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멸망한다

 

교회가 서서히 그 위엄을 잃어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분명한 징후를 감지한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시중드는 종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라고 말하지 않고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라고 말한다.
똑같은 말 같아도, 사실 그 의미는 동이 서에서 먼 것만큼이나 다르다.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숭고한 신념을 버리고, 그 대신에 생각할 가치도 없는
저급하고 천박한 인간 숭배 사상으로 무장하고 말았다.

하나님에 관한 천박한 개념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만연한 탓에 도처에 온갖 악이
횡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새로운 철학이 생겨난 것도 바로 이런
잘못된 종교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멸망하고, 교회는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여 영적 기갈에 허덕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실재하는 분이 아니라 한갓 추론의 결과물로 생각한다.
자신들이 적당하다고 판단한 증거에 근거하여 도출한 하나님일 뿐,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알 수 있는 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불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저들에게도 하나님은
더 이상 살아계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

하나님에 관한 이런 모호하고 막연한 인간적인 생각들과는 달리, 성경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성경에는 사랑이 충만한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 가득하다.

하지만 정작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나누는 인격적인 교제에 관해 그토록 무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고질적인 불신앙 때문이다.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는 명백한 현실이다. 그러나 죄가 마음의 창을 더럽혀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은 위대한 실재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순간 비로소 우리의 심령은 서서히 신령한 일들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의 마음에 나타난다(요 14:21-23). 하나님을 알게 하는 신령한 지혜에 사로잡혀 우리의 생명이자 전부인 하나님을 내밀하게 느끼고 맛보고 듣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고, 그분의 임재는 우리의 삶을 영광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채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완전히 나타내셨다. 물론 하나님은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서 알 수 있는 분이다. 믿음은 하나님을 알게 하고, 사랑은 그분의 인격을 경험하게 한다. 하나님은 성육신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대속으로 우리와 화목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다. 사랑과 믿음은 하나님과 신비에 속한 것이다. 이성은 겸손히 물러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잘못된 지식은 영혼을 구속한다.

인간에 대한 사탄의 첫 공격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하와의 믿음을 교묘하게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인간은 하나님에 관하여 그릇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해 비열한 혹은 부당한 개념을 가진 것만큼 인간의 영혼을 심하게 비틀고 흔드는 것은 없다.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관대하게 품어주는 분이 아니었다.

오늘날 선한 그리스도인들조차 비참한 일들을 겪는 이유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기대하는 것만 많고 용서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엄격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감시 아래서 십자가를 짊어진 채로 침울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분이시고, 그분의 돌보심은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사랑을 우주 전체보다 더, 아니 우주가 수억 개 더 생긴다고 할지라도 그보다 더욱 귀히 여기신다.

불행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왜곡된 개념으로 알고 있다. 그런 개념들은 심령에 해악을 끼치고 내면의 자유를 구속한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가인’처럼 열정도 기쁨도 없이 마땅히 해야 할 것만 행하며 의무감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와 교제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안해 떨며 서둘러 예배하길 원하지 않으시고, 시대를 좇아 기계적인 방법으로 자신께 나아가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그분께 시간을 드려야 한다.

 

바로 알고 바로 믿어라

하나님의 활동은 그분의 속성과 일치한다. 즉, 하나님이 하신 일은 모두 그분의 신성에서 비롯한다. 그분에게 존재와 행함은 하나다.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신다.

역사적으로 교회를 괴롭혀 온 이단은 모두 하나님에 관한 거짓된 교리를 믿거나 아니면 그분의 다른 속성을 무시한 채 단지 한두 가지 속성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함으로 생겨났다. 하나의 속성을 배제하고 다른 속성만을 강조하는 경우에는 그릇된 신학체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그런 유혹에 시달린다.

예를 들어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시라고 가르친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성경의 또 다른 진리를 외면하다. 또한 하나님이 선하심만을 강조하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도외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긍휼만을 강조하고 그분의 진리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배제하고 그분의 주권만을 지나치게 높이기도 한다.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계시하신 모든 것을 믿어야만 진리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유지할 수 있다. 계시된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못마땅해 보이는 것들은 추려내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만 강조하면 엄중한 문책을 감당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은 따로 떨어져 사역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활동은 삼위 하나님이 함께 이루셨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에게서 시작하라

하나님은 늘 변함이 없으시다는 진리를 깨달으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그분이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실 기분인지 아닌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과 믿음은 물론 불행과 필요에도 항상 관심을 기울이신다. 하나님은 근무시간을 따로 정해 두시거나, 아무도 만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을 따로 떼어놓지도 않으신다. 또한 어떤 일에도 변덕을 부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식거나 열정이 사라지는 법도 없으시다. 하나님의 타협을 불허하실 뿐만 아니라 속아 넘어가는 일도 없으시다. 하나님은 설득당하여 말씀을 바꾸는 분이 아니시며, 이기적인 기도에 응답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며, 그분과 사귐을 가지려고 노력할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나는 네 주 하나님이다. 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분명히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나타내신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진리의 성경에 나타난 복음의 원리에 따라 우리의 삶에 항상 역사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다. 선원이 별을 보고 배의 위치를 파악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도덕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오는 많은 어려움들은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여 그분께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마음대로 변형시키려고 하며 그분을 우리 자신의 형상에 맞추려고 애쓴다.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의 준엄한 판결을 짐짓 못마땅하게 여기며 육체적인 방법으로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마치 아각처럼 조금만 봐주십사하는 심정으로 애처로운 태도를 취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다 소용없는 일이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그분이 자신에 대해 계시하신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올바른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수록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의 근원이 됨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인간의 틀에 맞추지 마라

유한한 우리는 그 한계를 무한하신 하나님께 돌리려 든다. 하나님은, 영원을 품고 계신다. 하나님께 시간의 경과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영원한 현재만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무한한 시간과 영원한 삶을 주님과 공유한다.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시지 않으신다. 그분에게 마감일자 따위는 없다. 이런 사실을 알 때 우리의 영혼은 평화를 얻고 안정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이들에게 시간은 먹이를 삼키려고 달려드는 맹수와 다름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며 그분의 무한하심을 함께 나눈다 하나님 안에는 무한히 누릴 수 있는 생명이 존재한다. 그분의 사랑은 다함이 없다.

믿음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내면의 눈을 들어 만물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믿음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쉬운 일의 하나일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일을 쉽게 행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셨다. 우리 가운데 가장 연약하고 비천한 이들도 얼마든지 믿음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가장 쉬운 이유는 그것이 힘든 정신활동을 통해 얻는 지식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햇빛이 들판을 비추듯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거저 주어진다. 반면에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이유는 타락한 인간의 완고한 본성에는 쉽게 충족되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을 살아가는 요즘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너무 저급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생각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전혀 걸맞지 않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이유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앙적인 두려움도, 하나님의 임재의식도 모두 잃어버렸다. 또한 예배의 영을 잃어버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침묵으로 경배하며 내면으로 침잠하는 능력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포도나무선교회
개혁주의 마을/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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