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황상하 ㆍ 2013/12/23 ㆍ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이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신앙은 삼위 하나님과 구원에 관한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넓게는 모든 사상이나 철학이나 역사나 예술이나 문학이나 경제나 정치나 문화가 다 신앙의 활동영역입니다. 그런 분야에 대해서는 믿음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분석하여 나름대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은 단순히 학문적 연구와 분석의 대상으로만 취급할 수 없습니다. 영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감각적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영에 대해 분별하는 것은 세심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우리가 신앙과 교리와 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 영에 대한 말이 나오면 어떻게 말을 해야 될지 모르는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악한 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성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사도 요한이 영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고 한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영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영을 볼 수는 없습니다. 영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영이 아닙니다. 만약에 영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볼 수 있습니다. 천사나 하나님의 사자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경우에 눈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때도 눈에 보이는 그 모습은 영의 본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영은 모습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에 대한 문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영의 문제에 대해 바르고 건전한 지식과 깨달음이 없으면 아주 잘못될 위험이 있습니다.

성경은 영이 직접 나타나거나 활동하지 않고 사람이나 지식이나 사상이나 문화나 그 외의 여러 것들을 통해서 활동한다고 가르칩니다. 성령의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서 1장 21-22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 영역에 대해“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예수의 영인 성령의 활동 영역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활동 영역은 곧 악한 영의 활동 영역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하시지만 악한 영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허물기 위해 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뿐 아니라 만물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분별해야 하고 또한 악한 영의 활동도 분별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점을 매우 강조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활동 영역은 교회 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특별히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악한 영을 경계해야 합니다. 악한 영의 활동은 언제나 성령의 사역을 빙자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은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을 이용하고 성령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들을 모방하여 성도를 속이고 기만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령께서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사용하여 일하셨기 때문에 악한 영은 거짓 사도와 거짓 예언자를 교회에 투입하는 전략을 사용하였습니다.

오늘날은 목사나 장로 같이 교회 안에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이용하여 교회를 허무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악한 영의 방법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외부의 공격 보다는 내부로부터의 공격에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다 악한 영의 전략에 의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세워 가시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증거와 가르치는 것인데 악한 영도 그 방법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들을 이용했고 초대교회에서는 선지자나 예언자나 사도나 교사를 이용했습니다. 요즘은 두 말 할 것 없이 목사나 선교사나 장로나 그 외에 영향력 있는 지도자나 능력이나 신비한 체험 같은 것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분별해야 합니다. 악한 영은 초대교회 때만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도 활동하였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주로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전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언자들의 특징은 자신이 전하고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으로 자처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참 선지자뿐 아니라 거짓 선지자도 같은 주장을 하기 때문에 누가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지 또는 진리의 영의 지배를 받는지 잘 분별해야만 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는 하나님과 바알 중 참 신과 거짓 신을 가리기 위한 갈멜산에서의 대결이 있었고 그 대결에서 하나님이 참 신이심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악한 영은 언제나 노골적으로 바알이 참 신이라고 주장하는 방법만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이 참 신이라고 주장하면서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cf. 왕상 18:6-12).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언제나 왕이나 백성들에게 좋은 말만 하는 것이고 참 선지자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미가야에 대하여, 그는 한 번도 내게 좋은 말은 하지 않고 악한 말만 하기 때문에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 되게 전하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진리만 전하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위로하고 칭찬하고 용기를 주는 말을 좋아합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이유로 죄를 책망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메시지를 싫어합니다. 경제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영적 “수요(需要)”가 그렇습니다. 진리를 간절히 듣기 원하는 수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 축복, 성공, 위로, 형통, 치유, 능력, 체험 같은 메시지는 수요가 많아서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진리만 전하는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 지경입니다.

초대교회에 가현설 자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믿지 않았고 육체의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현설 자들은 지식도 많고 수사학에도 능했기 때문에 많이 배우지 못한 성도들이 변론으로는 그들을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성도들은 거짓 교사나 거짓 선지자들과의 논쟁에서 그들을 이길 만큼 학문과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이긴 것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한 때문이고 또한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악한 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복음을 이상한 사상과 그릇된 가르침과 일치시키려는 교묘한 악한 영이 전략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악한 영은 복음을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나 긍정적인 생각 같은 것과 일치시키려고 합니다. 복음을 형통과 축복, 성공 지향적인 복음으로 재 설명하려고 합니다. 병 고치는 복음, 기적을 행하는 복음, 성공을 약속하는 복음, 사회개혁주의 복음, 그 외에 별의별 형태의 복음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사도 요한은 ‘미혹의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미혹의 영은 우리가 들으면 흥미가 있고 구미가 당기고 관심을 끌게 하는 것들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진리에는 그런 달콤한 것이 없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신데 사람들은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마치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 신이신 하나님을 싫어하여 자기들의 마음에 맞는 하나님을 만들어 섬겼듯이 요즘 교인들 중에는 자기 마음에 맞는 성령을 만들어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이상한 기적이나 체험하게 하는 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악한 영이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성도들을 미혹하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성령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은 목사도 이용하고 선교사도 이용하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방법은 성령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이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이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이 진리의 영인지 미혹의 영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달콤하고 흥미롭고 내 입맛에 맞으면 악한 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악한 영의 결정적 증거는 계시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은 전략적으로 복음을 왜곡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경적”또는 “말씀 중심”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철저한 것 같은 방식으로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악한 영은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을 감추기 때문에 세심하게 주의하지 않으면 속기 쉽습니다. 악한 영을 분별하는 데도 결정적 시금석은 사랑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악한 영은 교묘한 엘리트 의식의 교만을 드러냅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영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절대로 진실한 사랑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악한 영도 사랑을 강조하지만 그 사랑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은 사람보다 은사나 능력이나 깨달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진리의 영은 절대로 사람을 무시하지 않지만 악한 영은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사람을 무시합니다. 진리의 영은 사람을 겸손하게 하지만 악한 영은 영적 교만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특징이 바로 계시의 말씀을 듣지 않는 증거들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고 지혜의 영이시고 분별의 영이십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악한 영을 분별하고 은혜와 진리 가운데 진실 된 사랑을 실현하여 교회마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요일 4:6-



출처: USA아멘넷 신앙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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