <2의 의도>는 하나님과 마귀의 관계, <3의 의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로 요약되며, 이 모든 것은 아들 안에서 성취된다

 

아들이 없이는 한 가지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 없으니, 예수의 공생애 자체가 <하나님의 의도>이다. 이와 같이 3중 구조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도론>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 하늘과 각각 밀접한 관련을 맺고 진행된다.

 

<하나님의 의도론> 가운데 <1의 의도>아들의 우편보좌 상속’(2:5-11)이다. <1의 의도>는 그 목적 자체가 아들이 하늘 보좌에 오르는 것이므로 아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들이 하늘 보좌를 상속하는 것은 인간, 천사, 하늘도 지음을 받지 않은 영원 전에 작정된 것이며, 이것은 타락한 천사인 마귀를 멸하는 일이나,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는 일보다 선재(先在)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1의 의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그 초점이 있으며, 그 관계는 사랑과 순종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셋째 하늘(영계 하늘, 천사들의 하늘, 신들의 하늘)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하사 그를 후사로 세우시고 유업으로 주시려고 하늘(셋째 하늘)을 지으셨는데(1:2), 아들은 하늘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 앞에서 죽음을 맛보는 존재로 자신을 낮추셨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은 이렇게 겸손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들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계명을 주셨는데 요한복음 10:17-18절과 빌립보서 2:5-8절이 그 증거이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적 죽음의 차원 이전에 아버지의 계명으로 주어진 것이며, 인간이 지음 받기 이전, 아니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 오직 아들이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실 때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하늘을 상속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미 계명으로 주어졌다.

 

<하나님의 의도> 가운데 <2의 의도>는 마귀진멸이다. 영원 전에는 천사도 마귀도 없고 하나님만 홀로 계셨는데, 어느날 하나님은 아들을 후사로 세우시고 그를 위하여 하늘을 지으셨으며, 아들이 하늘에 들어갈 때 그를 수종들도록 천사들을 지어 하늘에 두셨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 들어가기도 전에 천사장 중 하나인 루시퍼가 여호와의 이름을 맡고 있는 여호와의 사자를 대적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때 천사장이 대적한 상대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천사였지만, 그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임받아 하나님의 권한으로 일하던 천사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적은 곧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대적이요 하나님께 대한 대적을 의미했다.

 

만일 루시퍼가 하나님을 직접 대적했더라면 소멸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즉시 심판 받았을 것이나 그가 대적한 것은 여호와의 사자였고, 하늘의 주인이시며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직 하늘에 들어가시기 전이었으므로, 아들이 죽음을 맛보시고 하늘에 들어가시는 길에 합법적으로 심판하실 때까지 가두어 둘 필요성이 생겼다. 이 가두어 두는 곳이 바로 흑암, 우주, 음부이다.

 

이런 과정에서 하늘을 혼란케 한 천사들과 의의 천사들 간에 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타락한 천사장 루시퍼(사단)와 그를 따르는 하늘의 천사들 중 삼분의 일이 천사들의 하늘인 셋째 하늘에서 쫓겨나 둘째 하늘에 갇혔다

 

둘째 하늘에 갇힌 사단은 제한적인 권세를 부여받았는데 이때부터 사단은 흑암 권세자’, ‘음부의 권세자’, ‘어둠의 주관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흑암 가운데 궁창을 만드신 후부터는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되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존재로 지음받은 아담을 꾀어 범죄케 함으로써 아담에게 주어진 권세를 빼앗았으며, 이때부터 사단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간하는 마귀가 되었다.

마침내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후사로 작정한 우편보좌를 상속받기 위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타났다. 이때 아담을 꾀어 범죄케 한 마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지만 그가 죽음과 부활을 경험함으로써 마귀가 불법자라는 것을 온 천하에 드러났으며 이때 동시에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에 대한 합법적인 심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시는 것은 본래 아버지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과정이었는데, 천사의 타락이 발생하자 하늘 보좌 상속을 위한 자신의 죽음에 마귀를 심판하기 위한 목적을 첨가하셨다. 예수는 그냥 죽으실 수도 있었으나, 마귀를 심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고,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에 대한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의도론> 가운데 <3의 의도>는 인간구원이다. 예수는 천사와 인간 등 피조물이 지음받기 이전에 하나님만 홀로 계실 때, 사람으로 오셔서 죽음을 맛보시고 하늘에 들어가시기로 이미 작정되어 있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맛보기 위해 오시는 통로로 예비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받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시기도 전에, 하늘에서 타락한 천사인 마귀의 유혹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그만 영이 죽고 말았다.

 

 결과 아담에게 속한 모든 인간은 원죄 아래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나게 되었으며, 이에 성부 하나님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인간에게 은혜가 되게 하셨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다.

 

아들의 하늘 보좌 상속이나 마귀진멸, 인간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아들의 공생애를 통해 이미 성취되었는데 이중에 아들의 보좌 상속이나 마귀진멸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구원은 개인의 의지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개인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자신의 의지로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다. 예수는 어떠한 형태로든 죽음과 부활을 경험함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신 후 하늘에 들어가시면 되는데, 자신의 죽음이 인간에게 은혜가 되게 하기 위해 피 흘리며 고난받는 죽음을 맞으셨다고 한다

 

창세기 322절에 나오는 ()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 중 하나같이라는 말을 우리 중 예수와 같이라는 뜻이다. 선악과를 먹은 순간 인간은 영원 전에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기로 작정된 예수처럼 선과 악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은 영원 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며 불과 2천년 전에 결정된 것이다.“

 

김씨의 이러한 황당한 주장은  애당초 주장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며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였다. 그는 창세기 2:17먹으면 죽으리라라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순간 둘째 아담인 예수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경적인 근거를 창세기 3:22에서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에서 찾는다. 여기에서 우리 중 하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가운데 하나인 예수를 의미하며, 또한 선과 악이란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영원 전에 인간의 죄와는 상관없이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도록 되어 있는 예수처럼 죽음과 부활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김기동은 삼위일체의 근거를 우리라는 단어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삼신론(三神論)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 창세기 126절에 나오는 '우리가'라는 의미는 사람들이 설교할 때 이해시키기 위하여 '우리'라는 말을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우리'라는 말의 의미를 하나님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삼신(三神)이 돼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억지로 그렇게 말한다면 안됩니다.”(베뢰아 22차 특별집회, 죽어야 사는 길, 설교 테이프 제1).

 

한편, 김기동의 <하나님의 의도론>은 빌립보서 2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5-8).

 

본문이 과연 김기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론>을 위한 것인가?  빌립보 교회는 개인적인 공명심을 가진 교인들 사이에 교만함이 팽배했었다(2:3-4; 4:2). 바울은 그리스도의 겸손하심을 예로 들면서 그들을 눈물로써 훈계하였다(3:18). 따라서 본문은 김기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구절이며, 그리스도의 겸손함(The humiliation of Christ)에 대한 것이다.

 

김기동은 원래 자신의 <하나님의 의도론>의 성경적 근거를 요한복음에서 찾았던 자이며, 그러한 흔적은 얼마든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요한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탁월하다 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하나님의 의도를 한 눈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엄한 저작이다.”(한국신학, 시론)

 

그러나 김기동은 말을 바꾸어 바울서신인 빌립보서에서 <하나님의 의도론>의 핵심 사상을 추려내었다. 그에 따르면 바울서신은 성경이 아닌 성서이며 따라서 얼마든지 가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감할 수 있다는 성서에 속한 편지인 빌립보서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찾았다니 그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의도론>은 나중에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위에 열거한 <하나님의 의도론>는 앞서 지적한 바 1990년대부터 주장하기 시작한 것으로써 최초에 그가 주장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1980년대 베뢰아 강의 초기에 김기동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것은 범죄한 천사를 심판의 날까지 가두기 위함이라고 했다.

 

루시엘 천사장 곧 사단이 하나님께 반역하였고, 그를 가두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는데, 사단의 형벌을 마치시게 되면 우주도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죄인이 있음으로써 형무소가 생겼다가 죄인이 사라져 버리면 형무소도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하나님의 의도, 27).

 

그래서 둘째날 궁창을 만드시던 날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없었는데 이것은 형무소와 같은 것을 만드시고 무엇이 좋았겠냐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예수의 성육신을 인간구원에 초점을 맞추면 본질을 오해한 인본주의이며 마귀진멸에 있다고 했다. 예수의 성육신이 인간 구원을 위한 첫번 째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마치 돼지가 자기에게 밥을 주는 주인이 자기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주인은 오직 돼지를 키워서 잡아먹기 위하여 밥을 주는 것이지 돼지 자체를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의 의도론>이란 주장을 하면서 말을 바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수의 성육신의 초점을 마귀진멸과 인간구원에 두었다가 나중에 가서는 <그리스도 후사론>을 새롭게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락교회 교인들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론>을 성령께서 기독교 2천년 역사상 최초로 김기동을 특별히 감동하셔서 계시한 참된 진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의 이런 주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인간이 죄를 짓든 안 짓든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야 했다는 황당한 얘기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황당한 주장은 자신의 상상과 추리를 근거로 한 '추리신학'(推理神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세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