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됨: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받게 되는 이중 은총 / J. 토드 빌링스

 

 

.....요한 칼빈은 사도 바울과 요한의 글에서 강조되고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나 그리스도 안에 거함의 개념들을 토대로 하여, 이 새로운 신분이 어떤 것인지 잘 조명해 주고 있다. 칼빈에 따르면, 하나님께 입양되어 우리가 받게 되는 구원의 실체는 우리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고, 그 연합 안에서 받게 되는 이중은총에 있다.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사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셨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실 수 있게 해주셨다. 그리스도에 동참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중은총을 받게 된다. 첫째로는, 그리스도의 흠 없으심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 결과 우리는 재판관 대신 은혜로운 성부 하나님을 하늘에 모시고 있게 되는 은총을 말한다. 둘째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받게 되는 성화의 은총을 가리키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흠 없고 순결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경되는 것이다.(기독교 강요 Inst. 3. 11. 1.)

 

칼빈이 분명히 보여주는 바대로,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의 구별된, 그러나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은총을 받게 된다. 칭의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선언되며, 성화를 통해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덧입어 점진적으로 새롭게 재창조되는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받게 되는 이 이중은총은 완악하며 자족적인 노예상태에 있던 우리를 변화시켜, 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하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사모하게 되는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주는 일차적 은총은 법정적인 것, 법정에서 판사가 그러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결정을 변경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로지 우리를 위해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여잡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옛 사람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양자된 새로운 신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입은 우리에게 주시는 바 그리스도의 의라는 이 은총 외에 우리가 첨가할 수 있는 노력은 아무 것도 없다.

 

칼빈의 당대에, 많은 그리스도인은 구원이 자기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의로움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공로 외에는 없다고 가르치는 오늘날의 MTD(도덕적 치유적 이신론(理神論)) 신학과 유사한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칼빈은 우리의 구원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드러내는 "선한 행위"가 필연적으로 따르지만, 그렇다고 구원이 "행위로 말미암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칼빈이 생각할 때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성화 역시 의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우리의 구원은 용서(칭의)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성화)도 포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화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과 같은,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서 보이는 "우리 편에서의 반응"이 아닌 것이 된다. 칭의가 그러하듯 성화도 그리스도와 연합 속에서 우리가 받게 되는 은총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칭의와 성화 사이의 논리적 상관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구별은 존재하지만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칭의와 성화 사이에 시간적 간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를 받으면서 다른 은총은 받지 않는 경우란 불가능한 것이다. 이 두 은총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두 은총을 분리됨 없이, 한꺼번에 받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는 것은 거부하면서 그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죄의 사면만을 받으려는 것은, 킬빈 자신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그리스도를 둘로 찟으려는 시도"라 하겠다. 칭의와 성화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을 입양이라는 각도에서 본다면, 하나님 자녀라는 법적 신분은 받아들였으나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것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새로운 신분에 합당한 모습으로 빚어 나가시는 데에는 여러 가지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사용하신다. 예배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 듣기와 읽기, 성찬 참여, 기도와 교제, 궁핍한 자들을 위한 섬김에 이르기까지. 지면상의 제약으로, 나는 칼빈이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는 기도성만찬, 이 두 주제에 집중하려고 한다. 칼빈에게 있어서 기도와 성만찬은 모두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을 덧입도록 우리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이 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게 되는 이중은총적 모습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칼빈은, 우리가 기도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 안에서는 "어떤 선한 것도 나올 수 없으며," 그러므로 우리 "외부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특히,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만 할 것은 우리가 필요한, 그러나 결핍된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 안에 풍성하게 있다는 것과, 성부께서는 그 풍성함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차고 넘치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넘쳐나는 샘에서 우리의 결핍된 것들을 길어 올리게 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 향한 초점, 그리스도를 향한 이런 갈구야말로 그리스도인 기도의 바탕인 것이다. 왜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우리 입양 절차의 보증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칼빈은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지성소에서, 성부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우리 스스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자격으로 기도에 들어갈 수 있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간구를 예수님의 기도에 덧붙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가운데서 맛보는 기도의 삶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칼빈도 말하고 있거나와, 우리는 기도할 때에 그저 우리의 힘과 노력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이 입양 절차의 보증이 되시기에,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한껏, 목 놓아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떤 주저함이 생긴다 하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잊지 말자.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기도할 수 있는 담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십사 언제나 성령님을 우리 앞에 붙잡도록 하자. 우리만 놓고 보면, 두려움 때문에 이 땅의 임금에게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입양의 주관자이신 성령께서는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모든 근심을 가슴으로 받아주시고자 부드럽게 부르고 계시는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심으로서 우리가 하늘의 임금께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가운에 우리가 받게 되는 이중은총의 맥락에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칭의를 통한 사면과 새로운 삶이라는 은총을 거저 주고 계시다는 사실의 반증이 된다. 우리의 의와 새로운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에, 우리 양심은 잠잠해지고,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자애로운 아버지라고 거리낌 없이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과정 가운데,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것과 전능하신 왕의 자녀답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의 수납에 대해 가르침에 있어서, 그리고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바, 성찬에 있어서 떡과 잔이라는 상징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가시적이 되었다는 내용을 칼빈이 언급할 때, 입양의 언어는 그 중심에 위치한다. 자신의 주저인 [기독교 강요]에서 성찬론을 다루는 칼빈의 첫 문장이 "하나님은 우리를 그저 종으로만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단번에 우리를 그 가족으로 입양하셨다"고 입양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될 정도이다. 입양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섬길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한량없는 자비의 수혜자가 되었다. 킬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그렇기에 자녀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시기 위해 우리 생 전체를 통틀어 우리를 먹여 기르시는 역할을 책임지신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한량없는 풍성함 가운데 우리를 계속해서 양육하시겠다는 약속으로 우리를 안심시키신다."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온 입양아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으로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친히 증거하신대로 우리를 위한 생명의 떡이 되시는, 이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참되고 복된 영원한 생명을 받는 영적 만찬"을 베푸신다. "그리스도만이 우리 영혼의 유일한 음식이 되시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초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의 안에 거하는 것과 말씀과 성찬을 먹음으로 양분을 공급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입양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예수님을 단순 모방하여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고 묻고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의 삶에 합쳐져야만 한다. 이 합쳐짐이야말로 그리스도와 연합이 의미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우리는 죄 사함을 받게 되고, 이렇게 해서 입양과정과 입양된 자녀로서의 새로운 삶의 효력이 발생한다. 하나님께 입양된다는 것, 그것은 영성훈련이나, 빈민구제, 이웃 사랑을 하는 등의, 우리 노력을 통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결과로 맺게 되는 열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for you) 이루신 사역의 열매(칭의)이며,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in you) 하고 계시는 일(성화)의 열매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삶을 얻는다는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이 복음은 우리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이 복음이 전하는 바는 그리스도를 흉내 내거나 예수님이 하셨을 법한 일을 하는 우리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기쁜 소식은 실제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신 새로운 삶 속으로 참여해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J. 토드 빌링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3. 하나님의 자녀됨: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받게 되는 이중은총)에서 발췌, 71~81p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전병욱 목사 피해 사례, 빙산의 일각…징계로 바른 선례 남기길”

2014/10/01


4년 전 일명 ‘스타 목사’로 유명세를 날리던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 사건은 교계 안팎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묻힐 줄만 알았던 사건은 전 목사의 홍대새교회 개척과 함께 현재도 진행 중이다. 제대로 된 징계조차 이뤄지지 않고 유야무야 덮였던 충격적 사건이 최근 책 <숨바꼭질> 출간으로 매스컴을 타고 다시 불거지고 있다.

삼일교회 교인으로, 전 목사의 면직청원운동부터 책 출간까지 참여해 온 권대원 집사를 만나 일련의 과정들을 들어봤다.

4년 지난 전병욱 목사 사건, 지금도 ‘현재진행형’

“책에 나온 피해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에요. 동의를 구하지 못해 싣지 못한 더 심각한 사례들도 있어요. 사진 찍을 때 슬쩍 추행하는 등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례는 너무 많아 집계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였어요.”

▲삼일교회 교인이면서 <숨바꼭질> 편집팀으로 참여한 권대원 집사ⓒ뉴스미션
<숨바꼭질>은 경악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 사례 8건을 피해자들의 구체적 증언을 추려 담아냈다. 성폭행에 가까운 범행이 수 년 간 반복적으로 자행됐음을 알 수 있다.

권대원 집사는 “더 심각한 건, 한 피해자의 공개로 사건이 드러났지만 당회가 사건의 실체를 공개하지 않고 전 목사의 사임을 조용히 처리한 것이다. 13억원의 전별금을 준 것도 교인들은 몰랐다. 그를 내보내기 급급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권 집사는 “피해 자매들만 허위 소문들로 매도당했다. 피해를 당한 자매들은 모두 헌신적인 교회 리더들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사건은 전 목사의 삼일교회 사임으로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임 후 1년 반 만에 전 목사는 홍대새교회를 개척해 버젓이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권 집사는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홍대새교회를 못본 체 할 수 없었다. 친분이 있던 사람들도 많이 갔다. 잠재적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전 목사를 위해서라도 교회를 내려놓게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삼일교회의 뜻있는 몇몇 교인들은 노회를 상대로 전 목사의 면직 청원을 했고, 뒤이어 삼일교회 당회도 절차를 밟아 노회에 면직청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노회는 절차 미비를 이유로 반려하는가 하면, 관련 서류가 중간에 사라지는 일도 벌어졌다. 그렇게 전 목사에 대한 징계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권 집사는 “이번 가을이면 5번째 청원이다. 노회장이 이번에는 처리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기대하고 있다. 노회에서 이번 건을 잘 처리하면 교계에 좋은 선례로 남을 것 같다. 그간 이런 사건이 불거져도 징계 처리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역 치른 삼일교회, 갈등 봉합하며 건강해진 모습

한편 일련의 사건들로 큰 홍역을 치른 삼일교회는 송태근 담임목사의 부임 이후 점차 회복되는 추세에 있다. 오히려 투명한 소통을 지향하며 건강해진 모습이다.

노회 면직청원을 하기까지 당회 내 갈등도 존재했다. ‘조용히 넘어가자’, ‘이제 충분하니 그만 하자’는 일부 주장도 있었지만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힘썼다.

<숨바꼭질> 출간 이후 권대원 집사 등 일부 평신도들은 삼일교회 앞에서 책을 판매하고 있다. 반색하며 지지와 격려를 보내는 교인들, 책을 훑어보곤 ‘이렇게 심각한 일이었냐’며 놀라는 교인들, 마땅치 않다는 표정으로 지나치는 교인 등 반응도 다양하다.

권 집사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지지해주시고 책도 사주셨다. 사건 실체를 몰랐던 교인들도 많다. 그전에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좀 달라진 것 같다. 소통하고 있고 건강해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의 불편한 진실을 봐야 하는 이유가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무조건 쉬쉬 하고 덮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교인들이 맹신을 벗고 현실을 직시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화미 ⓒ 뉴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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