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엇이 거듭남인가(1) - 거듭남은 변화입니다

 


거듭남은 변화입니다. 그러하다면 어떠한 종류의 변화이겠습니까? 즉, 그 변화의 본질은 무엇이겠습니까?


1. 은혜에 의한 실제적인 변화입니다.

  실제로 작용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작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실재가 있어야 합니다. 마치 시각이 작용하여서 사람이 보게 되기 위하여는 시력이 있어야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본성도 그렇습니다. 그 본성 안에는 작용하는 힘이 뿌리박혀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활동이 실제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렇게 활동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과 그렇게 작용하게 만드는 실제적인 습관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것은 활동을 통하여 실제적인 영적 행동들을 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신적인 성품’, ‘하나님의 형상’, ‘마음에 심긴 법’과 같은 용어들은 명목적이거나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이 소유하게 되는 실재입니다. 실제 그대로,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 ‘새로운 피조물’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것은 부활이라고 불립니다.

 


2. 모든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거듭남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변화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5: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만 있는 독특한 것이면서,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공통된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인 되게 합니다. 그들 속에 자리잡게 되는, 새로운 존재로서 그들에게 새겨지는 새로운 도장이며 날인입니다.

그로 인하여 모든 성도는 한 가족이며, 한 영으로써 행하고, 마치 거울에 비춰진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같은 대답을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드는 실재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합니다.

 


3. 어둠이 빛이 되는 정반대로의 변화입니다.

 

  거듭남은 이전의 모습과 비교해서 너무나도 대조가 되는 변화입니다. 짙은 어둠대신에 밝은 빛이 들어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이는 육과 영이 서로 반대가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 하나는 육의 구성물이고, 다른 하나는 영의 구성물이기 때문에,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과 먼 것처럼, 세상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먼 것처럼 서로 대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듭나게 되면, 죄로 뒤틀렸던 기질이 벗겨지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정서로 옷 입게 됩니

 

 

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솟아 나오는 그 생명으로 인하여 정욕이 소외됩니다.

이것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 전적으로 다른 토양과 기후 속에 살게 되고, 다른 일들, 다른 법률들, 다른 특권들, 다른 자연들 속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인 것과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부패함으로 육적이고도 동물적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새 창조에 의해서 그들은 영적이고도 신적으로 변화됩니다. 부패함으로 모든 악의 씨앗들을 가지게 되었지만 거듭남으로 모든 은혜의 씨앗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패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위에 거슬러 대항하게 만들었다면, 거듭남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게 합니다.

“잣나무로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55:13)


4. 전인(全人)의 전체적인 변화입니다.

 

  거듭남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능력이나 새로운 기능적 구조물을 가지게 되는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에서처럼 이것은 그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칩니다. 곧 이해력, 의지, 양심, 정서, 이 모든 것들, 즉, 죄로 인하여 부패된 모든 부분들이 은혜로 인하여 새롭게 됩니다. 영혼 전체가 은혜로 인하여 아름답게 변화하기 시작해서 영광스러운 변화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1) 전신에 미치는 생기의 변화입니다.

  이 새로운 창조는 출생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태아가 자궁 속에서 형성될 때에는, 단지 한 부분만이 만들어지고 나머지 부분은 불완전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작용해서 전체의 신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새로운 피조물의 모든 부분들이 형성되는 일에 작용하십니다. 어느 한 부분만 개혁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하실 때 어중간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2) 거듭남의 은혜는 부패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거듭남의 은혜는 부패한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타락함으로 죄가 원래의 의로움의 뼈대 전체를 무너뜨려 버렸던 것과 같이, 이제 거듭남의 은혜는 부패의 뼈대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죄는 곰팡이가 빵 전체로 번지는 것처럼 모든 부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은혜가 모든 기능적 구조물에 영향을 끼쳐서 오염된 것들을 쫓아내 버립니다. 지평선 너머에 해가 떠오를 때 빛이 어둠을 쫓아내고 모든 대지 구석구석을 밝게 비취는 것과 같습니다.

 

3) 은혜가 영혼 본체의 주인으로 자리합니다.

  영혼의 실체야말로 은혜가 거하는 적절한 처소이므로 그곳에 있는 은혜가 영혼의 모든 기능

 

 

적 구조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바로 그 실재에서 지성과 의지의 완전함이 흘러나옵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영혼의 좌소가 바로 은혜가 거하는 좌소이기에, 성령께서는 어느 한 기능적 구조물에 부분적으로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혼 전체에 거하십니다. 따라서 은혜로 인하여 영혼 전체의 구석구석까지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이 연합은 영혼 전체에 속한 것입니다. 마치 불길이 쇠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 요소들을 깨우고 뜨겁게 하며, 물렁물렁하고 유연하게 하고 그 속에 있는 반대되는 요소들을 녹여 없애는 것과도 같습니다.

 

 

4) 은혜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룹니다.

  은혜를 받고 거듭나게 된 사람의 모든 부분 속에는 은혜로 인한 조화가 있습니다. 자연 출생을 보더라도 하나의 존재가 두 가지 형태를 동시에 취할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형태가 주어지면 그와 동시에 이전의 형태가 제거됩니다. 은혜라는 단 한 가지 공통된 원리에 의하여, 기능적 구조물이 함께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할 수 있도록 상호작용을 하게 되고, 거룩한 삶을 이루어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변화가 우리 전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우리 영혼의 구석구석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5장 무엇이 거듭남인가(II) - 거듭남은 내적인 변화입니다

 


 거듭남은 원리적으로 내적인 변화입니다. 영혼이 내적인 것이기에 거듭남 역시 내적인 변화입니다. 거듭남이 내적인 변화가 아니라면, 외적으로 올곧은 행동의 변화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시침이나 분침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계 내부의 스프링이나 톱니바퀴가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내적인 변화는 사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이를 4 가지 주제로 살펴 보겠습니다.

 

 

1. 거듭남은 원리의 변화입니다

 

  자연인이 종교적인 행위를 할 때, 그 안에 작용하는 원리는 인위적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 안에 있는 원리는 영적이고도 내적인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처음 작동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자신이 어떠한 원리에 의하여 설교를 듣고 기도하며 호흡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십시오. 모든 행동은 마음 속에 있는 악한 뿌리나 원리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선한 뿌리나 원리에서 온 것인지를 나타내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에게 주어지는 선한 두 가지 원리들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1) 믿음과 관련된 변화입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영적 생명 중에서도 가장 먼저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영적 활동의 직접적인 원리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행동이라도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도덕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별로 반짝거리지 않는 행동이라도 믿음이 있으면, 그것은 영적인 것이

 

 

됩니다. 믿음은 다른 은혜들이 자라게 되는 가장 기초적인 은혜입니다. 거듭난 자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에게 훈계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비록 드러내 놓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절하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어떠한 봉사도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봉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 어떠한 봉사도 신적인 동기에 의하여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자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봉사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그 방법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믿음은 궁극적으로는 오실 메시야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도 중보자를 보내신 하나님께 복종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행함입니다.

 

 

2) 사랑과 관련된 변화입니다.

  행동의 원리에는 하늘의 소망, 지옥에 대한 두려움, 평판, 흥미, 자연적인 양심의 압박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내적, 외적 원리들은 사람의 행동에 열정을 불어 넣는 풀무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활동에 하늘에 속한 뼈대를 제공해 주는 참된 불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말미암습니다. 이 최고의 애정은 봉사를 신령하게 만들며, 영혼에 놀라운 생동감을 솟아오르게 합니다. 새로운 창조란, 영혼이 반역의 상태에서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영혼에게 만족을 주던 원리들을 내쫓고, 중심의 올바른 위치에 그 사랑을 쏟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최상의 사랑이야 말로 변화의 위대한 구성 요소이며, 새로운 피조물이 다른 것들과 차이가 나는 점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행동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라면, 거듭나지 못한 자의 행동은 바로 자신을 향한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부패한 자기 사랑의 불길을 사그라지게 하고, 그 대신 영적이고도 신적인 불길이 타오르게 합니다.

 

2. 거듭남은 목적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새로운 피조물의 목적입니다. 옛사람의 목적은 자아, 그 자체였습니다. 즉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목적으로 삼아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에든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아닙니다. 타락함으로 변질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사람을 더욱 높은 곳으로 옮겨 줍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그 분의 기뻐하심을 위하여 희생하게 합니다.

 

 

1) 새로운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새창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위하심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호2:23) 이는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교회를 심으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농부는 자신을 위해 추수하고자 씨를 뿌리고, 곡식은 그것을 뿌린 농부를 향하여 자라납니다. 이처럼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그러한 영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기 마련입니다.

 

 

자연인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곳에는 신적인 본성이 없습니다. 그 영혼 속에는 하나님과 닮은 어떠한 것도 없습니다. 거듭남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즉 그분을 위하여 영혼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2) 새로운 창조는 복음의 목적과 동일합니다

  새로운 창조는 복음이 인쇄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롭게 창조된 자는 그 의도하는 바가 복음과 일치하게 됩니다. 마음이 복음으로 감동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덕과 우수함을 세상에 드러내려는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변화가 있게 되면, 그 분의 이름을 가장 높은 보좌에까지 이르도록 높이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 차게 됩니다.

복음의 목적이 자기를 부인하고 의에 이르게 하며, 자기의 이익과 만족을 전적으로 하나님과 그 분의 율법,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에 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을 최상의 존재로 높이는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창조의 목적과 동일합니다.

 

 

3)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새로운 창조는 그 영혼이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인이 되시고 새로운 피조물의 모형이 되십니다. 그 모형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영혼의 틀을 형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그 주된 목적인 하나님을 전혀 닮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과 그 피조물 사이에는 단지 서로 다르다는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소동과 싸움은 바로 이러한 목적의 차이 때문에 발생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창조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이 우리의 거듭남의 모형이며 대의입니다.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부활은 단순히 영적인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생명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이를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질 때보다 더욱 하나님께 관심을 가질 때에, 넘치는 활력과 고양할 수 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4) 새로운 창조의 목적은 영혼의 증진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은 그것 자체보다 낮거나 동등한 목적에 의하여 결코 증진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과 그 행실을 증진시키는가, 아니면 퇴보시키는가 하는 것은, 그 목적이 얼마나 고상한가, 아니면 저급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가진 그 무한한 성격에서 볼 때 하나님보다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은 영혼의 증진에 합당치가 않습니다. 하지만 영구적이며 사람의 영혼을 가장 고귀하게 만드는 바로 그 은혜만은 인간의 증진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나아가게 될 때, 영혼은 완성될 것입니다.

 

  

5) 지향점이 바뀌지 않는 것은 새로운 창조가 아닙니다

  영혼이 추구하던 목적의 변화가 없이 새로운 창조에 속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영혼은 그 원래의 상태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활동을 하더라도 그 주된 목적이 그분께로 향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를 입게 된 새로운 피조물은 더욱 고상한 의무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하는 식으로 응답하는 것에 그친다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이름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껴안고 뒹구는 자는, 아직 새로운 피조물이 아닙니다. 은혜의 효과적인 영향 아래에 있는 사람 즉, 성령의 성전이 된 사람들은 그 몸과 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최고의 탁월한 목적인 하나님과 그 분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6) 바른 변화가 바른 봉사를 하게 합니다

  목적의 변화만이 그 영혼이 감당해야 할 봉사를 적절히 수행하게 합니다. 변화된 목적으로부터, 모든 봉사를 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신속함과 진심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과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면, 그분을 위하여 무슨 봉사를 시작하고서도, 우리의 마음이 곧 시들해지고 지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목적의 변화야 말로 새로운 피조물이 지녀야하는 가장 본질적인 성질들 중의 하나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그의 몸으로도, 영으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3. 거듭남은 사고의 변화입니다

  거듭남의 변화가 원리와 목적에 있어서 내적인 변화인 것처럼, 그것은 또한 사고(思考)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새롭게 된 피조물은 최상의 기능적 구조물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가 육체를 좇을 때에는 육체의 일들을 마음에 두었지만 이제는 영을 좇는 자가 되어 영의 일들을 마음에 두고 생각합니다(롬8:5). 하나의 원리가 그 지성 속에 주입되어, 이전에 연기에 가려져 있던 빛과는 다른 빛을 그 지성에 발하게 됩니다. 이제 지성은 무엇이 처음으로 솟아 나오는지를 더욱 재빠르고 민감하게 분별할 수 있게 되어서,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그에게는 내부의 샘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되어서, 왜곡되고 타락한 영혼이 죄를 생각하면서 스릴을 느끼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4. 거듭남은 위로의 변화입니다

  본성에 변화가 있기 때문에, 만족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게 됩니다. 모든 본성에는 그 본성이 만족하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인의 만족은 어린 아이와 다르고 왕자의 만족은 농민의 것과 다른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원리를 공급하시는 성령님은 새로운 위로를 공급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즐거움과 위로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부르십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은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피조물에게는 그 마음 속에 심긴 기쁨이 있습니다.

자연인은 세상적인 것이 제거되면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은 세상적인 것들이 없어지더라도 그들의 위로가 손상되기는 커녕 오히려 커집니다. 그의 기쁨의 근원이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넘치는 생명의 샘을 제공하여 줍니다. 그러한 위로로 인

 

 

하여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조차도 그에게 영광스러운 위로가 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14절은 선포합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하나님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고, 모든 일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에서 최상의 기쁨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고 연합되어 있는 영혼들의 유일한 행복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성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행복에도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하나님을 향하여 행할 때마다 그 행위 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위로가 묻어 있기 마련입니다.

출처: 청교도아카데미/조정민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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