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속한 교회의 신앙생활 수십년을 돌아 볼 때에 시기적으로 여름철이면 제직들이 까칠하게 변하던 모습들을 회상해 봅니다. 여름철 담임 목사님이 선교 여행으로 강단을 비울 때마다 전도사, 은퇴목사님이 계시지 않을 때면 다만 순종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당연한 몫으로 제직들이 설교 준비하는 동안에는 까칠하게 마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감당하는 평신도의 주일예배 설교 내용을 자토장에 내려 놓음은 본인이나 교회 자랑 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선포 되어 진 말씀 중에 많은 내용들이 지난 수년 동안 이 공간으로부터 발췌된 것들로 아멘넷의 고정 논객이라면 누구나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들 입니다. 혹 내용이 각자의 신앙노선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용납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교리적으로 문제가 보이시면 바른 권면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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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가 주일 대 예배 강단에 섰습니다. 심히 두렵고 떨리지만 다만 어쩔 수 없이 순종해야 함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잠긴동산에게 설교 담당이 됐다는 소식에 “이건 말도 안돼! 장로가 주일 설교를 하다니?” 라며 되들려 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비록 두려움으로 이 자리에 서기는 하지만, 받아 들이는 데는 마음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만인 제사장설” 을 수용하여 가르치는 교단에 소속 합니다. 그러므로 장로가 주일 강단에 선다? . . . 말이 됩니다. 장로뿐이겠습니까? 안수 집사님도 1부 영어예배를 인도 하셨습니다. 주중 예배는 권사님 집사님들이 말씀을 인도 하였는데, 어느 권사님은 대지 10으로 나누어서 멋있게 설교를 합니다, 어느 집사님은 이중언어로 설교를 하시는데 얼마나 좋으신지요, 집사님 한 분은 “수요예배 close” 하시더니 그래도 신앙의 연륜이 깊으시니 얼마나 훌륭하게 감당 하셨는지요. 담임 목사님이 교회를 비울 때에 제직들이 강단에 설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특권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은 비약이 없어 구원 받고 20~ 30년은 믿어야 굳건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살아남아 있는 마지막 사도 요한에게 성령께서 말씀을 주신 이 때가 사도 요한이 주님의 사역을 감당한지 20여 년이 흐른 때라고 합니다. 한 교회를 20년 정도는 섬기며 헌신해야 교회의 기둥이다 불림을 받을 수 있음이 성경적 입니다. 수십 년 간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기둥을 하나씩 맡아서 감당하시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의 그 수고와 눈물과 기도를 주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분들은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OOOO 한인교회의 기둥이다.”
기도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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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출애굽기12:3-10 “어린양 이신 예수 그리스도” 란 제목으로 허락하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출12장은 유월절의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죄와 억압에서 해방할 뿐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 하시는 하나님의 대 서사시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 구원의 대 서사시의 이 역사에 동참하려는 자에게는 이스라엘 본토인이나 거류민이나 이방인이나 또는 타국 품꾼에게라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이 있는데, 할례를 받은 후에야 유월절 만찬에 참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정하신 법 입니다. 할례를 받은 자로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좌우 문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집안에 있으면 죽음의 천사가 지나는 밤에 천사는 그 바른 피를 보고 그 집을 유월하여 넘어 가겠다, Pass Over 하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 입니다. 구약에서의 유월절의 약속은 신약의 백성들을 구원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사용하시어 보이시는 예표이며 그림자 입니다.

구약에서 보이신 예표 대로 신약에서 동일하게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 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이는 장차 메시야가 와서 죄와 죽음에 사로잡힌 인간을 구원할 비밀이 담겨있는 그림자이며 모형 입니다. [출 11:4-8] 인간사에서 장자를 죽인다는 것은 그 집의 대가 끊겨 멸망한다는 의미 입니다.

성도에게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 공로로 인하여 멸망 당하지 않고 살아 남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며 개인의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 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 하셔서 죄로 물든, 모든 인간들을 구원 하시기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Message이며 Manual 입니다. 너희가 이 Manual대로 따라 오기만 하면 너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주시겠다 하시는 Message요, 사랑의 편지요, 변치 않는 약속 입니다.

구약에서는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이며, 신약에서는 구원 받은 성도들의 신랑으로, 재판장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딤후3:16)으로.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기록한 책(벧후1:21) 입니다. 구약에서는 350회 신약에서는 1518회에 걸쳐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는 말은 곧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 말과 동일한 것 입니다. 믿는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믿으라 하시지 않으시고 내 아들 예수를 믿으라. 하십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 임이라(사9:6).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결여 되어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알지 못하는 하늘의 어떤 대상을 향해 믿는 샤마니즘이나 다를 바 없는 신앙 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구속하심을 전하는 기쁜 소식 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사건이 없이는 성경의 말씀을 받아 드릴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 카페트를 수십 년 밝고 다녔더라도 말씀을 깊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구원 받은 성도들을 도우시며 지키시고 재판장 되시는 예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인도하십니다. 말씀을 잘 알아 깨닫도록 도우실 때에 비로소 영안이 열리고 귀가 열리게 되며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사함을 받고자 동물을 희생 시키는 제사 법이 있었습니다. 희생시킬 어린 양은 점도 없고 흠도 없어야만 합니다. 죄 사함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끌고 온 희생양의 머리에 손을 언고 자기 죄를 전가하여 안수한 뒤, 배를 갈라 피를 흘리게 하고, 각을 뜨고, 불에 태워서, 화제로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립니다. 드려지는 화제의 연기를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 제사를 드리는 자의 죄를 사하시는 제사 법 입니다.

1995년도 우리교회에서 지금 예배 드리고 있는 이 성전을 봉헌을 하고 난 후 다음 해부터 매년 선교 여행이 시작 됩니다. 1997년 선교 여행에서 목사님과 같이 간 교인들이 선교 여행 중에 루마니아 어느 시골 집에서 민박을 하게 됩니다. 민박한 그 집의 주인이 평생을 양을 치는 목자 였다고 하는데 그 주인이 들려 준 이야기 입니다.

양들은 새끼를 낳은 후에 어미 양이 자기 새끼를 돌볼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무리 중에 그대로 놔 두면 짓발혀 죽을 수밖에 없기에 양을 치는 목자는 새끼들을 데려다가 숙식을 같이 하며 새끼 양마다 각각 이름을 지어주고 젖을 먹이며 키우는데 자라서 스스로 풀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키운다고 합니다. 자기 자식처럼 정성을 들여 키우게 되는데 이렇게 애지중지 키우다 보면 양은 목자 목소리를 알아 듣고 목자만 따라 다닙니다. 이렇게 자라 난 양들이 모여 수십 수백의 양 무리가 되는데 목자는 그 많은 양들을 이름으로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롱아” 하고 목자가 부르면 풀을 뜯어 먹던 초롱이 양이 머리를 딱 들고는 자기 목자한테 매에헤 하고 온다고 합니다. 주인이 아닌 다른 목자가 이름을 부르면 머리만 들었다가 다시 숙입니다. 또한 양은 시력이 약하여 1미터 앞을 못 봅니다. 그러니 이 어린 양이 다 자랄 때까지 목자와 숙식을 같이 하며 지극한 정성을 받아가며 자랄 수 밖에 없는데 그 어린 양과 목자와의 친근감이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까지 형성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요10:27에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우리 모두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어린 양 속죄 제물로 내어 준바 되고 단번에 십자가에 달려 모든 물과 보혈의 피를 다 쏟으신 예수님께서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고 사신 바 된 양이 되는 성도들을 목자가 양들을 이름으로 알고 있듯이 우리들을 각각 이름으로 기억하시며 지극히 아끼며 사랑 하십니다.

그런데 선교 팀이 머물던 그 집 주인이 후회스러운 일이 한가지 있는데 그 양들 중에서 어찌나 말을 안 듣는 녀석이 있었는지 평생 동안 양 두 마리를 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평생 후회하는 것 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목자의 말을 듣지 안고 죽음을 당하는 염소 같은 양이 되고자 하는 그런 성도님은 안 계시겠지요. 그래서 목사님이 목자에게 양을 죽인 게 죄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소개하며 전도를 하였다는 이야기 스토리 입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몽골로 선교여행을 매년 가는데 선교여행 마지막 코스가 있다고 합니다. 양을 잡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이 정말로 사실인가를 확인하는 것 입니다. 양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순종을 하는데. 예수님을 양으로 많이 묘사 합니다. 양을 죽이는데 작은 칼로 손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배를 쨉니다. 고통이 있을텐데 양은 움직이지도 않고 빤히 주인만 쳐다봅니다. 양의 배에 찢어진 부분에 손을 집어넣고 숨 쉬는 부분을 막는데도. 양은 잠잠하여 주인만 쳐다봅니다. 숨통이 막히므로 창자가 풍선처럼 부풀어 밖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며 죽어가는 고통 중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주인만 바라 봅니다. 주인의 뜻이라면 끝까지 순종하는 양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양은 눈을 조용히 감는데 죽은 것 입니다.

[찬송가141장]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성으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 당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 하시기 원 하십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이시되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신 아버지의 Standard에 미치지 못하기에 인간들을 그대로는 구원 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죄와 가까이 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의 속성 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되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인류를 위하여 구원 계획을 세우십니다. 무조건 적으로 사랑하시기 원하시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없는 인류를 구원 하시기 위하여 죄가 전혀 없으신 독생자 아들을 내어 주시기로 결정 하십니다. 인간 중에 어느 누가 친 자식을 남을 구하기 위하여 죽음으로 내어 줄 아버지가 있겠습니까?

하늘 보좌 높은 곳에 좌정하고 계셔야 할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신 아버지 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손수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참 인간이신 아들의 모습으로 보이시며, 내가 그 어린 양의 피를 보면 그 집을 유월하여 넘어가리라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어린 양 제물이 되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게 하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받으신 고통과 수모와 부끄러움, 보혈의 피를 모두 흘리시며 죽으시기 까지 달리신 그 고난은 모든 인류를 영원한 죽음으로 부터 구원하시고자 스스로 당하신 고난 입니다.

본문 출12장 5절~7절 입니다.
5.너희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이 달 열흘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지금도 우리는 “어린양의 피”로 “피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구약의 제사예식처럼 동물의 피로 제단에 뿌리며 예배 드리지는 않지만, 제단 앞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미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피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피의 구속의 능력을 바라보며 믿는 것은 그 피를 우리들의 심령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시는 밤에 좌우의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 안에 있어 죽음을 면할 수 있는 자격은 본토인이나 이방인에게 동일하여 넉넉하게, 누구든지, 얼마든지 지구의 70억 전체 인구에게라도 자격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해하고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성도들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이 새겨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어린양의 피를 머리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자들만이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말씀 입니다

죄를 지으면 어떤 값을 치러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나요? 세상 법정에서는 여러 가지 형량이 있습니다. 집행유예로부터 사형에 이르기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정에는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곧 사형, 오직 지옥 행 입니다. 죽음으로만 죄의 값을 치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6장 23절에 분명히 기록된 말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러면 죄 중에 태어났고, 죄 가운데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예외 없이 다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피의 제사”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죽임을 당하면, 그것으로 우리들이 죄의 값을 치룬 것으로 여겨 주신다는 말입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울음소리는 애끓는 버들피리 소리인양 간장을 녹인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 목자를 찾아 헤매는 애끓는 어린 양의 심령과 같은 분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양 우리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떠나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원 하십니다. 잃어 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면 기뻐하시며 어깨에 메고 돌아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양을 어깨에 메고 계신 성화를 보신 적이 있지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린 그림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 인간의 육신의 아버지의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대다수의 분이 부모님이신데 사랑하는 자녀의 얼굴을 한번 떠 올려 보시며 얼굴 모습을 그려 보십시요. 혹 자식의 모습이 떠 오르지 않으신 분이 있으신가요? 그런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있을까요? 젊은이 들은 혹 사랑하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랑하는 님의 얼굴을 떠 올려 그림을 그려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떠 오르지 않는가요. 그러한 사랑 관계도 있습니까?

우리 인간에게 자신의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고 창조 하셨으며 자신의 피 값주고 사신 성도들을 기억하시며 사랑하시며, 머리카락 까지도 세시며, 성도들을 각각 이름으로 알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이십니다.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합니다. 각자의 믿음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오늘 도전하는 말씀을 많이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0) 에서는 믿음이 형성되는 현상으로 구원에 이름을 말하고 있는데, 각자의 믿음이 자리하는 장소를 구분 할수 있습니다. 각자의 마음에 있고 또한 각자의 영혼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분명히 믿음이 마음에 자리 잡고 형성이 됩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의 평강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런데요,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어찌 CONTROL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갈대 같아서 도대체 마음이 어찌 변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이 내 마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믿는다 하는 자는 자기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지 망각하고 다만 자기 주먹을 믿는 자와 같을 것 입니다.

성도가 믿어야 할 것은 오직 성령으로 인치시고 확증해 주신 믿음, 성령으로 심지가 굳어 각자의 영혼에 각인된 믿음만이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영혼을 능히 구원할 겨자씨와 같은 100%의 믿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스스로가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한 영혼이 주 안에서 구원받고 성도로 갓 태어나는 순간을 주께서 거룩하다, 의롭다 인정하시고 불러 주시는 것을 칭의 라 합니다. 의롭게 되는 칭의, 성결을 거쳐 성화을 지나, 하늘 나라에 입성하여 주와 연합 할 때에야 우리가 영화로운 신분이 됩니다.

한 사람이 성도로 갓 태어나 영화로운 천국백성이 되기까지의 여정에서 주로부터 받은 믿음을, 점도 흠도 없이 순결하고 정결한 신부의 정절로 지키며 성도의 옳은 행실로 믿음을 승화 시켜 나가는 것은 성도가 담당해야 할 몫 입니다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 길이 마치 천로역정 과도 같을 것입니다. 내 정과 열심으로 천국을 침노하고자 해도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 낼 수가 없습니다. [빌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사도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이 아니고는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 하심과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임하셔서 성령으로 세례 주실 것을 구해야 합니다.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분의 뜻대로 나를 주관하실 수 있도록 나를 Avaiable하게 넘겨 드려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유월절을 지키려면 할례를 먼저 받아야 하는 율법이 있습니다. 히브리 인들에게는 죄를 회개할 때에 옷을 찢으며 회개하는 법이 있습니다. 구약이 거의 끝나가는 (요엘2:13)에서“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 올찌어다”말씀 하십니다.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 입니다. 육체의 할례는 하나님께서 모형과 그림자의 뜻을 주신 것이고 신약에서의 할례는 마음에 하는 할례를 말합니다. 즉 회개의 뜻 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마음에 할례를 받고 회개하는 자만이 어린 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 올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는 자 만이 죽음의 천사가 지나가는 두렵고 떨리는 죽음의 밤에 대문의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른 집 안에 있어 죽음을 면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 입니다.

흠도 점도 없으신 예수님이 어린양이 되셔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끌려가 당신과 나의 모든 죄를 지고 죽음을 당하셨음을 믿는 자마다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의 보혈의 피로 구속하시는 능력과 죄의 속박에서 해방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며 영광 거두십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 주시리라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 앞으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 가면 하나님도 한 발자국 다가 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로 나아 오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나아 오는 자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원 하십니다.

예수님 만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 전체를 요약한 요3:16의 말씀 입니다

즉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정결케 하시는 보혈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어린양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의 피의 권세와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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