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전도 선언문 분석평가(2번)

김정한 ㆍ 2013-11-05 (화) 23:16 IP: 1.xxx.17 ㆍ조회: 20      

성령님을 너무 왜곡시키는 것 같아 이번 것까지만 올려보렵니다.

이번에 것은 성령과 세계선교(12-20)까지 분석한 것을 올린다. 항상 말하지만 이것은 저의 사견인 것이다.

이 선교성명서는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 선교(mission Dei) 안에 성령의 선교를 이해함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성명서의 본문은 네 가지 제목으로 내용을 다루었다.

● 선교의 영: 생명의 숨결
● 해방의 영: 주변부로부터의 선교
● 공동체의 영: 살아 움직이는 교회
● 오순절의 영: 만유를 위한 복음

===>성령님은 위 4가지 요소로서의 영이신 것과도 연관되어 있지만 그 보다 더 상위의 역사인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 진리의 영, 보혜사로의 영은 언급이 되지 않았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을 성찰하면서 우리는 오늘날 변화하는 기독교 지형 속에서 역동성(dynamism), 정의, 다양성, 변혁을 선교의 중심개념으로 포괄할 수 있다. 우리는 위에서 제기한 질문들에 대해 오늘날 선교와 전도에 대한 10가지 확언을 응답으로 제시하면서 마칠 것이다.

Ⅰ. 선교의 영: 생명의 숨결

1. 성령의 선교

12. 하나님의 영(ru’ach)은 태초에 수면 위를 운행하셨고(창 1:2) 생명과 인간 숨결의 근원이 되셨다(창 2:7). 히브리어 성경에서 그 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였다. 지혜(잠 8)와 예언의 능력을 주시고(사 61:1), 마른 뼈에서 생명을 일으키시고(겔 47), 꿈꾸게 하시고(욜 2), 성전에서 주님의 영광으로 개혁을 일으키셨다(대하 7:1).

===>윗 내용은 부분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나 윗 내용으로만 성령님의 사역을 말하면 성령님을 오도하게 하는 위험성이 있다. 성령님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계시의 영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원저자이시기도 한 것이다. 성령님은 성경을 통하여 생명 얻는 길과 삶에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법을 계시하고 계신다.  

구약에서 성령은 선교의 영이라기보다 택한 자들을 하나님의 진리의 법을 따르게 하며 그럴 때 은사로 역사하는 영이라는 해야 더욱 명확한 이해라고 본다.

13. 창조 때에 수면 위를 운행하던 영과 동일한 하나님의 영은 마리아에게 임하여(눅 1:35) 예수를 낳으셨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권능을 부으시고(막1:10), 선교하도록 파송하신(눅 4:14, 18) 분은 성령이셨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분은 영혼을 버리셨다(요 19:30). 그분은 죽음 속에서, 무덤의 냉기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나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 첫 열매가 되셨다(롬 8:11).

===>선교를 계획하시는 분은 성부하나님이시다(히1:1-2) 그래서 잃어버린 영생을 주시고 풍성한 은혜가 사람들에게 주어지도록 예수님을 전도자로 파송하셨고 그리스도로 인류의 구속사역을 완성을 완성하신 예수님은 그 구속사역을 통하여 성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선교역사를 총괄하고 계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선교관이었다.

그분은 영혼을 버리셨다(요 19:30). 그분은 죽음 속에서, 무덤의 냉기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나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 첫 열매가 되셨다(롬 8:11). 는 말은 맞는 말이나 그렇다고 해서 령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선교를 파송한 것은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선교를 명하셨다.

이렇게 곡해하는 저의(底意)가 무엇인가? 를 묻고 싶다. 선교의 파송자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령으로.  성경에 전혀 언급되지도 않는 주장을 하려는 것에는 전혀 동조할 수가 없고 비성경적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일부러 그랬다면 비판받아야 될 것이라고 본다.

14. 부활 후,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공동체에 나타나셨고, 그의 제자들을 선교로 파송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22). “위로부터 오는 능력” 성령의 은사에 의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 증거 하는 새 공동체를 형성했다(눅 24:49, 행 1:8). 초대교회는 일치의 영 안에 함께 살면서 성도들 사이에 소유를 나누었다(행 2:44-45).

===>이 부분(13번과 14번) 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선교를 파송한 분이 예수님이고 선교할 힘과 삶을 살게 하는 분이 성령이시다.

성령의 충만할 때 소유를 나눴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일치의 영이란 것은 무슨 뜻인가? 초대교회의 예만 본다고해도 성령 충만한 때만이 일치가 가능한 것이다. 현대교회가 일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진리의 미혹을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 (살후 2:1-12)

15. 피조물 가운데 성령의 경륜의 보편성과 성령의 구속 사역의 특수성은 둘 다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만유 안에서 만유의 주”가 되실 때(고전 15:24-28)인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성령의 선교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령은 종종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 신비스럽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세상에서 일하신다(눅 1:34-35, 요 3:8, 행 2:16-21).

===>성령의 경륜이란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경륜이란 말을 쓸 때는 3위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며 특히 ‘성부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해야 성경 전체의 맥락과 통한다.  여기 이 대목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배제하는 결정적인 의도가 보인다.  

16. 성경은 성령의 선교적 역할에 대해 다양한 이해가 있음을 증언한다. 어떤 견해는 성령이 그리스도에 완전히 의존적이고, 보혜사이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가신 이후에 위로자와 변호자로서 오실 분이라고 강조한다. 성령은 선교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대리자로서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현존이라고 이해된다. 이러한 이해는 파송과 확장을 강조하는 선교학을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교에 대해 성령론적으로 집중하면 선교는 본질적으로 기독론에 근거하며 성령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관련된다고 인정하게 된다.

===>맞는 말이다. 그것이 전통적인 선교에 대한 이해며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증언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의존적이며 이란 말이 이상한 표현이다. 이런 것을 말함으로 전통적인 선교가 잘못된 것이란 뉴앙스를 줄 수 있다.

17. 또 다른 견해는 성령은 우리를 “온전한 진리”(요 16:13)로 인도하는 “진리의 영”이며 온 우주를 끌어안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시는(요 3:8) 것을 강조하면서, 성령을 그리스도의 근원(source)으로 교회를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백성들의 종말론적 모임(synaxis)으로 선포한다. 이러한 두 번째 견해는 성도들이 성만찬 모임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나라를 감지하고 미리 맛보는 체험을 한 후에 평화롭게 (선교로) 나아가는 것을 이론화 했다. 이처럼 파송으로서 선교는 교회의 기원이라기보다는 결과이며 “예배 후에 예배”라고 부른다.

===>온 우주를 끌어안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시는(요 3:8) 것을 강조하면서, 성령을 그리스도의 근원(source)으로 교회를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백성들의 종말론적 모임(synaxis)으로 선포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이 말이 애매모호하다.  선교의 영과 성찬과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성찬은 성찬을 통하여 도리어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주되심과 우리들이 주 오실 때까지 주님을 전해야(복음)됨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윗 글에서 그리스도를 빼고서 언급하는 것은 오해할 소지를 만들고 있다고 보여진다.

18.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성령에 의해 삼위일체의 삶의 중심에 있는 사랑의 선교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중단 없이 선포하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온 피조세계 안에 역동적으로 참여하심을 지속적으로 확증하는 신앙 증언이 일어난다.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모든 사람은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초대받는다.

===>맞는 말이다.  말미에 성령과 함께 라는 말은 불필요한 말이다. 차라리 예수님의 명하심에 초대가 아닌 명령을 받들어야 한다. 고 해야 한다.

2. 선교와 피조물의 번성

19.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흘러넘침이다. 하나님 선교는 창조행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피조세계의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은 서로 얽혀있다. 하나님의 영의 선교는 항상 은혜를 주시는 활동 속에 우리 모두를 포함시키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협소한 인간 중심적인 접근을 넘어서 모든 피조생명체와 우리들과의 화해된 관계성을 표현하는 선교 유형을 채택해야 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처럼 땅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며 우리는 처음부터 땅이 인간의 부정의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창 4:10).

===>윗글의 요지는 선교라는 것은 인간 차원을 넘어서 피조물 전체와 연관된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와 범죄한 결과로 보지 않고 피조세계를 이해하려는 것은 잘못될 수 있다 위의 주장은 성경의 기존의 선교의 틀을 해체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20. 창조와 함께 시작된 선교는 사실상 생태정의,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 그리고 피조세계를 존중하는 영성의 발전 등의 캠페인들을 통해 사실상 우리 교회 안에서 이미 긍정적인 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온 피조물이 우리가 부름 받은 목적인 화해된 일치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있다(고후 5:18-19). 우리는 피조물은 버림받고 오직 영혼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지 않는다. 피조세계와 우리의 몸은 둘 다 성령의 은혜로 변화될 것이 틀림없다. 이사야의 비전과 요한 계시록이 증언하는 것처럼 하늘과 땅은 새로워질 것이다(사 11:1-9; 25:6-10; 66:22; 계 21:1-4).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온전한 다스리는 나라가 올 때 그때 피조물도 죄악된 것과 속박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했고 새로워질 것이라 했다.  근거로 들고 있는 성경구절은 그렇게 해석되어져야 맞는다. 롬8:19-23

저는 선언문이 너무 많은 억지와 앞뒤가 맞지 않고 의도적인 것을 향해 곡해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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