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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

Jean Francois Millet(1814-1875) 장 프랑수아 밀레

 

저녁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다.

캐다가 만 감자가 바닥에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이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晩鍾)'은 프랑스의 자랑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 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 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게 불가능한 보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 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한다.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 됐다.

1000프랑을 지원한 것이 국부(國富)를 일구어낸 것이다.

루브르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부자나라 미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가 자존심이 상한 채 주저앉아 있을 무렵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예술의 가치를 알아본 쇼사르가 없었다면 '만종'은 지금쯤 미국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다.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누가 이 그림 속에 어린아이의  시체가 먼저 그려졌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초현실주의 작가인 살바도르 달리(1904-1989)였다.

가  9살 때부터 이 그림을 보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불안감이

그를 괴롭혔던지, 그는 그 까닭을 알아내려고 책까지 쓰기도 했다.

달리는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두 부부 사이에 놓여진 감자자루를 어린아이의 관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수십 년 후(1963년), 루브르 미술관이 자외선 투사작업을 통해서 그 감자 자루가

초벌그림에서는 어린아이의 관이었음을 입증하기에 이르렀다.

밀레는 이 그림을 통해 하루가 끝난 다음의 휴식을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고  

아이의 죽음을 통해 우리 인생의 끝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달리는 밀레의 그림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던 것이다

 

                                                           -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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