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홍혜선 씨의 '예언'과 자신들이 직접 받은 '계시와 예언'에 따라 한국을 떠나 이곳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건너왔다. 한국 뉴스앤조이 기사(‘전쟁 피해 ’노아의 방주‘ 타고 미국 간다’ 11월 18일 자 기사)에 따르면 일명 ‘노아의 방주’를 타고 전쟁을 피해 '약속의 땅' 미국에 안착한 것이다. 

전쟁을 피해 고국을 등지고 해외로 도피한 과거 사례가 있었던가? 지구종말, 휴거 등의 사회 불안을 미끼로 집단 숙소에 모여 공동생활하고 급기야 집단 자살에 이른 오대양 사건과 같은 사례는 떠오르지만 ‘전쟁’과 ‘해외도피’가 연결된 최근 사례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이번 사례는 한국이라는 사회가 ‘전쟁이라도 확 났으면 좋겠다’는 집단 공멸을 꿈꾸는 사회 불만이나 신자유주의라는 한국 경제 구조 안에서 숨쉬기도 버거운 약자들의 집단 탈출 욕망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기자는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는 모 선교사의 집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소문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오는 목소리들은 모두 경계심과 의심이 가득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에 충실한 뿐이라는 당당함과 전쟁 때문에 해외로 도피한다는 자괴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경이 베어있었다.

때마침 홍혜선 씨가 LA에 왔다는 제보를 받았다. 어렵게 수소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약속대로 ‘있는 그대로’ 작성된 인터뷰 기사를 확인한 홍 씨는 ‘노아의 방주’ 팀의 주소를 보내왔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위치한 모 선교사의 집에서 ‘노아의 방주’ 팀과 몇몇 현지 주민들과 함께 6일(토) 오후 2시 집회를 갖는다는 정보도 함께 왔다. ‘노아의 방주’ 팀이 머물고 있는 주소를 외부에 유출만 시키지 않으면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는 후한 조건이었다.

   
▲ '노아의 방주'를 타고 도미한 팀들이 머물고 있는 K 선교사의 집이 있는 주택가 © <뉴스 M>
   
▲ K 선교사 집 문 앞에 홍혜선 씨 집회에 참가한 이들의 신발이 놓여있다 © <뉴스 M>

도착한 주소지는 조금은 한적하고 외딴 곳에 위치해 있을 거라는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조용한 전원의 고급주택가였다. 대문 앞에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놓여 있었다. 이곳 현지에서도 몇몇 가정이 참석한 듯했다. 문을 열자 40명 가량 보이는 이들이 멀리 거실(living room)에 모여 박수 치며 찬양으로 분위기를 달구고 있었다.

‘전쟁을 피해 도망 왔다고 무작정 그들을 비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충실히 담아보자’는 다짐은 들어서자마자 깨졌다. 한국에서 온 듯 보이는 여성간사와 집 주인으로 보이는 K 선교사가 기자에게 들이밀 4가지 합의 각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언뜻 보니 상위 두 개 항이 ‘주소지를 외부에 발설하지 말 것’, ‘사진 촬영은 협의 하에 할 것’이다. 수용했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기사를 홍 씨와 자신들에게 사전에 보여주고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일종의 기사검열인데, 받아들일 수 없었다. 4번 째 항은 ‘기사로 인해 피해를 입혔을 경우 3억원의 금액을 보상해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기자의 주머니에서 꺼낸 보이스레코더를 보자 눈을 부라리며 뺏으려하는 여성 간사의 모습엔 적의가 담겨있었다. K 선교사는 “한국 뉴스앤조이 기사로 인해 자신들이 받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기사로 오려던 사람 중 상당수가 오지 못했고, 내적으로 갈등과 상처가 컸다. 시간만 있었다면 법정싸움까지 갔을 것이다. 기자라면 치가 떨린다.”고 말하며 정중히 돌아가 줄 것을 요청했다.

K 선교사는 “지금은 우리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12월이 지나고 그때 다시보자”며 홍혜선 씨가 말하지 않았다면 취재에 협조할 의사가 전혀 없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12월 이후에 보자는 것은 전쟁 발발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K선교사는 묵묵부답이었다. 30분 가까이 설득하고 종용했지만 그들은 완강했다. ‘노아의 방주’ 승선은 실패했다.

전에 기자가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K 선교사가 매몰차게 기자를 돌려보낸 것이 미안했던지 몇 자의 사과의 말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집회 동영상이 유투브에 올라왔다’는 정보를 보내왔다. 영상을 보기 위해 홍혜선 전도사가 운영하는 카페(헤븐군사들, http://cafe.daum.net/heavenarmys)에 들어가 보니 흥미로운 정보가 함께 실려 있었다.

‘홍혜선 전도사 샌프란시스코 집회 중 한국전쟁날짜 선포'

샌프란시스코 집회 중, 한국전쟁날짜: 2014년 12월 14일 주일 새벽 4시 반입니다.
자세한 집회내용은 유투브로 올리겠습니다. 사랑~

 

 

출처: 뉴스엔죠이/양재영 기자




전쟁으로 폐허가 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오기 위해 인천공항 로비에서 대한민국 교회를 향해 예언한다는 홍혜선 전도사.

이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 중에서 세 가지 다른 반응을 보게 된다.
                      1. 극한 두드러기 현상을 보이면서 무조건 반대만 하는 분
                      2.. 쌍수로 환영하는 분(미국으로 도피하기 바쁨)
                      3.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진가민가 한 분(관전, 관망자)

이렇게 분류하여 볼 때, 2번 3번은 분별력이 없는 부류이며
1번은 분별을 할 수 있기에
강한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으나
실상은 세 부류 모두 다 분별의 능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본다.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예언자가 비성경적인가? 성경을 토대로 분별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녀(홍혜선)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한 영에 사로잡힌 자임을 알 수 있는 것은

1) 성경의 권위를 떨어트린다.
그녀는 지금 성경에 없는 직통계시를 하고 있다
(성경은 말씀을 가감하는 직통계시를 금하고 있다. (계 22:18 참조))

2) 대언의 영이란 =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인 성경을 그대로 전하는 것을 말함.
1. 성경말씀을 한 구절, 혹은 몇 구절 대언할 때
2. 성경말씀을 풀어 강론할 때(설교나 성경공부)

3) 대언의 영이란 = 1. 보혜사 성령이 셩경 말씀이 기억나게 하시고
                          2. 앞길을 인도하시되 성경 말씀으로 깨우치시고 훈계하여 주심

"예언이란 무엇인가? "
최송연의 영성훈련에 올려둔 글을 읽어보시고 바른 분별력을 얻기 바란다.
http://lake123172.tistory.com/entry/성경적-예언이란-무엇인가

참으로 영분별이 필요한 시대이다.
너무도 무서운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여인이란 사실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여인은 거짓을 말하거나 자기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혹하는 영,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는 영에 접신된 자이다.

이 동영상을 보시는 목양연가 독자님들은
홍혜선 씨가 말하는 대언의 영이란
주님의 영이 아닌,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한 거짓 영이며
그녀의 뒤에서 조종하는 소름 끼치는 사단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반론: 별똥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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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성화의 상이점과 일치점 / J. C. 라일 

  
 

칭의와 성화의 상이점

J.C. 라일

 

 

1. 칭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서 의롭게 되었다고 간주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화는 한 사람을 속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매우 희미한 정도에 머무를 지라도 말입니다.

 

2. 우리의 칭의로 인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로움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위대하신 중재자 그리스도의 영원하고 완전한 의가 우리에게 온 것이며, 믿음에 의해 우리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화에 의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로움은 우리 자신의 것이니 많은 결점과 불완전함이 섞여있기는 하나 성령에 의해 우리 안에 주어지고 물려받은바 되고 또 이룩하여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3. 칭의 안에서 우리 자신의 행위는 어떠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순전함 믿음만이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성화 안에서 우리 자신의 행위는 커다란 중요성을 갖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싸우고, 조심하고, 기도하고, 분투하고, 고통을 받고 수고하라고 명하신 것들이 그것입니다.

 

4. 칭의는 종결된 완전한 일로서 사람은 그가 믿는 순간에 완전히 의로워집니다. 성화는 비교적 불완전한 일로서 우리가 하늘 나라에 도달 하기까지는 결코 완전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5. 칭의는 성장이나 증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곧 사람은 믿음에 의하여 처음 그리스도에게 온 그 시간에 의로워진 만큼 모든 영원성 속에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성화는 뚜렷이 진보적인 일로서 사람이 살아 있는 한 계속적인 성장과 확대를 인정합니다.

 

6. 칭의는 우리의 인격이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 그리고 범죄로부터의 구원 등에 특별한 관심이 있습니다. 성화는 우리의 본성과 우리의 마음의 도덕적 회복 등에 특별한 관심이 있습니다.

 

7. 칭의는 우리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주며, 거기에 들어가기 위한 담대함을 줍니다. 성화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적합한 사람이 되게 하며 우리가 거기서 살게 될 때, 그 나라를 즐길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킵니다.

 

8. 칭의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쉽게 식별되지 않습니다. 성화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행하시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눈에 그 외부적인 나타남을 숨길 수 없습니다.

 

  

 

 

칭의와 성화의 일치점

 

 

1. 둘 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부터 나온다는 데서 그렇습니다.

오직 그의 은혜에 의해서만 신자들은 의로워지며 거룩하여 집니다.

 

2. 둘 다 영원한 언약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떠 맡으신 위대한 구원의 사역 가운데 한 부분들이라는 데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샘으로서 죄사함과 거룩함, 둘 다 거기서 흘러나옵니다. 각각의 근원은 그리스도이십니다.

 

3. 둘 다 같은 사람 안에서 발견되어진다는 데서 그렇습니다.

의로워진 사람들은 항상 거룩하여지며 거룩한 사람들은 항상 의로워집니다. 하나님은 둘을 함께 연결시켜 서로 떨어질 수 없게 하신 것입니다.

 

4. 둘 다 동시에 시작된다는 데서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또한 거룩한 사람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지 모르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5. 둘 다 똑같이 구원에 필요하다는 것에서 그렇습니다.

아무도 용서받음과 마찬가지로 새로워진 마음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마찬가지고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어떠한 자격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영광에 대한 적합함이 없이는 하늘나라에 도달할 사람이 없습니다.

 

 

포도나무선교회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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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생명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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