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
도대체 사랑의 영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내 글 속에 사랑의 영만큼 생동감 있고 영향력 있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그저 사랑의 능력과 생명, 혹은 그에 대한 믿음을 생생하게 인식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랑이 순수하고 보편적이라는 가르침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고상하다는 반대의견도 종종 나타난다. 사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좋아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한다. 또한 본성적으로 사랑과 반대되는 것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지켜낼 수 없는 것, 바로 사랑의 찬미자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떤 반대의견이란 올바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즉시 무의미해지기 마련이다. 사랑의 영도 마찬가지다. 축복으로 가득한 사랑의 영의 본질과 능력, 그 필요성을 뒷받침할 진정한 근거가 드러날 때 사랑에 대한 반대의견들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오직 선을 바라는 마음

사랑의 영은 오직 선을 바라는 하나님의 영에서 시작된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하나님을 통해, 또한 그분으로부터 창조되었던 창세 이전부터 끊임없이 선을 바라보셨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하지 않는 분이시다. 또한 본래 선하고 모든 선이 그에게서 시작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 이외의 다른 것을 전혀 바라지 않으신다. 세상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하여 무언가 더해지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선을 바라셨고, 그 마음은 항상 동일하게 변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분명 모든 피조물을 축복하시고, 오직 은혜와 선, 행복만을 가져다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밖에 주실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축복과 선이 아닌 다른 것을 행하고 드러내며 존재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오히려 태양이 어둠을 발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오직 선을 바라는 마음은 인간의 마음속에 사랑의 영이 존재할 수 있는 토대이자 근원이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즉 모든 상황 속에서 항상 선을 바랄 때 비로소 사랑의 영을 소유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사랑을 수없이 실천한다. 특별히 불편하거나 형편과 환경이나 분위기가 모순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기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선 사랑이 살아 있는 영이어야 한다. 그래서 자유롭고 의지적이며 보편적으로 활동할 때 사랑의 영이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다. 모든 영은 있는 모습 그대로 자유롭고 보편적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된다. 마치 화내기 위해 화를 명령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우리의 삶 속에 사랑이 살아 있는 영으로 존재할 때 다른 영과 같이 자유롭고 보편적으로 일할 것이다. 사랑은 특별한 환경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언제나 사랑 안에 거하며 일한다. 왜냐하면 사랑의 영은 어느 곳이든,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이든 오직 사랑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꽃은 어두운 밤이든 환한 낮이든 간에 오직 위를 향해 날아간다. 사랑의 영도 마찬가지다. 그 경로가 항상 같으며, 시간, 장소,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원래 그 자체가 축복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기쁜 마음으로 행한다. 베풀고 용서하든, 고통받거나 고통을 피하든 간에 어떤 경우이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사랑의 영은 어디서나 그 자체로 축복이며 행복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진실한 하나님의 모습이고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영은 어디서나 어떤 경우이든 삶의 기쁨과 선이다.

축복 중의 가장 큰 축복에 대해 알고 싶은가?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여 온갖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의 고통과 아픔, 즉 모든 독선의 뿌리가 제거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모든 욕구가 만족하고 인간 본성의 무질서가 완전히 사라진다. 이제 삶은 더는 무거운 짐이 아니며 매일매일 평화로운 생활로 이어진다. 보고 하는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요소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만나는 것마다 모두 유익하다.

사랑은 그 자체가 풍성할 뿐 어떤 숨은 동기나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이 사랑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기름과 같다. 사랑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반드시 가져야 하며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할 수 있도록 모든 게 자연스럽게 돕기 때문이다. 또한 보상을 바라거나 영광과 높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직 스스로 전파되어 사랑이 부족한 모든 이의 행복과 축복이 되고 싶을 뿐이다. 사랑의 영은 분노, 죄악, 증오, 대립에 부딪힐 때 어둠을 마주한 빛과 같다. 그래서 스스로 축복이 되어 어떠한 반대라도 반드시 극복하려고 한다.

화나 악의를 품지 않으려 하고, 다른 사람의 호의를 얻으려 하는 등 다른 마음을 갖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마음속에 오직 선을 바라는 바람뿐이라면 만나는 사람마다 기꺼이 도와주려고 할 것이다. 원수의 분노, 친구의 배반, 그 밖의 모든 죄악은 사랑의 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그 결과 사랑의 영은 더 높은 차원에서 살아 움직이며 스스로가 가진 축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의 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온전함이든 행복이든 간에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한없이 온전하신 기쁨의 하나님이 오직 선을 바라는 변하지 않는 의지, 이것이 바로 완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 외의 다른 마음에 이끌리는 한 타락하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우리는 사랑의 영의 근거와 속성, 그 온전함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윌리엄 로우의 ‘하나님의 첫사랑을 회복하라‘에서(11-15p) /출처: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발췌
 
ReplyForward

'한아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영의 절대적인 필요성  (0) 2023.05.29
사랑의 영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0) 2023.05.29
2. 성령에 의한 기도  (0) 2023.05.22
[개혁교회가 강조하는 부활의 의미]  (0) 2023.05.15
[영원한 생명]  (0) 2023.05.13

+ Recent posts