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 1.  

샘은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물이고 우물은 비가내릴 때 땅에 고인 물을 땅을 파면 건수가 모인 물 (지하수)라 한다. 사람의 필요를 따라 땅을 파서 고인 물을 우물이라 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 샘 곁 곧 술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창(16:7)란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아브람이 75세에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7) 하셨고 롯이 포로 된 것을 찾아 왔을 때도 “네 몸에서 날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15:4) 고 하셨다. 나이가 많지만 분명히 아브람에게 후사가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가나안생활 10년이 지나도 자식 낳을 기미가 없다. 그 부인 사래가 생각 하니 그의 젊은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소실로 주어 자식을 생산하면 남편의 씨가 되고 그 시절에 노예는 자기 소유물이므로 그것을 생각 못하고 시간을 허송 한 줄로 착각했다.

하루는 남편을 불러 자기의 의견을 제안하니 아브람이 그 아내의 지혜에 놀라 부인의 말대로 하여 하갈이 잉태함으로 그 가정에 불화가 시작됐다. 전 같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던 종의 태도가 돌변하여 여주인을 멸시했다. 나도 아브람의 아내라는 태도다.

사래의 분노가 충천하여 남편에게 고하였으나 신통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사래가 하갈을 학대 하였다. 학대받은 종은 반항심으로 잉태한 제가 쫓겨난 후 가정불화를 계산에 넣고 가출하였다. 아브람의 가정에는 풍파가 일기 시작하고 호전민의 조상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로 인하여 중동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전쟁에 휘말리고 이슬람의 조상을 낳는 천추의 한을 남겼다. 하갈은 화 김에 가출했으나 갈 곳은 없고 헤매다 배는 고프고 목은 타서 찾은 곳이 샘이었다. 샘물로 공복을 채우고 나니 서러움이 복 받쳐 나오느니 눈물뿐이다.

그는 주인의 집에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본지라 이 가련한 게집 종을 굽어 살펴 주시기를 기도 했다. 주의 천사가 나타나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 하나이다.”(창16:8) 라고 하였다.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당부하고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이스마엘 이라 하라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만나기전과 후의 생활이 달라졌다. 전에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반항 하던 감정이 사래를 사랑하는 불쌍한 감정으로 변했다.

하갈은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 하나님이 감찰하심이라 했다. 생수를 마시니(성령을 받아) 한숨이 변하여 찬송이 되고 두려움은 기도가 되는 신령한 샘물, 성령을 받은 하갈이 변함 같이 성령의 감찰하시는 브엘라해로이 신령한 물을 마신사람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그것을 은혜 받았다, 성령 받았다. 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성령의 생수를 마시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교인이요, 성도가 아니다. 이 생수를 마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질문하신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창16:9) 여주인의 학대받고 가출한 고백을 한다.

성령을 생수라 한다. 생수는 광천수(鑛泉 水)를 이르는 말이다. 녹은 광물질이나 가스를 많이 합류한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이다. 신령한 뜻으로 성령을 생수라 한다. 이물을 마신 사람만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 찬송이 터져 나온다.

성령 받아야 변하여 새사람 된다. 성경은 생수를 성령의 상징으로 묘사했다. 설교는 생명수 공급사역인데 오늘의 교회는 상수도물만 공급하여 성도대신 교인뿐이다. 성령 받아야 성도라고하면 신비주의자가 되는 세대 기독교는 없어지고 기독교 문화만 남는다. -계속-



출처: USA 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 유재용 전도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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