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레스키 : 이전의 고딕식 건축과 완전히 다른 쾌적한 건축양식

 마사치오 : 명암법과 원근법을 구사

 도나텔로 : 현실감을 갖춘 고전적 균형의 조각

 보티첼리: 신 플라톤적 이상인 아름다움의 세계 표현

브루넬레스키
브루넬레스키는 이전의 고딕식 건축과 완전히 다른 쾌적한 건축양식을 만들어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401년, 피렌체 세례당 문을 위한 공모작)


두오모대성당(1420-36년, 피렌체)
고딕 성당의 뾰족한 지붕 대신 고대로마 방식의 둥근 지붕으로 대체, 벽돌을 2중으로 쌓아 지탱하게 하는 매우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산 로렌조성당(1421-40년, 피렌체)
내부는 가는 원기둥을 아치로 연결하고 지붕을 평평하게 하는 바실리카 방식을 빌어 옴으로써 합리적이고 여유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인노첸티의 병원회랑(1419-24년, 피렌체)
기둥과 기둥사이, 기둥과 벽 사이 그리고 바닥에서 주두 바로 아래까지의 길이를 일치시킴으로써 하나의 정입방향체를 만들고, 이를 공간에서 반복시킴으로서 정돈감을 주었다. 그리고 큰 아치 위에 작은 창문을 두어 율동감을 주고 있다.

 
기베르티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1401년, 피렌체 세례당 문을 위한 공모작)
 
길드의 수호성인상주문이 미술에  끼친 영향
 종교적 기능보다 피렌체 사회의 정치. 경제적 역할로 자리함.


 각 길드를 상징하는 조각품들을 주문해 공공장소의 중요 위치에 배치함으로  조합의 위치를  정착시킴.
 원래 세리였던 마태오:은행가 길드의 수호성인
 낙타털을 입고 다녔던 세례요한:모직상 길드의 수호성인이고,
 용을 창으로 찔러 공주를 구한 죠르지오:갑옷제조업자의 수호성인
 이교의 상 제작을 거부하였던 기독교 초기의 순교자 4명:건축가와 조각가의 수호성인
 마르코:면직 공업자들의 수호성인

 고대 조각을 모범으로 삼음(사실적 묘사의 회귀)

예시 작품들

기베르티의 세례요한(오르산미켈레 성당 전면, 피렌체)  마태오(오르산미켈레 성당 전면, 피렌체)
피렌체의 대성당과 시청을 잇는 시내 한 가운데엔 오르산미켈레라는 성당 외벽에 가 제작한 14개의 감실 중 두 작품이다.

난니 디 방코의 네 성인(1411-13년경.오르산미켈레성당, 피렌체)

도나텔로의 성 죠르지오(1415년경. 오르산미켈레성당, 피렌체)
 
가족 예배실의 벽화 유행

회화의 발달 계기가 됨.
양쪽 벽면이나 제단 양쪽에 가족 예배실에 석관을 둠.

산타 트리니타의 사세티(Sassetti)家 예배실도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목동들의 경배 와  사세티 부부의 경배(1483-85년)
가운데 <목동들의 경배>가 제단화로 그려져 있고, 그 좌우엔 사세티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이고 좌우의 벽엔 그들의 석관이 안치되어있다.

교황으로부터 수도원 인증을 받는 프란체스코(1482-86년)
중앙과 좌우 벽면의 중간과 윗단엔성 프레체스코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엔 성 프란체스코와 수도사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는데그 중 오른쪽 앞에서 두 번째 인물은 아래 하단에 그려졌던 이 예배실의 주인 프란체스코 사세티임을 알 수 있다. 왼쪽엔 이미 성장한 세 아들을 두고 아직 어린 넷째 아들은 자기 옆에 그리게 하였다.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검은머리의 옆면 인물은 로렌조 디 메디치이며 그 옆은 피렌체에서 명망 있던 안토니오 푸치로 사세티의 사돈이다. 그리고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는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은 로렌조의 아들들과 그들의 가정교사였던 인문주의자들이다. 메디치 은행의 제노바 지점장이었던 사세티는 메디치家의 총수인 로렌조를 자신의 옆에 그리고, 그의 가족까지 함께 넣음으로써 그들 가문과의 결속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이를 통해 당시의 종교와 정치, 경제 그리고 미술의 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도나텔로

도나텔로는 현실감을 갖춘 고전적 균형의 조각 완성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1412-13년, 나무, 높이168×173㎝. 피렌체, 산타크로체성당)
이 작품을 본 브루넬레스키는 도나텔로에게 어떻게 십자가에 예수를 매달지 않고 농부를 매달았느냐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에서 도나텔로가 보여주는 현실감을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다.

성 죠르지오(1416년경, 대리석, 높이214㎝.피렌체, 바르젤로 박물관)
고전조각의 조형미를 구현하였다. 콘트라 포스트 자세와 당당한 양감, 8등신의 비례 등 고전적인 이상을 실현시켰을 뿐만 아니라 감실 배경의 무늬를 없애고, 상을 조금 작게 함으로써 조각상이 배경의 공간에서 여유있게 놓이도록 했다. 그가 브루넬레스키와 마사치오와 함께 교류하면서 일구어낸 원근법에 대한 관심의 결과이다.
성가대석(1439년, 대리석 348-570㎝.피렌체,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로마 조각에서 모티브를 빌어 왔으나, 1410년대에 지향하던 고전적인 질서는 거부하고 있다. 분방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이 부조는 교회의 성가대석을 위한 것이지만 매우 이교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1457년경, 나무, 높이188㎝.피렌체,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도나텔로는 막달라 마리아의 처절한 기도와 나아가 인간의 참회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를 농부와 같은 현실의 인물로 이해하던 도나텔로에게 조화로운 고전적 아름다움은 오히려 공허한 가상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마사치오(Masaccio 1401-1428)

그의 작품은 살아있는 진실 그 자체, 자연 그 자체 - 바자리

피렌체에서 출생한 마사치오는 26살에 요절했으나 15세기 회화 분야에 있어 경탄할 만한 작품을 남겨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어머니.
평면상에 처음으로 현실적인 3차원 공간을 재현 : 원근법과 명암법을 조합
이론적으로 공간을 묘사 : 공간과 양감의 표현법 체계를 수립 
삼위일체  소실점

"성 삼위일체"라는 주제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하나님, 양옆에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 렌치 가(家)의 사람들로 밝혀진 봉헌자들을 그린 것이다. 벽화 아래에는 묘소와 접하는 부분에 해골이 그려져 있으며, "나도 일찍이 그대와 같았노라. 이제 그대도 나와 같으리라"는 비문이 적혀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그를 부축하고 있는 두 팔 벌린 하나님은 마치 실제로 매달린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자연스런 사실감이 느껴진다. 이는 마사치오가 적용한 단축법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인물들의 의상의 색감과 주름, 옷 속에 들어 있는 신체의 각 부분들은 자연광선의 명암으로 처리하여 실제적인 공간감을 재현하였다. 이 제단화 속에 적용된 투시도의 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소실점(The Vanish Point)은 바로 그리스도의 머리 부분이다. 과학적인 선원근법을 시각적으로 성공적으로 적용한 이 작품 이후로 르네상스 회화는 혁신적인 발전을 꾀하게 되었다
이 그림에서의 소실점은 바닥으로부터 153cm 높이에 위치 있는데 이는 키 162cm 정도의 사람이 그림 앞에 섰을 때 눈의 위치에 해당된다. 마사치오가 벽화에 구현한 이 원근법은 매우 과학적이어서 우리는 벽화의 감실 깊이까지 계산해 낼 수 있다
헌납금

성추방과 더불어 카르미네의 브랑캇치 예배당에 그린 그림으로 회화사상 신기원을 이룸

낙원추방(첫 나체와 비극의 표현)

길고 폭이 좁은 공간에 천국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를 그린 것이다. 공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마사치오는 왼쪽에 천국의 문을 그려 넣음으로써 주제를 단순하고 재치 있게 묘사하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천국문에서 쫓겨나 반대편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화면은 오른쪽으로 개방된 느낌을 갖게 된다. 문 위에서 그들을 따르는 천사의 존재, 가야할 곳을 가리키는 천사의 손동작 역시 공간을 확장시키고 있다. 낙원에서 쫓겨나는 두 사람의 후회와 슬픔어린 표정이 인상적이다.

제롬과 세례자 요한  병자를 치료하는 성 베드로 
프란체스카(Piero Francesca 1416-1492)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섯가지의 기하학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피렌체에서 활동. 당시 일류 수학자이기도했던 그는 그림의 구도에 원근법과 색채법을 적용해 저서를 편찬하기도 함. 예술을 위해 논리적연한 수학.기하학적 견해와 기법을 도입.
프레스코화의 획기적인 기법 : 완성작과 같은 크기의 밑그림-밑그림의 윤곽선을 따라 작은 구멍을 뚫어 목탄으로 문질러 형태 잡는다(형태의 정확성)
군더더기 없는 화면과 아름다운 색채 : 도형적인 화면과 아름다운 색채의 조합.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부부초상
배경이 이렇게 멀리 보이게 하려면 아마 높은 건물의 발코니에서 주인공을 아주 가까이 놓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고대의 메달에 그 근원을 두고있는 옆면 얼굴은 정치가들이 즐겨 사용하였는데, 3/4각도의 초상이 많이 그려지던 15세기 후반에 페데리코만이 정 옆면을 사용한 것은 전투에서 잃은 한쪽 눈의 흉한 모습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눈 사이가 푹 들어가고 메부리 같이 강하고 큰 코의 묘사에서 우리는 이 초상을 사실적이라고 판단하기 쉽지만, 이렇게 특정부분을 사실적으로 한 반면 전체가 전달하는 이미지는 매우 치밀하게 이상화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매맞는크리스트(1445) 
건물밖에 있는 인물은 아주 크고 건물 안의 인물들은 작다. 우리는 이것이 거리에 따른 차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정확한 원근법이 구사되었기 때문이다. 바닥의 기하학적 무늬가 기울어진 각도는 바로 보는 이의 눈 높이에 있는 소실점에서 얻어진 수학적인 계산이다.

크리스트의세례 참된십자가역사 성 줄리앙 콘스탄틴의 꿈 브레라의 제단화

 -이은기의 멀티미디어로보는 서양미술사에서-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부활
십자가형을 받고 매장된 지 3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를 위엄에 가득 찬 모습으로 묘사. 수직선과 평행선을 직각으로 조합시킨 골조의 강력함이 그 위엄을 만들어 낸 포인트다.
배경인 좌우측의 나무 중 오른쪽은 잎이 무성하지만 왼쪽은 앙상한데, 이 또한 '부활', '생명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병사들의 모습은 모두 삼각형 구도를 지니는데, 이들은 다시 예수를 포함해 큰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왼쪽 끝에 있는 병사의 자세는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 응용.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1884∼86년
쇠라는 미학에 큰 관심을 가졌던 수학자 샤를 앙리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앙리는 음악에 관철되는 성격을 색과 선에 접목시켜 동일한 법칙을 규정하려고 시도했다. 쇠라의 주제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생활을 즐겨 다뤘지만, 한편으로 상징주의자들이 애호하던 신비감과 분위기를 그 안에 부여했다
<아스니에르의 미역감기>으로 당시 젊은 화가들에게 중심적 인물로 부상한 쇠라는 바로 두 번째 대작인 이 작품에 착수했다.  모티브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밝은 야외에서의 인물들의 모습이지만, 등장 인물의 수가 많아지고 땅의 부분에서는 빛이 닿는 부분과 그늘진 부분의 대비로 구도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이 제작될 동안 쇠라는 매일같이 아침부터 그랑자트 섬에 나가 여러 포즈를 현장에서 스케치하고, 오후에는 그 모습들을 새롭게 조형적으로 만들어 화면에 배치하곤 했다. 쇠라는 1884년 5월부터 작업에 착수해서 1985년 3월까지 대강의 윤곽을 잡은 뒤, 1985년 10월에 다시 작업에 들어가 1986년 5월에 이르러서야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순색의 작은 반점의 병치로 더욱 완벽한 분할 묘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정감적인 인상파를 극복하고, 그 고유의 과학적 인상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1886년 제 8회 인상파전에 큰 반항을 일으켰다. 3년 동안 이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쇠라는 아침 일찍부터 라 그랑드 자트 섬에 나가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아틀리에서 그들의 모습을 조형적으로 새롭게 창조해 화면에 배치시켰다.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506)

동판화가로 도나텔로의 영향을 많이 받음. 궁중화가로 교황에게 초빙되어 작품활동

만테냐는 파도바에서 1459년 만토바 궁정으로 떠나기에 앞서 최초의 걸작, 베로나의 산 제노 교회의 제단화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본래 제단화의 중앙 패널이었는데, 19세기 초에 현재의 상태로 분리되었다. 양옆의 패널은 투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은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을 수직으로 3등분하면 그림의 축을 이루는 그리스도와 양옆에 죄인이 각각 세 개의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구도가 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화면 상단에 역삼각형의 구도가 형성되고, 아래에는 비통한 표정의 신자들과 로마 군인들이 이루는 삼각형의 구도가 그리스도의 발치에서 만나게 되는 불안정한 구도를 보여준다. 만테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더욱 비통하게 그려내고자 불안정한 역삼각형 구도 배치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죄인들의 몸은 이미 죽은 상태로 핏기 없는 엷은 푸른빛으로 채색되었다. 세밀하게 묘사된 인물들의 감정 표현과 색채 묘사, 후면으로 길게 이어지는 언덕 마을에 적용된 정확한 원근법, 인물들의 조각적인 입체감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그림 전반에 선명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그리스도 책형( 刑)"을 주제로 그린 얀 반 아이크의 작품은 시선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게끔 되어 있어서 감정의 개입이 차단된 반면, 만테냐의 작품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우러러보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긴장감을 일깨워 준다.

 

갈보리언덕
만테냐는 파도바에서 1459년 만토바 궁정으로 떠나기에 앞서 최초의 걸작, 베로나의 산 제노 교회의 제단화를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본래 제단화의 중앙 패널이었는데, 19세기 초에 현재의 상태로 분리되었다. 양옆의 패널은 투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은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을 수직으로 3등분하면 그림의 축을 이루는 그리스도와 양옆에 죄인이 각각 세 개의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구도가 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화면 상단에 역삼각형의 구도가 형성되고, 아래에는 비통한 표정의 신자들과 로마 군인들이 이루는 삼각형의 구도가 그리스도의 발치에서 만나게 되는 불안정한 구도를 보여준다. 만테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더욱 비통하게 그려내고자 불안정한 역삼각형 구도 배치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죄인들의 몸은 이미 죽은 상태로 핏기 없는 엷은 푸른빛으로 채색되었다. 세밀하게 묘사된 인물들의 감정 표현과 색채 묘사, 후면으로 길게 이어지는 언덕 마을에 적용된 정확한 원근법, 인물들의 조각적인 입체감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그림 전반에 선명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그리스도 책형( 刑)"을 주제로 그린 얀 반 아이크의 작품은 시선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게끔 되어 있어서 감정의 개입이 차단된 반면, 만테냐의 작품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우러러보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긴장감을 일깨워 준다.

 

파르나수스
그리스 신화의 파르나수스 산을 찾아보려는 도상해석학이 시도되기도 했던 이 작품의 주제는 아직까지 정확한 정설이 없으며, 15세기 말경 당시 귀족이던 이사벨라 데스테의 "서재"를 장식했던 만테냐의 이 작품과 더불어 로렌초 코스타의 <코스무의 우화>, 페루지노의 <우의화> 및 <정결의 승리> 등의 그림이 미술사가들과 역사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 작품은 만테냐의 작품 중에서도 고고학적인 박학함과 서사시적 표현을 궁극적으로 높인 고전적인 경향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끄는 그림이다. 화면 구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굴속에서 나와 손을 쳐드는 몸짓을 하는 불칸이 위치한 왼쪽으로부터 시작해서, 중앙에 아치 모양의 바위에 서서 살며시 접근하는 비너스와 마르스, 그리고 오르페우스를 따르는 무희들을 거쳐, 마지막으로 오른쪽으로는 말과 함께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에 이르고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세 요소는 각각 개방적이면서 서사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집중성과 병렬성을 가지고 있다.

 

형장으로끌려가는 성야곱  천사가있는성모자  겟세마네동산에서기도 성세바스찬 예수죽음의애도
 
기를란다이요
보티첼리와 동시대 화가로 활동했던 기를란다이오는 15세기 말경에 피렌체의 가장 이름높은 작업장의 책임자였다. 그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가대에 있는 성모의 전 생애를 담은 그림, 그리고 피렌체 소재 산타 마리아 마델레나 데 파지의 체스텔로 성당의 예배당에 기증할 작품들이 로렌초가(家)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었다.
바사리에 따르면 이 그림들은 기를란다이오 두 형제에 의해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아하고 빛나는 선으로 그려졌고, 로마 화풍의 고전주의적 아치를 벗어난 기념비적인 표현기법을 보여주는데, 색채의 단순성과 선의 조화는 그림의 정신적인 깊이를 더욱 빛나게 한다.

노인과손자의초상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가 개척한 사실주의적인 화풍에는 시대고증이나 당시 풍속의 증거가 되는 장면들을 찾아 볼 수 있다. 때때로 그는 시대에 맞지 않는 묘사를 덧붙이기도 하였는데, 이는 개성적인 인물상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였다. 다시 말해, 초상화에 있어서 모델의 딱딱한 표정을 사실적으로만 그리는 것보다는 때에 따라서는 세부의 정교한 묘사를 통해 사람들의 표정을 특징적으로 잡아 내는 것이 애정어린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를란다이요의 초상화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당시 유명한 은행가였던 프란체스코 사세티의 초상을 그린 이 작품이다.
 이 초상화를 그리는데 있어서 기를란다이오는 인물의 사회적 지위를 표면에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모델의 보기 흉하게 큰 울퉁불퉁한 코를 솔직하게 그릴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힘이 넘치는 늙은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사세티는 자기에게 기댄 손자와 함께 있으면서 자기자신의 삶의 생기를 느끼는 듯한 모습이다. 검정과 잿빛을 주조음으로 하는 배경 앞에서 타는 듯한 빨간빛의 의상은 늙은이에게 잘 어울리며, 마치 화가가 가족의 혈연을 강조하는 듯이 어린 손자의 모자와 옷에도 되풀이해서 표현해내고 있다.

성모의방문
보티첼리와 동시대 화가로 활동했던 기를란다이오는 15세기 말경에 피렌체의 가장 이름높은 작업장의 책임자였다. 그의 대부분 작품들은 로렌초가(家)의 토르나부오니 가족의 주문의뢰로 제작된 것들이 많은데, 그 작품들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가대에 있는 성모의 전 생애를 담은 그림, 그리고 피렌체 소재 산타 마리아 마델레나 데 파지의 체스텔로 성당의 예배당에 기증할 작품들이 로렌초가(家)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었다.
바사리에 따르면 이 그림들은 기를란다이오 두 형제에 의해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아하고 빛나는 선으로 그려졌고, 로마 화풍의 고전주의적 아치를 벗어난 기념비적인 표현기법을 보여주는데, 색채의 단순성과 선의 조화는 그림의 정신적인 깊이를 더욱 빛나게 한다.

세퍼드의예배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년)

데생의 기묘함은 각별했다.  그의 사후 화가들은 그의 그림을 한 장이라도 얻기위해 고군분투했다.-바자리

르네상스의 발원지 이탈리아  피렌체는 그의 타고난 회화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필리포 리피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날 수 있었으며, 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 등 거장들과 동시대를 살았을 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가문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다. 한마디로 대화가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완벽한 배경이었던 것이다.
그의 자화상을 그대로 믿는다면 미남에 멋쟁이였던 그는 결혼을 거부했고 다빈치와는 친구였으며 '비너스 탄생' 완성 후 신플라톤주의를 결렬하게 비난하는 교회 개혁자 사보나롤라의 광신적 설교에 매료되어 피렌체의 상류계급과 더 이상 교류하지 않고 지옥불과 죄의 두려움을 생생하게 전하는 그림을 그리지만 유감스럽게도 보티첼리의 선천적 우아함은 사보나롤라의 설교가 그림으로 표현되는 고통등과는 도저히 융합할 수 없어 그의 후기 종교화는 초기 작품들과 같은 매혹은 더 이상 표현되지 못했으며 새롭게 획득한 신앙의 발견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동 시대의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와는 다르게 세상의 흐름에서 소외되고 말았다.
1504년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의 설치장소를 심의하는 위원회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과 함께 출석하였으나, 그 후 그는 제작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소식마저 끊었다.
보티첼리의 아버지가 후세에 남긴 세금 고지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보티첼리는 마음 내킬 때만 일을 했다.'
보티첼리는 달콤한 성공의 술을 너무 빨리 맛본 탓인지 무거운 짐에 시달린 채 1510년 65세로 운명을 달리했다.

신화와 이야기를 그리는 천재: 당시 회화의 주제로 거의 취급되지 않았던 그리스 신화를 자주 테마로 삼음. 대부분 작품은 메디치가의 로렌초 디 피에르 프란체스코등 명망있는 귀족들의 의뢰로 그려졌으며, 그들 사저에 장식용의 사용됨.

선의 효과를 추구하며 새로운 스타일 구축 : 정확한 뎃생력에 기초한 선은 정확할 뿐만 아니라 신체의 곡선이나 옷감의 흐름을 유려하게 재현해냈다.세밀화가나 금세공사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그려진 선에 의해 형태나 움직임을 재현하려고 했다.그래서 그가 그린 인물들은 우아하고 늘씬하게 뻗어있다. 인간적이거나 격정적인 감벙도 느껴지지 않으며, 그저 세련된 스타일의 아름다움이 있을 뿐

2차원적인 공간을 그리다 : 딴에는 배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인물의 배후를 나무로 덮어버린 작품도 있다. 이런 표현 방법 때문에 그는 르네상스의 정통파로 대접받지 못함.

-오카베 마사유키의 청소년을 위한 명화의 길잡이에서-
- 라파엘 전파와 팜므 파탈의 원류 -


보티첼리의 명성은 사후 급속히 냉각. 300년 이상이나 지난 19세기 중반 라파엘 전파화가들에 의해 재조명. 특히 명확하고 투명감을 살린 선과 색채,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은 여성상의 우수에 젖은 표정은 로제티의 여성상을 비롯해 세기말의 팜므파탈(숙명적인 여인)이미지의 원류가 되었다.
 
 비너스 탄생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아름다운 애첩이 있었다. 대왕은 화가를 시켜 판카스페의 눈부신 젊음이 사그라들기 전에 그의 알몸을 그리게 한다. 불변하는 예술의 거울에다 자연의 드문 기적을 담아두려는 생각이었다.
 -노성두의 미술이야기에서-

알렉산드로스왕 애첩과 '불륜'

신성한 의무를 떠맡은 화가는 아펠레스. 헬레니즘 최고의 붓을 자랑하며 숱한 회화의 전설을 뿌린 명장이다. 어느 날 그림이 잘 되어가나 싶어 화가의 작업실에 들렀던 알렉산드로스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그만 아연하고 만다. 아펠레스와 판카스페가 꼭 끌어안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젊은 대왕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니, 저것들이?' 두 연인은 고개를 떨구었다. 어림없는 만행의 대가로 모가지가 달아나게 생겼다. 옛 기록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적수를 제압했던 알렉산드로스는 이날, 가장 무서운 적수와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 대왕은 자신의 노여움과 질투조차 거뜬히 누름으로써 참된 영웅의 면모를 과시한다. 벌을 기다리던 화가는 뜻밖에 상을 받았다. 아끼던 애첩을 선사한 것이다. 이 일을 두고 플리니우스는 무력의 대왕이 예술의 제왕 앞에 무릎꿇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일화의 미학적 얼개를 풀이하자면, `예술이 권력의 속박을 떨치고 아름다움의 덕목과 결합한다'쯤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아펠레스는 그 일이 있은 후 더욱 분발했고, 기량도 한층 무르익었다. 또 판카스페를 모델로 세우고 절정의 예술을 쏟아서 `바다 거품에서 태어나는 비너스'를 그렸다. 갓 태어난 알몸의 조형에다 새벽별처럼 어여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미와 사랑의 여신을 완성한 것이다.

옛기록 읽고 '나도 그려보자'

피렌체 화가 보티첼리는 플리니우스가 쓴 옛 기록을 읽고 무릎을 쳤다. 당장 붓을 들어 1800년 전 까마득한 옛 거장 아펠레스의 붓을 흉내내기로 결심했다. 애첩을 뺏기고도 관용을 베풀 대왕은 오래 전에 죽고 없었지만, 판카스페에 필적할 모델이라면 자신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한다는 시모네타 베스푸치가 이곳 피렌체에서 눈부시게 영글어가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인문학자 폴리치아노가 그녀를 두고 `신성한 아름다움'이라고 단정했으니, 미의 여신을 대신하기엔 아주 그만이었다. 때마침 피렌체에는 호메로스가 인기였다. 아펠레스도 붓을 들기 전에 호메로스를 읽었을 것이다. 보티첼리는 폴리치아노한테서 얻은 서사시를 꼼꼼히 들추었다. 비너스의 그리스 식 이름은 아프로디테.

“나는 아름답고 정숙한 아프로디테를 노래하려네.

황금수관을 머리에 쓰고

바다로 둘러싸인 키프로스 도성을 지배하는 여신을.

여신은 서풍 제피로스의 부푼 입김에 떠밀려

물살 거친 파도에 실려서

부드러운 거품을 타고 왔다네.

황금 머리띠를 두른 계절의 여신들이

아프로디테를 기쁘게 맞이하며

그녀의 몸을 신성한 의복으로 감싸고

신성한 이마 위에 황금 관을 씌워 드렸네.”

보티첼리는 영감의 빛에 손놀림을 맡겼다. 성화를 그릴 때처럼 기도와 묵상에 의존하지 않았다. 제 어깨에 상상의 날개를 걸어 매고 단숨에 올림포스의 산정에 날아올랐다. 그리고 키프로스의 금빛 해안으로 직행했다. 오래 전 그리스 고전기 조각가 피디아스가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을 지으면서 썼던 방식이었다.
보티첼리의 붓은 마침 첫 돌을 올리기 시작한 인문주의의 신전에 시들지 않는 예술의 향기를 헌정했다. 눈먼 시인의 상상력에 붓을 적셔서 고대의 은성한 예술을 되살린 것이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아펠레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보티첼리의 붓은 따르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이주헌씨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에서-

'미의 여신' 비너스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그리스 시대의 조각 '밀로의 비너스'와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인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을 떠 올릴 정도로 양대 미술의 걸작이다.
앤디워홀(1928-1987년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 화가)'는 복제했을 때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걸작의 정의를 내린다.
이런 점에서 이 그림만큼 걸작의 정의에 잘 들어맞는작품도 없을것이다.
갸우뚱한 머리. 이마의 곡선. 약간 숙인 턱을 강조하고 있는 조신하면서 슬퍼보이는 한 여성의 모습에서 욕망의 흐름대로 자유분방하게 사랑을나누던 고대의 여신 비너스를 찾아볼 수 없고 성모상과 닮아 보이며 그 당시 유행했던 신플라톤주의적인 섹스가 아닌 그리스도적인 사랑의 여신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보티첼리의 호화롭고 온화한 예술은 르네상스기의 평론가들 사이에서 이미 자연 관찰법과 원근법을 추구한 시대의 유행에서 뒤떨어진다는 혹평을 들었다. 그러나 보티첼리의 이러한 특징은 합리성을 외면한 근대미술의 효시적 상상력을 충분히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 상쾌함이 존재해 라파엘전파(1848년 런던에서 형성된 미술운동)의 병적 관능, 클림트의 차가운 우아함, 모딜리아니의 침울한 여인들에서 보티첼리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보티첼리 회화의 근대성은 현대 대중문화가 즐겨 찾는 이상적인 여성상의 편린을 보여 오늘날 여성미의 추구에 기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명화도 아니면서 르네상스를 주제로 한 책의 표지 장식에 우선 그의 비너스가 등장하는 것은 통례이다. 그 아름다움이 구름처럼 잡을 수 없고 깨끗해서일까!!

이 작품을 이주헌씨의 이론으로 다시 한번 해석해보자.
서쪽 바람의 신 제퓌로스와 미풍 아우라가 바람을 불어 조개껍질을 탄 비너스를 뭍으로 밀어주고 있고, 뭍에서는 때의 여신이 꽃무늬가 든 망토를 들고 비너스를 맞고 있다. 수줍어 하고 있는 비너스의 신체는 10등신이며, 모델은 당시 피렌체의 최고 미인이었던 시모네타로 전해져 오고 있다.
사실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은  구성의 원형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그리스도의 세례'에 있다. 비너스는 세례 받는 그리스도의 형상이고 오른쪽 때의 여신은 물을 붓는 세례요한의 모습이다. 제퓌로스와 아우라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성령이거나 천사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그 둘을 조화롭게 매개하는 것은 물론 바닥에 깔린 물이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나타나는 거룩한 관능미 추구는 종교적 목적에서 시작된 고대 그리스의 육체적 아름다움의 추구에 이어 서양문명이 육체적 욕망의 미적 합리화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가를 되짚어보게 하는 대표적 작품이다. 인간 욕망을 추구하되 거기에 문화적 전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하나한 의미화 하거나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온갖 예술적 성취가 꽃피어나게 한 것, 그것은 곧 서양미술의 깊이와 넓이를 크게 확대시킨 장치였다. 물론 바로 그것의 권위에 기대 남성을 성적 욕망의 주체로서 그리고 여성을 그 욕망의 충족 대상으로서 가르고 우열화함으로써 결국 오늘날의 대중문화에서 여성의 성 상품화가 '당위'를 얻게 한 행위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파리스가 비너스에게 사과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비너스의 관능적 아름다움이였음을....
그래서 무려 3세기동안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던 '비너스 탄생'은 관능미를 미의 범주로 해석할 수도 있는  19세기에 들어서 그의 작가적 전모가 드러나면서 비로소 재평가 받게되어 명화 중 명화라는 찬사를 얻게되는 것이다.
물론 신플라톤주의 철학이니 종교화의 구성이니 숱한 '보호막'을 인용했지만 이제 욕망의 꽃을 직접 나아가 두손으로 꺾고야 말겠다는 충동과 의욕의 뒤범벅이 이 작품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꽃을 향하여 뻗어가는 손의 근질거림이 이 작품엔 확연히 존재한다.
 어쩜 예술이란 인간의 가장 태고적 본능의 추구이다. 인간의 최대 목표물인 이성과는 정반대 개념인 본능을 이렇듯 아름답게 재해석해 이성보다 더한 감동을 자아내는 작가들의 심혈에 깊은 찬사와 감명을 보낸다.
그들의 노력과 자취는 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영원하리라!!!!!!
 
 봄
관능의 아름다움을 보다 폭넓은 여음으로 울리게 한 보티첼리의 또 다른 작품이다. 봄은 모든 계절의 여왕, 곧 비너스의 계절이다. 그 계절의 여왕을 통해 보티첼리는 특유의 감각적이고 서정적 부드러움에 약간의 퇴폐적 관능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음악적 리듬을 타고 오른쪽 올리브 나무가 빽빽한 비너스 동산에 나타난 서풍 제퓌로스는 바람을 힘껏 불고 있고  제퓌로스의 봄바람이 닿으니 클로리스의 입에서는 꽃이 쏟아지고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이탈리아의 꽃의 여신인 플로라가 약간 성적 제스쳐로 서있다. 그러나 결국 봄 기운을 주관하는 이는 중앙의 비너스가 성모마리아처럼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웬지 비너스보다 그녀의 시종들인 미의 3여신에게 쏠린다. 속이 비치는 옷을 입은 우아한 춤동작은 이 그림의 클라이막스이며 그들의 사랑스러움, 그들의 관능이 바로 보티첼리가 겨냥한 바다. 이 관능의 드러냄을 위해 보티첼리는 그렇게 '문화의 길'을 에돌아왔고 그러기에 더 가치있는 여운이 있는 것이 아닐까.
메르쿠리우스(머큐리)는 이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다가오는 구름을 막대로 쫒고 있지만 비너스 위를 나는 큐피드가 세 여신 중 하나에게 화살을 쏘려하고 있고 쏘는 즉시 이 아름다운 순간도 물거품이 되겠지.
이 리드미컬한 그림은 막 결혼한 메디치가의 피에르 프란체스코의 침실에 걸려있었다. 문예부흥이란 이렇게 인간의 욕망과 적극적으로 결합을 할 때 비로소 그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보티첼리 그림에서 우린 다시 한번 감명받게 되는 것이다.
 
비너스와마르스
신혼부부에게 던지는 일종의 우의화이다. 그러면서도 영원한 승리의 상징인 사랑은 전쟁까지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올림포스 최고의 추남인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의 아내 비너스와 미남인 전쟁의 신 마르스의 혼외정사 이후의 정경으로, 비너스는 남편에게 불륜의 현장을 들키고 만다. 부부간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교훈적 주제를 갖고 있는 이 작품은 ` 부드럽게 흘러내린 윤기있는 머리카락과 속이 비칠 듯한 흰옷의 부드러운 곡선미 등 보티첼리 특유의 시정과 장식적인 곡선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소녀에게 선물을 주는 비너스와 삼미신
보티첼리의 이 작품은 비너스와 삼미신을 주제로 그린 프레스코화이다. 이 그림과 더불어 나머지 한쪽 그림은 원래 피렌체 부근 빌라 레미라는 곳에 토마부오니 가족 소유의 그림이었다가 메디치가의 컬렉션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정확한 제작 연도는 남아 있진 않지만 우피치 미술관의 양대 걸작인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 작품이 완성된 사이인 1483년에 완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통하고 있다.
어린 소녀로 상징되는 세계의 창조는 비너스에게 천지창조라는 선물을 부여받고 있는 알레고리로 표현되었으며, 세계의 아름다운 여신들의 운동감이 부드럽게 묘사된 반면 표현은 단순하게 처리했다. 또한 "삼미신"이라는 제재는 고대 그리스의 나오는 제우스와 므네모시네의 딸들로서 "삶의 기쁨"과 "생의 윤택", 그리고 "쾌락과 우아미"를 뜻하는 상징으로 쓰이면서 조형예술 속에서 하나의 테마로 자리잡고 있는데, 보티첼리의 다른 작품인 <봄의 알레고리> 속에도 역시 "삼미신"이 등장하고 있다.
로렌초의 장려한 양식을 세련된 인본주의로 결합시켜 회화로 표현했던 보티첼리는, 이 작품에서도 부드러운 색채와 선의 운동감을 다양하게 교차시키면서 고전적인 이상의 주제를 잘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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