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러시아 작가,1918~2008)은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암병동>에서 개인에게 발생한 암일찌라도 그 질병에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극한 질병-암이나 그 밖에 모질 병-을 앓는 것이 그 사람이 처한 사회 환경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말일 것이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임에 틀림없고,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이 사회인 이상 그 사람이 정치인이든 혹 연예인이든 혹 목사이든 사회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 정몽헌 씨의 자살

최근 10여년 어간에 일어난 자살가운데 가장 깊은 사회적 의미를 수반한 사람은 정몽헌씨일 것이다. 대북 경협과 금강산 관광등의 사업 추진으로 주목받던 사업가이자 정주영회장의 아들로써 이른 바 '왕자의 난'을 주도했던 그가 검찰 조사를 받고 돌아와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12층 사옥에서 투신 자살했다.
당시는 정상회담이 있은 후였고, 정치권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상회담의 댓가로 지불된 이른 바 '검은 돈'의 출처가 정몽헌에게서 나왔다고 보았고, 결국 조사 과정에서 심한 모욕감을 느꼈던 정몽헌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불과 56세였다....

2.안재환과 최진실의 자살

2005년 주홍글씨를 만들고 스토커에게 고생하던 이은주(당시25세)가 자살했다. 그 날은 2월22일이다. 그 전 주에 나는 인터넷에서 심한 모욕적인 명예 훼손을 당하고 괴로워 했던 때라 이은주가 자살한 그 순간의 고통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는데...

그리고 그 후 최근 발생한 안재환의 자살과 잇따른 국민 또순이라는 최진실(40)의 자살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나같이 교회에 다녔고, 장례마저 교회에서 예배로 드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죽음의 행렬에 도대체 우리가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3. 생명의 존엄성

자살은 또 하나의 범죄임이 분명하다. 그 일로 어떤 심판을 받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인과 같은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살은 미화되거나 방조되어선 안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연예계에서 이어지는 이러한 줄-자살(마치 한사람이 죽으면 또 죽고 하는)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있고, 그 것역시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제는 마치 헐리우드의 스타들이 겪을 법한 심한 스트레스와 인기가 오르고 내리는 데 대한 불안, 팬(대중)들에게서 받는 칭찬과 비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진실은 그의 마지막 문자에서 '세상이 섭섭하다'고 했고 '내가 사채업자도 아닌데'하면서 진실이 왜곡된 것을 괴로워했다. 일설에는 이런 모함과 중상 모략에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자살을 택했다고 했다..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진실은 5년전 이혼과 슬럼프를 잘 이겼지만 계속 외로움이나 인기에 대한 강박으로 수면제없이는 살지 못했고, 신경안정제등을 많이 투여하거나 술에 의존했다고 지인들이나 언론이 밝힌다.

결정적으로는 당일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닌가라고 전문가들은 판단했다.

그렇다면 그 생명을 도대체 그렇게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고, 그의 죽음은 어떤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것인가?

4. 모방자살-자살도미노 :베르테르 효과

이미 며칠 전부터 전국에서 욕실이나 화장실에서 최진실처럼 죽는 모방자살이 보도되고 있다.(연합뉴스) 비슷한 상황에서 고통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고 있지만 인터넷등에서 벌어지는 댓글과 '괴담'은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70살이 다 된 트위스트 김이 댓글 때문에 죽을려고 했다고 한다. 이은주나 몇몇 자살한 연예인들이 공히 '살인 댓글'에 괴로워한 것도 사실이다. 그냥 받아넘기지만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주는 말... 그 말 한마디가 사람을 무너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주범일 수도 있다.

5. 자살예방 캠페인과 교회가 할 일

이은주도 교인이었고, 최진실 안정환도 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들이 교회를 다녔기에 더욱 양심에 고통을 받고 자신이 짓지 않은 죄에 대해서도 괴로워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양심의 고통이 그들을 죽게 만든 것이다.

이제 세상은 양심도 진실도 없이 변해 가는 것은 아닌가? 갸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은 양심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목매어 자살했다. 그에게도 마지막 양심은 있었던 것인가?

전날 우리 여인들은 정조를 잃고 은장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큼 정조와 생명을 동일시 했던 적도 있다. 일본의 유수한 기업의 대표들은 자신이 망가뜨린 회사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복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민영환(1861~1905)은 우국충정으로 민족의 비극인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보고 2000만 동포에게 남기는 글을 쓰고 자결했다.

같은 자실이라도 다 각각 의미가 부여되는데....

생명이 번역하면 '살아라(生)는 명령(命)'이며 사명이다. 사명이 다하면 죽지만 사명이 다하지 않으면 살아서 끝까지 생의 준엄한 명령이며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의 뜻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교회는 이런 믿음의 도리를 가르치고 적어도 한 번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인생(영혼)이 자칫 극단적인 선택(자살)을 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사랑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것이 꼭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자살하려는 사람이 마지막 희망인 '예수님'이나 예수님 대신이라도 그 사랑을 보여준 '어떤 분-목사님'을 기억하고 기도했다면 그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그 영혼들이 죽어가면서 후회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당부한다.
어떤 사람이든 이 세상에 올 때는 불우하게 왔든 행복하게 태어났든 사람이면 모두가 존귀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생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울증이 심하면 정신과나 교회 목회자에게 상담도 받고 치료도 받아야 하는데 감추면서 끝까지 가둔다면 결국 어려운 지점에 가게 된다.
주위를 돌아보자...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많고 고아도 있고 집도 없는 사람도 있고 지위도 없고 직업도 없고 노숙자도 있고 감옥에 갇힌자 들도 있고 등등 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견뎌내는 이웃들을 보면서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산다면 자살할 여유가 있는가? 왜 자살하는가? 살아야지 보람되게 살아서 하나님 앞에서 좋은 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그리스도의 지체와 형재(자매)들이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우리 주위에 나의 따뜻한 말 한디로 자살을 막을 수 있다면 꼭 사랑의 말,위로의 말,격려의 말을 하는 풍토를 만듭시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고통으로 어려움을 당한 연예인  최진실 안정환 이은주외 가족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아멘넷, 글/ 김바울 중국자비량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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