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모랄디즘(Amyraldism) 혹은 애모랄디아니즘(Amyraldianism)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이 한국교회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먼저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이다.

그럴 정도로 이 말은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용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사이에 이미 파고들어와서 우리의 영혼을 잠식해 버리고 있는 지 모른다는 우려가 생겨서 이 게시판을 개설하면서, 이 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소위, 개혁주의나 칼빈주의를 표방한다고 하면서도 너무나 중요한 그 핵심을 갉아먹고 있는 이 애모랄디즘을 다른 용어로는 '가설적 보편주의"(hypothetical universalism) 혹은 "4요소칼빈주의"(4-point Calvinism)이라고도 한다. 특별히 "4요소칼빈주의"라는 말은, 칼빈주의의 핵심표현이기도 한 다섯 개의 교리 중의 하나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 원래의 형태는, 제한적 구속(limited atonement)교리를 부인한 것인데, 현대에 와서는 다른 변형적 주장을 가미해서 여러 가지 변종들을 낳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곧 그 부정하는 요소들이 어떤 것이냐 따라서 그 주장하는 형태가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서 약간씩 다르기도 해서, 분류하기에 헷갈리기도 하는데, 이 주장들에 대해서 대략이라도 애해 두어야, 참된 복음의 생명력이 왜곡, 변질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그 복음과 교회가 잘 보존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주장의 원래 형태는 17세기의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곧 Moses Amyraut(1596-1664, 혹은 Amyraldus라고도 함)라는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이 사람이 활동한 신학교가 Samur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을 "새머학파"(School of Samur)라고도 한다. 이 Amyraut의 주장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을 "가정하고" 죽으셨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택자들과 맺은 하나님의 은혜언약은 조건적 언약이라고 하는 주장으로 확대되고, 결국은 성도의 견인을 부인하게 되고, 좀 더 진전되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애매모호한 견해에 도달하게 된다.


어떤 한 부분의 주장이 왜곡됨으로 인해서, 다른 부분의 주장에까지 일종의 누룩이 확대되는 과정을 이 신학적 경향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런 저의 글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되면, 지금 당신은 현대신학의 뜨거운 도가니 속에 들어와 있는 지도 모른다. 현대신학의 정체를, 혹은 보수신학이나 개혁신학으로 위장되어 있는 거짓된 신학의 정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싶다면, 바로 이 용어에 대해서 약간은 익숙해 져야 할 것이다.


애모랄디즘 -


조금은 낯선 용어이지만, 이 신학의 정체를 알고 또한 그 변종들의 실태를 나름대로 잘 이해한다면,


그대는 참 복음의 실체를 또한 어루만질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게시판을 새롭게 열어본다


양무리 카페지기 홀리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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