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 희생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이솝이야기에는 이런 우화가 나옵니다. 하루는 늑대가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리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늑대는 긴 주둥이를 가진 학에게 자신의 목에 걸린 가시를 뽑아주면 후하게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은 학은 벌린 늑대의 입 안으로 긴 주둥이를 넣어서 늑대의 목에 걸렸던 가시를 성공적으로 뽑아 주었습니다. 곧 이어 학이 늑대가 약속한 보상을 요구하자 늑대는 너무너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늑대의 입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놈을 본 적이 있어? 너는 내 입 속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온 것만으로도 큰 보상인줄 알고 내게 감사해야 해! 목숨을 건진 은혜를 생각해야지…….”

늑대와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술 안마시고, 담배 안 피우고, 텔레비전 연속극 안보고, 비디오 안보고,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마땅히 자기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들을 제거하게 되었으면 제거하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도리어 자기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베푼 것 마냥 생각해서 그 때부터는 자신들이 하나님 때문에 좋아하는 것을 못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는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희한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비디오나 연속 방송극을 안 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이 “늑대” 수준임을 깨닫고 당장에 회개하셔야 합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뻔뻔스러운 늑대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희생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너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묵고 싶다고 했을 때, 삭개오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봉사 자체도 은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특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수다 떨 시간이 없는 것은 자식 때문에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 인하여 가질 수 있는 축복이요 은혜요, 특권입니다. 남편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은혜이고, 아내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도 은혜 아니겠습니까? 혹시 아내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잘못된 사고방식을 반드시 올바로 고쳐야 합니다. 남편을 위해서 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고, 남편을 위해서 도울 수 있으면, 도울 남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아내와 대화시간을 갖는 남편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30분의 시간을 내는 것을 “굉장한 희생”으로 생각하는 남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를 위한 시간이 곧 남편을 위한 시간이고, 아내가 살아야 남편도 살 수 있고, 아내가 기쁨을 만끽할 때 남편도 집에 들어오는 것이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봉사를 희생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봉사는 희생이 아니라 은혜요 축복임을 명심합시다!

은사대로 일하는 것도 희생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은사를 사용해야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부르고 싶어서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면서 큰 희생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착각하고 있는 분입니다. 내가 찬양 부를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지만, 더 좋아하는 사람은 부르는 사람 자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희생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찬양대원으로 섬길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 일을 하면서 억울해 하면 안 됩니다. 때때로 처음에는 열심히 봉사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혼자서 수고하는 것 같아 억울해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분들에게 그러면 쉬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면 속으로는 대단히 섭섭해 하십니다. 왜냐하면 은사를 사용할 때, 삶에 기쁨이 오기 때문이지요.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은혜요 축복이라는 사실을 인정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을 잘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분이지, 우리들을 이용하고 이득을 얻으려 명령을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는 것도 우리를 위하여 명하시는 것이고, 성경을 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인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해서 하시는 말씀이고, 예배에 참석하라고 하는 것도 우리를 위해서 주시는 말씀이고, 봉사를 하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일감을 주시는 것도 우리를 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자녀들로서 희생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당장에 멀리 쫓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지혜롭게 사는 것이지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4-27). 술 마시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고, 손수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고, 양보하고, 남편 뒷바라지를 해 주기 위해서 수고하고, 집안의 질서를 세우고, 비디오 보지 말고, 연속극 보지 말라는 것은 지혜롭게 살라고 권하는 것이지 희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지혜롭게 살라고 하시는 권고입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미련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담배 피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무엇보다도 나와 내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하루에 몇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야 말로 희생이 아니라 은혜인 동시에 지혜인 것입니다. 아무리 옆집 여자가 돈을 물 쓰듯 하면서 놀고 자고 먹고 멋만 부리며 산다고 해도 조금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 교육 안 시키고 그 시간에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똑 같은 것이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시키기 위해서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희생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 사는 최고 최선의 삶입니다.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야말로 은혜를 깨닫고 은혜 가운데 기쁨과 감사로 사는 차원 높은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로써의 삶 속에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고생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기독교인들이라고 특별히 더 고생하는 것도 아니고, 덜 고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고생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신자의 고생은 가치 있는 고생이고, 불신자의 고생은 무의미한 고생이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창세 이후, 지금까지 온 우주에서 희생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 이외에는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베푸신 사랑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나 때문에 희생당하신 예수님에게 나의 생애를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예수께 받은 은혜의 일부분을 이웃들과 나누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은 희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소위 말하는 “희생”은 실질적으로는 큰 은혜를 값없이 받은 자로써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값없이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 가운데 일부를 값없이 받았던 대로 값없이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일 뿐입니다. 즉 나의 희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여 받은 은혜를 도외시하면 안 됩니다. 과거에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닐 때, 양치기의 고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스스로 자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맹수들로부터 나발이라는 부자의 양 떼를 지켜 주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즉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은혜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양 떼의 소유주였던 나발은 이런 다윗의 선행을 알아주기는커녕 도리어 “내가 언제 너에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삼상 25:21). 이 사건의 전말을 듣고 보신 하나님께서는 열흘 정도 후에 나발을 치셔서 그의 생명을 취하여 가셨습니다.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설사 비록 내가 부탁한 것이 아니더라도, 은혜를 받았으면, 적어도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갚을 수 있으면 갚을 줄 알아야 당연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해서 아깝게 생각하거나 희생한다고 생각하거나 억울해 하면 나발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요즈음은 값없이 무한한 은혜와 축복을 받으며 살고 있으면서도 신앙생활을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자녀들을 교육시켜 달라는 부탁에도 부모님이 “그러면 제 인생은 뭐예요?”라고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택함 받은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제부터는 희생이라는 말을 없애고, 은혜와 감사라는 말만 하면서 살아간다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더욱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세  운  돌    2/10/2006_________________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Remove not the ancient landmark, which thy fathers have set.

담임목사 최영호
www.sewoondol.org   www.deliverusensemble.com



출처: USA 아멘넷/ 공부합시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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