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봉사를 하다가 ◯◯◯병원 암센터에서 폐암 말기로 판정 받은  한 어르신을 만났다.

말쑥한 외모와 단정하게 차려 입으신 녹색 환자복이나 질서 정연하게 정리 정돈된  침상을 보아  한 눈에도 그의 성격을 가히 짐작 할 수 있었다. 깔끔하고 내성적이며 의기소침한 그를 접근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차가운 얼굴에 이따금 번뜩이는 그의 눈빛에 서린 분노가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서 너 달 동안 한 주간 한 두 번 씩 찾아뵙게 된 덕분인지 서로 무관한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평상시 보다 아주 좋은 기분을 틈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 냈다.   “ 어르신이나 저나 이젠 석양 길을 가고 있는데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느닷없는 나의 질문에도 그는 조금도 당황 하지 않는다. 이미 체념한 것일까? 다행이다 싶었다.   

 창밖에는 철지난 벚꽃이 봄바람에 이따금씩 하얗게 흩날리고 있다. 그는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 볼뿐 아무 말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한다. 병실은 적막할 뿐이다. 공연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나를 괴롭혔다.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왜 그걸 생각 해 보지 않았겠나? 내 꼴이 이 모양인데 아무 생각도 없다면 사람이 아니지!”  

그는 평소보다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억양을 높인다.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치의로부터 폐암 말기라는 사형선고를 직접 들었고 매 순간 마다 저벅 저벅 다가오는 죽음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으니 무슨 생각인들 안 해 보았겠는가?  아픈 상처를 바늘로 찌르고 말았다는 생각에 내 눈길은 창밖을 향하고 말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와 함께 삶과 죽음이란 문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공감이라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 삶과 죽음은 인생의 끝없는 물음이야 !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도 해결 못한 물음이 바로 죽음이야, 그걸  해결 했다는 놈들이 있다면 모두 자기기만이야!”   

한학을 공부 할 만큼 했다는 그가 내린 결론은 요지부동이었으나 죽어서 가는 곳은 없다고 저승이라는 말을 완강히 거부 했다. 


 어느 날 정오를 앞두고 그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급히 달려갔다. 깐깐한 말솜씨, 돌처럼 차가운 표정과 함께 그가 내게 던졌던 부정적인 언어의 파편들이 현란하게 나의 뇌리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는다.  병실을 들어서니 가족들이 이미 그의 침상을 둘러싸고 있다.

핼쑥하다 못해 뼈만 남은 그의 얼굴은 짙은 황달에도 검은 빛이 감돈다. 잠깐의 뒤척임에도 안간 힘을 다 쓰는 힘든 모습이다. 호흡이 깊고 가파르며 가래가 끊는다. 얼굴에는 진땀이 비 오듯 한다. 오후 서너 시가 다 되도록 헐떡거리기만 한다. 이따금씩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기도 한다. 가족들 모두가 안타까운 모습으로 그의 호흡 하나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혼미한 상태에서 마지막 생병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몸부림이 처절하기 그지없다. 그러던 그가 조금씩 평온을 되찾고 몸부림도 잦아드는가 싶더니 또 이를 반복한다.

 두 손에 땀을 쥐고 반복되는 절박한 상황을 장시간 지켜보는 가족들이 모두 지치고 말았다.

육신의 허물을 벗어던지는 것이 그토록 힘든 것인가 !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일이다.    

큰 아들이 견디다 못해 눈물을 글썽거리며 입을 열었다. 

  “  아버지, 이제 그만 가셔요. 그곳에서 편히 쉬세요.”

아들은 죽음의 저편을 그 곳이라고 표현했다. 하늘나라, 저승, 낙원, 천당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이 말하는 그곳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언젠가 그 어르신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  인생은 삶이 전부야. 삶이 끝나면 그만 인거야 ! 망자도 이 땅에서, 생자도 이 땅에서 함께 사는 거야 ! 가기는 어디를 가, 망자의 혼은 생자를 돕고 생자는 망자를 기리고 제를 올리면서 함께 사는 거야 !”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은 유교문화권 속에 자리 잡은 듯했다. 그의 자녀들 신앙이나 호스피스 봉사자인 나의 신앙을 인정하거나 받아 드리는 법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 그가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한 참 만에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 했다. 그는 안간 힘을 다해 아들을 향해 말을 한다. 

 “ 나 ?  외로워서 못 가, 무서워, 같이 가 !”

뜻밖이었다. 삶이 전부이고 삶 이후에는 갈 곳이 없다던 그가 외롭고 무서워 갈 곳을 홀로 가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누군가 같이 가야 자기도 간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갈 곳이란 과연 어떤 곳일까?  그는 어느 시점부터 가야 할 곳인 그곳을 생각 해 본 것이며 형상화 한 것일까?  몹시 궁금하기 만 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황천길 가본 일 없으니 무섭기만 하고 혼자서는 외로워서 갈 수 없다고 눈도 뜨지 못 한 채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 되지 않은 머나먼 길, 기약 없는 마지막 길, 믿음도 소망도 없는 길이니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으면  한나절을 지나도록 떠나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것일까!    

침상주위를 둘러싼 가족들은 눈물을 흘릴 뿐 아무 말이 없다. 같이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이 광경을 지켜보시던 병원 원목님이 그의 침상 위로 올라갔다. 그를 반쯤 일으켜 세운 뒤 그의 등 뒤에서 그를 아기처럼 꼭 끌어안는다. 

그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부비며 작고 부드러운 그러나 힘 있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 어르신, 제가 같이 갈게요. 어르신 손을 붙잡고 함께 갈게요. 주님이 동행하십니다. ”

그를 더욱 힘 있게 끌어안는다. 그러자 가파른 호흡이 순조로워졌고 끓던 가래마져 멈추기 시작 했다. 감았던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눈방울을 굴리면서 침상을 둘러선 가족들을 하나하나씩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 했다. 그의 눈길은 아쉬움과 사랑으로 섬광처럼 번뜩였다. 한 참 만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나 ? 이제 갈 거야, 내 본향으로!  난 정말 행복해 !”

이 말 한마디를 남긴 후 그는 평안히 눈을 감았다. 창가에 비친 붉은 저녁노을이 두 눈 곱게 감은 그의 얼굴을 비춘 탓인지 홍안의 소년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그렇게 그는 원목님의 손을 붙잡고 그와 함께 속삭이며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났다.

 원목님과 함께 임종 예배를 드리면서 평안히 잠든 그를 향해  이렇게 속삭였다.     

 ‘ 어르신! 당신이 그토록 아끼고 고집 하던 삶과 죽음의 철학을 이젠 헌 신짝처럼 벗어 던졌구려!  부디 당신의  본향에 이르러 그 분과 함께 행복한 삶을 영원히 누리시기를 ! “  


출처:CGNTV  준비: 정월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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