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거룩을 갈망하는 감정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지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더 불안해질 것이다. 죄를 멀리할수록 죄로부터 떨어지기를 더욱 갈망하게 되고 또한 아직도 죄짓기를 좋아하는 자신에 대하여 더욱 슬퍼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소유할 수 있는 최고의 것도 미래의 영광에 비하면 맛보기에 불과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가 들어갈 천국에서는 단지 어린아이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거룩의 최고점도 그들이 더욱더 갈망하는 거룩의 추구를 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위의 것을 향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갈망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빌3:13-15)

그러면 “어떻게 영적 기쁨이 가져다주는 만족감과 끊임없는 추구가 서로 일치하겠는가?”라고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어떠한 불일치도 없다. 영적 기쁨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영혼을 만족시킨다.

첫째, 영적 기쁨은 인간의 본성과 영혼의 요구에 완벽하게 적응한다. 영적 만족을 맛본 사람은 심오한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결코 그 맛에 싫증을 내지 않으며, 다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어떤 영적 기쁨을 한번 맛본 사람이 결코 같은 돛� 기쁨을 얻기를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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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영적 기쁨은 우리를 우리의 기대에 따라 살게 한다. 높은 갈망은 높은 기대를 낳는다. 그렇게도 갈망했던 세상 기쁨은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영적 기쁨은 절대 그렇지 않다. 영적 기쁨은 항상 우리의 기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살도록 한다.

셋째, 영적 기쁨은 우리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족의 한도내에서 우리를 만족시킨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영혼에는 그 범위의 한도를 무한대로 늘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만약에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만큼의 영적 만족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가 우리 영혼의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적 기쁨은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 영혼을 만족시킨다. 이는 우리의 깊은 요구를 충족시키고 우리의 기대에 따라 살도록 인도하며 또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우리에게 채워준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영적 기쁨이 완전해질 때까지 우리가 더욱 더 목말라 하는 것과 완벽한 일치를 이룬다.

이것은 세상의 거짓 종교가 주는 기쁨과는 차원이 틀린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지옥에 갈 것을 두려워할 때 그는 영적 빛을 보기를 원하거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갖기를 원하거나,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 갈망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거짓 경험이 그로 하여금 구원받았다고 느끼도록 만들어 그를 속일 것이다. 또한 그는 이 사실에 만족을 느끼며 안주할 것이다. 만약 그가 경험한 것이 아주 강렬한 것이라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거나 거룩한 삶을 추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현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 안에서 사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는다. 사실 성경은 진짜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을 찾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온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찌어다....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시69:32, 70:4).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변화 받은 후부터 하나님을 찾고 갈망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성경은 변화를 받아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선한 싸움이나, 정사와 권세들에 대해 씨름하는 것이나,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나, 항상 기도하는 것이나, 또는 늘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으로 변화 받기 전에 마치 이러한 모든 일들을 이미 경험한 것처럼 말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지금에는 모든 일이 평화스럽게 쉽게 풀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비성경적인 것으로 잘못된 일이다.

물론 위선자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며 또한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어떤 영적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항상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이기적인 확신을 구하기 위하여 보다 나은 영적 경험을 갈망하며, 또한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다 더 사랑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어떤 갈망을 소유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흉내내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을 갈망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 또는 죽음과 천국을 경험하는 것, 이런 것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표징이 아니다. 최선의 표징은 보다 더 거룩한 마음을 품고 보다 더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것이다. 

출처: 양무리마을/ grace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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