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에 의해, 주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다]

구원의 문제와 관련해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 또 하나 있다. 구원은 주님께 속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돈이나 권력, 공로, 그 무엇으로도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인간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없다.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오직 주님만이 구원을 베푸실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몇 년 전, 신장결석으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신장결석을 앓아 본 사람이라면 재앙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은 성탄절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교회의 예배 실황이 중계되고 있었다. 설교자가 누가복음에 기록된 성탄절 본문을 읽고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본문이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과 느낌이 달랐다.

그 본문을 듣는 순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맞아. 지금 나는 구세주가 필요해." 영혼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신장 결석의 고통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하나님이 신장결석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물론 실제로 나를 신장결석의 고통에서 구해준 것은 의사들이었다. 그러나 다가올 진노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 정해 주신 구세주뿐이다. 궁극적인 구원은 주님께 속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바로 구원이 주님에게 오는 것일 뿐 아니라, 그분의 진노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으로부터 구원받는가? 신장결석, 허리케인, 전쟁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 회개하지 않는 불신자들은 죽은 뒤에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아야 한다.

심판의 날에 구세주를 믿지 않는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될 것이다. 산을 가리켜 "내 위에 무너져 나를 덮어다오. 나를 가려다오" 하고 부르짖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앞에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방패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밖에 없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주신다. 예수 그리스의 의의 옷을 입고 있는 한, 절대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는다. 예수님께 피하는 자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며 결코 정죄함이 없을 것이다.

노아가 살던 시대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 온 세상이 홍수에 잠기고 말았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는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이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의 날은 빛이 없는 어둠의 날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어둠이 없는 빛의 날이다.

"당신은 구원받았는가?" 이 질문은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장차 하나님의 진노가 무섭게 쏟아져 내릴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두려워 떨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꽃에 재가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진노를 예수님이 대신 당하셨다. 예수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단언컨대, 이 큰 구원을 등한시한다면 피난처는 어디에도 없다.


R.C. 스프로울의 '구원' 중에서(28-31p) / 출처: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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