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참으로 신비로운 것입니다. “믿는다.” 혹은 “믿음이 있다.”고 했을 때, 우리는 믿음이 믿는 사람 개인에게서 솟아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사람이 노력과 수양된 인격을 통해서 믿음이 나오는 것이라고 평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노력이나 인격적 수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지식이나 도덕적 수준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인격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은 믿음이 좋고, 배우지 못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하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좋지 않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혼자 갖는 것이 아니고 대상에 대한 신뢰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믿음이나 인간관계의 믿음도 반드시 구체적 대상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이 삼위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이시고,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도록 인도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창조의 하나님과 구원의 예수님과 우리를 돕는 성령님과 관계가 있는 사람만 믿습니다.

나는 나의 아내를 믿습니다. 내가 나의 아내를 믿는 믿음은 아내가 인격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고 나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내를 믿는 믿음은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아내가 아무리 인격이 훌륭해도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 여자를 지금처럼 믿을 수 없습니다. 부부는 아무리 성격과 취미와 스타일이 다르고 성격 차이로 티격태격 싸워도 부부라는 그 관계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부부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부부의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 아니고 부부의 관계가 믿음을 발생시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사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슴도치가 들으면 매우 기분 나쁠 이야기입니다. 고슴도치가 못생긴데다가 온 몸에 가시가 돋아나 얼른 보아서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선입견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슴도치뿐 아니라 모든 동물은 새끼를 사랑합니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닌데 어미는 새끼를 사랑하고 새끼는 어미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어미와 새끼의 관계로부터 그런 사랑과 믿음이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제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냐 하는 문제에 대해여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 11장 2절을 보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세례 요한도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마 16:13절 이하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고, 제자들의 대답에 의하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잔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합니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야인지 아니신지 매우 궁금해 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시다가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실 때였습니다. 갑자가 예수님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믿지 않는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질문하였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여기 “마음을 의혹하게 하다.”는 것은 마음을 조이게 하다는 뜻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께서는 직접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질문을 받았을 때도 보고 들은 바를 전하라고 하셨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도 이를 네가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궁금했습니다. 자기가 메시야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속 시원하게 당신이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분명하게 말하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역시 직접 그렇다 혹은 아니다 라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의 마음은 간절하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구약은 온통 메시야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메시야를 기다릴까요? 메시야가 와야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메시야가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메시야 대망 사상은 인간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메시야 대망 사상 배후에는 인간의 전적 무능과 전적 무지라는 성경적 인간관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하셨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메시야가 오시기만을 학수고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은 유대인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민족에게 이런 사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세상을 살아보니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입니다. 이집트의 바로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도, 페르시아의 고레스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도, 로마의 시저도,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 준 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인간이 교만해서 안 그런 척 하지만 그래도 역사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가 이 땅에 존재 해 온 이래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민족에게나 메시야 대망 론 같은 게 있습니다.

오늘 날도 우리가 정직하게 역사와 현실을 관찰한다면 메시야 대망 론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대선 예비 선거를 지켜보면서도, 한국의 총선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도, 정치와 경제와 환경 문제를 생각해도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가기보다는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해 전만해도 전문가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전문가들조차도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정치 전문가가 내일의 정치를 예측할 수 없고, 경제 전문가도 내일의 경제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과학자도 과학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여 인공위성이 태양계를 벗어나는 데까지 날아가고, 인간의 DNA까지 읽어내고, 인간을 대체할 로봇이 등장할 것입니다.

최근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 기술)로 대표되는 미래형 첨단 기술 등에서 한 개 이상의 기술이 중첩되는 융합기술을 기술의 융합(Convergence)이라고 합니다. 각 분야의 첨단 기술들의 융합은 현재의 과학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궁극적으로 신 산업 창출을 통한 고소득 달성과 산업 및 연구시스템의 융합을 촉발하는 시발점으로 크게 주목 받고 있습니다. 기술의 융합과 복합화(Complex)는 21세기를 열어가는 키워드로서 물리, 화학, 생물, 전자공학, 기계공학, 재료공학 등의 단위기술의 발달이 기술발전을 주도했던 상황에서 기술 간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는 창의적인 과학기술, 인간과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을 진흥해나가는 형태로 진화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융합화는 개별 기술의 단순한 개량뿐만 아니라 새로운 돌파 형 기술 개발을 가능하게 하고 기술혁신을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융합기술들은 기술적 발현 형태 및 전개 양상에 따라 10년 또는 20년 뒤 인류가 기대하는 것처럼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게 될 수도 있겠지만, 반면에 소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형의 몬스터가 출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융합기술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인간의 교만은 자신들의 과오를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역사가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괴상한 메시야 사상에 빠져 있습니다. IT, BT, NT의 융합 기술이 인간의 질병 문제, 식량 문제, 환경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융합 기술이 긍정적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의 이기심과 증오심과 미움과 시기심을 치료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칼에 찔러 피를 흘리는 로봇이 등장하고, 인간의 두뇌를 해킹하는 기술, 다른 사람의 몸을 도용하는 기술이 일반화 될 때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내일을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하게 될 것이고 더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과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정의는 더욱 무시되고 힘과 폭력이 지배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융합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게 되면 우리의 영혼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까요?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질병과 고난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도 미국의 역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와 싸우고 민족끼리 싸우고 호족들끼리 싸우고 가문끼리 싸우고 가족끼리 싸우고 부부가 싸우고 성도들끼리 싸웁니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인간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한 불안이 인간으로 하여금 종교적이 되게 합니다. 초월자가 나타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 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메시야 사상도 일반적으로 설명하면 그런 것입니다.

기원전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사로잡혀가서 70여 년 동안 남의 나라에서 지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정복자들의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지배아래에서 인권과 자유를 유린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절망만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창조자로 믿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폭력적 정복자들을 그냥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구원자를 보내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애굽이나 바벨론이나 페르시아나 로마가 아무리 막강해도 메시야가 오시면 그러한 제국을 제압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셨지만 그 메시야께 당신이 메시야냐고 묻고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하시자 그를 믿은 게 아니라 돌로 쳐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가 아니라 자기들이 기대하는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데만 온통 신경을 곤두세웠지 메시야와의 관계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너무도 치명적입니다. 그들은 오신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메시야를 죽였습니다. 믿음은 종교적 열정이 아니고 하나님과 메시야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뢰의 반응입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 요 10:26 -

출처:USA 아멘넷/황상하 목사 신앙칼럼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다가온 '동성애'

[긴급특집] 동성애 조장하는 사회


드라마, 방송, 소설, 코미디 프로까지 장악. 동성애자가 선망의 대상 되기도… 


<2015 제 6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윤이형 단편소설 ‘루카’는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다.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동성애를 세련되게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해 픽션 창작 시간에 이 작품을 논한 뒤 학생들에게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30여 명 가운데 3분의 2가 “찬성한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도 사랑이니까, 소수자의 인권은 보호해야 한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학생들에게 “자녀가 동성 애인과 결혼한다면?”, “동성끼리 결혼하면 자녀를 낳을 수 없는데 괜찮은가?” 등의 질문을 한 뒤 동성애자들의 성생활과, 그로 인한 후유증을 전하자 몇몇이 손을 내렸다.


3분의 1 정도는 “사랑의 방식은 개인이 선택하는 거니까”라며 끝까지 동성애자를 지지했다. 대학교 3학년들의 동성애에 관한 견해가 요즘 젊은이들의 평균치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평등’과 ‘인권’에 주목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겨를 없이 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렸던 시절과 달리 개인의 권리가 중요해진 시대다.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소수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동성애 코드는 어느새 안방까지 진주했다. 동성끼리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 거부감을 느끼면 촌스런 사람이 되고 만다. 



▲ 방송 드라마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는데 앞장 서고 있다. 2010년 방영된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그 대표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파장 


공중파에서 활동했던 유명 개그맨들이 총집결한 tvN 예능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의 인기코너 ‘여자사람친구’가 2015년 7월부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반응이 없으면 바로 폐지하는 <코미디 빅리그> 시스템 속에서 ‘여자사람친구’는 첫 출발부터 갈채를 받았다. 


양세찬과 트렌스젠더로 분한 장도연은 이른바 ‘썸’을 타는 관계다. 둘은 군대 동기로 설정되어 있다. 양세찬이 틈만 나면 사랑을 고백하는 장도연을 골탕먹이는 것이 웃음 포인트다.


마지막에 실수를 한 장도연을 양세찬이 돌봐줄 때면 ‘네가 여자로 보여’라는 노래가 흐르고, 두 사람이 야릇한 눈길을 주고받는 것으로 매회 마무리 된다.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남자 배우끼리 호흡이 잘 맞으면 어김없이 ‘브로맨스’ 운운하는 기사가 뜨고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달린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자 출연자들이 티격태격하면 MC가 “둘이 사귀냐?”며 놀리고 방청객들은 “사귀어라! 사귀어라!”라며 장단을 맞춘다.


동성애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배경에는 2010년 방영된 김수현 극본 <인생은 아름다워>가 있다. 아름다운 제주도 풍광과 아기자기한 대가족의 삶을 담은 드라마가 63회에 걸쳐 방영되었다. 내과의사와 사진작가로 분한 송창의와 이상우가 동성애 커플로 나와 큰 관심을 끌었다.


두 남자의 사랑을 당대 최고 작가가 설득력 있게 그리자 초반의 비판이 점차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톱 게이’ 홍석천을 선망하는 사람들 


‘동성애 미화 드라마’라며 시청거부운동을 벌인 일부 네티즌들은 ‘이 정도면 막장 아닌가’ ‘소름끼쳐서 못 봐 주겠네’ ‘동성애 조장도 정도껏 해라’ 등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시청률 20%에 육박하는 인기 드라마의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부모가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하면서 동성애는 대가족 속에 녹아드는 정당한 사랑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동성애 확산을 막기 위한 각종 노력들이 이 한 편의 드라마가 덮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급력은 막강했다.


2000년에 커밍아웃을 한 후 활동을 못하고 있던 홍석천을 방송에 복귀시킨 인물 역시 김수현 작가다. 홍석천이 게이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렸을 때 가수 조영남은 신문 칼럼에 홍석천을 혁명가에 비유하며 “4·19나 5·16 전야를 방불케 했다. 그는 자신의 생애 이래 최대의 용기를 발휘했다. 홍석천은 목숨을 걸고 혁명 전선에 나섰다”고 흥분했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계기로 각종 매체에서 여론조사를 했을 때 20대에서는 60%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답했고, 자신이 “동성애를 할 수도 있다”고 답한 사람이 14.4%였다.  59.2%가 홍석천의 방송출연 정지를 적절치 않은 조치라고 답했으며, 83%는 동성애자들이 직업 선택에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홍석천은 방송에서 퇴출되었다. 김수현 작가가 2003년 <완전한 사랑>에 홍석천을 출연시켰고, 드라마 출연 이후 홍석천은 방송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가장 안전한 오빠이자 가장 위험한 형’이라고 말하는 홍석천은 이태원에서 9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연매출 70억 원을 올리는 성공한 동성애자의 표상이다.


현재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전문 요리사로도 활동하는 홍석천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남녀 연예인들을 가장 편하게 맞아주는 상담가, 힘든 상황에 빠진 누나의 두 자녀를 입양하여 뒷바라지를 하는 아빠 등등 홍석천의 미담이 끊이질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동성애 코드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홍석천은 동성애자에 대한 거부감을 불식시킨 것을 넘어 ‘능력 있고 성실하며 착하다’는 인식까지 심어주고 있다.


동성애자들은 스스로를 성 소수자로 부른다. ‘보호 받아야 할 소수자’인만큼 언론에서 동성애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련성을 나타내는 기사를 쓰지 못하게 하는 인권보도준칙을 만들어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28일 국민일보가 퀴어문화축제 실체를 파헤친 기사에서 ‘동성애자들은 에이즈·성 매개 감염병 건강진단 대상자와 함께 감염위험집단으로 분류돼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자 미디어오늘이 바로 관계자의 말을 빌려 ‘에이즈의 주 감염 경로는 성 접촉이고, 안전하지 않은 성 접촉을 했을 때 감염되는 것이므로 고위험군엔 꼭 남성 동성애자만 있는 건 아니다’는 기사를 실었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1993년 동성애로 에이즈에 감염된 김경민(가명·30) 씨가 <겨울 허수아비도 사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를 발간했을 때는 분위기가 달랐다. 1985년 우리나라에 최초의 에이즈 환자가 보고된 이래 실제 에이즈 환자가 등장하자 언론의 반응이 뜨거웠다.


당시 주간신문 기자였던 필자는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에이즈 퇴치를 위한 한국시민 모임’에서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하여 취재를 하고, 김경민 씨와 전화 인터뷰도 하여 에이즈와 동성애에 관한 기사를 썼다.


<겨울 허수아비도…>에는 김경민 씨가 동성애에 빠진 경위와 종로 일대 4000원 짜리 방에 사는 동성애자들의 실상, 동성애로 인해 에이즈에 걸린 과정이 충격적으로 그려져 있다.


짧은 기간에 6만 부가 팔릴 정도로 화제가 되었고 김경민 씨는 TV에 출연해 커튼 뒤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에이즈와 동성애에 관한 실상을 전했다. 


당시만 해도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관계에 관한 기사를 쓰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고,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던 시대가 아니니 댓글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김경민 씨가 각종 매체에서 에이즈에 관해 경고하자 건강 정보를 알려주는 ‘텔리퓨처’에 하루 5000여 명이 전화를 했다. 버튼을 눌러 에이즈에 관한 정보를 들은 뒤 2000여 명이 국립의료원으로 전화를 했고, 17명의 에이즈 연구원들은 폭주하는 상담 전화에 응해야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홍석천의 커밍아웃으로 동성애가 조명을 받으면서 모두들 커밍아웃, 퀴어, 바이 섹슈얼, 트랜스, 이반(異般) 등 낯선 문구를 익히느라 바빴다.


이제 길거리에서 손잡고 다니는 남자들,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며 애정을 표현하는 남자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아슬아슬한 팬티만 입고 퀴어 축제에 참여하여 거리낌 없이 동성애자임을 알리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예전만큼 자세한 보도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중년이 소년을 유혹할 때 


동성애 인구가 늘어나 축제까지 열 정도라면 더 자세한 사항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동성애는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어떤 식으로 성행위를 하는지, 그로 인한 부작용은 없는지, 알리는 게 당연하건만 동성애에 대한 정당성만 주장할 뿐 그로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분위기다.


동성애의 가장 큰 폐해는 성인이 미성년자의 성(性)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1990년에 발간한 장정일의 소설 <아담이 눈뜰 때>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 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소설에서 아담은 동성애자와의 하룻밤 대가로 턴테이블을 받게 된다. 매일 한 번씩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오디오점 앞에서 구경하는 소년에게 주인인 중년 남자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친절한 아저씨는 소년에게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면 레코드 플레이어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열아홉 치기에 들떠 있던 아담은 ‘모르긴 해도 그것은 똥을 누는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를 따라간다.


‘핀셋으로 살에 드러난 상처를 만지는 것 같이 오싹한 경험’을 하고 턴테이블을 얻은 아담은 ‘성인이 성인을 상대로 욕망을 행사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페도파일(소아 성애자)은 용서할 수 없다’고 속으로 원망한다. 중년 남자는 “앰프가 필요할 거야. 생각 있으면 오라구”라며 또 유혹하지만 아담은 더 이상 그를 만나지 않는다.


현실에서 가난한 소년이 유혹을 당하면 어떻게 될까. 에이즈 환자 김경민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극장에 갔다가 한 아저씨의 손길을 통해 이상한 체험을 한 후 다시 고등학교 2학년 때 극장에서 만난 동성과의 관계를 통해 동성애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고백했다.


타인에 의해 성 정체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힘이 센 쪽에서 약한 쪽을 동성애로 끌어들인다는 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성애에 관해 자세히 알리는 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흡연이 각종 질병을 유발하고, 비만이 동맥경화를 부른다는 정보처럼 동성 간의 성행위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병에 대해 고지하는 일, 알권리를 과도하게 주장하는 시대에 꼭 필요한 조치다.



- 이근미 미래한국 편집위원



출처: 미래한국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645)




10대 청소년까지 파고든 동성애!


'선'을 '악'하다 하고, '악'을 '선'하다 하는 시대...

'죄악'을 '인권'으로 포장하여 멸망을 자초하는 현실...


미디어에서 정말 아무렇지 않게

'브로맨스'라느니 '남남케미'라느니...

온갖 표현으로 동성애를 미화시키는 짓들을 서슴치 않으며,

동성애를 마치 정상적인 개인의 성적취향인 것처럼 여기는

흐름이 강해질수록, 이런 성적타락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동성애의 심각한 폐해와 에이즈와의 관계에 대해

팩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입니다.


아직도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가치판단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있다면,

진실을 바로 알고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와중에 박원순의 서울시는 올해도 어김없이

동성애자들이 광란의 파티를 서울광장에서 열 수 있도록, 

승인해 주는 기막힌 행태를 보입니다.


서울시, 서울광장 동성애 축제 최종 승인.. 교계 강력 반발!




서울시가 결국 동성애자들에게 서울광장을 열어줬다. 서울시는 지난 14일 서울광장 홈페이지에 ‘6월 11일 제17회 퀴어문화축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행사 성격은 ‘공연’이며, 동성애자들은 자정부터 오후 12시까지 24시간 서울광장을 사용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889276동성애자 전용컬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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