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속에서 그리고 부활하신 뒤 이 땅 위에 머무시는 동안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알자. 그것에 우리의 칭의와 성화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천국에 대한 소망도, 부활에 대한 소망도 없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가 않다. 당신이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지를 확실히 하라.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스도가 나의 머리가 되신다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식은 개인적으로 특별히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실 때 나도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에게 임한 은혜가 당신에게도 흘러갈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열매가 당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것일 뿐만 아니라 바로 당신의 것이다! “너의 유익을 위해 그것을 알지니라”(5:27).

 

구원에 필요한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우리의 가엾은 영혼에 영양분과 새 힘을 주기 위해서는 진리를 소화 흡수해서 그것에서 힘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시간 안에 많은 진리를 머릿속에 담아 둘 수는 있지만 그 진리를 모두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묵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많은 설교가 잊혀진다. 이 설교, 저 설교를 찾아다니면서도 파리하게 굶어가는 영혼이 되어 간다. 그것은 그들이 묵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율법을 읽을 뿐만 아니라 묵상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1:8). 알고 있다면 그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반추하며 묵상하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시간에 대해 생각하라.

그리스도가 무덤 속에서 정확히 3일을 보내셨듯이 당신은 그분에 대해 3일의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첫째 날은 준비의 날이라고 불렸다. 둘째 날은 안식일이었고, 셋째 날은 부활절이었다. 따라서 당신의 첫째 날은 준비의 날, 수난의 날이다. 이 날에 당신은 죄와 사탄과 대적해 몸부림치고 싸워야 한다. 이 날에 당신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죄와 사탄이 쏘는 모든 고통스런 불화살을 견뎌야 한다. 둘째 날은 안식의 날이다. 이 날에 당신의 몸은 무덤 속에 있어야 하고 소망 가운데서 안식을 누려야 한다. 이 날에 당신은 나팔 소리가 울리고 당신에게 일어나 심판대 앞에 오라는 명령을 받을 때까지 평안에 들어가고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57:2). 셋째 날은 영광으로 부활하는 날이다. 그것은 안식일 다음 날, 한 주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이 날은 결코 끝남이 없는 세상이 시작되는 첫 날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때를 생각하라.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자신의 영혼의 양식을 위해 부활의 유익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이유들을 생각하라.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이 유대인들을 당황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하자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했다”(5:33). 자신의 죄로 매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그분이 높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끔찍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가 그들의 심판자로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사실이 그들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믿음을 확증시켜 주지 않았는가? 그들의 믿음은 단지 연약한 믿음에 불과했다. 지식도, 확신도, 담대함도 연약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류 없는 많은 증거를 통해 자신이 살아나셨음을 나타내신 뒤에 제자들은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니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이 온전히 우리의 모든 빚을 지불하셨다는 증거가 되지 않았는가?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7:22). 죽음으로 그리스도는 체포되어 감옥에 내던져졌다. 그 감옥에서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고 무덤의 빗장과 족쇄를 깨뜨리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만족함을 얻었고 하나님이 친히 그리스도를 풀어 주셨다는 명백한 증거다. ! 여기에 얼마나 넘치는 위로가 있는가!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죄와 죽음, 사탄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이제 그리스도는 사망에서 그 쏘는 것을 제거하셨다. 지옥에서 그 깃발을 취하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손에 우리를 대적하는 문서를 취하고 그것을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주권과 권세를 탈취하고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손에 쥐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강한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와 드보라가 찬양했듯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5:21).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첫 번째 분이 되었다. 그분의 부활의 미덕을 통해 모든 택함받은 자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15:22-23).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할 이유가 되었듯이 한 사람의 부활이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이유가 된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두 머리다. 두 뿌리요 두 첫 열매다. 아담과 그리스도 모두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선포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이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그것이야말로 다른 모든 이유 가운데 가장 주된 이유다. 그것에 주목하라. !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그분에게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리라. 이 놀라운 일을 묵상하고 반추하라. 생각하라. 그리스도의 이름에 모든 존귀와 영광을 올려 드리라!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는가?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2:9). ! 그렇다면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 2, pp 245-249

 

가져온 곳 : 
블로그 >청교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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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부활 진리: 만일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Pastor ㆍ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신앙과 믿음은 어찌되는 것인가? 또한 우리의 인생은 어찌 되는 가? 말씀에 기초하여 볼 때 다섯(5)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두(2) 가지만 열거합니다.

첫째,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16-18)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죄 문제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평상시에 말씀했던 대로 다시 살아나야만 그 말씀했던 사죄의 은총이 효력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고 없다면,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그 사죄의 은총은 부도수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죽음만 있고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죄”란 무엇인가? 54-55절. “사망의 쏘는 것”입니다. 죄는 죽음이라는 독화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망은 언제나 승리하기 때문에 우리를 패배케 만들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이 죄의식에서 시달리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겪습니다. 마침내 정신분열중과 정신이상을 일으켜 시달립니다. 그러므로 죄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또한 죄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죽음 입니다. 죽음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가져 왔습니다.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존재 의미와 목적 마다도 상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죄 문제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고 영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면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차단시키는 죄문제와 죽음의 문제가 절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 주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죽음이라는 두 단어가 인생의 최후가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8절)  그래서 예수님도 “만일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 죽는다”고 반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인을 반드시 한 번은 죽도록 정하셨습니다.(히9:27)  죄인은 결코 영생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죄인들은 육적인 죽음 뿐만 아니라, 심판을 통하여 영적 죽음인 둘째 사망을 겪게 됩니다.(계21:8)  죽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이 땅에 지금까지 쌓아올린 돈과 부귀와 명성과 권력, 호화스런 저택, 벤츠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만이 죄악된 생각을 다 제거해줍니다. 죄의 장벽을 다 헐어 버립니다. 잠 자는 영혼을 깨워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둘째, 영생의 희망이 없는 비참한 인생 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19절)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영생과 하늘나라 입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이 없으면 바라는 것이 오직 이 세상에 사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생에 대한 희망과 소망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예수님을 위해 모든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바보가 됩니다. 오히려 악하게 살고 권모술수와 거짓된 방법으로 살고, 먹고/마시고/즐기고, 권력과 부와 쾌락을 소유하며 사는 자들이 훨씬 더 Smart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하면 내일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서도 참고 인내하며, 억울해도 울면서 사는 것은, 영원하고 살아있는 소망인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 때문이고 하늘나라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하기에 우리의 부활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죽음이 우리를 통치합니다. 악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악한 자들과 사기꾼들과 거짓 정치꾼들과 거짓 목사가 판을 치며 삽니다.
우리의 믿음과 복음 전파가 헛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두 글자 앞에 생을 체념하면서 삽니다. 무덤이 인생의 최후가 됩니다. 우리는 이처럼 어떤 희망도 없는 비참한 인생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우리의 부활은 필연적이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이고, 그 모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마침내 그 날에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에 죄와 악과 악한 자에 대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활은 필연이고, 하나님은 진실로 믿음과 말씀대로 사는 우리에게 부활을 주시고 악한 자에 대한 승리인 부활을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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