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꼭 15년 전
내 나이 만 52세 되던 2000년에 이 한 컷의 시사만평이 나를 철들게 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말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일환으로 남쪽에 사는 80이 넘은 노모가 북에서 온 60이 넘은 아들과 거의 50년 만에 판문점에서 만났다.

북측의 삼엄한 감시 하에 겨우 하룻 밤 같이 자며 쌓였던 회포도 채 풀지 못한 채 서로 얼굴만 보고 다시 헤어져야 하는 그 시간
북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탄 늙은 아들에게 당부하시는 팔십이 넘은 노모의 말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자기 전에 꼭 양치하고...
 편식하면 안되고...
 항상 차조심 하거라..." 

어머니의 이 말에 60이 넘은 이 아들, 눈물로 하는 대답...

"알갔시요... 오마니... "

이 한 컷의 만평이 그 동안 내가 옳다고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해 왔던 그 모든 행위와 말들과 생각을 일순간에 다 무너뜨려 버렸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그 잘난 이성과 지식에 의한 판단이었을 뿐,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심정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가 하는 자책감이 나를 짓 눌러왔다
그와 동시에 진정으로 회개하는 심령이 내게 임하고 한없는 회개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그 어떤 성인 군자의 말이 아들을 향한 엄마의 진정한 사랑을 이 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거실의자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에게 바로 달려갔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시며 그냥 쳐다만 보시던 어머니에게 "어머니, 내가 다 잘못했어요, 어머니가 다 옳았었네요

어머니는 여전히 내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시며 그냥 미소만 지으셨다
그때 어머니 연세 88.
막내인 나를 서른 여섯에 낳으셨으니 키우시는데 힘도 많이 드셨겠지만 그때까진 영육간에 아주 정정하셨다. 그리고 3년 후 2003년 어머니는 낯선 피츠버그 땅에서 향년 91세를 일기로 소천하셨다.

어머니의 육신을 피츠버그에 안장한 지 12, 이제 27년의 이민생활을 마감하고 우리 부부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지금 이 시간, 자식들은 다 저희들 가정을 잘 꾸려나가며 남 부럽잖게 잘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어머니 생각은 새록 새록 나는지...

어머니 생각과 함께 wife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시집와서부터 시어머니 돌아가시기까지 27년간 아무런 불평 없이 조금은 별난 시부모를 모시고 네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그 인고의 세월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입으로만 잘 해 준다고 하는 남편, 시집은 말 할 것도 없고...

50여년 전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셨던 말씀을 이제서야 쬐에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간 네 형 연락 자주 안 한다고 뭐라 하지 말아라. 너나 네 형이나 이 다음에 결혼해서 자식 낳아 키워 보고 또 그 자식들을 다 시집 장가 보내 봐야 그때서야 비로소 부모심정을 쬐에꼼 알 수 있는게야, 지금은 모르는 법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이 불효한 아들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나의 하나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조동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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