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저작물은 제3시 사이트(http://3-rd.net)에서 퍼왔으며, 작자는 infiltrator 님입니다. ■

 

 

워싱턴을 출발하기 전 사전 피츠버그 자료를 수집하면서
피츠버그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약 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로즈몬트 연합묘지(Rosemont United Cemeteries)에는 여호와의 증인 창시자인 [찰스 테이즈 러셀]의 무덤과 초기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단 무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행을 하게 되면 그곳에 가 보아야겠다 계획하고 떠나왔었습니다.

피츠버그 도착 다음날 성산교회 담임목사님의 안내로 피츠버그 다운타운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워싱턴 마운틴에 올라 잠시 머물면서 피츠버그에 대한 가벼운 오리엔테이션을 목사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Jean Rhee전도사님 Pick Up을 위해 목사님과 ㅈ 목사님은 떠나시고... 저와 나머지 일행들은 로즈몬트 연합묘지로 떠났습니다.

피츠버그 다운타운을 살짝 지나며 579와 279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조금이동하여 Exit 12으로 빠져나와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공동묘지들이 연이어 있는 장소였는데, 첫번째 들어간 곳은 우리가 목적하는 로즈몬트 연합묘지가 아닌 유대인들의 공동묘지였습니다.

유대인 공동묘지 인부들에게 물어 로즈몬트의 위치를 확인하고 방향을 돌렸습니다. 잠시 후 로즈몬트가 눈 앞에 들어왔는데... 역시 제 눈에 제일 먼저 띄었던 것은 [피라밋] 형태의 러셀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덤 근처에 갔을 때, 우리 일행은 예상치 못한 장소를 하나 더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다름아닌 Greater Masonary Pittsburgh Center 곧 프리메이슨의 회집 장소였습니다.
"아니! 왜 이곳에 프리메이슨의 회집장소가 있지?"

저와 일행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저와 함께 피츠버그에 동행했던 일행은 한 주 전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프리메이슨 양대 계파 중의 하나인 'Scottish Rite'의 남부 본부인 템플
곧 프리메이슨 성전을 함께 잠행했었던 일행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주 전의 경험만으로도 일행들은 피츠버그에서 뜻밖에 발견하게 된 이 장소가
프리메이슨의 장소임을 금방 알아챘던 것입니다.

이 센터에 차를 주차하고
우리는 우선 러셀의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피라밋 형태의 무덤에 가까이 가서 알게 된 사실은
그 피라밋 형태가 러셀의 무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러셀의 무덤은 그 피라밋 구조물 바로 뒤에...
너무나도 선명한 러셀의 초상화가 사진으로 새겨진 비석 아래 묻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약속이라도 한 듯... 중보기도와 사진촬영에 각자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피라밋 구조물과 러셀의 무덤을 중심으로 나머지 무덤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무덤들을 돌아보며 발견하게 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그 무덤의 비석들 가운데 프리메이슨을 상징하는 상징 기호(직각자와 컴퍼스)가 새겨진
무덤 비석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프리메이슨과 여호와의 증인도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왜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의 무덤이 피츠버그에 있는 것일까?
왜 초기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단 무덤들이 여기 피츠버그에 있는 것일까?
왜 이들의 집단 무덤 바로 곁에 프리메이슨 센터가 존재하는 것일까?
여러 질문을 동시에 물으며...
우리는 워싱턴의 경험을 되살려 담대하게 피츠버그 프리메이슨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재밌는 것은... 우리가 그 건물 안에 진입했을 때...
아무도 우리를 반겨 맞아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인데... 워싱턴은 가이드가 나와서 설명을 해 주지 않으면 잠행을 할 수 없었던 반면... 피츠버그에서는 우리가 마음껏 그 공간을 잠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많은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상간에 이곳 피츠버그에 수 많은 프리메이슨들이 활동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진에 보니... 이들의 회집(Conference)에 약 2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얼른 그곳을 빠져 나와 계획하지는 못했지만 인도하심을 구하며
다음 잠행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과 프리메이슨이라...

첫번째 사진은 러셀의 무덤인줄 알고 찾았던 피라밋 구조물 사진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실제 러셀의 무덤 비석입니다


러셀의 무덤을 뒤로하고 저희는 다시 279와 579를 타고 피츠버그 다운타운 쪽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러셀의 무덤을 떠날 때 저의 마음속에는 다운타운에 있는 Port Pitt이라는 요새를 그리며 출발했었는데, 다운타운에 가까이 접근할 때 저의 눈에는 History Center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확인을 못한 채, o ㄱ 형제에게 그쪽으로 차를 몰아줄 것을 부탁하고, 우리는 Port Pitt에 가기 전에 이곳을 먼저 둘러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차공간이 마땅하지 않아 들어간 Public Parking Lot, 그곳은 감사하게도 우리들이 다리를 건너며 유심히 보았던 다리의 조각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제가 워싱턴 DC를 잠행하며 확인했던 Zodiac(황도대)을 새겨 놓은 지구본과 그것을 등에 올려 떠 받들고 있는 네 마리의 날개달린 말(천마^^)의 조각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세이돈과 관련된 조각상과 물고기 조각들... 이런 것들 또한 피츠버그와 그 다리를 나름 상징하는 것이기에... 사진에 고스란히 잘 담아 두었습니다.



 

드디어 History Center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그곳은 상원의원(The Senator)이었던 John Heinz를 기념하여 History Center를 만든 곳이었습니다[미국에 사시는 분들은 세계적 케첩의 상표인 Heinz가 바로 피츠버그와 이 Family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쯤은 아시죠!^^]. 약 275,000 square-foot의 공간에 피츠버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담뿍 담겨있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관리하고 있었는데요, 스미소니언이다보니 제 머리 속에는 또 곧바로 워싱턴과 뉴욕의 스미소니언 박물관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었습니다.

워싱턴 DC를 제외하고 다른 도시가 그렇듯... 여기도 역시 입장료를 받더구만요.^^ 본의 아니게 잠행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다 보니... 제가 입장료를 쏘았죠!^^ 하지만 감사하게도 3명은 학생으로 처리되어 싸게... 이 공간을 이 잡듯이 뒤져보게 되었습니다.

이 John Heinz History Center는 내부에 몇 가지 공간들을 따로 구분해서 전시하고 있었는데요, The Western Pennsylvania Sports Museum이라는 스포츠 관련 역사 전시관과 6층 꼭대기에 있는 the Library and Archives 그리고 서부 펜실베니아의 역사와 그 발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전시물을 전시하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175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약 250년간의 지역 역사를 고스란히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피츠버그 지역의 미국 유리 역사, 또한 H. J. Heinz사의 연대기 등도 잠시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피츠버그의 역사를 한 곳에서 아주 집중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었었습니다. 특별히 The Historical Society of Western Pennsylvania (HSWP)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피츠버그의 뿌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그 자체였습니다. 6층의 Library & Archives at the History Center에는 보고가 많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없어 그냥 사진만 몇 컷 찍었을 따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지역의 고지도는 거기 다 있었습니다. 침만 꿀꺽 삼키고... 다만 자료가 어디 있음만 확인하고 온 잠행이었죠!^^ 250년간의 서부 펜실베니아의 모든 자료 즉 books, manuscripts, photographs, maps, atlases, newspapers, films, recordings and other memorabilia가 거기 다 있었습니다. 워메 아까워...^^ 시간만 있었으면...^^

또한 Meadowcroft Rockshelter and Museum of Rural Life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시간이 없어 여기도 잠시만 살피고 몸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특별히 이 History Center를 잠행하면서 저에게 가장 큰 유익이 있었다면, 그것은 미시시피 인프라와 관련하여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미시시피 인프라를 왼쪽편 미주리 강과 오른쪽편 오하이오강이 [카이로]에서 만나 뉴 올리언즈로 [흘러내려가는 것]만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History Center를 방문하고나서 저의 생각에는 한가지 수정이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왼쪽편 미주리 강에 대한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로키산맥쪽에서 시작되는 미주리강이 오하이오강과 만나 미시시피를 형성하여 내려가는 것 만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앗뿔사! 이 History Center에는 저의 그런 생각을 뒤집는 역사적 사건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미국 제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 당시 루이스 & 클락 탐험대(Lewis & Clark Expedition)에 의해 진행된 [서부 개척로 확보 프로젝트:이 명칭은 제가 그냥 개인적으로 지어 보았습니다.^^]였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당시 루이스와 클락이 당시 제퍼슨이 계획했던 루이지애나 구입 계획을 염두에 둔 중서부 확장 계획의 일환으로 탐험대가 피츠버그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카이로(미주리강과 오하이오강이 만나는 곳)라는 곳에서 미주리강을 거슬러 올라가 로키산맥을 넘어 미국 서부 워싱턴 주와 오레곤 주를 관통하는 콜럼비아 강을 따라 태평양까지 건너갔던 역사적 사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탐험팀이 추가로 이 개척 루트를 따라 조금은 다른 루트로 서부 개척의 루트를 뚫어 냈다는 기록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 앞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그랬구나! 그래서 바로 이 피츠버그가 The Gateway of the West였구나! 피츠버그가 서부의 관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피츠버그는 오하이오 강을 따라 뉴 올리언즈까지 남부로 관통할 수 있는 관문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오하이오 강에서 미주리 강을 따라 로키산맥을 넘어 태평양까지 다다를 수 있는 서부 관통을 위한 관문도시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피츠버그! 미국 서부개척의 역사는 바로 이 피츠버그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저는 팀들과 이 사실을 함께 나누었고 저는 이 사실을 붙들고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피츠버그로부터 아버지께서 참으로 기뻐받으실만한 부흥이 오하이오 강을 따라 서부와 중남부로 전파되게 하옵소서! 성령의 바람이 이 두 거대한 물줄기와 함께 그 물줄기의 영향을 받는 모든 미 대륙의 대지 위에 뜨겁게 불어가게 하옵소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성령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며...
저와 3명의 infiltrator들은 History Center를 빠져 나와 Port Pitt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첫번째 사진은 The John Heinz History Center전경 사진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Lewis & Clark 탐험대가 개척한 피츠버그-오하이오-미주리-로키-서부 루트를 표시한 지도 사진입니다.

Heinz History Center를 벗어나 우리는 두 번째로 계획했던 Fort Pitt[피트 요새: 이곳의 사진은 제가 담지 498번 글에 올렸던 피츠버그(01)을 보시면 두 번째 사진에 나와 있습니다]을 향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지만 뛰어난 드라이버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Fort Pitt 가까이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곳은 새로운 단장을 위함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공사 중으로 우리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더군요. 하는 수 없이 Port Pitt은 곁눈으로만 지나친 채, 다운타운을 빠져 나와야만 했었습니다. Boulevard of The Allies를 통해 빠져 나오면서 가능하면 다운타운을 짧고 굵게 살펴보려 노력했었습니다.

과거의 Fort Pitt이 위치했던 현 Point State Park은 알레그헤니강(The Allegheny River)과 모논게헬라강(The Monongahela River)이 만나는 삼각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삼각주는 서부 펜실베니아와 피츠버그의 개척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아주 중요한 장소입니다. 1700년대 중반 프랑스와 영국은 세 강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이곳 Fort Pitt을 빼앗기 위해 피나는 전투를 치러야만 했었습니다.  

프랑스가 1754년에 Fort Pitt의 전신인 듀케인 요새(Fort Duquesne)를 건설합니다. 이 듀케인 요새는 프랑스와 인디언 간의 전쟁(The French and Indian War)에서도 전략적 요충지로 프랑스에게 우위권을 가져다 준 핵심지 중의 핵심지(Core Focal Point)였습니다. 영국은 이 듀케인 요새를 빼앗기 위해 계속해서 원정 부대를 보냅니다. 원정 부대 중 하나를 지휘했던 영국군 에드워드 브래덕(Edward Braddock) 장군은 이 요새탈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그만 전사하고 맙니다. 1758년 11월 25일 영국은 존 포비(John Forbes) 장군이 이끄는 또 다른 원정 부대를 보내 결국은 프랑스로부터 이 중요한 요새를 빼앗아버립니다. 이후 이곳은 핏 요새(Fort Pitt)로 개명됩니다.

피츠버그를 방문해 보면... 피츠버그의 영적 전략적 요충지가 되는 오크랜드(Oakland)지역을 중앙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바로 Forbes Ave임을 알게 됩니다. 곧 그 승전 장군의 이름을 따 그 이름을 Forbes Ave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그곳에 피츠버그 대학과 카네기 멜른 대학이 위치합니다. 제가 지도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이 Forbe Ave는 피츠버그의 다운타운까지 연결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워싱턴으로 돌아와서 깨닫게 된 것인데... 이 Forbes Ave와 4th St 그리고 Blvd of the Allies와 Wood St 그리고 Smithfield St로 구획되는 지역은 아주 중요한 영적 포인트가 되는 장소였었습니다.

 

 

 

 

또한 이번에 저와 세 명의 잠행동지들은 Forbes Ave를 끼고 형성되어 있는 일명 [핏대]로 통하는 피츠버그 대학이 피츠버그의 Stronghold를 형성하는 영적 전략적 교두보로 그곳에 위치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 성산교회 담임목사님의 인도로 올랐던 Mt. Washington에서 저는 담지 496번 글 [콜로라도 스프링스(04)]에서 제가 다루었던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창시자 Spencer Penrose의 무덤이 있는 Will Rogers Shrine of the Sun와 비슷한 모양을 가진 일종의 탑 같은 건물에 제 눈이 주목되었습니다. 목사님께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그곳 주변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을 약간 듣게 되었습니다. 대학가... 그리고 그 주변에도 프리메이슨의 템플이 있다는... 그리고 특별히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짧지만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첫날의 잠행을 마무리 하면서 저는 이 Port Pitt과 함께 그 탑 건물이 어떤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 같은 예감을 가지고 다시 성산기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우리 팀들도 피츠버그공항에 도착해서 성산기도원으로 들어오고 계실 진 리(Jean Rhee) 전도사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탑이 있을 것 같은 쪽을 지나칠 때 그 탑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지켜보았지만... 그 탑은 볼 수 없었습니다.

첫날 잠행 끝^^

첫번째 사진은 피츠버그의 다운타운 상세지도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오크랜드의 상세지도입니다. 특별히 피츠버그대와 카네기멜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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