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 사택 마당에 와서 “나 왔어. 혁수 왔어”라고 외치는 청년이 있다. 목사님이 밖에 나가서 “우리 혁수 왔구나”하고 반기면, “나……, 나……, 나 교회 다닐 거야. 나 하나님 믿을 거야. 하나님은 정말 있어”라고 말하곤 한다. 목사님은 매일 똑같이 묻는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데?” 혁수는 “하나님은 내 마음 속에 있어”라고 대답한다. 이런 대화는 매일 목사님과 혁수가 수없이 나누는 것이다. 목사님은 혁수에게 존댓말을 가르치려고 매 번 말을 교정해주지만 혁수는 곧 잊어버리고 반말로 한다.

 

   그는 하루에도 수없이 교회와 사택 마당을 순회한다. 그의 별명은 ‘교회지기,’ 혹은 ‘사찰성도’이다. 그는 집에나 길에 있다가 누군가 교회 마당에 온 기척만 나면 금방 달려온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회를 비워두고 출타할 때에 “혁수야, 교회 잘 지켜라”하고 당부한다.

 

   그는 우리 교회에 개근하는 성도이다. 그의 집은 우리 교회 바로 앞에 있다. 진짜 나이는 33살? 그러나 그의 정신 연령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5살쯤 된다. 대변의 뒤처리를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며, 소변은 아무데나 눈다. 방금 전에 한 얘기도 잊어버려서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

 

   혁수를 보면 사람에게는 노동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약간 불편한 몸이긴 하지만 거동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붉은 고추를 따야 할 때 푸른 고추까지도 따고, 익은 곡식과 아직 익지 않은 곡식을 구별하지 못하며,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오직 누군가가 시키는 단순한 일만 할 따름이다. 그러니 그의 집에서는 오히려 거치적거릴 뿐이라고 해서 아예 밭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 날만 밝아오면 일어나는 그는 심심해서 하루 종일 집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목사님이 무슨 일이든 하는 소리가 나면 달려온다. 목사님은 그에게 단순한 일일망정 시켜준다. 나무토막 옮기기, 뺀 못 주워 담기, 공구 들고 있기 등. 그는 그런 일을 하면서 신이 나서 파안대소를 한다.

 

  그는 위로 딸 넷 다음에 태어난 외동아들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간질이 있어 어려서는 자주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지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초등학교 3학년인가 다닐 때 교통사고를 당하여 뇌를 심하게 다쳤다. 그 때 며칠 동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으면 자기도 따라 죽겠노라고 했다.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는지 그는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한쪽 손을 쓰지 못하는 아들이 불쌍하여 모든 시중을 다 들어주었다. 심지어 밥을 떠먹여 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요양기관에 보내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으나 그의 어머니는 듣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늘 하는 소리는 “내가 죽기 전날에 내 아들을 내 손으로 죽이고 가겠어”였다. 그것은 서러운 오기였다.

 

  사람의 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 아들과 운명을 함께 하겠노라고 호언장담하던 그의 어머니는 몇 년 전에 불구의 아들을 뒤에 두고 먼저 갔다. 늘 아들 문제로 남편과 다투던 그녀는 어느 날 홧김에 농약을 마셨다. 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순간에,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는데도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을 뒤에 남기고 가는 그녀의 눈 속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라목손(제초제)을 마신 다른 사람은 24시간 내에 다 죽었다는데 혁수의 어머니는 아들을 못 잊어서인지 사흘을 버텼다. 그러나 결국 눈물을 가득 담은 눈을 감고 말았다.

 

   오늘도 혁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맨 먼저 사택 마당에 와서 “혁수 왔어”라고 외친다. 목사님이 밖에 나가서 “우리 혁수 왔냐?”라고 반길 때가지 계속 외쳐댄다. 목사님이 밖에 나가 상대해주노라면 다음에는 “나 교회 다닐 거야”를 수없이 반복한다. 혁수가 “나……, 나……, 나……”하면, 목사님이 “교회 다닐 거라고?”한다. 그러면 혁수는 허허허 큰소리로 웃는다. 목사님이 제 마음을 족집게같이 잘 알아주는 게 너무 좋아서 큰소리로 웃는다.

 

   혁수는 늘 큰소리로 웃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웃는 게 어찌 흠이냐고? 시도 때도 없이 웃기 때문이다. 설교시간에도 혁수의 웃음소리 때문에 성도들은 설교 내용을 놓치곤 한다.

 

   다른 한편, 혁수는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가장 용감하다. 목사님의 질문에 대답을 크게 한다. 가끔 목사님은 설교 도중에 질문을 한다. 대부분 시골 교회 연세가 드신 성도들은 대답을 안 한다. 늘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몰라서라기보다는 겸양해서이다. 항상 남편 뒤에, 아들 뒤에 자기를 숨기고 살았던 여인들인지라 자기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는다.

 

   어느 날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물었다. “세상에 믿을 것이 있다? 없다?” 묵묵부답이다. 아무도 대답을 안 하니 박자가 안 맞는다. 하나님 외에는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질문한 것이다. 남편도, 자식도, 돈도, 지식도, 건강도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상기시키려고 던진 질문이다. 목사님은 다시 큰 소리로 물었다. “세상에 믿을 것이 있다? 없다?” 그래도 대답을 안 한다. 목사님 왈, “오늘 아침에 꿀 드시고 오셨어요?” 그때 혁수가 “있어”라고 크게 소리친다. 모든 성도들이 와! 하고 웃는다. 동문서답이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혁수에게 다시 묻는다. “세상에 믿을 것이 있다고?” 혁수의 대답, “있어.” 성도들이 다시 웃는다. 그때 혁수가 “나, 하나님 믿어. 그러니까 있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답이요 현답이다. 그럴 때 보면 혁수가 말귀를 잘 알아들으며 성인의 표현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혁수를 보면 지능은 낮아도 어휘력은 나이를 반영하는 것 같다. 그가 사용하는 어휘는 어른의 어휘들이다. 어느 날 목사님이 새로 산 구두를 신고 외출을 하려고 나가니 어느새 교회로 달려온 혁수가 다가와서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우고 “목사님 구두 끝내주게 멋져”라고 말했다. 넥타이를 새로 하고 나가면 오른손 엄지를 치켜들고 “넥타이 멋져”라고 말한다.

 

   혁수는 늘 심심하다. 그래서 혁수는 주일이 되면 신이 난다. 하루 종일 교회에서 지낼 수 있으니까. 8시에 교회에 와서 오후 5시 경에 집에 간다. 아침에 해만 뜨면 밖으로 나와 하루 종일 주변을 걷는 것이 그의 일과이다. 그의 어머니가 죽은 후에는 식사를 할 때와 화장실을 사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밖에서 돌아다닌다. 세 끼 밥이나 제대로 먹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의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있으니 제삼자인 우리가 관여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끔 사택에 오면 간식을 줄뿐이다.

 

   혁수는 10분 이상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한다. 그러니 교회에 와서도 예배 도중에 서너 번씩은 들락날락한다. 그렇잖아도 연세 드신 분들은 집중이 안 되는 편인데 혁수의 움직임을 따라 여러 명의 성도들이 주의가 산만해진다. 또 시도 때도 없이 큰소리로 웃는다. 그리고 옆 사람이나 뒷사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처음 나온 어떤 사람은 그런 그에게 막 화를 냈다.

 

  설명을 해서 간신히 화를 가라앉혔다. 어떤 이가 말했다. 혁수는 교회에 왜 오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말했다. “그런 말 마세요. 혁수는 우리 교회 개근하는 성도예요. 혁수처럼 주일성수하는 성도는 드물다고요. 그리고 혁수는 신앙고백이 분명하답니다. 혁수는 날마다 수없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을 해요. 그보다 더 귀한 믿음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요?”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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