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제프리 와이마 (Jeffrey Weima, 미국 칼빈 신학교 신약학 교수)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신약성경은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해 무엇이라 말할까? 이 질문에 관한 답은 종종 이야기되는 것보다 더 분명하다. 그 답은 또한 논란이 되는 이 주제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어떠한 경험이나 감정보다 더 중요하다. 동성애자인 친구나 가족 구성원과 함께 했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 중 동성애자가 있다면 당신의 경험 및 감각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동성 간의 성행위 문제와 관련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유일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이다.

 

 

예비적 관찰

 

   신약성경의 관련본문들을 살펴보기 전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 예비적 관찰들이 있다.

   첫째, 성향행위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리가 살펴볼 신약의 본문들은 성적 행위를 가리키며 동성애 성향을 다루지는 않는다. 성경은 분명히 동성 간의 성행위를 비난하지만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선천적으로 죄가 있다고 하는 말씀은 없다.

   둘째, 동성 간의 성행위는 비록 잘못이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의 일부가 아니지만 다른 죄보다 더 나쁜 것으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신약의 본문들은 동성 간의 성행위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동등하게 금지되어 있는 많은 다른 것들과 함께 열거한다. 예를 들어, 고린도 전서 6장 9절이 “탐욕스러운 사람들”을 “다른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남성들” 바로 뒤에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이들로 열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401(k) ? 미국 퇴직연금제도의 한 종류 ? 퇴직연금으로 그들이 필요한 이상으로 더 많은 돈을 쌓아 놓고도 자신들의 풍요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교회가 동성 간에 성행위에 빠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려해야 함을 말해준다.

   셋째, 교회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더 연민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우리 북미개혁교단(CRC)을 포함한 기독교 공동체 전체가 동성애 형제 자매들에 대한 공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실패한 것과 그들이, 이성애자들 ? 이들의 성향 또한 타락의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 과 함께, 거룩한 삶을 누릴 준비가 되도록 도와주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것은 슬픈 사실이다.

 

 

예수님의 증언

 

   수정론자들 (Revisionists) ? 성경이 동성 간의 성행위를 비난한다는 전통적 입장에 반대론을 펴는 이들 ? 은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한 예수님의 침묵을 지적하기 쉽다: “만일 동성 간의 성행위가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왜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 어떠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가?” 하지만 이 논점의 약점은 여러 관측에서 분명해진다.

   첫째,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는 동성 간의 성행위를 규탄하는 데 완전히 일치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명시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 한, 예수님은 그 견해와 다를 것이라고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성 간의 성행위에 관한 그 시대 동료 유대인들의 비난에 자신이 대조적 주장을 드러낼 것이라는 그 행위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 암시도 전혀 하지 않으신다.

   둘째,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들만 붉은 색으로 표기해 놓은 “붉은 글씨 (red-letter)” 성경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성경의 다른 부분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다루지 않아야 한다. 바울 사도가 동성 간의 성행위에 대해 말씀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한, 혹은 이 경우에는, 말씀하지 않으신,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말씀" (살전 2:13) 이다.

   셋째, 예수님께서 성매매, 근친상간, 소년대상성행위, 혹은 수간과 같은 다른 성적인 죄들을 대적하여 말씀하신 적도 전혀 없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의 침묵으로부터 그가 그러한 행동에 관대하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넷째,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마가복음 7:21-23절에서 열거하시는 데, 그 목록의 맨 위에는 “성적 부도덕 (sexual immorality, NIV 2011)” 이 있다. 이 특별한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이는 헬라어 porneiai가 단수로 번역되었지만 원래는 복수형이기 때문이다: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들 (sexual immoralities).” 이것은 율법을 잘 알고 계신 랍비 (a rabbi) 예수께서 레위기 18장과 20장 같은 본문들 ? 동성 상대와의 성관계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불법적인 성관계를 꾸짖는 본문들 ? 에서 금지된 여러가지 성적인 죄들 (복수형) 을 염두에 두셨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동성 간의 성행위의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침묵에 호소하는 것과 그 성행위의 특정 형태에 개방적인 사람으로 예수님을 묘사하는 것은 중대한 약점을 갖게 된다. 그 증거 [예수님의 침묵] 는 오히려 동성 간의 성행위는 죄가 있으며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 그것을 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에 예수님이 당시의 유대인들과 보편적인 동의를 하고 계셨음을 보여준다.

 

 

미국 칼빈 신학교 Forum 2015년 가을 호에 “Same-Sex Activity: What Does the New Testament Say?” 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저작권은 Forum과 저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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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reformedjr.com/board05_02/5791

 출처: 영적 분별력/진실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미국서 이탈, 북한으로 쏠리는 한국!

“한미정상, 강력한 대북제재 약속했었다” 비판


한국이 미·일(美·日)에서 북·중(北·中)으로 경도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국무부 관리는 문재인 정부의 지속적인 대북 대화 제의를 두고, ‘트럼프-文대통령이 강력한 대북제재에 합의했었다’며 ‘북한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할 때’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한미 간 합의를 깨고 북한에 쏠리는 행태를 비판한 말이다.


국방부는 7월17일 북한에 ‘오는 7월21일 남북 군사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북한이 이에 무응답으로 일관하자 국방부는 회담 일을 7월27일까지로 연장했다. 7월24일에는 文대통령이 직접 나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에 대한) 북한의 결단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은 정부의 대화 제안을 사실상 묵살한 상태다. 곧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아래는 VOA 보도 내용이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 정부의 거듭된 남북 군사회담 제안과 관련해, 대북 압박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강력한 대북 제재를 가하자는 게 미·한 정상 간 약속이었다며, 북한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 국무부는 미-한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대북 압박 공조를 상기시켰습니다. 캐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24일, 한국 정부의 거듭된 남북 군사 당국 회담 제안이 미국 정부의 대북 접근법에 부합하느냐는 ‘VOA’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지난 6월 강력한 대북 제재를 약속했었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두 정상은 현행 대북 제재의 완전한 이행은 물론, 북한에 최대 압박을 가하고,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중지한 뒤 진지하고 건설적 대화로 복귀하도록 만들기 위해 새로운 대북 조치를 시행하자는 약속을 확인했다는 설명입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17일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적대 행위 중단을 위한 남북 당국 간 군사회담과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북한에 공식 제의했지만 북한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정전협정 체결일인 27일까지 군사 당국 간 대화 제의가 유효하다며 북한의 호응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애덤스 대변인은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에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미래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뿐이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한반도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이루겠다는 목표를 향해 북한에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데 한국 정부와 긴밀히 공조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애덤스 대변인은 한국 정부의 대북 회담 제안에 대해선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고 덧붙였습니다. 국무부의 이같은 입장은 문재인 정부의 남북대화 제의에 대해 미국 정부가 보여온 냉랭한 반응과 맥을 같이합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7일 관련 질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북한과 대화를 위해) 충족돼야 할 모든 형태의 조건들이 우리가 현재 있는 곳에서 명백히 멀리 떨어져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답했습니다.>



출처: 리버티헤럴드 (http://libertyherald.co.kr/article/view.php?&ss[fc]=1&bbs_id=libertyherald_news&doc_num=10858)




미국은 대화를 위한 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북한 정권이 마침내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평화'라는 명목하에

대화를 촉구하는 문재인 정부.




그리고 '이런 시국에' 대통령은...

무려 6박 7일 동안...

여름휴가를 떠났다고 한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누구든 휴가는 제때 가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야 아래 직원들도 더 사기가 함양되고 조직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점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휴가를 떠나기에 적절한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좀 쉬더라도, 대외적으로는 휴가를 취소했다는 메시지가 필요한 때다. 아무리 바빠도 휴가는 가는 '쿨한 대통령', '여유있는 대통령' 이미지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다른 문제도 아닌 심각한 안보상의 위기다. 북한의 ICBM 개발 성공이 맞다면, 휴가를 갈게 아니라 비상근무체제를 돌려야 할 때다. 일을 위한 일을 매우 싫어하는 내가 봐도 그렇다.


만약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슷한 상황에서 예정된 휴가를 갔다고 했더라면, 정치권과 언론들이 얼마나 사정없이 물어 뜯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지금 언론들 대부분은,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에 대해서는 무색무취한 반응이다. 견제와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포기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글 출처: 윤주진님 페이스북

배도의 계절 가운데 생명줄처럼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이 시대 많은 예배들이 오염되고 변질되었음에도 "예배하고 있는데 무슨 예배가 더 필요하냐?"라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예배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두터워지고 계십니까?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더 나은 순종함이 내게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나의 예배는 <혼>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영의 예배>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단순히 보이는 하늘만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도 다녀왔다는 3층천까지 볼 수 있기를 소망하듯 더 깊은 아버지의 품으로 들어가는 <지성소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바로 이러한 진짜 예배, 예배의 원형을 사모하는 자들이 신부요 용사로, 그러한 예배로 인해 신랑되신 주님을 향한 <사랑>과 왕되신 주님을 향한 <충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의 불이 꺼지고 예배의 자리를 지켜내지 못하면,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혼의 예배가 일어나기에 자기 감정이 하나님이 앉으실 보좌에 앉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 여기는 <죄>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기에 결국 사랑도 충성도 지켜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배도할 것이고, 배도 당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배도하게 만들 것입니다.


지금 <나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각을 떠서 타오르는 불에 전부를 태워 향으로 올려 드리듯이 완전하신 주님 앞에 완전히 행하는 예배를 영의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그리고... 다가올 <배도의 쓰나미>를 생각할 때 목회자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한 교회와 인간들을 위한 교회" 중 하나만을 결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성도들 또한 "하나님만을 위한 교회와 인간을 위한 교회 중 어떤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런 결정의 과정 가운데 특히 이단들을 주의하십시오. 주차장과 프로그램 등 각종 편리시설과 보이는 것들에게도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사례비에 대한 염려와 세상의 평가로 두려움이 엄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함으로 목회자들도 성도들도 바른 결정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배도의 거친 물결>이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라나타!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눅 12:4-5)



출처: 김영표 목사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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