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 교수이신 조병수 목사님의 글임을 밝힙니다.

          


초대교회를 처음부터 위협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거짓 그리스도(마 24:24), 거짓 선지자(마 24:24; 벧후 2:1), 거짓 교사(벧후 2:1)였다. 이 가운데서 특히 거짓 선지자가 위협적인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는 한편으로는 거짓 그리스도의 사주를 받고, 한편으로는 거짓 교사를 사주하는 다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약은 전체적으로 "민간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다"(벧후 2:1),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요일 4:1), 거짓 선지자가 장차 세력을 규합할 것이라(계 16:13∼14)고 말함으로써 모든 성도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거짓 선지자의 첫 번째 특징은 그들의 등장에서 잘 나타난다.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 오나 속에는 노략하는 이리라"(마 7:15). 거짓 선지자는 노략하는 이리이다. 노략이란 것은 이미 바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신자를 유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는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는 예수 믿는 사람을 유혹하는 것에 전념한다. 진정한 전도자는 이미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성도에게 추파를 던지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참조. 롬 15:20). 기존 신자를 탈취하는 자는 스스로 거짓 선지자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 시대에는 이런 노략질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다.

거짓 선지자들의 두 번째 특징은 그들의 언어에서 잘 나타난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다"(마 7:21). 거짓 선지자는 언어가 강렬하다. "주여"를 두 번 반복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얼마나 언어로 열심을 내는지를 알려준다. "주여 주여"하는 것은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과 찬송 경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주의하라. 예수를 주라고 부르짖기 위해서 신학적으로 오묘한 고백서를 작성하고, 문학적으로 매끄러운 고백서를 암송한다고 해서 천국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막힌 곡조로 노래하고, 별의별 악기를 사용하고, 사지백체를 흔들어 율동하면서 예수를 주라고 부르짖는다고 해서 천국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성도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그럴싸한 신앙고백서를 제시하고, 정신이 빠지도록 노래를 부르게 한다.

거짓 선지자들의 세 번째 특징은 행동에서 잘 나타난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마 7:22). 거짓 선지자는 예언과 귀신 쫓음과 권능 행함으로 성도들에게 유혹의 미끼를 던진다. 예수께서는 이들이 심지어 "예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 쫓고 능력 행하는데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마 7:23)이라고 부른다. 예수의 이처럼 분명한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예언이나 쫓아다니고, 귀신 쫓는 일에 홀딱 반하고, 신기한 일 찾아다니느라고 눈이 벌게 진자들은 결단해야 한다. 솔직히 예수 복음을 따르든지 귀신 복음을 따르든지!

예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의 근본적인 잘못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하신다(마 7:21).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성품의 결정이다. 하나님의 성품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성품이 반영된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뿜어낼 것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주의 이름을 고백하고 노래하게 하거나 주의 이름을 팔아 능력과 기적을 행하는데 마음을 두게 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것은 거짓 고백주의이며, 거짓 공로주의이다. 바로 이것이 초대교회가 만났던 위험이며, 바로 이것이 현대교회가 만나고 있는 위험이다.

 

전상범목사님의 페이스북/개혁주의마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