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섬김-

지난 번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귀신들린 자들을 많이 데리고 예수님께 오거늘-

귀신들린 현상이 뚜렷한 경우에만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모든 병이, 심지어 감기조차 귀신들려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단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조차도 귀신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당신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야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거짓 사설을 펴는 사역자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가계의 저주 운운하면서 '그것을 끊어야 당신의 인생이 풀린다'고 겁(?)을 줍니다. 다 쓸데없는 짓입니다.

신자들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사역자가 참된 종입니다. 자신을 추종케 하거나 자신에게 와야만 진리를 알게 되고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다 엉터리라고 보면 틀림없습나다.

모든 질병의 원인은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는 정신적 육체적 연약에 있습니다. 근원적으로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끊어진, 환언해서 생명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오는 특징이 가시와 엉겅퀴의 삶이요, 육신의 질고입니다. 귀신들리는 것도 이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여 멸망으로 이끌고자하는 마귀의 악한 궤계입니다. 그렇지만 마귀는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마귀와 그를 따르는 자들의 종국이 어떠한 지를 요한계시록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닮은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 자체가 이미 대적자 마귀(사탄)체계의 붕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라(왕국)'란 표현을 마귀체계에 같다붙이는 것 조차도 아깝습니다.

귀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는 맥을 못춥니다. 예수님이 이미 귀신의 대장 마귀(사탄)를 결박하셨기 때문입니다. 혹 귀신 노이로제에 걸린 분이 있다면 이제 안심하십시오. 왜냐하면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을 자유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물매-
해질무렵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다는 소문이 온 사방에 퍼졌습니다. 못 고치는 병도 없다고 합니다. 이미 날이 저물어 갑니다. 그런데도 몰려옵니다. 이는 먼 지역에서 소문을 듣고 고침받고자 하는 열망으로 아침일찍 나섰지만 걸어오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집이 있는 지역에만 유독 귀신들리고 병든 자들이 많았을 리 만무합니다.

생명의 향기는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바람을 그물(net)로 잡을 수 있습니까. 물고기나 잡으면 잘하는 것이지요. 마귀가 제 아무리 주와 복음을 훼방한다 할지라도 생명의 향기는 제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복음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능력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현대에는 바람보다 더 빠르게 아니 빛의 속도로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번개가 동에서 서로 번쩍이는 것처럼요. 극동의 한반도 오지에서 인터넷(net)에 글을 써도 눈 깜짝할 사이에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sns(터위터, 페이스북 등)뿐만 아니라 모든 인터넷 매체가 실시간으로 소식을 실어 나릅니다. 부족한 필자의 글도 온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이는 말세지말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옵니다. 자신의 의지로는 올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일일이 다 고치십니다. 한 사람도 내치거나 외면치 않으십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일 대 일, 인격적으로 대하시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십니다. 실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는 말씀이 실감이 갑니다.

장풍 비슷한 폼으로 집단적으로 쓰러뜨리는 현대의 엉터리 사역자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전혀 다른 우리 주님의 사역의 현장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를 저자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함으로써 마무리 짓습니다.

이사야서 52장 13-15부터 ~53장까지 입니다.

다 아는 말씀이라고 치부하지 마시고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본 인용구 한 절이 이것의 전체를 대표합니다.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은 질고를 짊어지심은 메시야의 본분입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신 것은 이면적으로는 죄 없으신 그 분이 죄인을 대신하여 속죄양이 되어주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고난받는 종(The suffering servant of Jehovah)의 사상을 가장 선명하게 많이 예언한 이사야를 외면하고 율법의 행위를 의지하고 쓸데 없는 선민사상에 젖어서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던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인을 부연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 마태는 바로 앞 단락, 백부장에 대한 기록에 이어지는 짧은 본문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함으로써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어가는 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주님이 우리를 먼저 섬겨주셨습니다. 죄인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 옷입음으로서, 다시 말해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음으로서,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섬김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샌들을 신으므로 해서 발에 땀이 나고 먼지로 인해 때가 끼어 아주 더러웠습니다. 그 발로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기고 손님들에게도 발 씻을 물을 대령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종들이 하는 일상의 섬김을 제자들에게 친히 하셨습니다.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먼저 섬기십시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섬기고 계십니다. 어린양의 자리에서 말입니다. 하늘 보좌에 승귀하신 모습으로 계심과 함께, 여전히 어린양으로서 속죄사역을 감당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은 최후의 일인이 구원받을 그 날까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려 단번에 이루신 대속이지만, 적용으로서의 속죄의 효력은 항상 '현재'로서 세상 끝날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요한계시록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황공한 마음과 종의 자세로 끝까지 주님을 잘 섬겨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복음과 함께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찾아가서 섬겨야겠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그런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소원하며 간구합니다.아멘!

글: 구 자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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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tican Radio) 이 세상에서 우리가 “고아가 된 것 같은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지만, 우리에게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변호해주시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Our Lady of Sorrows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Casa Santa Marta에서 열린 미사 중에 언급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갈보리 언덕에 계시던 당시, 성 요한과 몇 몇 여자들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십자가 밑에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리아를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이 여자가 바로 이 범죄자의 엄마야! 이 여자가 바로 이 반역자의 엄마야!(성경에는 없는 내용이다. 카톨릭에서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있다니 마리아를 우상화하기 위해 성경까지도 왜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역자주)”


“마리아는 이 이야기들을 들었고 끔찍한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또 그녀가 존경하는(?) 고위 관료와 성직자들이 그녀를 배려해서 "그 수치스런 자리(십자가 밑)에서 내려오라"는 권면을 들었지만, 벌거벗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큰 고통을 겪었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낳은 아들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교황님은 또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요 14:18)이라 약속하셨는데, 십자가에서 그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습니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예수의 어머니(마리아)가 곧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우리에겐 ‘아버지’가 계십니다. 예수님의 아버지가 곧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그녀(마리아)는 우리가 고통 받는 순간 어머니가 되어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변호해주십니다.” 

 

기사원문 >> Pope Francis: Mary is our Mother, who defends us

 

 

* 마리아를 숭배하는 예수회 출신의 첫 번째 교황 프란치스코의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소름끼칠 정도로 신성모독적임을 알 수 있다.



바벨론 종교의 여신 세미라미스와 그 아들 담무스의 이야기가  이집트로 넘어가선 이시스와 호루스의 이야기로  로마 카톨릭으로 넘어가선 마리아와 예수의 이야기로 그 형태만 바뀌어 전해지고 있다. 예수회가 전파한 마리아 숭배의 뿌리가 바로 바벨론의 여신 세미라미스(이쉬타르) 숭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리아를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위치에 있는 ‘어머니 하나님’으로 언급할 뿐 아니라,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과 함께 주신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요 14:18)는 말씀을 마리아에게 적용시킴으로 마리아를 성령 하나님과 동일한 중보자의 위치에 올려놓고 있다.

 

성경 왜곡의 백미는 마리아가 십자가 밑에서 들었다는 말들에 관한 프란치스코의 언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느 성경에 사람들이 마리아를 향해 “이 여자가 바로 이 범죄자의 엄마야! 이 여자가 바로 이 반역자의 엄마야!”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며, 이 모습을 측은히 여긴 관료들이 마리아에게 “그 수치스런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권면하는 장면이 나온단 말인가?

 

마리아 숭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진리의 기준인 성경 자체도 왜곡하는 로마 카톨릭은 그리스도의 신부(교회)라는 모습은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신 마리아(세미라미스)를 숭배하는 이교 집단이요,  요한계시록 17장이 경고하고 있는 음녀 바벨론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음녀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였다”(계 17:6)고 기록하고 있다.   장차 음녀 바벨론인 로마 카톨릭이 종교통합과 마리아 숭배를 거부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잔혹히 핍박하여 그 피에 취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 말씀인 것이다.

 

마리아 숭배를 통해 음녀 바벨론을 일깨우고 있는 예수회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유념해야 한다.



출처: 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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