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오산·평택 미군기지와 청와대, 몇 분이면 초토화"(종합)

 

 

 

북한은 14일 최근 군사적 압박에 반발, '선제타격'을 언급하며 "남조선의 오산과 군산, 평택을 비롯한 미군기지들과 청와대를 포함한 악의 본거지들은 단 몇 분이면 초토화된다"고 주장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4일 대변인 성명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엄중한 군사적 도발 광기가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단계로 치달았다"며 "미국의 날강도적인 정치, 경제, 군사적 도발 책동을 우리 군대와 인민의 초강경 대응으로 철저히 짓부셔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 최자윤]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초강경 대응, 선제타격 포함"

미국 본토도 언급…'김정은 지시' 시사

남한 군사 요충지 언급하며 '협박' 노골화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북한은 14일 최근 군사적 압박에 반발, '선제타격'을 언급하며 "남조선의 오산과 군산, 평택을 비롯한 미군기지들과 청와대를 포함한 악의 본거지들은 단 몇 분이면 초토화된다"고 주장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4일 대변인 성명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엄중한 군사적 도발 광기가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단계로 치달았다"며 "미국의 날강도적인 정치, 경제, 군사적 도발 책동을 우리 군대와 인민의 초강경 대응으로 철저히 짓부셔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미국이 걸어오는 도발의 종류와 수위에 맞는 우리 식의 적중한 초강경 대응이 그 즉시 따라서게 될 것"이라며 "초강경 대응에는 지상, 해상, 수중, 공중 기동을 동반한 우리 식의 불의적인 선제타격안을 비롯한 여러 안이 들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로 급히 방향을 돌린 칼빈슨호와 관련해 "핵 항공모함을 포함한 덩지(덩치) 큰 목표들이 가까이에 접근해올수록 섬멸적 타격의 효과는 더욱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이번 입장 발표가 '위임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시사했다.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은 지난해 9월 22일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성명이 언급한 오산, 군산, 평택 미군기지에는 공군 부대가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 공군의 정보수집 능력을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성명은 "우리 군대와 인민은 핵 타격 수단을 포함한 모든 초강경 대응을 따라 세울 수 있게 만단의 격동 상태를 항시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얻어맞고서도 즉시적인 대응이 없는 시리아처럼 우리를 대한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괌을 비롯한 미군기지들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우리의 전략 로켓군의 조준경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ksw08@yna.co.kr

[경향신문]

지난 11일 전북 전주 완주군의 한 야산에서 피의자 김모씨(53·여·왼쪽)가 시신 유기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진돗개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세살배기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유기한 신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아이의 어머니는 시신 유기에 동참하고 거짓으로 실종 신고를 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이비 종교 신도 김모씨(53·여)를 폭행치사·사체유기·사체손괴 혐의로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또한 시신 유기를 도운 모친 최모씨(41·여)와 교주 부부 안모씨(55)와 이모씨(49·여)도 사체유기·사체손괴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또 시신 유기를 도운 다른 김모씨(71·여)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4년 7월7일 오전 11시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연립주택에서 김씨는 최씨의 아들(당시 3세)이 전날 바지에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혼을 냈다. 아이가 울자 김씨는 “악귀가 씌었다”며 나무 주걱으로 머리와 입술 등을 때려 숨지게 했다. 모친 최씨는 이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들은 진돗개를 ‘영물’로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서울과 전주 지역에서 진돗개 10여 마리를 키우며 공동생활을 했다. 경찰은 이 종교집단의 신도가 20~30명쯤이며 이중 10여명이 공동생활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최씨는 2014년 2월 남편과 이혼한 뒤 딸(10)과 아들을 데리고 이 종교집단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김씨는 “악귀가 씌어 아이가 고집이 세고 말을 듣지 않는다”며 최씨의 아들을 수차례 폭행해왔다.

아이가 죽자 범행이 들통날까 두려워진 김씨와 최씨는 교주의 아내 이씨와 함께 아이 시신을 나무 상자에 넣어 이 종교집단의 다른 주거지가 있는 전북 전주 완주군으로 가서 근처 야산에 묻었다. 사흘 뒤 교주 안씨가 멧돼지가 시신을 파낼 것을 걱정하자 이들은 시신을 다시 파내 그 자리에서 화장하고 임실군의 한 강변에 유골을 뿌렸다.

 

최씨는 범행 후 한 달이 지난 2014년 8월 경찰에 ‘경기 부천의 한 백화점 앞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거짓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이 백화점 주변을 집중 수색하고 탐문을 벌였지만 아무런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최씨가 아들이 실종된 지 한 달 후에 신고한 점, 아들이 실종된 시간과 장소 말고는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점,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을 의심해 수사를 종결하지 않고 최씨의 주변을 조사했다.

경찰은 지난 3일 전주에서 김씨의 지시를 받아 시신을 유기할 땅을 팠던 다른 김씨를 설득해 진술을 이끌어냈다. 이 종교집단은 2015년 서울과 전주의 주거지를 없애고 경기 용인으로 모였다. 지난 7일 경찰은 서울 모처에서 최씨를, 다음날인 8일 용인의 한 연립주택에서 김씨 등 3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씨는 처음엔 자신이 아들을 죽였다고 거짓 자백하며 김씨를 감쌀 정도로 미혹당했다”며 “최씨는 뒤늦게 ‘죽은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김씨를 원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My confession in the Cross

(십자가 안에서 내 고백)

                                     written by - The true _




 

I've been the first to point fingers,

to bring up someone else's fault to light,

and to argue for changes.

I was hoping and convinced this was how I would make
our faith better and do a service to our Lord.

This was my way of justice.

나는 처음에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끄집어 내어,
빛으로 들고 나오기도 했으며,
변화를 위해 다투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을 잘 섬기는 길이요
우리의 믿음을 보다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라
확신했고 소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내 방식대로 의로움이었습니다.

Then,

I came to realize that I was pointing

fingers to myself exposing my own faults.

I saw myself on the very person

who I was pointing fingers at.

다음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자신의 잘못들을 드러내며
지적하는 손가락들이 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손가락질하며 지적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Then,

I saw our Lord still weeping in the Cross

after all this time while I was claiming

being on the true side

I saw it was I keeping Him up there.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진리 편에 서 있다고 주장하던 내내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여전히 눈물 흘리고 계셔야 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남을 정죄하는 그것들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 위에 계속 매달아 놓는 것임을.

Then,

I realized that the silent suffering of Him

in the Cross for someone else's sins was and

is His way of doing justice.

그리고,

나는 깨달았습니다.
다른 이들의 죄를 위하여

그분께서 묵묵히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고,
그것이 의로움을 위한 그분의 방법이란 것을...
                     
  < 번역/ 최 송연 >



 




이 詩의 작가님이신 The True님의
깊은 신앙심을 다시금 배우길 원하면서...
                                      

                        

 

 


우리가 전한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 하였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53:1,3,5,6)

 

사막은 은혜의 땅 18

나는 교회생활이 그렇게 기쁘고 재미있는 것인 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고 오묘하게 받아들여지며내 영혼을 쪼개고 다스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교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미국에 온 사람 같았다. 몇 주 동안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면서 기도하는 가운 데 아주 선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너는 환난 가운데 늘 감사하고 기뻐하라." 
  
그 음성을 들으면서 지난날 나의 삶이 슬라이드처럼 스쳐갔다. 한국에서 겪었던 수많은 환난과 고통의 순간들이 가시가 되어서 내 몸 곳곳에 화살처럼 박혀 있는 환상을 보았다. 사랑하는 둘째 누님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아픔, 삼청교육대에서 경험한 지옥 훈련의 고통, 그리고 폐병을 앓으면서 거의 매일 한 사발씩 각혈을 토해내던 때의 고통스런 순간들, 자식까지 버리고 나간 아내에 대한 분노, 아이를 구타하는 아내 등등….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있던 아픔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순간 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온몸을 떨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그 아픔은 한꺼번에 나를 짓눌러 왔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절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같은 말씀을 주셨다. 
  
"너는 환난 가운데 늘 감사하고 기뻐하라."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서 모든 고통들을 치유해 주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그 날 이후부터 나는 며칠 밤낮을 울면서 뜨겁게 회개의 기도를 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참된 선과 악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구별하는 영적인 분별의 눈을 갖게 되었다. 내 의식 가운데 선과 악이 확실하게 구분되면서 마음 속으로 이제는 더 이상 악의 편에 서지 않아야겠다는 결단을 했다. 
  
기도할 때마다 뜨거운 성령의 체험이 있었다. 수년 전 폐병 3기에서 치유되던 그날 새벽에 내 코를 통해 뭔가 액체 같은 것이 흘러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회개의 기도를 할 때마다 느꼈다. 그것은 환상적인 영적 체험이었다. 성령의 실체가 그렇게 분명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성령의 존재를 잘 믿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매순간 성령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는 신비하고 뜨거운 경험을 했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면서 직장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교인의 소개로 뉴욕 맨해튼에 있는 봉제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다. 뉴욕 맨해튼 8가에 있는 봉제공장은 미국에 이민온 한인이민자들이면 누구나 한번씩 거쳐가는 코스였다. 미국에 와서 잡은 첫 직장에서 나는 주급150달러씩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했다. 직장이라고는 했지만 성령의 불을 남달리 강하게 받은 내게 있어서 직장은 또다른 전도와 예배의 장소였다. 전도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내 마음 가운데는 복음을 전하고 불신자들에게 예수를 영접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용광로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 일하는 시간 동안 찬송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마쳤으며, 집에서 맨해튼으로 출근하는 지하철에서도 노방전 도를 시작했다. 영어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성경책을 들고 지하철 안에서 "Jesus Loves you, Believe in Him. He will give you a happy life!"를 외치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씨앗을 뿌리면 거두시는 이는 성령님이시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전도했다. 둘째 누님이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먼저 돌아가신 아픈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더 미친 사람처럼 열심을 내서 전도했던 것 같다. 복음을 듣지 못하과 아니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다면 물론 그 영혼도 불쌍하다. 그러나 나중에 천국에 가서 먼저 예수를 믿게 된 자로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데 대한 책망을 하나님에게서 듣게 될 것이 공연히 겁나기도 했다. 여러 사람에게 미친 사람 같다는 손가락질도 당했다. 직장에서 전도하다가 램을 맞기도 했다. 
  
"야, 너나 잘 믿어. 나는 필요 없으니까." 
  
"아저씨, 그래도 예수 잘 믿으시고 꼭 천당에 가세요. 아저씨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극성스럽게 전도하면서 알게 모르게 전도의 열매들도 많이 얻게 되었다. 이민 초기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수에 미쳐 돌아가는 나를 보고 형님은 당장 나가서 따로 살라고 고함을 지르곤 했다. 그리고 형님 집에 함께 있던 어머님도 근심스런 눈으로 "너는 왜 그렇게 요란하게 예수를 믿냐"라고 하시며 좀 조용히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몇 달 정도 형님 집에 얹혀 살던 더부살이 살림을 청산하고 근근이 모은 월급을 가지고 플러싱 인근에 방 하나짜리 아파트를 구해서 이사를 나왔다. 형님이 미국까지 불러 준 것도 고마운데 그 집에서 계속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 미안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자립을 하고 싶었다. 아들 성민이는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는데 내가 직장에 있는 동안 돌봐 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유치원에 보내기에는 형편이 되질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안정이 될 때까지 한국에 있는 셋째 형 님 집에 아이를 좀 맡겨 놓고, 나는 일하는 시간을 좀더 늘려서 저축을 더 한 후에 아이를 다시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이를 형님 집에 맡겨 놓기 위해 한국에 잠깐 나가 있던 동안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큰 형수가 중매를 서겠으니 사람을 한 번 만나보고 가라는 것이 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다시 이룬다는 것이 아직도 마음 가운데 큰 부담으로 남아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형수는 상대방 쪽에서 미국 영주권자라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아들이 하나 딸려 있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며 한사코 꼭 만나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 여자 쪽 집안이 돈이 많은 집안이라는 말이었다. 
  
"돈이 많은 부잣집이라고…" 
  
너무도 세상적이고 얄팍한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 당시 여자 집안이 부자라는 말에 혹해서 맞선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두어 번 만난 후에 일단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미국에 들어가서 초청 절차를 밟기로 약속을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이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아들 성민이에게도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열심히 교회생활,  전도 활동을 시작하는 등 한국을 방문하기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 가운데 한순간 성령님의 질책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출처: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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