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드린       //

//
내용

유대인의 최고회의, 지방회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며 헬라, 로마시대에 있던 유대인의 종교적 재판소이다. 헬라시대에 팔레스틴은 지방자치제여서 그 지역의 상류층인 장로회의가 다스렸으며 이 의회의 의장은 대제사장이었다. 70인 의원과 대제사장인 의장으로 구성되었다. 그 의원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이었다.(마16:21) 그리스도 당시에는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라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형사상의 재판까지도 맡아보았다.
모세 율법과 관련된 제반 문제를 상소할 수 있는 최종 재판소였다. 사형선고를 내릴 수는 있었지만 로마 총독의 비준이 있어야만 집행이 가능했음으로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도 서셔야했다(요18:31).

 

산헤드린이라는 말은 의회를 뜻하는 헬라어 쉬네드리온의 아람어적 형태로서 유대교의 종교적 통치 기구로 A.D. 70년에 유대 나라가 멸망되기까지 종교 생활과 정치생활을 통괄했었다. 그 기원은 불확실하다. 랍비들은 주장하기를, 그것은 모세를 보좌했던 칠십인 장로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하나(출24:1), 출애굽 시대로부터 어떤 조직된 의회가 계속 존재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바사제국 시대에는 에스라서에 장로가 언급되어 있으며(스5:9, 6:7, 14, 10:8), 느헤미야 때에는 백성의 지도자들(한글개역 성경에는 '방백들')이 사회의 제반 사항을 다스렸던 것 같다(느 2:16;11:1). 조직된 기구로서 처음으로 분명하게 나온 것은 안티오쿠스 대제(Antiochus the Great)시대이다(B.C. 223-187년). 그 회원들은 나이와 재산에 근거해서 선정되었으며 대제사장이 그 의장이었다. 마카비(Maccabean)혁명 이후에는 제사장들이 새로이 권력을 장악했다. B.C. 63년에 폼페이(Pompey)가 등극하자 유대인의 영토는 다섯 개의 쉬네드리아로 나뉘었는데, 그 중에 수도인 예루살렘의 쉬네드리온이 유대 정치의 주도적인 단체가 되었다.


산헤드린의 회원 자격은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을 지닌 사람에게 국한되었으며 평생 회원이었다. 그 재판권의 한계는 유대인에 국한되었다. 예수님도 이 산헤드린 앞에 끌려 가셨었고(마26:59), 사도들도 산헤드린에서 신문을 받았다(행4:15-18, 행22:30, 행23:1). 산헤드린은 율법의 해석에 관계된 사건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결단을 내렸으며, 형사 사건의 경우에는 신약시대 로마의 통치하에서는 총독의 동의 하에 처형했었다. 산헤드린은 유대인의 제반사항에 대해서는 자문회(諮問會)의 역할을 했으며 유대 민족이 실질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때에는 일종의 중앙 정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산헤드린에 대해서 랍비자료와 산헤드린에관한 요세푸스의 기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두 개의 산헤드린이 있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두 개의 1) 산헤드린이란 대제사장이 중심으로 구성되어 민, 형사제판을 관할하는 정치기구(요세푸스의 기록) 2) 평신도인 바리새인으로 구성되며 종교생활의 여러 문제와 율법(Torah) 해석에 종사하는 종교기구(랍비자료)이다. 많은 유대 학자들은 이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