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박신 목사님 홈페이지 (운영자 *.119.139.57http://whyjesusonly.com/15677)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의 대답은...? !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 하였는가?"
한 학생이 용감히 대답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교수가 다시 물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 하셨는가?"
학생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교수님."

교수가 말했다.
"만약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 하셨다면
악(evil, 惡)도 존재 하므로 하나님은 악도 창조 하셨네.
그리고 우리의 성과(work)가 우리가 누군지를 규정 짓는다는 원리에 근거 한다면,
하나님은 악(惡)이다."
학생은 이 말에 조용해졌다.
교수는 스스로에게 대단히 만족해 하며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미신 임을 다시 한 번 증명 했다며 으쓱해 했다.

다른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교수님,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교수가 말했다.

학생이 일어서서 물었다.
"교수님, 추위가 존재합니까?"
"무슨 질문이 그런가?
당연히 추위가 존재하지.
자넨 추운 적 없는가? "
교수가 말했다.
학생들은 젊은이의 질문에 킬킬거렸다.

젊은이가 말했다.
"사실은, 교수님, 추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리학 법칙에 의하면,
우리가 추위 라고 간주하는 것은 실상은 열의 부재입니다.
누구나, 그리고 무엇이든 에너지를 전달 할 때 연구가능한 것 입니다.
절대 0도 (섭씨 -2730도)는 열의 완전한 부재입니다.
그 온도에서는 모든 것이 반응 할 수 없거나 쓸모없어 집니다.
추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열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인간이 창조한 것 입니다."

학생은 계속했다.
"교수님, 어두움이 존재합니까?"
교수가 대답했다.
"물론 존재하지."

학생이 대답했다.
"다시 한 번 교수님이 틀렸습니다.
어두움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두움은, 사실상, 빛의 부재입니다.
우리는 빛을 연구 할 수 있지만 어두움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실, 뉴튼의 프리즘을 이용하여 흰 불빛을 여러 색으로 나누고
각 빛깔의 다양한 파장을 연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을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간단한 한줄기 빛으로도 어두움을 깨고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장소가 얼마나 어두운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빛의 양을 측정합니다.
이것이 옳지 않습니까?
어두움은 빛의 부재를 묘사하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마침내 젊은이는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악(惡)이 존재합니까?"
이제 교수는 확신하지 못한 채 대답했다.
"물론이지. 이미 말한 대로야.
우리는 매일 보지 않는가.
매일 일상에서 보는 인간의 잔인함에 존재하며
세상 곳곳의 각종 범죄와 폭력에도 존재하네.
이러한 현상들을 악(惡)
이외에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에 학생이 대답했다.
"교수님, 악(惡)은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스스로 존재하진 않습니다.
악은 단순히 하나님의 부재 입니다.
마치 어두움과 추위와 같이 하나님의 부재를 묘사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단어일 뿐 입니다.

하나님은 악(惡)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빛, 열과 같은 믿음, 사랑과 악은 다릅니다.
악은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을 때 벌어지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마치 열이 없을 때 추위가 오고 빛이 없을 때
어두움이 오는 것과 같습니다."

교수는 주저 앉았다.
이 젊은이의 이름은 앨버트 아인 슈타인이다.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웨이터의 법칙.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잘 대해주지만 웨이터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미국의 경영 및 인사관리에 진리처럼 퍼져 있는 ‘웨이터의 법칙’입니다.

2006년 웨이터의 법칙을 소개한 미국의 일간지 USA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거나 가까운 사람에겐 친절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거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과 파트너가 되면 결국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니 파트너로 삼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식당 종업원과 버스 기사 등은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허드렛일을 하는 그들이 엑스트라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가족이고 영웅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세 명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매우 정중하게 그들을 맞이하고 대접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이들은 바로 천사들이었습니다.
때로는 나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남루한 차림의 모습으로 천사가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들을 소홀히 여기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를 업신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 13:1∼2)

한 고급레스토랑에서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는 사업가 두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빙을 하던 웨이터가 실수로
그 중 한명에게 와인을 쏟았습니다.
옷을 버린 사업가는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미쳤어? 내가 누군지 알아?
여기 지배인 나오라고 해!”

이 사람이 미팅을 하던 사람은 브렌다 반스라는 의류업계의 거물이었는데,

그녀는 이 모습을 보고 당장 거래를 취소했습니다.

유명 IT기업 위트니스 시스템의
데이브 굴드 대표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계약 협상자가 “마침 아침에 샤워를 못했는데 잘됐네요.
양복도 사실 싸구려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라며 미소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미국의 빌 스완스가 정리한 비즈니스 규칙 33가지 중 하나인
‘웨이터 의 법칙’입니다.
웨이터의 실수에 대하는 태도를 보고 계약을 정해도 된다는 것인데,
빌은 다른 건 몰라도 이 법칙만큼은
예외 없이 정확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나보다 낮은 사람,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모습이

나의 성품 이며 믿음의 현주소입니다.

사회의 어렵고 약한 사람들을 주님을 대하듯이 섬기는 믿음의 성도가 되십시오.

주님! 사람을 외모와 가진 것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들에게 되도록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하십시오.
<어느 목사님의 묵상에서 >

 

옮긴 글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