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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은혜(cheap grace)

오늘날 기독교계와 이민교회에 가장 크게 오해받고 있는 그리스도의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닌 "은혜" 입니다. 소위 값싼 은혜(cheap grace)라고 불리워지는 가르침이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으로 인하여 마련된 값비싼 은혜가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물건처럼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값싼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시장에서 팔리는 값싼 물건처럼 팔려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세례와 죄의 용서가 너무나 가치없는 것으로 전락되었으며,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죄를 범한 죄인에게 회개하라는 호소 대신에, 위로와 격려의 말들이 무책임하게 난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은혜에는 어떠한 댓가나 가격이 붙어서는 안되겠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은혜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은혜에 대한 댓가가 이미 지불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은혜를 위하여 무한한 댓가가 치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무한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에게 은혜를 무한하게 나누어 줄 수 있기 위해서 치루어진 값은 결코 헐값이 아니었습니다.

은혜를 위해서 무한한 댓가가 지불되었으며,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이 지불되었습니다. 은혜를 무한하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 치루어진 값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자마다 은혜를 매우 소중하고 값비싼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은혜를 매우 값싸게 취급하는 사람들은 은혜를 단순히 어떤 교리나 이론으로서 받아들입니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은혜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재창조의 능력과 생명력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은혜를 죄의 용서에만 국한시켜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께서 베푸신 용서하시는 은혜를 정신적으로 인정하고 동의하기만 하면, 은혜는 자신의 죄를 용서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에 대한 매우 위험한 오해이입니다. 은혜에 대해서 이러한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죄를 값싼 은혜로 거침없이 덮어씌우기 때문에, 깊은 회개의 경험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상태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와 세속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도 솟아 나올 수 없으며, 가난한 마음으로 의를 사모하지도 않게 됩니다. 만일 은혜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이 올바른 진리라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은혜가 값싼 은혜라면, 인생 살이에서 세상이 요구하는 바에 맞추어서 살아도 된다고 설교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은혜가 값싼 것이라면, 우리는 깊은 자기 기만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될 것입니다: " 값싼 은혜가 그대를 덮어주고 있으므로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구태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대는 값싼 은혜 아래에서 경건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척 할 필요도 없다. 진리대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나, 한번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으로 나간 교인에게 재침례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것들은 불필요한 이설이다. 그대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대는 여전히 죗되고 이기적인 생애를 살 수 밖에 없으므로, 거룩한 생애에 대한 소망을 버려라. 은혜가 항상 그대에게 베풀어져 있기 때문에 그대가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한, 그대의 생애가 어떻하든지 간에 구원은 보장되어 있다.

은혜가 그대를 덮어주고 있으므로, 더 이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온 세상을 덮어주고 있으므로, 그대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도 된다. 어차피, 그대는 은혜로 구원받았는데, 부흥과 개혁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구태어, 세상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것을 하거나, 조금 다른 길을 가는척 하지 말라. 십자가에서 베풀어진 은혜가 그대를 구원하기에 넉넉하지 않은가? 세상에서 오는 유혹과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극기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애를 세상과 구별짓기 위해서 세상을 전적으로 버려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써 베풀어진 은혜가 진정으로 자신에게 은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통하여 세상을 정복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값싼 은혜를 믿는다면, 그리고 만일 그대가 생명력이 없는 거짓 은혜를 믿는다면, 하나님의 피묻은 은혜를 위해서 살기 보다는, 세상을 위해서 생애를 바치라고 말하십시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일을 다하였으므로, 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구원에 대한 감정적 확신 속에서 안주할 수 있도록 만드십시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애쓰는 대신에, 그분의 은혜가 주는 위로와 위안을 즐기라고 말하십시요. 바로 그것이 값싼 은혜가 의미하는 바가 아닙니까?

죄를 버리고 통회하는 죄인을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의롭다고 여기는 은혜를 가리켜서 값싼 은혜라고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회개한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그대로 품고 있는 죄인에게도 은혜가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가르치는 것이 값싼 은혜라는 가르침의 핵심 논리가 아닙니까?

물론, 값싼 은혜도 죄의 용서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죄의 올가미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지 못하는 기만입니다. 값싼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경건하고 은혜롭게 변화시킬 수 없으며, 마음 속에 죄와 이기심을 붙잡고 있는 죄인들 위에 흰색 보자기를 뒤집어 씌움으로써, 회개하지 않은 죄인을 의인으로 위조하는 허무한 포장지에 불과합니다.

값싼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의를 부여하게 하는 자기 기만입니다. 오늘날, 값싼 은혜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각종 참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장본인입니다. 값싼 은혜는, 참된 회개없이도 용서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진리에 대한 확신과 행습의 개혁없이도 침례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고, 아무런 고백도 없이 성만찬 예식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값싼 은혜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요구하지 않는 은혜, 십자가가 없는 은혜, 그리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의 의미과 가치를 값싼 것으로 만드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누가 감히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싼 것으로 전락시키려고 합니까?

지금,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뒤를 따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멍에와 짐이 그대에게 가벼운 것이 될 때까지, 우리를 위하여 치루어진 그분의 희생과 봉사의 생애를 명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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