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부에

13세기 후반 토스카나 지방에서 활약. 1301년 피샤의 성당에서 일하다 세상 하직

장엄한 성모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1280)
 

지오토(Giotto di Bondone:1266-1337)

어둠에 매몰되어 있던 고대 예술에 불을 당김(보카치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비잔틴양식을 벗어나 피렌체파를 형성.투시법에 의한 공간 묘사에 성공.
인습적인 예술관으로부터 탈피 : 중세의 경직된 형식으로부터 예술을 해방시키고, 회화의 인물에 인간성과 현실감을 불어넣음.
종교화에 자연주의적인 묘사를 도입 : 자연주의적인 표현을 통해 신앙의 독실함과 인간의 미덕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그려냄.

세상의 물건을 거부하는 프란체스코(1297-99)
프란체스코의 일생을 벽화로 주문받은 25장면 중 하나로 프란체스코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을 받기 위해, 현세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옷을 아버지에게 돌려주는 장면. 그림의 상하좌우를 보면 위엔 석가래 모양이 아래엔 커튼이, 그리고 좌우엔 기둥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이 장면은 건물의 창 밖 풍경처럼 그려진 것이다. 배경의 건물 또한 원근법을 적용시킨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새에게 설교하는 프란체스코(1297-99)

유다의 입맞춤  십자가에못박힌예수  최후의심판  영광의성모(1300-03년) 
 
-이은기의 멀티미디어로보는 서양미술사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베를링기에리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1220-30년경,루카, 빌라 쥬니지 국립박물관)
십자가에 매달린 눈을 뜬 예수이지만 마치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것 같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부활하여 영원하게 된 승리의 예수인 것이다.
쥰타 피사노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1230-50년경.볼로냐, 산 도메니코)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성프란체스코는 자신도 예수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종교운동은 그들의 기도 대상이었던 예수님의 모습까지 바꾼 것이다.
치마부에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1280년경, 피렌체, 산타 크로체)
예수의 몸도 십자가에 매달려 휘어진 모습으로 고통스런 표정과 함께 인체의 볼륨감까지 살린 인간의 형상이다.
지오토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1290)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 어깨는 아래로 쳐지고 고개는 앞으로 숙여지고, 엉덩이는 뒤로, 그리고 무릎은 앞으로 튀어나올 것이다. 13세기의 100여년 사이에 기독교의 예수는 영원한 절대자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회화는 상징에서 사실로 변한 것이다.

예수의 죽음

작가미상 "그리스도를 애도함"(1164.마케도니아 성 판테레이몬 수도원)
작가미상 "그리스도를 애도함"(1295.마케도니아, 성 클레멘트 교회)
지옷토의 "그리스도를애도함"(1304-06)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그려진 예수의 일생 중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을 매우 인간적인 감정으로 해석하였다.(사실적) 예수의 시신을 껴안고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 마리아, 양팔을 벌린 채 놀라워하는 여인과 두 손을 뺨에 대고 슬퍼하는 여인, 예수의 발을 만지면서 못 박힌 자국을 보며 애통해 하는 여인, 그리고 두 팔을 뒤로 젖힌 채 탄식하는 제자 등에서 우리는 인간의 감정을 풍부히 느낄 수 있다.


프란체스코

보나벤투라 베를링기에리"새에게 설교하는 프란체스코"(1235년.페샤, 성 프란체스코 교회 )
지오토의 "새에게 설교하는 프란체스코"(1297-99.아씨지, 성 프란체스코 교회)
새들마저도 프란체스코의 설교를 경청하였다는 이야기로 두 그림을 비교하면 지오토는 나무와 사람, 그리고 새의 비례를 사물의 크기대로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요한 것을 크게 그리던 중세의 방법에서 사물외관의 비례를 중요시하는 객관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마리아 신앙과 사회
13-14세기 동안 확산된 마리아 숭배 신앙은 어머니의 미덕을 중요시하였다. 수호성인이였던 마리아 신앙이 가장 크게 발달한 곳은 이탈리아 중부 도시 시에나였다. 당시의 종교는 종교적 기능과 더불어 정치적인 기능도 지녔다.

두치오의 "존엄한 마리아(1308-11년.시에나, 두오모 박물관)
마리아 제단화는 시에나에서 점점 크게 제작되어서 높이214cm에 폭이 412cm에 달한다.
 
안제리코(Beato Angelico 1387-1455)

피렌체 출신으로 프라 안젤리코의 본명은 지오반니 다 피에졸레(Giovanni da Fiesole)이다. 수도사의 이름 앞에 붙는 명칭인 "프라(fra)"가 말해주듯 그는 화가이자 수도사였다. 일생을 수도원에서 보낸 만큼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수도원 벽의 프레스코화였는데, 독특하게도 그의 거의 모든 그림의 주제는 성서에 의거한 성스러움과 기독교 진리를 찬양하는 것이다.

수태고지 동방박사의예배  성모대관  수태고지와 동방박사들의 경배  현성용(顯聖容)  산 브리지오의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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