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 제사에 대하여

 

글: 이문식 목사 (산울교회)

 

 

  근대화 이후 유교적인 세계관이 그 영향력을 많이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에서는 명절 때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또 귀신에게 제의를 행하는 샤머니즘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최근 사주팔자,

 

혹은 점복을 행하고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등의 무속적 행태가 젊은 세대에게도 더 크게

 

유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면에 기독교신앙은 이러한 제사나 샤머니즘적인

 

무속행위를 엄하게 금하고 있다. 성경은 "대저 이방인에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라고 말한다. 여기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은 헬라어 '다이몬'

 

(daimonion)을 번역한 것으로서 '타락한 천사'(계12:4)들을 가르키는 것이지 결코

 

우리 동양인들의 사고처럼 죽은 사람의 혼령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죽은 자의 혼령은 사망 즉시 음부 혹은 낙원으로 가서 주님의 재림때까지

 

그곳에서 머문다고 말하지, 죽은 자의 혼령이 귀신이 되어 이 세상에서 돌아다닌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양 세계관에서 말하는 귀신과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은 전혀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에서 말하는 귀신이란 과연 무엇인가?

 

 동양에서 말하는 귀신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혼령, 혹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에게 화와 복을 내리는 정령(精靈)을 가르킨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적 의미는

 

후대에 그 의미가 통합 정돈된것일 뿐, 동양의 여러 사상에 따라 귀신론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진다.

 

 

< 무속의 귀신론  >

 

 먼저 한국의 무속사상에서는 사후의 인간은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어진다고 본다.

 

그 중 '혼은 사망 후 유계(幽界)로 가고 백은 땅으로 가서 흩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혼이 한을 품고 현세에 방황할때에 이것이 귀가 되어 재앙이 그 집에

 

임한다고 보는 것이다. 무속에서는 이런 귀신을 자연신(自然柛)과 구별하여 사령신

 

(死靈柛)이라고 부른다. 무속에서 '천지신명이시여 일월성신이시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라고 할때에, 이 신들은 자연을 신격화 한것이거나 자연에 내재한다고 믿는 정령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것으로서 일종의 자연신 숭배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령신에는

 

국가나 촌락 공동체 씨족의 시조, 조상의 영이 포함되어져 있는데 이것은 인간신 - 즉,

 

사령신(死靈神)숭배인 것이다. 대체로, 후손들은 이 조상의 영이 유계에 가도록 잘

 

섬겨야 집안이 평안하고 후손이 무병장수한다고 생각하며 조상신 숭배를 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여귀(厲鬼), 잡귀(雜鬼), 객귀(客鬼)들은 유족이나 후손에 의하여

 

가족신으로 모셔지지 못한것들이다. 이들은 그러므로 한(恨)과 원(怨)을 풀지 못하여

 

유계에 가지 못하고 현세에 떠도는 원귀(寃鬼: 원통한 귀신)가 되어 저주와 재앙,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귀신의 재앙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사람들은

 

무당이라는 영매(靈媒)를 통하여 이러한 원귀들의 원과 한을 풀어주거나 혹은 무당의

 

'몸주'를 통하여 이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보통 이런 무당의 몸주들로는 특별히

 

영험하거나 힘이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사령이 들어서는데, 주로 영아의 사령과 처녀,

 

총각의 사령이 들어선다.  그리고 특출한 인물의 사령은 앞날을 예언하고 재앙을

 

막아주는 영험한 귀신으로 숭배되는데, 이조초에는 고려 말의 억울하게 죽은

 

최영장군의 영을 몸주로 받은 무당들이 성행하였고 이조말에는 임경업장군의 영을

 

몸주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무당들이 성행한 것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불가의 입장>

 

  불가에서는 근본적으로 조상신의 개념이 없다. 불가에서는 사후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나, 사망 즉시 황천길로 떠나 염라부로가서  49일만에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아 징벌을 받거나 업에 따라 윤회하여 다시 축생이나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와 같은 업보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득도하여 부처가 되어

 

이 윤회의 고해에서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불가에서는 오직 불공만

 

드릴뿐 죽은 조상신을 가정의 수호신으로 섬기는 조상숭배는 하지 아니한다.

 

 

<유가의 입장>

 

  유가에서는 원래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이 대세이다. 원래 원시

 

유교에서는 하늘이 인격화되면서 상제 또는 천제라는 개념만 있었다. 시경에서는

 

'천이 은혜를 베풀지 않아 백성들이 눈물바다를 이루는구나'라고 하였고, 또 '어째서

 

천으로부터 벌을 받는지 내 죄는 무엇인지 알길이 없네'라고 하였다. 즉 원시

 

유가에서는 하늘 신 개념은 있었어도 조상신 개념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중국왕실에서

 

큰 공이 있고 지위가 높은 성왕들에게만 제사가 드려졌는데 이것을 조(祖)라고 하였다. 

 

또 국가나 촌락에서 큰 덕이 있는 사람에게 만 제사를 드렸는데, 이를 종(宗)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조와 종은 그 제사의 성격이 결코 조상신과 연결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주나라 때에 이르러  혈통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민간에 성행하여

 

자리를 잡았다. 당시 이와같은 제사예법의 문란을 한탄하던 공자는 '조상신(神)에게

 

드리는 제사만 효의 연장으로서 인정'하였을 뿐(論語 泰篇), '다른 귀에게 드리는 제사는

 

도에 맞지 않으며 복록를 구하는 것으로 아첨과 다름없다'(論語 爲篇)고 비판하였다.

 

더 나아가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겠으며 삶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論語 先篇)라고 하였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論語 雍篇)고 권고하였다

 

이처럼 유가는 효의 연장으로서 조상신 숭배를 마지 못해 허락하였을 뿐, 샤머니즘적인

 

기복의 동기에서 귀신숭배를 하는 것을 금하였다.  특히, 조선 초 성리학자인 정도전은

 

그의 책 '삼봉집'(三峰集)의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사람이 죽으면 혼기(魂氣)는

 

하늘로 올라가고 체백(體魄)은 땅으로 내려가니 자연으로 흩어짐이다. 사후 혼기와

 

체백이 다시 합하여 생명이 될 수 없다는 이치 또한 명백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고,

 

남효은은 그의 책 '추강집'(秋江集)의 '귀신론'(鬼神論)에서 '사람이 죽어서 형체가 이미

 

소멸되면 이(理)는 이(理)대로 기(氣)는 기(氣)대로 돌아가니, 어디에 그 마음이 있고

 

그 형상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처럼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은 그 내세론에 있어서

 

귀신의 존재를 현저히 부정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서경덕은 그의 책

 

'화담집'(花潭集)의 '귀신 사생론'(鬼神 死生論)에서 '비록 일편촉향의 기(氣)라도 그것이

 

면전에서 흩어지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 여기는 마침내 흩어지지 아니한다'라고

 

함으로써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희미한 단초를 놓았다. 즉 음정(陰精) 및 기(氣)의

 

활동체로서의 귀신을 인정하고 사후 제사의 필요를 설정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람이 죽은 사람의 혼령을 의미하는 귀신을 숭배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샤머니즘의 영향 탓이지 불가나 유가의 영향은 아니다. 비록 유가에서

 

'효의 표현'으로서 조상제사를 허락하였으나, 이조차도 유교의 고유한

 

전통이라기보다는 중국의 고대신앙으로부터 유래한 것일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제사가 유교의 산물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유교가 한 역할은 중국 민속의 제사를 효의 차원에서 예법으로 확립한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초에는 일부 사대부층에 속하는 사람들만 조상제사를 지냈으나

 

조선 말 철종때에 이르러 전 국민의 약 7할 정도가 양반이 되버리는 신분해체의 상황이

 

도래하면서, 제사가 어느덧 전 국민에게 보편화된 것이다.

 

(안점식, 「세계관과 영적전쟁」P141)

 

 

<기독교와의 충돌>

 

 이처럼 조상숭배가 보편화된 조선말에 드디어 제사문제는 기독교와 유교사이의 큰

 

갈등으로 대두되었다. 1791년 정조 신해년에 정약용의 외종이었던 진산(珍山)사람

 

윤지충과 권상연이 그들의 천주교 신앙에 따라 제사를 폐하고 조상의 신주를 불사르는

 

사건이 생겼다. 이들은 관원에게 체포되어 패륜외도의 사상에 물들어 혹새무민케하는

 

자로서 멸기난상의 죄목에 해당된다고 고발되어 참수형에 처해졌다(신해교난). 그후

 

1801년 이승훈,정약종, 최창현, 최필공, 홍교만, 홍낙민등 여섯명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으며, 권철신,이가화는 옥사되었고, 정약용,정약전은 유배되는 대박해, 소위

 

신유교난이 일어났다. 때에 순조 원년 대왕대비 정순왕후는 그 하교문에서  '사람이

 

사람됨은 人倫이 있기 때문이요, 나라가 나라됨은 敎化가 있어서 인데, 이제 저 西學은

 

어버이도 없고 임금도 없어서 人倫도 헐어 파괴시키고, 敎化에 반역하여 스스로 되놈과

 

짐승으로 돌이키게 한다'라며 천주교를 박해하였다. 

 

 한마디로 조선말의 유교체제는 기독교의 조상신 숭배 금지 및 제사 폐지를 유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효를 무너트리는 패륜의 행위로 본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분명히

 

효는 기독교인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제사는 참된 효행의

 

표현이 아니라 귀신(다이몬)의 궤계에 속아 효를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이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일관되게 논박하여왔다.  

 

 

 그렇다면 성경의 귀신론은 무엇인가?

 

 이미 말한 것처럼 성경은 현세에 횡행하는 조상신이란 '조상의 사후의 영'이 아니고

 

사탄과 그 악령들이 조상의 이름과 모습과 형태를 흉내내어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중국 민간에서 연원된 잘못된 내세관에 근거하여 유교에까지 들어온 이

 

샤머니즘적인 조상신 숭배를 기독교인들이 반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성경은 이처럼 사람들이 사탄과 악령들에게 속아 악령들을 그들의 조상신으로

 

착각하여 제사의식에 참여할때에, 악령(다이몬)과 영적 교류를 하게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고전10:20-22). 칼빈은 '성찬시 마치 우리가 입으로 포도주를

 

마시는것과 똑같이 영혼은 진정 그 피 가운데서 친교를 나눈다'는 영적 임재설 또는

 

교통설을 제시했는데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마찬가지 입장에서 "마귀는 사람이

 

쉽게 우상숭배한다는 점을 이용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우상에게 희생제사를 드릴 때

 

그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중립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사실 악한

 

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와의 영적 교제에 들어가는 것이다." 라고

 

경고한다. 영국의 유명한 성경학자 버클레이(Berklay) 박사도 고린도 주석에서

 

말하기를 "마귀들과 악령들은 언제나 사람의 몸에 들어가려고 숨어 기다리고 있었으며

 

실제로 들어가면 그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고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이 영들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에 머물러 있다가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먹을 수 있을까?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이 제사의 실체를 밝히 파악하게된 

 

한국 기독교인들이 효행과 제사참여를 명백하게 분리하며 평소의 효행을 강조하되

 

제사행위에 대해서는 그 참여를 금지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결론이다.  신명기

 

32:15-17절에 보면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 곧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라고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0:14절과 20절에서는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 대저

 

이방인에게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것이요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고

 

하였다.

 

 

<한국교회의 교훈>

 

그래서 1897년 4월 14일자 「죠선 크리스도인 회보」의 '우상론'에서는 "슬프다! 세상

 

사람의 우상을 숭배함이여! 당장에 살아있는 부모의 뜻을 순종치 아니하고 근심을

 

끼치다가, 부모가 죽은후에 그 신주에게 제사를 지내며 효도를 다한다하는 사람은

 

재주있는 장색에게는 절하지 아니하고, 그가 만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라고 하였고 1897년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는 "제사를 금지하고 장례는

 

엄숙 간편하게 하도록 지도 할것이요 장례나 제사시 음식 차려놓고 배불리 먹는 것을

 

금한다."고 결의하였다.

 

 이처럼 복음이 전파될때에 복음은 항상 복음을 수용하는 민족이나 부족의 고유한 종교

 

혹은 내세관과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문화와 종교를

 

분리하여 문화적 내용(효)이 복음의 합당한 것이면 기꺼이 수용하고 그 종교적 형식

 

(제사)이 복음에 합당치 아니할때에는 마땅히 어떠한 댓가를 치루더라도 그것을

 

수용해서는 아니된다. 만일 이를 수용시에는 종교적 혼합주의로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한국교회는 조상제사를 폐하는 대신에 효의 개념은

 

깊이 수용하여 추도예배라고 하는 새로운 효의 종교적 형식을 창조적으로

 

제안권면하는 것이다.  
 

 

하여, 다음과 같이 교우들은 행함이 마땅하다.


①  평소에 효를 행하고 가문의 여러 친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형제와

 

동기간에 화목하는데 앞장서야한다.

 

②  되도록 제사 장소를 피하고 악한 영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노력하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혹은 불신 가족들을 전도하기 위하여 덕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제사 장소에

 

있게 되는 경우에는 악령과의 접촉을 단절하기 위하여 평소보다도 더욱 성령에

 

충만하여 기도에 힘써야한다.

 

③ 동시에 그 과정이 치열한 영적 전쟁임을 의식하고 가족과 일가친척이 악한 영과의

 

교제에 빠지지 않도록 간절히 중보 기도하여야만 한다.

 

④ 추도예배를 드릴시에는 고인의 사진을 세우는 것 외에 향촉이나 음식이나 제사상을

 

차리지 않도록 하고 엄숙하고 단정하게 고인의 덕성과 인품과 선행과 신앙을 되돌아

 

보며 생전의 당부와 유언과 교훈을 되새기면서 온가족이 서로 화목하고 더욱 힘써

 

하나님을 섬겨 땅에서만의 가족이 아니라 하늘의 가족이 되도록 서로 권면하여야한다. 

 

⑤ 추도예배시 불신 친지나 가족의 비웃음을 받지 않기 위하여, 잘 준비된

 

'추도예배순서지' 및 '생전의 부모님의 육성 녹음Tape나 영상'등을 준비하고,

 

'부모님께 행하지 못한것과 형제간에 우애를 더 깊이 못한 것을 깊이 회개하며,

 

새롭게 가족 사랑을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등'준비된 기도와 설교말씀을 잘 준비하여

 

깊은 감동을 주도록 노력해야한다.

 

⑥ 추도예배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온 식구가 함께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것이 좋다.

 

경우에 따라 음식을 차려놓고 둘러 앉아 예배 후 식사를 하여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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