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복음의 혼동/마이클 호든

 

율법과 복음의 차이에 대해 말하는 또다른 방법은,그리스어에서 서술법과 명령법 차이다.

서술법은 우리에게 사실 그대로를 말해 준다.예를 들어,고양이가 매트위에 앉아 있다는 식이다.

명령법은'고양이를 매트 위에 데려다 놓아라.'처럼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명령법이지 직설법이 아니다

 

명령법 자체(그리스어에서는 수월하게 분별된다)가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임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나는 참으로 더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이것은 논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권면,심지어 그렇게 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이

복음을 떠나 영적으로 죽은 나에게 어떤 것을 해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때,우리는 하나님의 도덕적 의지의

강력한 힘을 조금도 희석시키지 않고 받어들일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대로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될수 있는 모든 것이 되지 못하고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최고를 상실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범한 자들로 정죄 받는다 .

우리의 의는"더러운 옷"(사64:6)과 같다, 그러나 복음을 통하여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칭의)로 옷 입혀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중생)우리가 매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하신다(성화)이런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율법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그러나 오직 복음만이 율법의 법조문과 죄와 죽음의 지배 이 두 가지 모두에서 우리를 구원한다...

 

율법과 복음이 각각 단순히 십계명과 요한복음 3장16절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도덕적 기대를 보여 주는 성경의 모든 것이 율법이고, 하나님의 구원 하시는 목적과 행동을 보여 주는

성경의 모든 것이 복음이다.하나님 말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복음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많은 권면,명령,그리고 명령법들이 있다,이런 것들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복음은 아니다.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복음은 아니다.

우리는 또한 지침도 필요하다.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알아야 깨끗해 질 수있고,우리의 죄를 인정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에게로 도피할 수 있다.

또한 그래야만 이것들이 우리를 감사가 넘치는 순종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

 

무엇을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율법(행위들)에 부응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믿는

것에 대해서라면 복음(믿음)에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을 얻는 수단으로 착각함으로써,우리의"선행"은 하나님을 거슬리는 가장

공격적인 죄가 되고 만다.그러나 오직 믿음만으로 이 선물을 받을때,

믿음은 즉시 의의 열매를 생산해 내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좋은,거룩한 그리고 적절한 것들 조차 복음과 섞여버릴 때는,그리스도 없는 기독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즉 끝없이 펼쳐지는 드라마 안으로 우리를 끌어들이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中

부흥과 개혁사

 

가져온 곳: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웃어보세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답이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며칠 전,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의 아픈 개인사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가 풀러 신학교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었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뛰어난 신학자이며 제게도 책을 통하여 탁월한 신학적 통찰들을 제공해준 분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내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런 아내와 살면서 미칠듯한 고독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결혼 24년 만에 분노하며 떠나겠다는 아내를 그는 놓아 보내야 했습니다. 수년이 흘러, 아내는 외로이 심장마비로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어렸을 때 엄마 때문에 불평을 하면 정신질환을 겪는 엄마와 사는 많은 아이들이 더 힘든 상황을 견디며 살아간다고 지적을 했었다고 합니다. 어른이 된 아들이 “아빠는 그때 30대 중반이셨잖아요. 난 겨우 7살이었다고요”라고 말해주었을 때 그는 자신이 아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안겨준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의 긴 이야기(그의 삶은 아무리 길게 말한다고 해도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긴 세월이었겠지만)를 읽으면서 저는 이런 고난이 그의 신학을 깊이 있게 만든 요소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사의 몇 분이 생각났습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암 캐리(1761~1834)의 아내 도리시 캐리도 인도에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아들이 죽은 후에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품으로 데려가시기까지 마지막 12년을 심각한 정신질환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사에 탁월한 신학자요 목사였던 토마스 보스톤(1676~1732)의 아내도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마지막 10년을 보내고서야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개혁신학의 거성인 벤저민 워필드(1851~1921)는 신혼여행에서 아내가 번개를 맞고 불구가 된 이래 평생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서 두 시간 이상 집을 비운 적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의 아픔들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신실하고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고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깊이는 그들이 겪은, 답 없는 고난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정답을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욥의 세 친구들이 우리와 똑같이 나눠가진 성향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답에서는 깊이가 나오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깊이 따위는 필요 없으니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천박하고 얄팍한 인생들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마지막 말이 제 가슴에 울립니다. “나는 기독교 신자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질문에 답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난 이런 질문에 뭐라 답변해야 좋을지 전혀 모른다. 내가 기독교 신학자로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이런 질문에 답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정도가 될 것이다......정답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기독교를 설명으로 폄하시킬 뿐이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답이 없이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답이 없이 사는 방법을 배우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이 될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답을 모른 채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너무 쉽게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나의 주장이 최소한 내가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내 인생이 왜 무진장 흥미로운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이 답 없는 인생을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개혁주의마을/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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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은?

       
      이세상에 가장 따뜻한 손은 어느 손 일까?
      아버지의 손
      어머니의손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남편
      아내
      자식
      세상 사람들
       
      누가 가장 따뜻할까?
      아버님의 엄한 말씀
      어머님의 무조건의 사랑
      할머니의 사랑
      할아버지의 사랑
      아내의 남편의 사랑
      남편의 아내사랑
      자식사랑
      자식의 부모사랑
      친구의 사랑
      내가사는 이웃사랑 
       
      그중에 가장 따뜻한 손은 어느 손 일까?
      이중에 따뜻한 손은 없다
      가장 따뜻한 손은 바로
      내마음에 손
      바로 사랑의 손인 것이다.
       
      비록 누가 나를 헐뜯어도
      잠시 참고 지나가면 잊혀질것이요
      비록 내손이 탐욕의 손길이나
      마음이 바른길로 가지 못할때
      손을 내 젖는 손 바로 그손이
      가장 따뜻한 손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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