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는 자의 소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요한은 나실인(Nazarite)이었다.
나실인은 일정기간 또는 평생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을 하는 자로
남자나 여자나 서원자로 구별된 삶을 원하는 자원한자로
누구나 헌신하고자 하는 자는 나실인이 될 수 있었으며
삼손이나 요한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나실인이 있고
사무엘처럼 어머니 한나에 의해 나실인이 된 경우도 있고
헌신 기간 동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고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시체를 만지지 않았고
나실인의 몸을 구별하는 표가 머리에 있음은 제사장의 머리 관 위에 표한 성패와
일치하고 이는 신약의 만인제사장인 헌신과 소명으로 성도가 된 예표가 된다
할 수 있고 그는 유대교의 제사장의 신분이 아니면서 권위를 인정받는
예언자도 아니며  스스로의 권위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베풀었다.
나실인(Nazarite)은  
‘헌신하다’ ‘구별하다’ 라 는 나자르(nazar)에서 파생된 말로
자기 몸을 ‘구별’ 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세례요한은 나실인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삶으로 낙타가죽의 옷을 입고
메뚜기 석청을 먹었고 전통적이고 형식적인 변절된 율법에 벗어나
변절된 유대교의 종교적인 개종을 권유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자들을
‘독사의 자식들’ 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하지 말라’ 비판했고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한 벌을 나누어줄 것을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을
세리들도 부과된 세금 이외에 거두지 말 것을
군인들에게 급료로 족하고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 것을 외치자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 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누가복음 3:15]
그는 그리스도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 라 고백한다.

이 시대 종교적인 위선과 교만에 물 들은 오만에 빠진 종교지도자과
비교가 되지 않는가?
이 시대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떠한 대상으로 바라보고 고백하는가?
우리의 의식주를 해결해줄 분으로,
우리에게 은혜만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시는 분으로...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부르심을 받은 신자, 성도를 말한다.
세상에 사나 세상과 구별된 나실인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사상과 전통과 의식주의 풍속에 구별된,
종교적인 의식과 전통에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이를테면
장로의 유전은
기원을 모세시대로 두고 모세가 기록한(성문율법 -토라-)
이외에 율법의 정결에 대한 해설로
모세오경을 해석하거나 상황에 적용시킨 구전 율법이나
실제는 포로시대 이후에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 랍비들에 의해
B. C 300년경부터 구전과 고전을 모아서 집대성하기 시작하였고
B. C 70-66년경에 총 정리가 되어 약 6천여 항목으로
백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규제하는 내용으로
그중 중요한 유전 613 개항 중 248개 항은 ‘하라’
365개항은 ‘하지 말라’로 되었다 하며
예루살렘 탈무드가 완성되고 A. D500년경에 바벨론 탈무드가 완성되었고
탈무드는 장로의 유전과 미쉬나 게마라를 합쳐서 만들어졌다는데
이 장로의 유전이 하나님의 계명 같은 위치가 되어
예수님을 핍박하고 백성들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등은 율법을 무시하는 법 위의 법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행위를 탓하지만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은 것은 율법에 없었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을
장로의 유전에서는 부모님보다 하나님이 더 높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다는 ‘고르반 Corban)적인 변절은,
고르반은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 용도를 다른 용도로 쓸 수 없던 맹세의 말로 사용되었는데
장로의 유전으로 악용되어
‘고르반(하나님께 드렸다)’ 하면서 부모를 봉양을 기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는 죄를 범했다.
종교적인 신분의 직책으로 종교적인 지배자로서 그들이 정한 전통이 모세의 율법과
동등한 권위로 백성들에게 안식일등 각종 모세의 율법을 임의대로 세분화하여
백성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금식과 헌금을 강요했고
더하여 각종 성전 세를 비롯하여 종교적인 의무로 백성들은 고달픈 생활을 해야 했고
그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열정을 보이려고
백성들에게 옷자락 끝에 술을 만들라 하였고
그것을 백성들보다 크게 만들어 자기 신앙이 더 좋은 것처럼 보이려 했고
성구함의 폭을 넓게 하여 손에 감고 이마에 붙이고 자신의 자랑으로 삼았기에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순종과 사랑을 버리고 위선과 교만과 자랑으로
율법의 형식적인 규정의 준수를 하나님의 계시와 동일한 수준으로 생각하였기에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 ‘회칠한 무덤’ 꾸짖으셨다.
외식(Hypocrisy)은
외형적인 태도와 내면적인 태도의 모순, 위선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보다도 그들이 가진 목적의 기도 등 인간의 욕구를 좇는 것 을,  
쿰란의 에세네파는 바리새파를 비난했다 전해진다.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여 어떠한가... ?
전에 한국의 어느 대형교회의 유명한 목사가 집회 설교에서
‘성경을 너무 많이 가르칠 필요가 없다’ 는 기사를 읽고 황당했다
이어 ‘목사가 설명해 주는 만큼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니
그런 그를 ‘설교의 달인’ 이라니 누군가 대단히 미쳤다.
‘설교의 달인’ 이라 불러주는 사람이나 기사를 쓴 사람이나
‘달인’ 이라니 달통(達通)한 사람이라는 표현인데 왜 하필이면 ‘달인’ 이라는
한국사회의 유행적인 단어를 쓰는지 이도 답답하지만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무지한 사람인 내가 들어도 영 아닌데
이런 사람의 교인이나 이런 사람을 불러서 집회를 갖는 사람이나 교회나
그런 교회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나왔으니 개탄스럽고
(정치적인 논쟁은 사양 함)
한국 교계도 마찬가지 이지만 이곳에서 그를 불러 집회를 가진 교회와
교계를 보면서 뭐라 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그는 또 ‘제자 훈련으로 성경공부를 많이 하면 교회가 망한다.
교회에서 말썽피우고 교회를 그만두는 사람은 제자 훈련을 한 사람들이다 , 라니
이는 자기 저주의 말로 들렸다.
믿음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So then faith cometh by hearing, and hearing by the word of God
로마서 10:17]
어떻게 나며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요한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20:31] 라고 기록했다.
성경을 알아야 하는데 모르고 어떻게 믿음으로 자신을 시험하고
어떻게 확증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줄 알지 못하면 그는 버림받은 자 이다.

그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가르는 분리주의자요 이원론자라
막무가내(莫無可奈) 자기 본위의 신학으로 성경을 바라보고 설교하는 자라
‘세상은 악’ 이고 ‘교회는 선’ 이 된 이원론적 흑백논리와 분리적인 신학을 갖고 있기에
이분법적 세계관에 갇혀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대형교회의 유지를 위한 자기 식 회유(誨諭)로
성경 구절 선택에 익숙해 있기 때문인데 자세히 들어보면 한국이나 이곳의 대형교회
목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목사들의 설교가 그런 스타일이라 무언가 커다란 사회적인
사건이나 이슈에 망언을 서슴없이 하여 세상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평신도들이 신학을 많이 알면 목사가 피곤하다’'는
말을 목회자들의 모임에, 그것도 신학교 교수라는 목회자들의 모임에 들었다.
그러면서 신학교를 운영하다니, 외식(Hypocrisy)도 이런 외식이 없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고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니
진리로 허리띠를 둘 루고 의의 호경심을 붙여 공의로서 마음의 중심을 삼고 보호하여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서 어둠의 악한 불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And take the helmet of salvation, ande 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에베소서 6:17]

돌아가서
오늘날의 코셔(kosher)음식은
정결 예식에 관한 음식 법으로 처음에는 신명기 14:21절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을 먹지 말 것이나 그것을 성중에 거류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파는 것은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을 확대 해석하여 육류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않는 법을 만들었다.
원래는 짐승이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짐승이라 어미와 새끼 염소를 함께
죽이지 말라는 적용을 ‘먹지 말라’ 로 해석하였고
이후 유대교 의식에 따라 도살된 육류가 코셔가 되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넌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전도서 1:9-10]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깨치지 못하는 허무,
이 허무한 시대에 누가 외칠 것인가?
하나님의 의(공의)를 거치는 자들이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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