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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은 2013년 1월 현재, 신장병으로 매주 피를 걸러 내고 있다. 심각한 병에 걸려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당뇨병 합병증으로 실명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던 적도 있다. 그는 '김기동의 당뇨병 교실'이란 강의도 한 적이 있다. 김씨는 모든 질병의 원인은 귀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귀신을 쫓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병원신세를 지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기동은 귀신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며(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 p. 224),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고 말한 성경 구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견해나 고집, 다른 신학이나 교리, 또는 무지를 앞에 놓고 그 안경으로 이를 이해하려고 하므로 해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 28, 30)

 

그는 자신이 그런 부류의 사람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암으로부터 감기까지 그리고 위장병이나 기타 사소한 병까지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자신이 약 8천여 명의 귀신들린 사람과 대화하면서 얻은 자료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귀신을 쫓으면서 귀신에게 그 정체를 물었을 때 죽은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은 그 증거이며 이것은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존재라는 현상학적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영적인 원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혼돈만 가중시키는 것이다.

 

김기동이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는 표현을 다음과 같은 설명한다. 모든 질병은 일차적으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호르몬이나 면역체계, 마음과 육체, 사고와 폭력, 음식과 같은 환경적인 요인이 첫 번째 이유이며, 둘째로, 귀신이라는 근본적이고 배후적인 원인이 얼마든지 병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이율배반적인 말을 한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서 매일 철야를 하거나 계속 금식을 한다면 배겨날 장사가 없습니다. 육체는 질그릇이라서 잘 먹고, 잘 자지 않으면 깨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육체를 함부로 다루고 학대하게 되면 당연히 병이 들고 고장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 잘 먹고 잘 자고 몸관리를 잘 하면 귀신은 역사할 틈이 없다는 말이다. 이렇게 김기동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움직여서 병이 들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자가 바로 귀신이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 중에도 어떤 자는 병이 들고 어떤 자는 건강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즉 몸속에 귀신이 들어와 있는 자는 병의 또 다른 원인이 발생했을 때, 귀신의 억압과 사역 때문에 병이 들지만, 몸속에 귀신이 들어와 있지 않은 자는 그 원인을 물리치고 이겨냄으로써 병에 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귀신은 사람의 영혼과 육체의 중간인 신경계통에 거한다고 주장하는데 신경계통이 영혼과 육체의 중간이란 성경적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그는 어린아이들의 귀신들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유아에게는 의지가 없습니다. 그의 의지는 그 생모에게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생에 관한 애착은 그 생모가 소유합니다. 따라서 생모의 의지 속에서 귀신을 추방할 때 어린 아니는 그 즉시 병고에서 해방됩니다. 유아라 함은 7-8세 이내를 말합니다. 그리고 8-9세부터 15세까지의 경우에는 그 생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유아의 의지는 생부에게로 의지가 전환됩니다. 그 다음 16세부터는 완전히 의지가 독립되므로 자신의 의지로서 쫓아내야 할 것입니다”(성서적 신학적 현상적 마귀론, p. 228-229)

, 7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의지가 엄마에게 있으므로 귀신이 그의 어머니의 의지로 들어오고, 8-15세의 어린이는 의지가 아버지에게 있으므로 귀신이 아버지의 의지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귀신이 영혼과 육체의 중간인 신경계통에 들어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아버지의 의지에 들어온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마치 진리인 양 가르치는 것이며 성경의 근거를 찾아 볼 수 없는 억지 주장이다.

 

김기동은 이렇듯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고 해놓고 나서 디모데의 병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말이 맘에 걸렸는지 다음과 같이 변명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다.

 

성경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기록에 지나치게 집착되어 병의 원인은 귀신이라는 말에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이는 교습받는 일꾼으로서 아직 영적 경험이 미숙한 디모데가 그의 지병을 처리하기에 미약했던 것을 말한 것입니다.(같은 책, p.235)

또한 병들어 약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면 약을 먹고도 병이 낫는데 약이 귀신을 추방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약은 병을 완치시킨다기보다는 예방하는 것입니다. 귀신은 사람의 육체에 붙어서 병균을 가져오고, 또 계속 파송합니다.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떠난 다음, 병균만으로는 인체 내에서 스스로 견디기가 힘들게 되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병균은 모두 사멸되고 맙니다. 병균을 보내는 원인은 영입니다.(같은 책, p.236)

 

나도 건강을 위하여 병원에 가거나 때로는 소화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건강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도 얻고 또한 지도받기도 한다. 이는 내가 밥을 먹으면서 찬을 곁들여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52)

암 덩어리는 수술하여 제거하고 암의 원인은 예수의 능력으로 추방한다면 재발 없이 완전해질 것이다.”(같은 책, p.53)

 

그러나 이러한 김기동의 주장은 현장에서 귀신을 쫓았는데 병이 낫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 회피라고 보면 된다.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의 귀신 축사와 신유의 능력은 김기동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다. 예수의 신유와 귀신 축사는 이러한 구차한 변명이나 시간적인 간격이 없다

 

여기에 몇 가지 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문둥병자를 즉시 고치셨으며(8:3), 백부장의 하인을 그 시로 하인이 나았으며(8:13),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즉시 고치셨다.(8:15) 신약성경 어디에도 밥을 먹으면서 찬을 곁들여 먹은 것과 같다는 김기동식의 신유는 찾아볼 수 없다

 

소경이 즉시 눈을 떴고, 앉은뱅이가 즉시 걸었으며, 죽은 자가 즉시 걸어 나왔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귀신을 쫓고 약을 먹여서 서서히 병균을 말라 죽인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즉시 나았으며,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가 즉시 걸었고 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따라서 김기동의 주장은 모두가 변명이고 자기 합리화이며 성경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무속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것은 김기동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 뿐 다른 종교에서 행하는 퇴마술(退魔術)과 다름없는 것이다. 김씨는 다음과 같이 귀신들림과 헌금과의 관계를 주장한다.

  

헌신은 귀신이 속일 수 없는 실상이므로 귀신은 헌신하는 자들 앞에서는 거의 절망적이다.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감사하며 그가 명령하신 섬기는 도리를 다하라. 그리하면 귀신은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계명을 지키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자들에게서는 귀신들이 활동을 더 하지 못하고 조용히 잠복하거나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떠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하는 것은 늘 귀신을 제어하는 일이다. 인색하지 말고 주를 섬기는 기쁨이 충만하면 귀신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를 두려워 한다. ”(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188-189)

 

결론적으로 헌신예배를 드릴 때 헌금을 많이 내라는 소리이다. 우회적으로 말을 돌려서 하기 때문에 언뜻 들으면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못하게 된다.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은 예수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십일조와 각종 감사헌금, 그리고 건축헌금과 기타 수많은 이름으로 새겨진 봉투에 수시로 헌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귀신을 제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바치고 또 바칠 것이다

 

의사가 하는 일은 돈벌이지만 자신이 귀신을 쫓아주는 것은 돈벌이가 아니기 때문에 돈을 받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귀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p.146), 귀신을 쫓아 준 사람들에게 모세의 예물을 바쳐서 그것을 증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참으로 사악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같은 책, p.190)

모든 귀신 축사와 신유는 오직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 만이 참되신 우리의 주인이시요, 우리 인생의 목자되시며 창조주이심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김기동식의 귀신 축사는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즉시 나으니라가 아니며, ‘의사가 수술로 병든 부위를 제거함으로써 병을 고치는 것은 귀신의 집을 허무는 것과 같다는 등의 구차한 변명과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사적인 주장으로 점철된 베뢰아 운동에 사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기동의 주장에 따르면 귀신은 다음과 같은 통로를 따라 들어온다

 

충격을 통해서, 부정적 관념을 통해서, 혈기를 통해서, 담배연기를 통해서, 내성적인 성격을 통해서,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통해서, 불신자의 죽음을 슬퍼할 때, 제사를 지낼 때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체험적인 진단을 통해서 귀신이 들어왔는지를 자가 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 유전으로 병으로 오는 것, 왕신단지 섬기는 집에 살면서 우환이 끊임없이 계속될 때, 차멀미, 배멀미 하는 것, 어두운 곳이나 골목에 들어설 때 머리칼이 쭈뼛할 때, 점치러 다니거나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하는 것, 죽고 싶다는 좌절감을 갖게 될 때, 앉거나 설 때 어지러울 때, 각종 신경질환도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다.

 

김기동은 질병 뿐 만 아니라 모든 사고의 원인도 귀신이라고 한다. 무엇인가를 잘 잃어버리는 것도, 자주 화재를 당하는 것도, 매를 맞는 아내 속에(이때 때리는 남편은 귀신이 아니라 미혹의 영에 지배를 받는다고 함) 귀신이 있기 때문에 아내 속에 있는 귀신을 쫓으면 남편이 안 때린다고 한다. 또한 도둑질하는 것도 귀신의 역사이며, 연탄가스를 마시게 하는 것도 귀신이라고 한다.

 

김기동이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도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서울 성락교회가 발간한 신유기도의 길잡이란 내용을 보면 축사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신유기도의 길잡이. 기초상식 4, 5)

 

목사가 묻는 말은 당신에게 묻는 말이 아니고 귀신에게 묻는 말이니 혼돈하지 마시고 당신의 의지로 대답하지 마시오. 귀신이 대답할 때는 큰 소리로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것이 좋습니다. 답답하게 얌전빼지 마십시오. 울고 싶을 때는 속이 후련하도록 하소연 하면서 실컷 우십시오. 정신이 아찔하며 주저앉거나 쓰러지는 순간에 귀신은 나가는 것입니다. 안 쓰러지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이때 쫓겨 나가는 귀신을 자신들이 볼 수도 있습니다. 목사의 눈은 당신에게 붙은 귀신을 볼 수 있습니다. 명찰을 달고 죽은 귀신은 심지어 이름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 귀신은 더럽다, 심방 갔다가 집이 더러우면 집 청소해 주라. 귀신은 잔인하게 다뤄라. 만물의 찌꺼기다. 똥 같은 귀신아, 꾸짖을 수 있다. 잔인하게 욕설로 소리쳐라.”

 

귀신은 저주해서 꾸짖어서 내어 쫓는 것이다. 귀신 쫓아내려면 욕 잘하는 은사 도움 받으라 이놈’, ‘쌍년’, 목사가 경건치 못하다고 만류하면 귀신 못 쫓아

 

귀신을 미워하며 저주하고 추방하라. 귀신은 인격을 가지고 있기에 자기를 미워하고 저주하면 싫어한다. 귀신이 나가는 속도와 미워하고 저주하는 분량과는 정비례한다. 그 귀신이 아무리 부모나 친척이나 남편, 아내, 자식이라 해도 관계하지 말고 추방해야 한다.”

 

환자와 귀신의 의식을 분리시켜라. 귀신도 인격적 존재이니 의식이 있다. 마음을 평안이 하여 환자의 의식을 아래로 가라 앉히고 귀신의 의식은 위로 떠 올리게 한다. , 자기 의식을 밑으로 가라 앉히는 방법은 환자로 하여금 귀신을 미워하게 함으로서 귀신의 의식을 위로 밀어 올리고 심호흡을 해서 무심한 상태로 들어가서 자신의 의식을 가라 앉히고 긴장을 풀게 한다. 환자로 하여금 축사자의 말에 신경 쓰지 않게 하고 주위에 누가 있던지 도무지 의식하지 않게 한다. 환자가 귀신을 미워하는 정도에 따라 귀신이 나가는 시간이 단축된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나가라고 명령하라! 당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명령하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내몸에서 나가라! 나가라!힘있게 외치라!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신다 이때 귀신의 의식이 눈을 통하여 나타나면 환자의 눈동자는 고정되고 깜박거리지 않으며 동공이 커진다. 이 때 축사자는 귀신을 꾸짖고 정체를 밝힐 수 있다. 예수께서도 축사하실 때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잠잠하게 하신 후 나가라고 명하셨다

 

이와같은 귀신 축사 방법은 김기동 개인의 축사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치신 일이 있는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귀신 축사는 귀신들린 자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설명하고, 그로 하여금 예수를 영접하게 한 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쫓는 것이다

 

그러나 베뢰아의 귀신 축사는 귀신 들린 자신과 귀신의 의지를 분리시키고 귀신을 저주하고 욕함으로 내어 쫓는 일종의 최면술이다. 또한 이런 축사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아닌 개인의 능력와 방법에 강조점을 둔 큰 문제가 있다.

 


출처: 세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