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어느 의사가 겪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
내가 진주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
공사장에서 추락 사고로 뇌를 다친

26
살의 한 젊은이가 새벽에 응급실로 실려왔다
.
이미 그의 얼굴과 머리는 심하게 손상되어

원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고

의식은 완전히 잃은 후였다
.
서둘러 최대한의 응급 조치를 했으나

살 가망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

이미 식물인간이 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그가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날 아침
,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
규칙적이고도 정상적인 심장 박동을 나타내던

ECG(Electrocardiogram,
심전도) 곡선이

갑자기 웨이브 파동(V-tach)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

힘차고 반복적인 정상적인 인간의 심장박동에서

점차 약해지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곧 죽음이 가까이 옴을 의미했다
.
보통 이러한 ECG곡선이 나타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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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이상을 살아있는 이는 나는 본 적이 없었다
.
그의 운명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낀 나는

중환자실을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운명할 때가 되었으니 와서 임종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

이미 가족들은 환자에 대한 어떠한 조치(응급 심폐소생술)도 포기한 채

그의 죽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
젊은이의 부모님과 일가 친척인 듯한 몇몇 사람들이 슬피 울며

이미 시체나 다름없이 누워있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왔다
.
간호사에게는 심전도 파동이 멈추면

곧바로 영안실로 옮기라고 일러두었다
.

다른 한자를 보고 잠시후 다시 그 중환자실을 지나치면서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1
시간이 지난 아직도 그의 심장 박동이

느린 웨이브 파동 ECG를 그리면서 살아있는 것이었다
.
이런 경우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어 지면서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

그날 오후는 쏟아지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느라

더 이상은 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
응급실은 거의 매일이 전장의 야전병원같은 분위기였다
.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는둥 마는둥 그날 밤을 보냈다
.

다음날 아침, 나는 웬지 갑자기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중환자실을 가보았다.
물론 지금쯤은 아무도 없는 빈 침상이거나

다른 환자가 누워있으리란 당연한 생각으로였지만

웬지 그의 생각이 머리속에 떠나지 않음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었다
.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아직도 그가 있었다
..
더없이 나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ECG곡선을 그리며

그의 영혼은 아직 거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그것을 본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
웬지 이 세상에서 그가 쉽게 떠나지 못할 그 어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
이것은 과학적, 의학적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였다
.
나는 의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를

그 순간 무의식중에 감지했던 것 같다
.

하루가 다시 그렇게 지나고

그의 심전도가 웨이브 파동을 그린지 장장 이틀이 지났다
.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았다
.
그의 신체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지만

영혼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더없이 미약하게나마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었다
.
심전도를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의 예사롭지 않은 느낌역시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었다
.

그때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
이제까지 보호자 중에 없었는데
,
마치 멀리서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듯 했다
.
젊은이의 애인인 듯 했는데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환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창백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나는 한 옆으로 비켜주었다
.
젊은 여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침상 옆에 섰다
.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심전도 파동이 멈추었다
.
모니터 화면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던 웨이브 파동이 한순간 사라지고

마치 전원이 꺼진 것 같은 한줄기 직선만이 화면에 나타났다
.
이틀간 미약하게나마 뛰어왔던 그의 심장이 바로 그때 멈춘 것이었다
.
내가슴은 순간 서늘해지면서 웬지모를 거대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

이젠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 그와

그의 곁에 남겨진 여인을 두고 나는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

그의 임종 소식을 전하고

나는 보호자 중의 한 사람에게

방금 온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
내게는 그녀가 그의 삶을 오늘까지
,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장시킨 어떤 존재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

그녀는
..
결혼한 지 3개월에 접어드는 그의 부인이었고

뱃속에 아기를 임신중이었다
.
놀라움과 마음 속 깊숙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밀려옴을 느끼며

나는 그 순간 내가 해야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
그리고 이야기해 주었다
..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과 뱃속의 아기를 만나기위해

그가 얼마나 그 오랫동안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지
..
얼마나 힘겹고 가슴 아픈 영혼의 기다림이었는지
..
그리고 그것은 부인과 그의 아기에게 전하는

그의 이 세상 마지막 메세지라고
..
그것은 바로 사랑의 작별 인사라고
..

듣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 넘치는 눈믈을 바라보며

나는 두려움과 함꼐 어떠한 경외심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간직한 한 영혼이

바로 우리 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생생히 느꼈고 경험했다
.
그리고 그 존재를 이끌어주는 가장 큰 힘이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 역시
..
우리에게 가장 없어서는 안될

영혼과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의사의 길에 들어서는 후배들에게
나는 요즘도 이 이야기를 해주곤 합니다

 
익투스 님 방에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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