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나사로와 지옥에 간 부자 - 대한항공 신우회 말씀 선포 | ▶설교 본문
2013.03.12 17:19
 

거지 나사로와 지옥에 간 부자

 

누가복음 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본문은 누가복음 10-18장까지 계속되는 예수님의 진리 강론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계속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가장 평범한 이야기로 깊은 영적인 세계의 진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특히 본문의 비유, 즉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는 사후의 세계가 어떠한지와 또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부자에 대하여 소개를 하고 있는데 19절을 보면 부자는 자줏빛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이 표현은 이 부자는 세상에서 신분이 높고 호화로우며 유명하고 부요한 삶을 살고 있음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본문에서는 그가 부자이기 때문에 악하다라는 의도를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다. 본문을 가지고 부자는 죽여야 한다,” 또는 부자는 이 세상에서 잘 살았기 때문에 죽으면 반드시 고통을 받는 지옥엘 갈 것이다. 그러므로 잘 살 때 좋은 일을 많이 해 두거라라고 가르치면, 이는 성경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가르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성경을 아주 곡해하는 것으로서 괜히 부자들에 대한 증오와 경멸을 조장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본문의 부자는 악한 부자가 아닙니다. 그냥 잘사는 평범한 부자입니다. 단지 자기 돈을 열심히 모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대학과좋은 직장을 다니며, 그래서 좋은 집에서 살고 또한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위치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닿으면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하면서 살고 있을 뿐입니다. 본문의 부자는 흔히 현대의 부자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이 부자 집 앞에는 거지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나사로라고 합니다. 20절에 보니 그는 헌데를 앓고 있습니다. “헌데는 몸에 나는 심한 부스럼병입니다. 피부에서 진물이 나고 냄새가 나는 병입니다. 너무 가려워서 계속 긁어야 하고 긁으면 그 자리에서 피가 곪아터지는 피부병입니다. 물을 대면 매우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아주 더럽고 악독한 피부병입니다.

 

나사로는 부스럼 병에 걸리게 되면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거지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일이 안 풀려서 가난하던 차에 부스럼 병까지 생겼지만 치료도 하지 못하고 더욱 악순환의 고통 속에 빠져, 할 수 없이 거지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는 지금은 직업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거지입니다. 또한 부스럼이라는 병 때문에 사람들이 멀리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기에 그 부자집의 문전에 누운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관습을 보면, 부자 집에서 잔치가 끝난 후에는 남은 음식을 거지나 가난한 자를 위하여 대문 밖에 내어 놓았습니다. 이 부자도 그 관습대로 행하였습니다. 따라서 나사로는 이 부자집을 택하여 그 곳의 문 앞에 누워 있기로 한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보면, 물론 이 부자가 나사로의 병을 보고 나사로를 사랑하여 자기 아들을 삼거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의원을 만나게 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거지 나사로가 남은 찌꺼기 음식이라도 먹는 것이 싫어서 심통을 부리며 개를 풀어서 물게 하며 못먹게 했다는 그런 내용도 아닙니다. 그냥 이 부자는 그 당시의 다른 부자처럼 행동하였을 뿐입니다.

 

오히려 24절에 보니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호소를 하는데, 이 구절을 통하여 보면 이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기억하여 잘 알고 있으며 나사로를 통하여 심부름 부탁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4절로 볼 때는 이 부자는 거지 나사로에게 더 자선을 베푼, 어쩌면 다른 부자보다 더 착하고 다른 부자보다 더 많은 관용과 사랑을 가진 부자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28절을 보면 부자가 말하길 내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이로서 우리는 그 부자가 상당히 가족적인 사람이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옥의 고통 가운데서 자신의 형제들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악한 사람이라면 심보가 이렇지 않습니다. ‘나도 이러한 고통 받는 곳에 왔으니 너희도 전부 이곳에 와라. 나 혼자 억울하고 심심하구나.’ 그런데 부자는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사실, 고통 중에 남을 생각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부자는 지극한 고통 속에서 가족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얼마나 사려가 많고 사랑이 많은 사람입니까? 얼마나 가정적입니까?

 

심지어 24절과 27절을 보면,“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부릅니다. 이로 보건데 그는 평소에 세상을 살면서 소위 신앙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나아가 이 부자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로 불렀다는 사실을 볼 때 어쩌면 그는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줄로 믿었던 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당시 유대교에 열심히 있는 부자의 모습이요, 소위 현대로 말하면 교회의 문을 밟고 다니며 스스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아무튼 본문에서의 부자는 세상에서 뚜렷한 선행을 행한 흔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짓을 했다거나 남에게 큰 폐를 끼친 사람도 아닙니다. 단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가지고 자기를 위하여 열심히 잘 사는 것 뿐이요, 심지어 교회도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다는 점입니다.가정적이며 매우 부자였고 사회적 지위가 있었으며 가끔은 고와와 과부에게 몇푼씩 던져 주는 아량도 있는 그러한 부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세상이 일반적으로 부러워하는 그런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돈으로 인생을 즐기고 또한 종교 생활에도 관여하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도덕이나 또 법적인 기준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고 남에게 규탄을 받거나 비난을 받는 그러한 사람도 아닙니다. 특히, 이 비유에서는 그가 지옥을 갈 어떤 뚜렷한 악행이 묘사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지옥에 가 있습니다.

 

부자는 지금 자신도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며 구원 받을 줄 믿었는데, 의외로 죽음을 통과해 보니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 있는, 고통이 심한(23), 또한 불에 타는(24) 지옥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신의 현실을 보며 이 부자는 놀라움과 좌절과 고통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옥에서 물 한방울마저 먹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23절을 봅시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아니 나를 모르십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한방울만 찍어 내 혀에 넣어 주소서. 이 불꽃 가운데서 너무나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하나이다.”

 

제가 번역한 책 중에 청교도 신학자이며 목회자였던 리차드 백스터의 <영원한 안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번역하면서 얼마나 많이 지옥을 체험하였는지 모릅니다. 한 번은 너무 무서워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내 자신이 구원을 받은 사실을 확신하게 되면서 몇 일 동안 눈을 감고 주의 사랑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옥의 깊이보다 더 깊고 넓은 영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구원했음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 그 책의 5장과 6장은 지옥에 대해 집중해서 쓰고 있습니다.

5 . 성도의 안식을 잃는 자들의 큰 비참

6 . 즐거운 시간을 잃고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자들의 비참

1. 저주 받은 자들이 잃는 즐거운 시간들

2. 저주 받은 자들이 당하는 너무나 큰 고통들

그 중에 지옥은 영원한 고통이다라는 부분만 읽어 드리겠습니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영원하다는 사실이다. 수천만 년이 지나도 지옥의 고통은 언제나 처음과 똑같다. 만일 고통에 끝이 있다면 저주 받은 자들은 그나마 바랄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고통이라니, 생각을 하면 감당할 수가 없다! 그들이 죄를 짓는데 지치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형벌하시는데 지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죄를 회개한 적이 없듯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형벌하심을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였기 때문에 영원한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거절한 것이 영원한 나라였음을 알고 있었기에 나라에 영원히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멸의 영혼들은 죄를 지었으므로 정죄 선고를 받아 불멸의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일 무덤에 누워있거나 다시 무덤으로 돌아갈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한다! 그들은 소리 질러 외치길 “오 죽음아, 너는 어디로 날아가 버린 것이냐? 이제 와서 서글픈 삶을 끊어주렴. , 고통이 나를 무너지게 하고 나의 존재를 끝낼 수만 있다면! , 마침내 내가 사라져 없어져 버린다면! ,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라고 외칠 것이다. 이러한 신음들은 그들이 어쩔 없이 고통의 영원함을 떠올릴 때마다 터져 나올 것이다. 그들은 설교와 기도가 길다고 생각했었다. 하물며 끝없는 고통을 당할 그들은 얼마나 고통이 길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이 누린 쾌락의 길이에 비교하여 그들의 고통의 길이는 얼마나 것인가! 하나는 순간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영원히 이어진다.

 

죄인들이여! 때가 거의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은 영원의 앞에 있다. 죽음은 문을 열고 당신을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가서 밤을 자라. 땅에서 날을 즐기라. 그러다 보면 당신의 밤과 낮은 끝이 나게 것이다. 당신의 생각과 세상 관심들과 쾌락은 영원에 의해 삼킨바 것이다. 당신은 영원히 변함없는 저주의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천상의 기쁨을 우리가 없듯이 지옥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고통은 상상조차 없는 고통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가르침은 당신에게 공포가 아니라 위로가 것이다. 만일 당신이 아직 거듭난 사람이 아니라면 지옥에 대한 내용은 물론이고 천국이나 구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걱정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올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천국과 자비를 설교하는 것은 당신이 천국과 자비를 거부하지 말고 구하라고 부탁하려 함이며, 지옥을 설교하는 이유는 당신이 단지 그것을 피할 있도록 설득하려 함이다. 만일 당신이 지옥을 피할 가망이 전혀 없다면 내가 당신에게 지옥을 말하는 것은 헛수고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아직 이곳에 살아있는 , 당신이 회복할 있는 기회는 아직 있다. 따라서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당신을 당신의 무감각 상태에서 깨우려고 하는 것이다.

아아! 하나님의 진노 하에 있는 영혼들의 고통을 지금 땅의 사람들이 어찌 있겠으며 어떻게 표현할 있겠는가?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 1:6).

 

당장 결심을 하여 영혼을 망하게 하는 죄악들을 멀리하고 그리스도께 당신 자신을 전부 드리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의 얼굴은 성도 중에 사람이 되어 당장 천상의 안식을 누리게 것이다. 이상 지체하지 말고 복음의 언약을 붙들기를 바란다! 만일 당신이 죽기까지 마음을 강퍅하게 하면, 그때는 회복이 있을 없다. 다른 날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신에게 진실하게 경고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라. 그러면 당신의 저주를 막아준 영원한 친구 하나를 얻을 것이다.

 

*****

 

지옥의 고통 가운데 부자가 던진 부탁에 대해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안타까움 가운데 대답을 합니다.

부자야. 미안하구나.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이 끼어 있어서, 여기서 너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너는 우리에게로 건너올 수도 없구나”(26).

다시 말하면, 죽음으로 인하여 갈라지는 영원한 운명은 영원토록 바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만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으로 가느냐 하는 둘중 한 길을 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고, 죽음을 통하여 이 세상을 지난 후에는 다시는 그런 기회가 일절 없다는 뜻입니다. 부자가 당하는 이러한 지옥의 영벌, 혹은 나사로가 누리는 영원한 복락은 이 세상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죽으면 각각 결정된 대로,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거나 아니면 고통의 장소인 음부, 곧 영원한 불꽃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 누구를 가르쳐 부자라고 말하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 당시에 부자들의 모습이 꼴불견이라 그들을 향하여 이놈들, 지옥에나 들어가라저주한 것일까요? 아니면 너희는 이 땅에서는 평안했고 나사로는 고생했으니, 이제 신세가 바뀌어야 공평하다는 것을 말하시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부자, 너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내가 준 부귀로 거지 나사로에게 약 한번 안 지어 주고, 친자식처럼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지옥에 간다는 가르침일까요? 사실, 이 본문에 대한 도덕주의의 가르침은 언제나 이러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가르침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거지 나사로를 봅시다. 거지 나사로! 그는 빈곤과 고독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과거에 부스럼 병이 없고 여러가지로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 때에는 많은 정답던 사람들, 친하던 사람들, 심지어사랑하는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스럼 병에 든 이후로는 그는 모든 사람에게 버림을 받고 이제는 보고싶은 사람마저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솔직히 지금 이 거지는 이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는 쓰레기 같은 사람이요,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이며, 귀찮은 빈대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또한 혹시 부스럼 병이라도 옮을까 두려워하며 모든 사람이 멀리 멀리 피해 다니는 아주 싫은 사람입니다.

 

지금 그 거지의 입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한끼 때우며 생명을 연장할 뿐입니다. 절망적 인생입니다. 큰 슬픔과 고통의 현장속에 있습니다. 심한 천대를 받고 있습니다. 하루의 삶이라고는,부자 집 대문 밖에 누워 있다가 떨어지는 음식이 있으면 그 음식 찌꺼기를 먹을 뿐입니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며 피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야하니 거지로 구걸할 뿐입니다.

 

아마 이 거지가 죽었을 때는 짚으로 만든 멍석으로 누군가 둘둘 말아서 똥 치우듯이 쓰레기장에 던져 버리고 다른 쓰레기와 함께 불로 태웠을 것입니다. 누가 부스럼 병이 든 혼자 남은 그 거지를 장사나 치뤄 주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지금 가 있습니까? 이 비유에서 거지 나사로가 선을 행한 모습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빈곤하고 가난하고 거지였기 때문에 이제는 좀 편안하게쉬라고 하나님께서 천국에 보내신 것입니까? 세상에서 이 거지처럼 지독히 고생하면 죽은 후에는 자동으로 반드시 천국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까? 만일 이러한 원리로 하면, 거지마다 천국가고 부자마다 지옥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부자가 누구이며 거지 나사로는 누구입니까? 주님은 지금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진심으로 이 부자보다 나은 것이 있어서 지옥가지 않을 보장이 있으십니까? 솔직히 우리의 인생이란, 이러한 부자들의 인생이 부러워서 더 열심히 일하고 날마다 지치도록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데 왜 부자는 지옥 가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을 갔습니까? 여러분, 그 답을 아십니까? 그 답이 나오셔야 성경을 바로 보시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바로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예수님의 긍극적 질문인 것입니다.

 

29절이 답입니다. 모세와 선지자가 답입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네 형제들이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믿고 들으면, 그곳에 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들으면, 지옥에 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가지 않고 천국가게 되는 것은모세와 선지자들이 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살던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이 천국 갈 수 있도록 모세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고통 받는 지옥에 가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하여 모세와 선지자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부자가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이여, 그들로 불충분합니다. 혹시 나사로가 가면 그들이 믿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그들에게 가서 말하면, 저들이 회개할 것입니다.”(30)

 

이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31절입니다. 이것은엄청난 진리입니다. “부자야, 만일 네 형제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을 듣지않는다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본문의 핵심을 찾았습니다. 그 핵심은모세와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을 들으면 아브라함의 품이요, 그들을 듣지 않으면 지옥인 것입니다. 그것이 아주 자명하고 확실한 본문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모세와 선지자들이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그것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키가 되는 것임에 분명합니다.

 

성경에서 모세와 선지자라는표현은 구약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모세와 선지자들은 무엇을 말한 것일까요?

 

오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자신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을 가르쳐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24:25-27).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은 열한 제자들이 함께 모여있고 그들과 함께 모인 성도들 앞에서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24:44-48).

 

예수님께서 공생애 중에는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5:46).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10:43).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교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26:22-23).

 

모세와 선지자가 무엇을 증거하였는지에 대한 내용은 성경에 무한하게 깔려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1:2).

로마서 3: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라고 증거합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율법과 선지자는 다른 표현으로 할 때 모세와 선지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모세와 선지자가 말하는 핵심입니다.

 

한마디로, 모세와 선지자들이 가르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죄사함을 받아 구원 받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메시야시며,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은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심이요, 그가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성령을 통해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주님께서 부활을 앞두어 약 두달 정도 전에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주께서 말씀하시길, 모세와 선지자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볼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약하면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다리며 믿게하신 하나님의 계시였음이요, 이를 믿는자들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생의 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핵심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에 대하여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어리석음은 그가 세상으로 볼 때 특별한 어리석음이 있어서 어리석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의 부자와 누가복음 12장의 비유의 부자는 한결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공통점은 이 세상이 보기에 아주 좋은 것들을 누리기 위하여 열심히 살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지나면서 천국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12장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의 결론을 우리 주님은 다음과 같이 내립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2:21).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취하리니,네가 수고하여 이 땅에서 예비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어리석은 자들아.”

 

세상에만 미쳐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준비치못한 영혼들을 다 묶어서, 누가복음 12장에서는 어리석은 부자, 본문에서는 지옥에 내려간 부자로 비유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지 나사로는 왜 구원을 받았습니까?

22절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라고 되어 있고, 23절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나사로의 구원과 관련한 핵심 단어는 아브라함의 품입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대해 갈라디아서 37-9, 그리고 갈라디아서 329절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4:2-8, 로마서 422-24절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3:7-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3:29).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2-3).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4:22-24).

 

이로 보건데, 거지 나사로가 천국간 이유는 딱 한가지였습니다. 바로 복음을 듣고 믿은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 속에서 그는 이러한 죽음과 고통의 원인이 죄였음을 알았으며,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속죄를 필요로 하였고, 결국 모세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실 어린양을 믿으며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가 대표하는 복음의 소리를 듣고 속죄의 도리와 복음의 도리를 믿고, 대속과 사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믿은 것입니다. 그는 부잣집 대문간에 누워 구걸할지라도 마음 가운데는 항상 죄사함을 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메시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늘 바라고 기다리며 불렀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죄의 문제 깨닫고 메시야를 통한 속죄를 믿은 것입니다. 나아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이 괴로운 인생 속에서 잠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천사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으로 안긴 것입니다. 본문에 아주 중요한 내용이 있는데 부자가 죽을 때는 천사가 인도하지 않지만, 주 안에서 죽은 나사로는 천사가 영광스럽게 호위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거지 나사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와 구원하신 은혜로 천국에간 것입니다. 사실은 그 사람이 거지였던 부자였던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으로 그 영혼이 가게 된 것입니다.그 외에는 아무런 다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은, 예수님의 비유는 나를 믿으면 천국이요, 나를 믿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하려는 핵심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죽으면 곧 바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영원히 바뀔수 없는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그리고 그 갈림길은 아무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주 예수께 속하였는가 아니면 아닌가.다른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에 피를 토하듯이 외치고 싶습니다.

예수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영접하면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천국백성이 되었으며 언제 죽어도 천국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외칩니다. 예루살렘 큰 광장에서 외칩니다.

다른 이로써는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4:12).

 

이제 다 같이 성경 한 구절을 찾읍시다. 데살로니가후서 18-9절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우리의 삶이 모세와 선지자를 잊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말씀에 근거를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까이 하며 성경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면 천국으로 인도하시지만, 하나님을 잊고 망각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고 살면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고 열심히 살아도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되어 영벌을 받게 됩니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않은 죄를, 그래서 하나님을 망각하는 죄를 최고의 악한 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 안에서 영생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다시 한번 복음을 깨닫고 주께 나오시며, 우리의 짧은 여생을 하나님께 더욱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그의 보내신 독생하신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주변에 주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아브라함의 품을 알립시다. 그리고 모세와 선지자가 전한 주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립시다. 남은 여생에 더욱 복음을 알리시며 복음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출처] 거지 나사로와 지옥에 간 부자 - 대한항공 신우회 말씀 선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작성자 스데반 황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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