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벤틀리를 두둔하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사는 모든 크리스챤들은 성화의 과정속에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지 못 할 자신만이 아는 죄악이나 상처가 모두들 있을 줄로 압니다.-) 하셨습니다.

예, 우리 성도들이 성화의 과정속에 있다는 것도 맞고, 다른 이에게 들어내지 못 할 자신만이 아는 죄악이나 상처가 모두들 있을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도 맞습니다. 죄가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은 거짓말 하는 자요,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지 않은 사람이기에 그 말씀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롬3:23절 참조)

그러나 그 죄와 상처가 과거 예수믿기 전의 사건이냐, 예수믿고 난 후의 사건이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예수 믿기 이전에 지은 죄라면 그리고 상처라면, 그 누구도 말 할 수 없겠지요. 주께서 이미 그의 흘리신 피로 사해 주셨는데, 주님보다 높으신 자가 누가 있어 형제의 잘못이나 과거의 상처에 대해서 왈가왈부하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날부터는 새로워져야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 고후5:17절 참조)예수 믿고나서도 여전히 죄가운데서 머물기를 기뻐한다면, 과연 그것마저도 우리가 간과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 하시니라(요8:11절 말씀)” 여기에서 분명 우리 주님께서는
“Go and sin no more!”라고 말씀하셨습니다! “sin no more” 이것이 용서받은 죄인들이 준수해야 할 수칙입니다. 그럼에도 개가 그 토했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그 씻었던 곳에 다시 들어가는 행위마저 미화시키려는 님들은 도데체 어떤 분들인지 묻고 싶습니다. 주님보다 더 큰 자들입니까? 주님의 법을 마음대로 뜯어 고칠 수가 있고, 관용이란 미명하에 성도들에게 헛된 교훈으로 죄의 길을 걷도록 종용하는 그 의도를 어떻게 받아드려야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벤틀리의 죄악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파렴치한 행위의 출처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죄는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들에게 영을 다 믿지말라고(요1서4:1절 참조) 하셨고, 우리가 이런 일이 터지기 전에 벌써 성서적으로 검증해 볼 때 틀렸다고 수없이 많은 형제자매들이 사랑으로 경고를 해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김승진이란 사람과 그때 당시 D19이란 필명을 쓰신 여기 이 글을 쓰신 성현경목사님은 우리를 향해서 “사랑이 없는자, 현대판 바리새인들, 영안이 어두운 자들’이라고 비웃으며 정죄하기를 쉬지 아니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벤틀리의 실체가 들어났음에도 아직도 홰개의 영이 보이지를 아니하는 오만함을 통탄하고 있는것입니다! 아시겠는지요?

벤틀리를 엘리사의 혈기로 다스린죄와 같다고 보시는 것도 참으로 황당한 망언입니다. 보십시오, 이 세상 법정에서도 죄의 경중이 있습니다. 살인이라고 해도 다 같은 살인이 아닙니다. 우발적범죄냐, 아니면 계획적범죄냐, 죄의 질에 대해서 그 처벌 또한 달라집니다.

엘리사선지자는 자신의 아픔이요, 상처인 대머리를 자꾸만 놀림받는 것에 화가 동해서 화를 불같이 내었습니다. 그 결과로 악동들이 죽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엘리사의 마음에 계속 품고 있던 죄질이 아닙니다. 우발적인 범죄로서 물론, 그것까지 없었드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겠지만, 인간이 신령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예로 들어, 하나님한 분 외에는 선한 자가 없으니, 사람을 신성시하지 말라는 영적교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벤틀리는 다릅니다. 그가 무서운 것은 그의 간음사실이 아닙니다! 그가 자신을 선지자라, 하나님께로부터 직통계시를 받고, 자기가 안수기도하면 성령이 전이 (Impartation)된다고 하며, 하늘에서 천사들이 자기에게 멧세지를 전해준다고 하여,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사탄의 하수인 노릇을 충실히 했다는 것과, 그 일로인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기존교회는 하나님의 영이 없는 교회요 자신에게 와야만 병이 낫는다고 하여 어리석고 무식한 영혼들,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교회를 멀리하게 유도하고 벤틀리나 다른 수많은 거짓교사들를 추종하도록 하는 여기에 그 문제점이 컸다고 봅니다.

그 옛날 한국의 박태선과 같고, 현재 전주 윤율리아와 같이 무서운 종교사기행각이였었고, 벤틀리의 간음은 당연한 결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종으로 울려주셨음을 지금이라도 깨닫는다면 우리가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Impartation….벤틀리의 안수로 인해서 그의 영력이 전이 된다는 것 아닙니까? 그의 음란한 영을 다른 이에게 전이 하고, 그의 죽은자와 교제하던 더러운 영이 전이되고, 그의 사기성이 전이되고…이 전이된다는 것이 영계에서는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악한 길로 전이되고 인도될 것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우리들의 사랑을 단 몇마디의 달콤한 말로 미화시키려는 님의 숨은 의도가 이 시간, 우리 모든 성도들, 그리고 지각이 있는 독자들의 안타까움과 거룩한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최송연/사모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부흥(?)의 현장을 보고서...


먼저 이 글은 순전히 부족한 그리고 개인적인 글이며
느낌임을 전재로 쓰는 글입니다.
제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분별력이 공인된 사람도 아님을
밝히면서도 어디까지나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미력하나마 성도를 섬기는 섬김이로서 그냥 지날 수 없기에
나름대로의 입장을 밝히는 바입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옵는것은
모든 현상들을 모조리 싸잡아서 생각하고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에 대하여 개인적인 모니터링을 소감으로 올리는 글이라
정확한 근거가 없다는것을 밝힙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소감이오니 그저 지나가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인간도 더러 있구나 웃어주시면 피차에
즐거우리라 생각을 합니다.

들어갑니다.

많이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마디 올립니다.
과거에 한국교회는 부흥회가 흥왕 했었습니다.
부흥강사의 열정적인 언변과 강한 카리스마는 회중들을 압도하였고
긍정과 부정적인 영향이 교차하는 가운데 교회의 외향적이며 엄청난 성장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것에 대하여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다소의 결함과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회심과 믿음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혹은 개인적으로 신앙의 열정을 얻어서 삶이 변화되는 일들이 많았다는걸
간증들을 통해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인간들의 불완전한 제도와 환경을 통해서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분명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우려를 표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급격하게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놀라운 현장들이 속속
보도되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늦은감이 없지않지만
다른 분들에 비하여 늦게야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성령의 역사" 라고 주장을 합니다.
집회는 연일 초 만원이고
동영상은 매체의 발달로 신속하게 각종 개인 블로그나 홈피나 카페를 통해
매일 업그래이드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화재의 현장으로 끊임없이
유도하고 있느것을 보게 됩니다.

각종 동영상은 일파만파로 전국을 강타하며
열광적인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예전부터 기독교 tv 체널을 통해서 미국이나 홍콩의
유명한 집회를 보왔습니다. 보면서 느낀 점은 영어를 모르니까
번역된 자막과 강사를 동시에 보느라 어지럽기는 했지만
참 잘한다는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저는 비록  모든면에서 졸하지만
설교 원고를 준비해서 하지 않으면 말한마디 못합니다만
거기 나오는 명 강사님들은 무대를 좌우로 자유로이
거닐면서 때로는 작게 혹은 강력하게 연설하는것을 볼 때
과연 잘한다며 스스로를 비교하며 좌절감을 곱씹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과연  저 강사님들에게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시니까 그렇지 하며 부러워 했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성령의 역사가 주어져서
저렇게 자유로이 설교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었습니다.

암튼간에,
그런 반면에 또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하여 정말 성경적인가? 라는 검증 작업을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집회 이름과 강사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미 유명 스타 강사들을 두고서 치열한 누리꾼들의
논쟁들도 점입가경입니다.

그동안 눈팅으로 죽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꼭 보라고 권유하며
제 카페에 동영상을 올렸기에 정말 시간도 없고 개인적으로 관심도
없었지만 큰 맘 먹고 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부흥회와 일부 유사한 은사 집회,치유집회를 걸르는
입장이었기에 그랫습니다. 그런 사역이 그르냐 옳으냐를 떠나서
순전히 개인적으로 갈급하지도 않았고 말씀을 가까이 접하기도
개으른 저로서는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간증집회역시도 저는 개인적으로 질색을 하는 입장입니다.
그 간증자들의 진정성을 의심해서가 아닙니다.
간증은 일생을 두고 한 두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간증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해도
본의 아니게도 사람들은 간증자가 뚜렷하게 인식이 될 뿐이며
나도 저 간증자와 같이 열심히 무엇인가를 결단해서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드롬과 환상을 줄 뿐이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 진정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낮아짐의 복 보다는
망함에서, 부도난 인생에서의 반전으로
일약 성공하는 신앙과 사업가로의 환상이 대두될 우려때문에...
더구나 인기 스타와 연예인들의 간증 역시 그 순간에는 감동일찌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존하는
경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지 않는가라는 생각에
일부러 피하는 입장입니다.

참으로 별스러눈 인간이죠 ^^

그러면 너는 잘났는가?
라고 혹시 질타 하신다면 "아닙니다"라고 정중하게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교단이나 교파나 제도권을 부인하지도 않지만
절대적으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인간은 다 불완전 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들고 세운 제도역시 불완전합니다.
그것은 교회도 동일합니다.
세상에 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기록되고 계시된
성경 말씀과 성령의 깨우침을 신뢰할 뿐입니다.

은사를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하거나 맹신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생각보다도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단순하게
덮어놓고 말씀을 믿는다고 타박 하기도하지만,
솔직하게 인간은 아무도 쉽사리 맘을 열지 않습니다.

누가  무조건 믿겠습니까?
이단종파나 사이비 집단에 빠진 사람들도
무조건 믿는게 아니라 나름대로 분석해보고 생각해보고
선택을 하게 된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과 죄로인하여 분별할수
없는 상태가 먼저임을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쉽게 어떤것을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것을
역설하는 중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신앙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의지적인 선택이기전에 먼저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것의 결과로 믿음이 온것이지요.

그렇다면 아직 그런지못한 저 사람들은 왜? 라고 질문하신다면
저는 왜 그런지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니 알 수없습니다
라고밖에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 갑니다.

너무 서론이 길었지요 ^^
나름대로 빠져나갈 궁리를 하느라고 조심하다보니...

제가 교만하다고 지적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현장에 있었나?" 라고 물으신다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암소리 말아라 자격이 없다고 하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만 관련자료와 집회 동영상을 객관적으로 본것이 전부입니다.
저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대동소이 한것이라 봅니다. 과거에 비하여 특별하다거나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한가지 다른게 있다면 과거에 비하여 엄청나게 세련되었고
각가지 음향이나 시스템의 놀라운 발전입니다.

현대 지성인들이 무리없이 거부감 없이 받아 드릴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가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성적으로 수준이 훨씬 세련미가 있습니다. 고급화되어서
왠만한 영화나 뮤지컬을 보듯 생동감이 전면에 흘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관전평이 그만큼 멋있었다는 비유입니다.

그러한 분위기와 연출이라면(이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 이것은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가 잘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잔뜩 기대하고 소망하는 이들에게는 굉장한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리적인 부분이 매우 격앙되었고 한층 고조 되었을 때 들려오는 강사의
목소리는 엄청난 효과가 있으리라 짐작 됩니다.
과거의 부흥강사의 걸걸하며 둔탁한 쇳소리에도 열광했었는데
지금의 세련되고 능숙한 강사의 목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능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제가 최근에 접한 동영상도 그랬습니다.
마치 최면을 걸듯(용서하십시오. 개인적으로 믿음이 없이 객관적으로
볼 때 그랬다는 것입니다.) 반복 되는 강사의 부드러운 소리는 회중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잔잔하게 호소력있게 흐르는 배경 찬송이나 보혈찬송,혹은 복음송은
특히 회개를 촉구하는 보컬과 사운드는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습니다.

간절하게 치유를 갈망해서
강단앞에 올라온 환자들은 이미 은혜를 받을 준비가
최고조로 달했던 것입니다.
강사의 선포에 곳곳에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준비된 도우미들은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잡아주면서
바닥에 눕도록 배려해 주고 담요로 덮어 줍니다.

어떤 부자유한 환자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 서는 것을
카메라는 따라갑니다. 강사는 그 환자에게 다가가서

계속 주문을 외우듯이 말합니다.

더   더   더를 외칩니다.

혹은 영어로 짧게 말하기도 합니다.(이것은 영어권 강사의 동영상입니다)
간간히 "예수 이름을 외치며 선언하고"
또 분위기를 반전하듯이 가라 않히면서 속삭이듯 말합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를 끊어질 듯이

때론 작게 때로는 좀더 확실하게 오고가며 반복하고
백 그라운드에 울리는 찬송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장내를
어우릅니다.

물론 제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국내외 동영상을 다 접할 시간도없습니다만 암튼 제가 볼 때
개인적인 느낌을 지금 적는 것입니다.
비난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그러한 집회에 참석 하셔서 은혜를 받으시고 치유를 받으신분들과
관계자님들께는 죄송합니다.

똑같은 현상을 보아도 보는 시각이 현저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동일한 성경을 보면서도 어떤이들은 분석하고 비평을 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합니다만
또 어떤이들은 감격하며 감사함으로 신앙하는 것도 봅니다.

믿음이 적은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이십니다.
성령님은 스스로, 자의로 행하십니다.
누구의 구속이나 지시나 명령에 혹은 간구에 사로 잡히시지도
않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거룩한 영광,권능,능력, 영원하심,권위,위엄이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바람처럼 운행하시며
오시기도 하시고 떠나시기도 하십니다.

생명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요 구주임을 기쁨으로 증거하십니다.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물론 병을 치유하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모든 믿는자들에게 생각나게 하십니다.
알게 하십니다.
믿게 하십니다.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어느 특별한 사람의 요청에
왔다갔다 하실까요?
그것도 병자를 치유하는 장면을 보고자 운집하였고
방송을 위해 준비한 곳에서 말입니다.
능력을 보기를 원하는 장소에서 과연 성령님이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시기를 기뻐하실까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거기에
많은 예수의 이름이 선포됩니다.
성령님을 부르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원하실까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집회의 현장에는 부흥 강사만 클로즈업될것입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강사의 카리스마와 열정을 볼 것입니다.
강사의 특별한 능력을 볼 것입니다.
오직 강사만 보이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거기에 예수께서 증거가 될까요?
거기에 성령께서 증거가 될까요?

하나님의 이름이 울려 퍼지겠지만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보다 강사에 열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강사에게 영광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혹시 성령의 은사를 받았습니까?
기도하면 환자가 고침을 받습니까?
방언이 나오고 안수하면 방언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가가 됩니까?
그럴수 있습니다. 예언도 나오고 환상도 보입니까?

그럴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 하십시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 입니다.
소멸하는 불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을 분노하십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일찍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막13: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막13:6)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막13:21~23)

이런 조짐이 언제 나타날까요?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것은 성전을 그 위용을 그 벽돌을 자랑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보는
이 큰 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것을 말씀하신 후입니다.
사람들은 성전이라고 자랑삼아 섬기는 우상 덩어리가 된 것을
예수님께서는 큰 건물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막13:4)

성령님은
누군가의 간구와 명령에 순종하시는 분이 아니올시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삶을 사시면서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치유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를 위함인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과 사도들역시나
그들의 삶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 이심과 그의 십자가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능력을 받아서 세상을 뒤집어 엎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에 오신 구세주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병을 치유하자고 성령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예수님께서도 광야로 가셨고 거기에서 40일동안 주리셨다는것을
기억하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했던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성령받고 방언 은사를 받으면 능력을 받아서 자기가 영광을
받아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조심하십시오.

본인은 아니라고 성령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하실찌라도
결과적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면
빠져 나올수 없다는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단도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위장해서 얼마든지 능력과 표적을 행한다고
바울사도가 경고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친다는 좋은 명분으로
집회를 하다보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져가는걸 경험할 것입니다.

도대채 무엇을 구하십니까?

성령을 구해서 뭘하시려고요?

한번 비교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열광하는 집회는 방언, 치유,표적,은사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라고 합니다. 그럴수 도 있습니다. 분명 표적과 기사는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마가복음 13장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인정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은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증거하십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막1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막13: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막13:6)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막13:21~23)

주님은 분명하게 경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골방에서 겸손하게 무릎꿇고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죽는 것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비우고
낮아지며
낮아지기를 소원하는 심령에 기쁨으로 임하신 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의 온 영혼을 치유하시며 깨끗하게 하시며
말씀으로 채우시며 먹이시며
오직 예수님만 보게 하십니다.

조용히
낮은곳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셨던 예수님의 발자국을 따라서
한 걸음씩 걷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찾는이가 적은 곳입니다.
길이 좁고 협착하여 걸어가기에 힘이 드는 곳을
비틀거리며 가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오직 주님이 아니면 안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주님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무능한 자들에게
성령은 임하십니다.

사람이 보기에
흠모할 가치가 없는 초라하고 볼 품없는 연약한 자들에게
작은자들에게 성령은 기쁨으로 임하십니다.
그렇게 형편없는 소자들에게 성령은 임하시고
권능을 주셔서 땅끝까지 가게 하십니다.

빈 손으로 갈찌라도
제가 수고해서 자비량해서 말씀을 전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본인이 수고해서 밥을 먹으며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곤핍하나 감사합니다.
병들어도 감사합니다.
가난해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성령은 오십니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크게 날아 오르기를 꿈꾸십니까?
예수님은 아주 낮은 곳까지 내려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시려면 땅 바닥에 엎드리지 않으면 안되는거 아십니까?
성령의 능력은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말에서 굴러 떨어져서
맨 발로 땅을 딛고 기어가는 자로 만드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으로 살고 예수님으로 죽는 그런 자리로
성령님은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원하십니까?

지금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는가를 생각해 보세요.
무엇을 갈망하는가를 살펴 보세요
성령님이 어디에 관심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세요.
오늘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들어 보세요.

두서없는 글입니다.
그저 작금의 현상을 보면서 부족한 제 안에 울리는 소리를
적었습니다. 함께 생각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기를 소망해봅니다.
긴 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008-07-31. 주님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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