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4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의 세 번째 요소는 시기하지 않는 것이다. 시기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젤로우”이다. 영어의 젤러시(jealousy)가 이 헬라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젤로우”라는 단어의 뜻은 “질투하다”, “시기하다”,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다”라는 뜻이다. 남의 자녀, 집, 학벌, 인기, 용모 등을 탐내는 것이다. 십계명의 제 10계명은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성경은 “젤로우”를 탐심과 연결시키고 나아가 탐심은 우상 숭배임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다시 말하면 “젤로우”는 하나님을 섬김이 아니라 사탄을 섬기게 되는 요소라는 뜻이다. “젤로우”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우상 숭배다. 사탄이 “젤로우”하는 마음의 뒤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시기심이 있는 사람은 비교 의식이 강하다. 지면 견딜 수 없어 한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낫거나 내가 가진 것보다 나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 시기심이 작동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삐뚤어진다. 마음이 삐뚤어지고 나면 시기의 대상에게 아주 작은 일에도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상대를 비방하며 거짓말을 꾸며대면서 명예를 깎아 내리기에 바빠진다. 시기심에 빠지면 남이 울 때 자신은 기뻐한다. 남이 기뻐할 때는 속이 뒤틀린다. 심지어 시기는 욕심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만 다 갖고 남은 하나도 못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성경에서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을 말한다면 구약에서는 사울 왕이 있고 신약에는 가룟 유다가 있다. 사울 왕은 모든 부귀영화를 다 소유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기의 사위 다윗을 향해 심한 시기를 느끼면서 평생을 비참하게 살아간다. 한편, 신약에 등장하는 가룟 유다는 시기심 때문에 스승 예수님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그는 결국 은전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긴다.  

 

시기에 빠지면 배은망덕을 합리화하게 된다. 시기는 멸망의 시작이며 인간성을 상실하는 시작점이다. 시기는 사람을 포악하게 만든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서운 범죄들은 언제나 그 뿌리에 시기가 있다. 시기는 또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님은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 3:16)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장본인도 시기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법정에 넘긴 것을 알고 있었다(마 27:18).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성경은 복음을 가로 막는 주인공도 시기임을 증거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자신의 육체의 정욕에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징도 시기다(고전 3:3, 갈 5:20, 롬 1:29). 시기심은 사탄이 우리의 죄성에 뿌려 놓은 가장 깊은 죄악의 뿌리요 출발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기심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젤로우”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시기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방법 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성령 충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신앙이 경건한 성도들과 함께 하면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 우리는 사탄의 유혹인 시기심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명나무 쉼터/한아름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