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좇아 걸으라.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사도바울께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립니까? 부탁으로 들립니까, 권유로 들립니까, 명령으로 들립니까?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말인데 듣기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존댓말과 반말이 있는 우리말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도 다르게 들려지기도 합니다.

우리말 성경들을 좀 인용해 보겠습니다.
- 개역한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개역개정: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공동번역: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육체의 욕정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 새번역: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내가 하는 말입니다만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번역본마다 다르지요?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똑같이 명령어로 “행하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번역,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은 존댓말을 사용하여 정중하게 권면하는 어투입니다. 부탁하고 설득하는 어조입니다. ‘행하라’가 아니라 ‘살아가십시오. 사십시오.’로 달라져 있습니다.
영어성경은 어떨까요? 영어성경을 몇 가지 살펴보면 NIV는 ‘성령으로 살아라.’이고, KJV와 NASB는 ‘성령 안에서 걸으라, 성령으로 걸으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떤 번역은 ‘행하라’는 명령이고, 어떤 번역은 부드럽게 ‘사십시오.’ 권유하며 부탁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레고 데, 프뉴마티 페리파데이테 카이 에피두미안 사르코스 우메 텔레세테. 그러나 내가 말한다, 성령으로(성령에 의해) 걸으라. 그러면 육신의 욕심으로 행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가깝다 싶습니다.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제가 보기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마라, 정녕 죽으리라.’와 마찬가지로 분명하고 단호한 명령과 결과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헬라어 ‘페리파데이테’는 ‘행하라’가 아니라 ‘걸어라’가 맞습니다. 우리말 "행(갈 行)"은 한자말로서 길을 길 가는 것도 행(行)이고 일하는 것도 행(行)입니다. 가는 목적지를 가리킬 때도 행(行)을 사용하여 서울행, 부산행으로 씁니다. 우리말 성경은 그 행(行)을 설명이나 구별없이 사용하여 혼란과 오해의 소지를 주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 17장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때 “행하여”는 무슨 행위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너는 내 앞에서 걸어가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게로 오라’ 하셨고 ‘내 앞에서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빛 가운데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대적들을 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힘쓰고 애쓴다고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악한 일을 행치 않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기 위하여 힘쓰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을 좇아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므로 수고함도 힘씀도 애씀도 없이 포도나무의 농부 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너는 성령을 좇아(성령의 명하심에 복종하여) 걸어라.” 사도바울의 말씀은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엄한 명령입니다. 성령을 따라 걸으십시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좇아 걷지 못 하고 육체의 요구에 따라 욕심을 좇아 걷고 있는지요.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