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국교회를 멍들게 하는 적들

신동식 ㆍ 2013/10/14 ㆍ추천: 6  ㆍ조회: 574      

한국교회는 짧은 시간에 대단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성도를 자랑하는 교회를 가졌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삶의 다양한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왔던 선교사들의 수고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선교사들의 과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 미친 공은 참으로 엄청납니다. 근대식 교육과 병원 그리고 정치 제도와 문화의 영역에서 기독교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근대는 그야말로 기독교의 열매입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근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일제의 식민시대와 6ㆍ25라는 큰 아픔을 겪었으며, 1960~70년대의 보릿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견디는 동안 교회는 굶주린 사람들의 안식처가 됐습니다. 교회를 통해 음악을 배우고, 미술을 배우는 등 다양한 교육을 배웠고, 주름진 얼굴과 메마른 심령들이 큰 위로와 힘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문을 열어놓으면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아이들은 교회 아니면 간식과 놀이와 만남 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그야말로 복합문화 공간이며, 커다란 사랑방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시기에 엄청난 성장을 합니다. 산업시대와 함께 교회는 세워지는 곳마다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교회사에 유례없는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공룡으로 자랄 준비가 잘 되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은 선배들의 순교의 피가 기반이었습니다. 양화진에 묻혀있는 순교자들의 피 외에도 곳곳에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은 순교자의 피가 한국교회를 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피를 잊지 않으시고 교회에 성장이라는 선물로 돌려주셨습니다.

교회는 점점 커져만 갔고, 본당과 함께 교육관이 생기고, 수양관이 세워지고 묘지까지 구입합니다. 전천후 원스톱 시스템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명실상부하게 한국 사회에 중요한 존재가 됐습니다. 강남이 개발된 후에는 신흥 귀족들과 함께 교회의 화려함도 함께 이뤄졌습니다. 역삼동에 세워진 충현교회를 비롯해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교회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도도하게 성장했습니다.

교회의 대형화에 걸맞게 목회의 성공이라는 단어가 회자됐습니다. 목회의 성공은 바로 대형교회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큰 사람이 되려면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성공 신화를 쓴 사람들이 이제 각 매스컴에 주인공이 되어서 나옵니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대기업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들에 대한 칭송이 높아집니다. 이처럼 교회도 작은 교회는 작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있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편만하게 퍼지면서 기복주의 신앙의 암울한 비가 교회를 적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비는 교단의 벽을 허물고, 신학의 정체성까지 무너뜨리면서 한국교회를 공황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기복주의는 신학의 무용론을 가져오게 하고, 목회의 현장에서는 신학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바이러스를 감염시켰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무서울 정도로 한국교회에 전염됐고 괴물 같은 한국교회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들은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구원파, 안상홍, 신천지와 같은 이단의 그물에 걸려 휘청거리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교회의 대형화와 함께 실천적 무신론자라는 말이 서서히 등장합니다. 이 말은 교회는 다니지만 종교인으로 살거나, 취미생활과 클럽 활동과 같은 여가 생활의 하나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양성되기 시작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데 봉사하지 않고,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는 나 홀로만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성도와 목회자들의 관심은 개인의 회심과 성화가 아니라 교회의 크기입니다. 대형교회를 다니는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는 반면에 작은 교회 다니는 이들은 마치 패배자처럼 행동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의 목표는 오직 대형화입니다. 대형화는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명예가 교회 안에 들어왔고 결국 교회를 잡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모든 매체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대단한 능력을 가진 듯 각종 집회의 강사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대형교회에서 실시하는 세미나에 벌떼처럼 몰려듭니다. 모두가 대형교회를 꿈꾸는 불나방처럼 찾아갑니다. 그러나 마침내 불에 타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대형교회는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합니다. 마치 그것을 대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목사가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상태를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세미나를 하는지 우스운 일이지만 여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미나를 할 때마다 대형교회는 점점 전국구가 됩니다. 교회를 분립해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일에 관심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건강한 교회를 위한 세미나라고 속임수를 씁니다.

세미나에 투자하는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회는 작은 교회들입니다. 이들은 세미나를 주최하는 교회처럼 대형교회가 되는 꿈을 갖습니다. 처음에는 소박할지 모르지만 점점 욕심은 창대해집니다. 그래서 개중에 성공한 교회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세미나를 열어서 전국구가 되고자 합니다. 목회 본질을 나타내는 세미나가 아니라 교회 성장을 위한 것은 모두가 다 교회를 허무는 일입니다.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교회는 대형교회 목사만 되면 한국교회 지도자로 등장합니다. 대형교회 목사가 된 것으로 한국교회를 책임지는 존재로 여겨지는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안에 무임승차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그룹들도 내세우는 강사는 대부분 대형교회 목사이거나 엘리트 코스를 밟은 목사였습니다. 그러기에 신학생들은 유학을 필수과정으로 삼았고, 박사가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한국에 가짜 박사 논란이 많은 이유입니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한국교회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던 목사들은 더 배워야 할 존재들로 전락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대적할 적은 대형교회의 우상화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고, 한 영혼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목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크기가 성공의 대명사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증거라고 생각하는 비뚤어진 신앙이 괴물 같은 한국교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천대받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나타난 보고서에도 한국교회의 대형화가 가장 많이 비판 받았습니다. 2013년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약 16%만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고 하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한국교회를 부정적으로 만든 가장 큰 이유라는 통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대형교회라는 우상화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너도 나도 대형교회가 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계속해서 머물면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만 당할 것입니다. 우리의 우상을 던져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살아남는 길입니다.

신동식 (빛과소금교회 담임, 기윤실 생활신앙실천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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