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제대로 아시나요?


이렇게 우남(이승만 대통령의 호)은 우리 사회에서 참 대접을 못 받는 이름이다. 백범과 몽양은 존경하면서 정작 감사해야 할 우남에게는 고개를 돌린다. 몰라서 그런다. 무식해서 그런다. 이상한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


그렇게 방치한 세월이 반백년이다. 부끄러운 세월 50년이기도 하다. 건국을 해놓고도 아버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하고도 독재자 소리를 들었다. 침략군이 쳐들어와서 당연히 컨트롤 타워를 옮겼는데도 도망자 취급을 받았다.


미국을 압박해 어렵게 한미상호방위조역을 체결했는데 돌아온 건 미국의 앞잡이라는 손가락질이었다. 정작 친일 정권이 세워진 건 북쪽이었는데 골고루 사람을 기용해 만든 정부는 친일 정부 누명을 썼다. 폼은 나지만 실익이 없는 무장투쟁 대신 국제정세에 유익한 외교전략을 활용한 혜안은 몸 사리는 겁쟁이라는 비난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런 어리석고 못난 세월을 끝낼 때가 되었다. 이승만을 역사에서 매장시키려는 획책은 매우 조직적으로, 그리고 대단히 치밀하게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초등학교 때는 이승만이 독재자라고 배운다. ‘초딩’의 머리로는 그 정도 이해가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어느 독재자가 국민이 내려오란다고 바로 자리에서 물러나나?


중학교에 가면 이승만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선전한다. 4.19가 일어난 제4대 대통령 선거 때 이승만은 이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상태였다. 부정이 저질러진 것은 바로 부통령 선거 때였다. 그런데도 이승만은 그 책임을 자기가 졌다. 오히려 데모하는 학생들을 칭찬했다. 다친 시민이 있다는 말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4.19 발포사태를 뒤늦게 알게된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대 병원으로 부상학생을 찾아 위문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승만은 "장하다...장하다...젊은이들이 불의를 보고 일어서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다"고 말하고, "어떻게 백성을 죽일 수가 있어? 내가 그만 두면 사람들이 더 안 다치겠지..." 라며 각료들을 질티하고 스스로 사퇴성명서를 작성하여 전국에 방송하였다.


북한군이 쳐들어오자 서울을 버리고 도망치면서 다리를 끊어 백성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설명은 고등학교 때쯤 나온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지도부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은 상식이다. 적 주력부대의 드라이브를 막기 위해 다리를 끊는 것은 군사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당연한 결정이다.


비난하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럼 대통령이 서울에 남아서 권총이라도 들고 항전하다가 전사하는 것이 옳았다는 얘기인가? 오히려 고집 피우다가 피난을 너무 늦게 갔다. 이게 오히려 지적할 문제다.


이렇게 해서 머리가 여물지 못한 아이들은 독재자와 부정선거의 주범과 비겁한 도망자로 우남을 새긴다.


대학교에 가면 좀 더 정밀하게 왜곡이 펼쳐진다. 정읍 발언을 문제삼아 분단의 원흉으로 몰고간다.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정읍에서 연설하실 때 “늦었지만 우리도”라는 말을 하셔야 했다.


북쪽에서 정권이 차근차근 만들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두 손 놓고 있었다. 당연히 나왔어야 할 발언이다. 남한의 정부는 북한보다 1년이나 출발이 늦었다. 그 1년동안 북한은 사주를 받고 협의를 하고 전쟁 준비를 마쳤다. 이렇게 우리는 우남에 대한 기억을 완성해간다. 워낙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라 의심할 겨를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역사의 바보가 된다. 우남이 미국의 앞잡이라거나 항일투쟁을 안 했다는 모략은 비교적 최신 버전이다.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의 앞잡이었기 때문이 우남도 그렇게 몰고 싶었나보다.


미국은 우남이 정말 미웠다. 이영훈 선생의 표현대로 입에 칼을 물고 뛰는 노인네에게 질릴대로 질렸다. 나중에는 제거계획까지 세웠다.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하는 조치로 우남은 미국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다.


그 결과 얻어낸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그 덕에 우리가 이렇게 잘 먹고산다. (북한 정권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은 이 문장이 매우 마음에 안 들 것이다.)


항일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모략은 좀 치사하다. 미국은 ‘1818 중립법’을 만들어 식민지 백성이 그 어떤 군사적 활동도 할 수 없도록 발을 묶었다. 그럼 무장을 해도 되는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어야 했을까? 사람은 잘 하는 걸 해야 한다. 우남은 외교를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숱하게 ‘신의 한 수’를 던졌다. 그리고 외교의 효과는 총질보다 몇 배나 컸다.


세계사적으로 봐야만 그 실루엣이 겨우 보이는 이 멋진 인물이 제대로 평가받는 정상적인 대한민국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반론 펼치고 싶은 사람 있을 것이다. 안 말릴 테니까 댁들도 연구하고 써라.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승만 깨기> 머릿말 / by 저자 남정욱




이승만의 '한강철교 폭파'에 관한 오해와 진실!

 

 



 

보통 좌파들은 이승만이 직접 서울을 사수하란 방송을 틀어 시민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한강다리를 폭파 명령을 내렸다고 하는데, 일단 이것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이승만은 한강인도교 폭파 명령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그건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의 결정에 의한 폭파인 것입니다.

 


http://news.donga.com/3/all/20100629/29476310/1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48Uh&fldid=32bk&datanum=2969&openArticle=true&docid=48Uh32bk296920110907214149

 

밑에 표로도 보이듯 북괴가 전차를 무려 242대나 가지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단 한대도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강다리 폭파는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서울에 북한군이 밀고 내려온 후, 미처 끄지 못한 방송을 북한군이 방송국을 점령한 후, 일부로 끄지 않은 것입니다.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54212

 

또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을 빠져나올 생각도 없었고

주위 사람의 권유로 인해 결국 빠져나온 것입니다.

 



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0062600209101001&officeId=00020

 

1950년 6월 26일 기사에도 나와있듯 이승만은 본인 육성으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당시 국방부 정훈국장 이선근 대령이 6.25 전쟁 경위에 대한 담화 방송을 발표 했었지요. 그리고 북한군이 남한에 대해 끊임없는 선전 방송을 했었습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006270032920201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0-06-27&officeId=00032&pageNo=2&printNo=1203&publishType=00020


전쟁중에 심리전과 선전전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스포츠 중계하듯 밀리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하고 피난가라고 하게 되면, 무정부 사태가 오고 말 그대로 카오스 상태에 빠져 더 큰 희생을 불러왔을 것입니다. 군인들은 탈영하고 난리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참고로 일본은 본토가 폭격을 당하고도 천황이 직접 별거 아니라고 안심하라고 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일본군은 자기들이 전승하는줄 알고 있었구요.

 

그리고 탈출로라고는 한강인도교 단 하나뿐이었는데, 그 당시 300만명이나 살고 있었던 서울 인구가 다 피난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는 지금만해도 설이나 추석 명절만 되면 차가 엄청나게 막혀서 제대로 가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그 당시 상황에선 과연 얼마나 피난이 가능했을까요?

 

사실 지금만해도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하는 것이 도로 통제와 교량폭파, 그리고 대통령은 전시 후방에 빠지는 것이 기본인데, 이것만 가지고 쌍욕해대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기가찹니다.

 

 

출처: 진실의 눈과 머리 - 수호자 칼럼 / 보안사령관




이승만의 한강교 폭파, 사악한 역사왜곡! (김진태 의원)




왜곡된 현대사, 건국대통령 이승만 죽이기!


 

출처: 이웃블로그/엘샤다이

두 증인의 사역에 대하여







두 증인이 사역하는 때는 전 3년반 1,260일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왜 전 3년반에 갑자기 나타나서 무슨 사역을 하는 것일까?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듣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계 11:3~6)



계시록 11장을 근거로 두 증인의 사역을 보면 

첫째, 휴거 후 혼란에 빠진 남은 자들(교회 일원이지만 미지근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데 베옷은 회개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 전 3년반동안 하나님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에게는 

재앙을 보내서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이끌 것이지만

기록된 두 증인의 사역을 보면 오히려 재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증인의 사역과 휴거 시기의 연관성


환란전 휴거: 두 증인의 사역전(전 3년반 이전)에 휴거가 일어나는 경우.


환란을 대비하라


신실한 성도들이 휴거되고 난 후

충격에 빠진 지상에 남은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시키면서

대환란을 앞두고 땅에 사는 자들에게 재앙의 전조를 내린다.

두 증인의 사역의 대상이 성도가 아니라 땅에 사는 자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활동하는 3년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기근이 심각해질 것이다.


환란중 휴거: 두 증인의 사역중(전 3년반)에 휴거가 일어나는 경우


짐승의 표를 받지 마라​


두 증인의 사역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도록 경고하고 격려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고는 이미 2000년 동안

교회시대에 충분히 경고해 왔을 뿐 아니라,

두 증인의 사역은 전 3년반이므로

성도를 대환란에 남겨두고 두 증인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환란후 휴거 : 두 증인이 사역후(후 3년반)에 휴거가 일어나는 경우


순교하라


두 증인의 역할은 대환란을 인내로 통과하도록 순교정신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대환란의 현장에서 함께 환란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역은 복음을 거부하는 땅의 백성들에게는

재앙으로 맞서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류는 이들을 증오한다.

 

두 증인은 누구인가?


두 증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두 증인을 상징으로 볼 것이나 문자적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므로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계시록은 두 증인을 선지자(계 11:10)로

두 촛대로 두 감람나무(슥 4:1~14)로 소개하고 있는데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는 모두 유대인이었으므로

두 증인이 이방인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1. 모세와 엘리야다.


두 증인의 입에서 불이 나오고, 비가 오지 않게 하며,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사역은 모세와 엘리야를 연상케 한다.


물을 피로 변하게 한 것은

모세가 에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의 이적이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비를 오지 않게 한 사역은 엘리야가 행했던 이적이다.


변화산상에도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미 한번 죽었는데

두 번 죽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2.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다.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계 11:4)

계시록의 이 말씀과 똑같은 내용이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내가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슥 4:3~4)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은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슥 4:14)


그런데 스가랴 3장에서 대제사장의 상징인 여호수아가 등장하고

스가랴 4장 9절에 스룹바벨이 등장하기 때문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들을 상징한다고 해석해 왔다.


3. 예수님의 제자 중 2명이다.

이들의 정체성을 증인이라고 기록한데서 힌트를 찾은 해석이다.

증인이란 이미 어떤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타나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가장 유력한 제자 중 한명은 요한이며 증언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4. 마지막 때의 사명을 위한 두 사역자다


최근 이런 주장이나 견해를 보이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는데

자신이 두 증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두 증인은 유대인일 가능성이 크다.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계 11:10)


5. 불특정 다수의 사역자들이다.

마지막 때에 사명을 위해 선택된 사역자들로 두명이 아니라 다수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6. 이방인교회와 이스라엘 교회를 상징한다.

두 증인을 두 촛대로 기록되었고 촛대와 등잔대는

교회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이방인 교회와

이스라엘 교회나 두 교회의 대표자 2명으로 해석하는 경우다.

전세계에서 휴거되지 못하고 뒤늦게 회개한 교회들이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이 기름부음으로

구별한 두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사역하고 죽는 장소는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즉 예루살렘이다.


그 곳은 영적으로 애굽과 소돔인데

애굽은 세상과 박해를 상징하고 소돔은 죄와 심판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한 이후

육적으로는 나라가 회복되었지만 영적으로 타락했으며

동성애 비율은 전세계 3위에 이를 정도다.


휴거 이후 전 3년반 뿐 아니라

후 3년반도 세계와 짐승의 중심부대는 예루살렘이다.

세계단일정부의 수도는 예루살렘일 가능성이 높다.


두 증인의 죽음


두 증인의 죽음 


두 사람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싸워서 지고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타락한 고위급 천사라는 해석과 짐승이 두 증인을 죽이고

세계에 인기를 얻어 세계단일정부의 수장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2:1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겠지만

두 증인은 패하는데 이는 본격적인 짐승의 시대가 도래함을 의미한다.


또다른 해석은 이 전쟁을 영적전쟁으로 해석하여

7년환란의 시작되면 교회가 영적 기갈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증인의 부활


두 증인은 산채로 휴거되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하는 모습을 취한다.


3일반 후에 두 증인의 시체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다시 살아나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세계인들이 목격하게 되는데 아마도 TV로 중계하게 될 것이다.


이미 그들의 시체가 땅에 묻히지 못하고

죽은 모습을 세계방송에서 떠들썩하게 방송하며 기뻐했던 터다.


휴거는 비밀스럽게 진행될 것으로 알지만

두 증인은 모든 사람이 보는 상태에서 구름타고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이것이 교회의 휴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두 증인의 사역과 둘째 화


두 증인이 하늘로 올라가고 것을 구경하는 그 때에 

예루살렘에 매우 큰 지진이 일어나 7,000명이 지진으로 사망한다.


이때 성전산의 황금돔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방송으로 구경하는 자들이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1,260일간의 두 증인의 사역과 큰 지진을 둘째 화로 기록되었는데

세계는 이제 짐승의 시대로 인한 세째 화가 준비된다.


짐승의 등장


짐승이 두 증인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당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가 부상을 당해 거의 죽은 상태에서 상처가 기적적으로 치료된다.

세계는 이 상황을 매우 놀랍게 받아 들이고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짐승이 방송에 나와 세계인을 사로잡는 명연설로

더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온 세계가 그를 따르고

단일세계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는 여론이 급등한다.


그의 연설은 세계평화와 안전을 약속하고

하나님을 신성모독하고 기독교와 이스라엘을 비방하는 내용이다.

마침내 짐승은 3년 6개월 임기의 세계단일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출처: 카이로스 / ars

3.1절을 맞이하여
어느 아파트 경비원의 소회

내가 근무하는 곳은 아파트 경비실
많은 사람들은 3.1절을 맞이하여 공휴일이라서 휴일을 즐기고 있지만 난 1주일에 단 하루만 쉬고 6일은 어김없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여 정해진 시간에 퇴근해야하는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니 경조사를 비롯한 개인적인 사소한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일찌기 포기하며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나이들어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일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겁고 기쁘게 일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특히 99년전 우리의 선배들이 나라를 잃고 일제의 폭압에 시달리다가 나라를 다시 되찾고자 목숨을 걸고 분연히 일어났던 3.1절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날을 어떻게 생각하며 지내나 하는 생각이 들어 태극기를 계양한 세대가 몇세대나 되나 살펴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태극기기 달려있는 세대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태극기를 달았느냐 안달았느냐가 꼭 그 사람의 애국의 척도는 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외적으로 나타난 것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지만 사람들의 평균적인 생각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집회를 갖고 행사를 하고 있지만 진정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며 그렇게 하고 있는지, 자기들과 의견이 맞지 않는 세력에게 시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령 우리나라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스스로 자진해서 총칼들고 전쟁터로 향할 것인지 아니면 내 한 목숨 살자고 비행기 타고 외국으로 도피할 것인지 정직하게 자신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 경비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으로서는 좀 서글퍼지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 같다.

한변, ‘강제북송’ 주제로 ‘북한인권법 제정 2주년 기념 토론회’ 개최
“감옥의 문은 밖에서 열어야 합니다”..."김여정 보는 순간 슬펐어요"

 

2일 한변이 주최한 북한인권법 제정 2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강제북송 당한 탈북여성들을 위로하는 특별행사를 하고 있다.

“세 번 강제북송 당했고 네 번째 탈북에 성공해 2007년 한국에 왔습니다. 1998년 두만강을 넘자마자 엄마와 여동생, 저는 각각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 남자에게 팔려갔습니다. 저는 임신 상태에서 강제북송 당했습니다. 북한 증산 교화소에 수감됐는데 그곳에서 마취 없이 강제 낙태 당했습니다. 밤이면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을 날랐던 임산부들이 낙태하는 비명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임신 8, 9개월 돼서 태어난 아기를 강제로 죽이는 광경도 목격했습니다. 당시 증산 교화소에 수감됐던 2000명 중에 살아나온 사람은 200명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 약 20구를 한꺼번에 구덩이 안에 쓸어 넣고 흙을 덮었는데 개들이 시신의 팔다리를 물고 돌아다녔습니다.(탈북여성 지현아 씨)”

“2006년 첫 탈북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에 살다 아이 낳은 지 한 달 만에 북송됐습니다. 악명 높은 전거리 교화소에서 24살부터 29살까지 살았습니다. 당시 전거리 교화소에 수용돼 있던 1200명 중 1100명이 탈북자였습니다. 그들의 탈북 스토리는 모두 ‘배가 고파서’였습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탈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수감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시체를 모아둔 창고에서 기어 나온 구더기를 잡아먹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진 여자들은 저한테 중국의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엄마가 북송돼서 살아서 집에 못 간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아이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들은 중국에 남겨두고 온 아이를 생각하며 울었습니다.(탈북여성 유선미 씨)”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인권법 제정 2주년 기념 토론회-강제북송 문제와 개선방안’에서 나온 탈북 여성들의 증언이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국회인권포럼 등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북한 주민들이 직접 촬영한 북한 내부 영상으로 시작했다.

실내가 어두워지자 2008년 새벽 해주시장의 한 건물 앞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두 명의 꽃제비 아이들이 나타났다. 배가 고프면 쓰레기장에서 주워 먹는다는 10살, 11살, 12살 꽃제비들은 ‘엄마는 집 팔고 뛰었고, 누구도 (나를) 기르겠다 하지 않아요....큰 애들이 때려요, 계속’이라고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있으나 마나 한’ 남편 대신 어린 딸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역 앞에서 구루마로 짐을 나르는 젊은 여성은 영양실조로 두 돌이 지나도 걷지 못하는 어린 딸에게 마른 젖을 물렸다. 유일한 생계수단인 구루마를 보안원에게 뺏긴 여자들의 얼굴에 떠오른 망연자실한 표정과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파는 노파, 초등학생만한 키와 체구의 북한 군인들의 모습이 화면에 떠오르자 토론회장 여기저기서 깊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한변 김태훈 상임대표는 “북핵 위기의 본질은 주민에게 쓸 돈을 핵과 미사일에 퍼부어도 북한주민이 말 한마디 못하는 북한인권의 부재에 있다”며 “우리나라가 일본 위안부 문제에 기울이는 뜨거운 관심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에 기울이는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우리사회는 탈북민의 강제북송 등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이 극히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그동안 강제송환 된 탈북민 규모는 최소 5만~10만 명으로 추정된다”며 “한국 국정원에 협조했다고 생각되는 주민들은 강제북송 후 북한에서 처형되며 특히 기독교 선교사들과 관계한 자는 재판을 거치지 않고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된다”고 밝혔다. 중국 관리들은 강제송환되는 탈북민들의 목적국이 한국이었는지 중국이었는지 여부에 따라 북한당국에 건네는 서류에 도장의 색을 달리해 표시하며 중국 당국은 북한 당국에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물품을 전달받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중국인들이 탈북민들을 고발하도록 하고 은닉하는 자는 처벌하도록 종용한다. 탈북자를 고발한 사람에겐 중국정부가 금전적 보상을 하기도 한다. 정보 제공이 신속하고 불법 탈북자 숫자가 많을수록 보상금도 커진다. 한 대표는 “중국 공안은 중국 체류 북한 주민들까지 고용해 한국으로 도망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탈북민들에 대한 정보를 밀고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송된 북한주민들은 1차 수용기관인 지역 함경북도 온성군, 무산군, 회령시, 평안북도 신의주시,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국가보위성 구류장에서 알목수색과 소지품 검사, 위생검사(에이즈 검사)를 받는다. 북한 조사기관은 숨긴 돈을 찾아내기 위해 매우 치욕적이고 비위생적인 질 검사를 하거나 발가벗긴 채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소위 ‘펌프질’을 시키고 용변을 보도록 강제한 후 검사한다. 북한 교화소는 영야상태와 위생상태가 극히 열악해 대규모의 수감자들이 단기간 내에 사망한다는 조사보고가 최근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한변협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북송 경험자 28명은 지역 보위성 구류장에서 조사받는 중 폭행, 식량 제한, 강제노동 등을 당했다. 특히 구류장, 집결소, 단련대, 교화소 등에서 강제낙태나 영아살해를 경험하거나 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약 18%에 달했다.

북한전략센터 강철환 대표는 “김정은 시대 들어 탈북자 문제는 더 열악해 졌다”며 “탈북민들을 통해 북한 인권 참상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김정은이 강제북송 된 탈북자들을 아예 모두 종신 수용소인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해 버렸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최근엔 보위성의 유인공작에 걸려 탈북자들이 북한에 납치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여전히 탈북민 강제북송에 대해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이 1982년 9월 24일 가입한 ‘난민지위협약’은 강제송환금지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헌법 제32조에서 ‘국경 내 외국인들의 합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해야 하며 정치적 이유로 피난을 요구하는 외국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홍레이 외교부 대변인은 2012년 2월 20일 “중국은 국제법, 국내법 그리고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탈북자 문제를 처리한다”며 탈북자를 강제송환하는 것이 국제법 위반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러한 화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중국은 강제북송되는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겪는 고문과 감금, 심각한 인권침해에도 불구하고 재중 탈북민들은 색출해 강제로 북한에 송환한다. 북한주민들이 보호 또는 망명을 요청하기 위해 외국 대사관과 영사관에 접근하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한다. 한국 대사관 또는 영사관에 대한 접근을 막아 북한주민들이 한국에 보호를 요청하거나 한국 헌법과 법률에 의해 한국 시민권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한국정부의 무관심과 안일함도 여전하다.

한변 김태훈 대표는 “우리나라는 탈북민 문제에 대통령부터 관심이 없고 언론은 이에 대해 침묵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인권법은 지난 2015년 11년만에 간신히 제정됐다. 한 대표는 “정부가 작년 10월말 중국의 사드보복을 풀기 위한 한중 합의에서 중국에 대해 이른바 3불(不) 입장은 표명하면서 이보다 중대한 인권 현안인 재중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했다.

김 대표는 “북핵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대북 압박 국면에서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탈북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중국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탈북민들을 일시 보호한 이후 국내에 입국시키는 방안 등에 대해 중국과 적극적인 협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11년만에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지도 2주년이 됐지만 핵심기구인 북한인권 재단은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재단의 상근 이사직을 요구함으로써 북한인권재단이 파행된 만큼 현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결자해지 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북한인권법은 정부가 북한인권증진에 관한 중요사항에 관해 남북 인권 대화를 추진하도록 되어 있다(제7조)”며 “정부가 북핵 위기 타개를 위해 정상 간 남북대화를 할 생각이라면 북한과 인권 대화 기회를 만들어 송환된 탈북자 처벌문제 등 인권 현안에 대한 개선방안을 찾도록 해야 하며 유엔 등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의 반인도범죄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철환 대표는 “구 공산권이나 독재 권력의 붕괴는 국경붕괴로부터 시작했다”며 “북한 내부에 자유세계에 대한 정보를 유입하고 미국과 함께 중국을 압박해 탈북자 강제북송을 막으면 북한은 자연스럽게 붕괴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 증언을 한 지현아 씨는 “감옥의 문은 밖에서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 씨는 “북한주민 350만 명을 집단 학살한 김여정이 대한민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비참했다”고 고백했다. 북한 수용소에서의 고문 후유증으로 9년째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밝힌 그녀는 “한국정부는 북한정권이 아니라 탈북자에 초점을 맞춘 대북정책을 펴 달라”고 정부에 부탁했다. 유선미 씨는 “2008년 교화소 벽에는 검은 핏자국이 보이고 사람들 때리고 고문하는 소리로 시끄러웠지만 2013년 두 번째 들어갔을 때는 보위원들이 수감자의 얼굴을 구타하는 것은 피하는 등 (인권상황이) 많이 개선됐다”며 “바깥 세계에서 하는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이 정말로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변 김태훈 상임대표의 개회사와 서울 유엔인권사무소장의 축사로 시작으로 아시아프레스가 공개한 북한 영상 상영, 탈북여성들의 강제북송 증언, 통일부 서두현 북한인권기록센터장과 법무부 최기식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의 현황보고, 이장호 영화감독의 탈북여성 특별 위로 행사가 이어졌다.

이어 한변 김태훈 상임대표의 ‘중국의 탈북민 강제송환 문제와 개선방안’에 대한 발제, 북한전략선터 강철환 대표, EBS 조형곤 이사, 중앙대 제성호 교수, 통일연구원 한동호 북한인권연구센터장, 선민네트워크 김규호 상임대표가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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