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안느 듀 부흐 ( Anne du bourg , 1521 - 1599 )

의 신앙과 생애에 대해서 잠시 돌아보고 싶습니다,

프랑스 의 종교개혁은 왕권권력의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귀족들과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이 개혁사상을 수용하는 진귀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1558년 5월 14일부터 19일까지 루브르 왕국 맞은 편 세느강 좌안에 위치한 거리에서

귀족들을 포함한 4천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시편 찬송을 부르면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시위에는 프랑스 왕 ( 앙리 2세 ) 의 4촌이며 나바르 왕국의 왕인 앙뚜완 을 비롯한

앙뚜완의 동생 꽁데 공작과 훗날 위그노 (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들, 종교개혁자들 )

의 의 수장이 되는 꼴리니 제독과 그의 동생 프랑수와 당델로도 함께 하였습니다,

신앙에 대해서는 왕이라 할지라도

제한하거나 구속할 수 없음을 밝힌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입니다,

앙리2세는 사촌 형인 앙뚜완을 공격하지는 않고, 시위 기간 중 당델로를 소환하였는데,

소환된 당델로는 왕에게 <‘내 칼과 내 생명은 왕에게 있지만, 내 영혼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는

말을 함으로, 직위를 박탈 당하고, 체포, 구금 되었습니다,

영주가 신앙문제로 체포 당한것 입니다,

1559년 5월 25일에는,

프랑스 2천여 개의 개신교의 첫 총회가 왕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열렸으며,

총회 기간 중에 박해 받는 프랑스인들을 위한 신앙고백서를 채택하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들의 정신, 권력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권력과 야합하지 않았던 위그노의 신앙고백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것 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559년 6월 2일에 왕 ( 앙리 2 세 ) 은

이단자들을 화형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에꾸엉 칙령에 서명하였지만,

몇 달 후 파리 의회 의원인 < 안느 듀 부흐 > 가 화형으로 순교 당하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이며, 오흘레앙 대학의 교수, 총리 ( 첸슬러 ) 의 조카, 법조인인

< 안느 듀 부흐 > 는 개혁주의자들을 가장 많이 화형시킨,

앙리 2 세를 향하여, 파리의회에서, 왕의 정책과 카톨릭 권력이 틀렸음을 지적하고,

얼마후 당당히 화형대에서 순교의 길을 간 것입니다,

현 파리 시청 그헤브광장 에 가면 < 안느 듀 부흐 > 의 순교터가 있답니다,,,\

형장에 선 < 안느 > 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청중들을 향하여,

< 나의 친구들이여 ! 나는 도둑이나, 살인자로, 여기서 죽는것이 아니라, 복음 때문 입니다 >

라는 말을 남기고 이생에서의 최후를 맞이하였는데,

1559 년 12 월 23 일 입니다,,,

세례요한의 모습과 같았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그는 막 13장 9절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는

말씀을 삶으로 증거한 믿음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16, 17 세기의 이 엄청난 박해와 순교의 신앙위에 건립되어졌으며,

우리의 신앙은 이 숭고하며 거룩한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신앙고백의 역사위에 세워진 것 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들이 교회의 순결과 거룩을 지키는 것 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www.lkpc.org/xe/index.php?document_srl=84123&mid=freeboard&pag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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